2018년에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은 모두에게 개방된 개방형 수장고를 운영하고 있다. 개방형 수장고는 대중에게 최대한 많은 소장품을 보여 주어 그들 스스로 작품을 감상하고 해석하도록 한다.

Captured image of MMCA’s ‘VR Tour for Open Storage.’ ©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뮤지엄(박물관과 미술관)은 전문가가 선별한 문화 예술만을 대중에게 선보여야 할까?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뮤지엄에 대한 생각을 조금 바꿔야 한다. 뮤지엄의 패러다임이 변화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문화 민주주의 시대에 뮤지엄들은 이제 대중을 수동적인 문화 소비자가 아니라 뮤지엄의 소장품을 통해 지식을 해석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동적인 참여자로 간주한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변화를 ‘큐레이션(curation)’이라는 단어에서 알아볼 수 있다. 원래 뮤지엄에서 기획자들이 우수한 작품이나 유물을 선별해 전시하는 행위를 뜻하는 ‘큐레이션’은 이제 그 의미가 확장되어 어떤 분야든지, 누구든지 간에 양질의 콘텐츠를 선별하여 새롭게 분류하고 조합하여 특별한 가치를 재창출하는 행위를 뜻하게 되었다. 이 같은 생각의 변화는 뮤지엄 내에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그 변화 중 하나가 뮤지엄의 수장고에서 일어났다. 오늘날의 뮤지엄은 접근성과 포용성, 다양성과 지속 가능성을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술관의 경우를 보자. 우리가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은 미술관 전체 컬렉션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예술품은 해체되거나 보관 상자에 포장되어 수장고에 보관된다. 이러한 작품들은 대부분 다시는 전시 공간으로 나오지 못하게 된다. 미술관이 대중에게 뮤지엄 컬렉션을 최대한 많이 공개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박물관과 미술관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수많은 작품들을 공개하는 방법을 고민해 왔다.

MMCA Cheongju Art Storage Center. Photo by Aproject Company.

이러한 시도를 일찍이 시작한 것은 미국과 유럽의 뮤지엄들이다. 이들은 1970년대 이후 대중이 소장품에 접근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왔다.

그 노력의 일환이 바로 ‘보이는 수장고(visible storage)’이다. 보이는 수장고는 개방형 수장고, 열린 수장고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즉, 기획된 전시 형태가 아니더라도 대중에게 최대한 많은 소장품을 보여 주어 그들 스스로 작품을 감상하고 해석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미술은 작품의 형태, 크기, 매체 등 장르의 다양한 특성으로 인해 개방형 수장고에 작품을 전시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개방형 수장고를 갖춘 많은 미술관 중에서도 2003년에 개관한 스위스 바젤의 샤울라거(Schaulager)는 현대 미술 컬렉션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개방형 수장고의 성공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샤울라거는 한 부부가 1920년대 초부터 수집하기 시작한 아방가르드 미술 작품부터 페인팅, 조각, 설치, 비디오 작품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현대 미술 작품 컬렉션을 공개하고 있다. 이곳은 작품을 포장된 상태가 아닌, 마치 창고에 물품을 진열한 것처럼 배열해 개방형 수장고를 갖추고자 하는 많은 미술관의 귀감이 되었다.

그러나 샤울라거에 방문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절차를 따라야 한다. 이들은 교수 및 전문가, 학생 등 전문인들에게만 예약제로 보이는 수장고를 개방한다. 대중에게 공개하는 시기도 매우 한정적이다.

Partial building structure and façade, Fondation Laurenz Schaulager. © Laurenz-Stiftung, Schaulager.

하지만 샤울라거를 모티브 삼아 2018년에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은 모두에게 개방된 개방형 수장고를 운영하고 있다.

이미 197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수장고형 미술관은 사실 이미 세계적으로 흔한 모델이다. 따라서 불과 5년 전에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은 매우 뒤늦게 세계적 흐름에 동참한 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은 2013년 서울관 개관을 앞두고 정형민 관장이 2012년 제18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취임하면서 시작된 프로젝트였으며 2018년 12월에 문을 열었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과 여주 등에 있던 수장 공간이 가득 차 서울관 개관을 앞두고 미술품을 체계적으로 수장・관리하는 시설이 필요했다. 게다가 흩어져 관리되었던 정부 미술품 및 미술 은행 작품의 통합 관리 시스템의 필요성, 국내 미술 문화유산의 가치 보존 및 관리의 필요성이 부각되는 동시에 점점 사이즈에 구애되지 않고 재료 역시 다양해지는 현대 미술 작품이 많아지면서 이를 위한 대처도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Captured image of MMCA’s ‘VR Tour for Open Storage.’ ©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조금 뒤늦긴 했지만 한국에서 개방형 수장고가 등장한 것은 국내 미술관의 역할이 변화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개관 이후 국내의 많은 미술관들이 개방형 수장고 설립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다.

개방형 수장고를 통해 대중에게 보다 많은 작품을 공개하는 것은 대중의 예술 향유 증대를 위해 중요한 일이다. 미술관들은 이러한 시설을 운영하는 것을 넘어서 현대 미술의 의미를 환기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개방형 수장고의 의의와 역할을 더욱 명확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샤울라거가 개방형 수장고 시설을 운영함으로써 현대 미술에 대한 활발한 연구를 장려하려는 분명한 방향성을 갖고 있듯이 말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