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전이 2023년 4월 27일부터 9월 10일까지 개최된다. 전시는 건축가, 공간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사진가, 미디어 아티스트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13명의 작가 및 그룹의 작품을 통해 보다 넓고 다양한 예술적 시각을 담고자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의 젊은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격년마다 개최하는 “젊은 모색”전은 지난 40년을 마무리하고 앞으로의 40년을 내다보기 위한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전은 2021년 “젊은 모색” 40주년 특별전 이후 처음 개최되는 전시로 보다 확장된 시각을 담고자 건축과 디자인을 포함한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활용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살펴본다.
올해는 김경태, 김동신, 김현종, 뭎(손민선, 조형준), 박희찬, 백종관, 씨오엠(김세중, 한주원), 오혜진, 이다미, 정현, 조규엽, 추미림, 황동욱 등 13인(팀)이 참여 작가로 선정되었다. 이들은 총 29점의 작품을 9월 1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선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들과 외부 전문가들의 추천과 자문을 통해 선정된 참여 작가들은 기성세대와는 다른 유연한 태도로 작품을 제작하며 예술계 내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가는 이들이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건축과 공간을 새롭게 살펴본다는 의미에서 전시 제목을 ‘미술관을 위한 주석’이라고 붙였다. 참여 작가들은 마치 미술관의 공간을 원문처럼 읽어내며, 미술관의 공간을 탐색하고, 그 안에 있는 여러 요소를 풀어 주석을 달듯 각자만의 방식으로 미술관의 ‘공간’, ‘전시’, ‘경험’을 해석한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는 작품을 통해 미술관이라는 공간적‧시각적 맥락을 새롭게 해석한다.
1986년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오래된 공간인 만큼 동시대에 맞는 가치와 호응하며 오늘날의 미술과 상통하는 공간으로 시설을 개선하려는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미술관을 위한 주석”전은 작가들의 시선을 통해 약 40여 년 동안 운영되어 온 과천관의 공간을 살펴보고 미술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창을 열기 위해 앞으로 작가, 작품, 전시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장을 마련한다.
전시는 1전시과 2전시실에서 진행된다. 1전시실은 총 3개의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들어가며’ 구간에서는 전시 주제를 환기하고, ‘공간에 대한 주석’ 구간에서는 미술관 공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건축적 형식들을 돌아본다. ‘전시에 대한 주석’ 구간에서는 그동안 개최된 전시들을 위해 미술관에서 제작한 도면, 책자 등에 대한 기록을 토대로 전시 형식을 다시 읽는 작업을 펼쳐 보인다. ‘경험에 대한 주석’은 미술관 경험을 새롭게 해석한다.
2전시실에는 13명 작가들의 작품을 다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신작 제작 과정과 지난 활동들을 살펴볼 수 있는 인터뷰 영상을 상영한다.
공간에 대한 주석
김경태 작가는 다양한 크기의 사물들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재현을 통해 이미지를 바라보는 경험을 탐구한다. 전시된 ‘일련의 기둥’은 과천관의 기둥을 여러 시점과 화각으로 촬영한 작품으로 일부 실제 기둥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한 화면에 18개의 일정한 모양의 기둥을 사진으로 담은 작품은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기둥의 형태를 통해 미술관 내 풍경을 새롭게 보여 준다.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이다미 작가는 식물, 동물, 정물, 건물 간의 공간 관계를 탐구하고 최소 건축과 잉여 공간을 실험한다. 여러 미술관 현상 설계에 참여한 작가는 ‘드랙 뮤지엄’을 통해 미술관 건축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미술관은 어떤 모습을 갖춰야 할 것인지 탐구한다. 한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공간에서 새로운 틈새를 만들어 내기 위해 작가는 미술관 기둥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할지 상상해 본다.
건축가인 김현종 작가는 설치, 인테리어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작업을 한다. ‘범위의 확장’은 그 안에서 다시 ‘확장’, ‘변화’, ‘해체’로 나뉜다. 건축물의 기둥은 건물을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공간을 나누는 애물단지로 취급되어 대개 벽체 안에 감춰지곤 한다. 작가는 기둥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도록 기둥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한다. ‘확장’은 앉을 수 있는 기둥이며, ‘변화’는 기존 기둥의 모양을 했지만 새로운 재료를 입은 기둥이고, ‘해체’는 콘크리트 기둥 형태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거울과 같은 보편적이지 않은 재료를 사용한 기둥이다.
건축을 기반으로 하는 황동욱 작가는 디자이너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작가는 3D 스캐닝과 같은 기술을 활용해 미술관 공간을 2차원과 3차원 형태의 정보로 재해석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순간’과 ‘흔적’에서 수집한 미술관의 공간 정보를 활용해 특정한 요소로 분류하고 이를 새로운 매개체로 재구성한다. ‘물체/공간’은 과천관의 중앙 원형 홀의 공간을 활용한다. 원형 홀에 비치는 자연광에 따라 움직이는 부분과 움직이지 않는 부분이 서로 영향을 주며 자연스럽게 변하는 상황을 만들어 건물, 작품, 관람객, 햇빛 등이 서로 상호 작용하는 경험을 제시한다.
씨오엠COM은 김세중과 한주원이 결성한 디자인 스튜디오로 다양한 성격의 공간과 가구를 디자인한다. ‘미술관 조각 모음’에서 씨오엠은 과천관 건물을 작게 축소해 디오라마처럼 건축물을 펼쳐 놓은 듯 연출했다. 작품은 약 1만 평의 거대한 부지를 가지고 있는 미술관의 크기를 축소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일반 건물을 봤을 때 미처 인식하지 못한 미술관의 요소들을 살펴 보고 머릿속에 주변 지형도 함께 그려 볼 수 있다. 씨오엠은 이를 통해 건축물과 전시장 내부의 작품들의 조형적 이정표가 되고자 한다.
