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립미술관은 남해 지역의 특성을 담으면서도 아시아라는 지역적 · 이념적 연결을 시도한 국제단체전 “아시아의 또 다른 바다”를 4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선보인다.
전라남도 광양시에 위치한 전남도립미술관은 남해 지역의 특성을 담으면서도 아시아라는 지역적 · 이념적 연결을 시도하는 전시 “아시아의 또 다른 바다” 국제단체전을 4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선보인다.
아시아의 예술을 생각하며 기획한 이번 전시는 문정희 국립타이난예술대학교 교수와 한서우 학예연구사가 꾸렸다. 전시는 ‘바다’의 경계를 넘어서 아시아 미술이 어떻게 탈이념과 탈경계로 바라보고 있는지 여러 근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엿보고자 한다. 전시는 1900년대 초반에 출생한 근대 작가부터 1980년대 출생의 젊은 작가까지 한국, 대만, 일본의 작가 16인의 작품 약 30여 점을 선보인다.
바다는 지역을 나누고 단절시키는 동시에 여러 지역을 연결하며 문화적 교류의 장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전시가 말하는 ‘또 다른 바다’는 시공간을 넘어 각기 다른 아시아의 지역을 공유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아시아의 또 다른 바다”전은 특히 남해 바다에서 연결될 수 있는 한국, 대만, 일본, 세 국가에 주목해 국경을 넘어선 동양 예술의 다양한 의미를 모색하고자 한다. 이를 펼쳐 보이기 위해 전시는 파(波), 몽(夢), 초(超), 경(境) 총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구간인 ‘파(波), 바다의 파동’에서는 물질 세계를 넘어서 먼 곳까지 퍼질 수 있는 파동을 주제로 한다. 여기서는 다양한 장르를 통해 새로운 예술의 파동을 일으켰던 백남준 작가와 천위룽 작가의 미디어 아트를 선보인다.
음악과 시각예술의 경계를 허문 인터미디어의 선구자인 백남준 (1932~2006) 작가의 작품은 시각과 청각의 경험을 단선회로의 TV로 보여 준다. 전시된 ‘TV 물고기’(1975//1996)는 물고기, 영상, 전자 등이 유영하는 흐름을 담고 있다.
현대 음악을 바탕으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작업하는 대만의 천위룽(Chen Yu-Jung, b. 1989) 작가는 소리를 통해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의 경계를 오간다. 작가는 아시아 여러 곳의 바다 소리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해 왔다. 특히 ‘남해’(2023)는 전남도립미술관 주변의 바다 소리를 채집해 수집된 데이터를 시각화함으로써 자연이 가진 소리의 규칙성을 드러낸다.
‘몽(夢), 바다와 꿈’에서는 바다를 주제로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남도의 예술가 오지호(1905~1982) 작가는 토속적인 한국의 자연미를 한국적 색채와 빛을 담아 독자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는 다수의 회화 이론을 내놓았으며, 전라남도 지역 서양화 발전에 힘썼던 인물이기도 하다. 오지호 작가는 프랑스 인상주의와 일본 외광파 화법에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작가는 그러한 양식을 그대로 따라 하는 대신 한국 정서에 맞게 재해석했다.
강홍구(b.1956) 작가는 사진을 기반으로 회화와 콜라주를 접목한 작업을 통해 디지털 풍경을 만든다. 전시 작품 중에는 신안 갯벌의 모습을 흑백 사진으로 출력하여 질감이 느껴지는 아크릴로 채색한 작업이 전시되어 있다. 그는 인간과 문명의 장면을 비판적 시각으로 담아내 시대적 풍경과 공간을 포착한다.
한국의 김승영(b. 1963)과 일본의 무라이 히로노리(Murai Hironori, b. 1962) 작가는 한일 국경에 위치한 대한 해협 공해에서 만나 소풍을 즐기는 퍼포먼스를 기획해 국가 간의 차이를 넘어 난관을 극복하는 작업을 펼쳤다.