전시에 대한 주석
그래픽 디자이너로 스튜디오 동신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동신 작가는 서적을 기반으로 한 타이포그래피와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한다. 작가는 과천관 1, 2 전시실에서 개최되었던 과거 전시 도면 자료를 활용한 작업을 선보인다. ‘지도’, ‘부조’, ‘휴먼스케일’은 작품과 함께 존재했던 물건들의 흔적을 추적한다. 작가는 과거 36개의 전시 도면에 나타나 있는 선과 인간의 몸 크기를 기준으로 한 휴먼스케일 기호 등의 요소들을 재구성해 이를 종이에 그래픽으로 구현하고 콘크리트로 구축했다. 또한 박스테이프로 만든 ‘링’은 과천관의 봉화대형 램프코어 천장에 새겨져 있는 상량문에 주목한다. 작품은 일시적으로 존재했다 사라지는 전시들과는 달리 40년간 미술관 한편을 지키고 있는 상량문에 담긴 언어, 내재된 질서와 규칙을 탐구한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출판과 전시 분야를 넘나드는 작업을 하는 오혜진 작가는 전시 정보를 담는 포스터, 리플렛, 티켓, 캡션 등을 작업한다. 관람객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전시 정보들은 작품과 전시를 이해하기 위한 부수적인 대상에 불과하지만 디자이너에게 이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다. 작가는 이러한 전시 정보를 새로운 디자인, 사운드와 영상, 이미지 등으로 재구성하여 하나의 결과물로 바라보기를 요청한다.
정현 작가는 건축 설계, 교육, 출판, 전시 프로젝트를 아우르는 활동을 하고 있는 건축가이다. 그는 과천관의 과거 전시 기록물을 활용해 이미지와 글로 재편집한 후 설치물로 제작했다. 이를 통해 작가가 바라보는 전시장의 모습과 관람객 각자가 바라보는 전시장의 모습, 과거 기록으로 구현된 전시와 실제 전시, 과거의 미술관 건축과 현재의 가벼운 설치 사이를 오가는 경험을 제시한다.
경험에 대한 주석
백종관 작가는 다양한 기록물을 모으고 연구하여 실험적인 영상을 제작하는 영화감독이자 영상 작가이다. 작가는 미술관 공간, 작품, 관객의 관계를 탐색한다. 미술관 건물은 고정된 모습으로 변화하지 않지만 미술관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절대 고정적이지 않다. 작가는 이러한 변화하는 미술관의 이미지를 관람객의 시선과 호흡에 따라 새롭게 살펴보는 장을 마련한다. 또한 미술관 공간을 측량하기 위한 척도로 사용되는 관람객의 발걸음, 동선, 시선을 활용해 미술관과 작품에 대한 관람객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본다.
박희찬 작가는 건축, 산업 디자인, 패브리케이션, 디지털 인터랙션 분야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건축가이다. 그는 경험의 공간을 계획하는 건축가, 전시라는 경험을 제공하는 큐레이터 그리고 미술관 내 전시와 작품을 경험하는 관람객의 관계를 살펴본다. 작가는 과천관이 갖는 특징적인 건축적 요소를 정해진 경로에 따라 쇠구슬을 내려보내는 마블머신으로 구현했다. 관람객들은 구슬을 따라 미술관 건축물 곳곳을 이동하며 건축물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추미림 작가는 디지털 공간을 도시 공간으로 상상한다. 그는 디지털 공간에서 느껴지는 감성을 평면, 설치, 영상 등으로 표현한다. 전시에는 위성으로 내려다본 과천의 지형지물을 살펴본다. 여기서 작가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과천관까지의 이동 경로와 풍경, 도시 간 경계, 미술관 내부 구조 등을 활용해 15점의 평면 작업과 영상으로 구성된 ‘횃불과 경사로’ 작업을 선보인다. 그는 위성 지도로 바라본 과천의 모습을 도형으로 추출해 종이 부조로 표현함으로써 과천과 과천관이라는 동시대 환경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도록 제시한다.
공간 및 가구 디자이너인 조규업 작가는 일반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재료와 이해하기 쉬운 구조로 디자인 작업을 함으로써 사물과 장소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다양한 지형과 지물은 단순한 풍경에 다양한 움직임과 방향, 속도를 발생시키며 다이내믹한 동선을 만든다. 작가는 ‘바닥 부품’을 통해 미술관 내의 사람들의 움직임을 상상해 보고, 그러한 움직임을 만들기 위한 치수를 설치물로 만들었다. 설치물들은 특별한 기능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동작에 영향을 미친다.
뭎은 안무가 조형준과 건축가 손민선으로 구성된 그룹으로, 특정 장소에 신체와 사물을 배치해 생기는 공간, 신체의 움직임 그리고 여러 현상을 탐구한다. 이들은 과천관 중앙홀 입구에 서면 보이는 Y자형 계단에 주목한다. 이 계단은 미술관의 척추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나 사용되지 않아 그 기능을 상실했다. 뭎은 계단 상부에 3개의 작업을 설치해 전시장 입구에서 계단까지 이어지는 긴 축의 철판을 걸으며 미술관의 신성한 기운과 현실을 경험하도록 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