일본의 우치다 아구리(Uchida Aguri, b. 1949) 작가는 현대 일본화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는 색채라는 원료로 자연에 대한 경험을 표현함으로써 ‘생명의 흐름’을 표현한다. 그는 꿈이 강으로 흘러 바다로 이르는 장면을 리드미컬한 색채와 동적인 형태로 표현하여 생명력과 순환성을 담아낸다.
‘초(超), 바다 넘어’ 에서는 전통 산수를 재해석한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의재 허백련(1891~1977) 선생은 고도의 정신성을 기반으로 산수화를 그렸던 남종화의 거장으로, 호남 지역에서 후진 양성과 사회 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던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문인화로서 산수를 그렸으나 강과 호수를 그렸던 전통적 산수화와 달리 바다의 이미지를 담았다.
이러한 한국 남종화의 새로운 정신은 이후 남동 허건(1907~1987) 선생으로 이어진다. 허건 작가는 전통적인 수묵 기법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이고 자유분방한 화풍을 구축했다.
산수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작업하는 김천일(b. 1951) 작가는 허백련과 허건의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김천일 작가는 동아시아 그림의 핵심이 산수화에 있다고 보고 현장 작업을 중심으로 산수화를 연구해 왔다.
전시는 현대적 산수화의 흐름을 좀 더 거시적으로 바라보며, 현대적 산수화의 명맥을 이어 오고 있는 다른 아시아 지역의 작가들을 조명한다. 대만의 리이홍(Lee Yihong, b. 1941) 작가는 타이완 북부 해안 풍경을 입체감 있게 표현하는 새로운 화풍을 개척했으며 현대 수묵화에 있어서 중요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이마즈 게이(Imazu Kei, b. 1980) 작가는 전통적인 회화에 현대적 테크놀로지를 혼합시킨다. 그는 현대적 바다 풍경을 통해 과거 역사와 연결된 오늘의 이미지를 이야기한다. 그의 작품은 바다의 생태를 그려 인류가 만들어 낸 문제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며, 바다를 통해 인류의 침략 역사를 은유적으로 보여 준다.
대만의 웬훼리(Yuan Huili, b. 1963) 작가도 전통 산수화의 기법과 정신 이념을 기초로 다양한 미디엄을 활용해 현대적 산수화를 펼쳐오고 있다. 그는 먹 대신 화선지를 태운 재를 이용하거나 붓 대신 손가락을 활용해 그림을 그리는 등 재료와 기법을 변용하거나 영상을 접목시키는 등 전통 산수화를 재해석한다.
‘경(境), 바다와 경계’에서는 허구와는 구별되는 실체적 대상을 그려 낸다는 의미의 사경(寫境)을 확대 해석함으로써 서구와 다른 아시아를 그려 낸 작품들을 선보인다.
황보하오(Huang Bohao, b. 1982) 작가는 수묵화의 필(筆)을 회화의 기본 요소로 여기며 먹의 물질적 특성을 회화의 조형 원리로 삼아 작업한다. 그는 동양 철학을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색으로 표현해 보이지 않는 실체를 추상적으로 펼쳐 보인다.
현대 일본 미술을 대표하는 나카무라 가즈미(Nakamura Kazumi, b. 1956) 작가는 미국 모더니즘을 바탕으로 동양에서 말하는 전통적인 공간론의 표현을 연구해 오고 있다. 그는 회화 내 어떤 상징 체계를 구축하여 삶과 죽음, 하늘과 땅의 경계를 초월하는 새의 존재를 추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의 본질을 드러낸다.
한국의 추상회화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김환기(1913~1974) 작가는 점, 선, 면의 순수 조형 요소로 구성된 전면점화를 통해 우주적 회화 공간을 펼쳤다. 그는 캔버스에 유채로 그렸지만 한 가지 색조로 번지고 스며드는 효과를 사용하는 등 한국적 추상을 만들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