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립미술관은 2023년 4월 18일부터 8월 20일까지 작가 11인(팀)의 작품을 통해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성과 정상 가족에 대한 인식에 질문을 던지고자 “어떤 Norm(all)”전을 개최한다.
가족의 형태, 의미, 구조는 나날이 새로운 변화를 거치고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생활 양식의 변화는 가족, 결혼, 자녀에 대한 가치와 의미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다양한 가족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가족 정책이나 사회적 관념은 이를 따라가지 못해 때로는 의도치 않은 억압과 차별을 하고 있다.
수원시립미술관은 이같이 우리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성과 정상 가족에 대한 인식에 질문을 던지고자 “어떤 Norm(all)”전을 4월 18일(화)부터 8월 20일(일)까지 개최한다.
전시 제목은 ‘정상적인’, ‘평범한’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인 ‘노멀(normal)’과 ‘모두’를 뜻하는 ‘올(all)’을 결합한 합성어를 사용해 정상성과 포용성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전시는 어떠한 형태의 가족이라도 정상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며, 전통적 가족 규범에 벗어난 형태라도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우리나라는 혼인과 혈연 위주의 전통적인 가족 형태를 중심으로 사회 제도가 구성되어 있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가족 개념은 점점 느슨해지고 있다. 현대 사회의 가족은 1인 가구, 비혼 출산, 동성 결혼, 자녀 입양 등의 형태로 확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도적 질서에 얽매이지 않는 생활 공동체를 정책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가족 규범은 한정된 사전적·법적 정의를 중심으로 구축되어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가족이란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을 일컫는다. 건강가정기본법 제1장 제3조는 “가족이라 함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를 말한다”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규범과 제도는 우리의 정책, 언어, 생활 등 다양한 곳에 영향을 미치며, 사회 제도라는 틀 밖에 존재하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들을 알게 모르게 차별하고 있다.
참여 작가들인 강태훈, 김용관, 문지영, 박영숙, 박혜수, 안가영, 업체 eobchae, 이은새, 장영혜중공업, 치명타, 홍민키 등 11명(팀)의 작가는 이러한 전시 주제를 다각도로 바라본다. 이들은 회화, 사진, 설치, 영상, 게임, 다큐멘터리와 같이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작품 56점을 통해 가족을 둘러싼 여러 이슈들을 살펴본다.
전시를 꾸린 장수빈 큐레이터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현실 속 가족의 의미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동시대 작가들의 관점을 빌려 조명하고자 했다”며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전시는 3부로 구성됐다.
제1부 ‘지극히 정상적인’은 정상 가족의 이면에 자리한 여러 문제를 다룬 작품을 선보인다.
강태훈(b. 1975) 작가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된 정치 사회적 이데올로기와 한국의 전체주의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모순을 브리콜라주, 설치 미술, 영상과 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비판한다.
이번 전시에서 강태훈 작가는 여러 작품을 통해 결혼과 2세 생산을 강요받는 여러 개인들의 고민을 비추며 가족의 본질을 환기한다. 전시에는 작가의 여러 작품을 선보인다. 적혈구와 가족사진 형식의 이미지가 중첩된 영상을 통해 가족의 구성과 해체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 인구 유지를 위해 개인을 구속하는 국가의 만행을 암시한 작품, 강제 결혼을 비유한 이미지와 영상 작품 등이 있다. 강태훈 작가의 작품들은 가족과 인구 유지의 상관관계를 지적하고 정상 가족이라는 내면화된 이데올로기를 직시하도록 이끈다.
박혜수(b. 1974) 작가는 사랑, 시간, 기억처럼 우리 사회에 내재하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물음을 던지기 위해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고 연구하여 작품으로 재구성한다. 그는 관찰, 기록, 설문조사를 통해 자료를 수집해 그 내용을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예술 언어로 제시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2019년 국내 중산층에 해당하는 300명에게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을 한 설문을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을 소개한다. 300명의 설문 결과는 한국인의 의식 속에 가족주의가 남아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고독사로 사망한 노인들의 사연을 담은 영상 작품은 한국에 존재하는 가족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박영숙(b. 1941) 작가는 1980년대부터 도발적인 인물 초상 사진을 통해 한국 사회 내 여성의 현실을 고발하는 작업을 해 왔다. 전시에는 ‘미친년 프로젝트’의 ‘미친년들’ 연작을 소개한다. 사진 속 여성들은 제목처럼 어딘가 비정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사진 속 인물들은 기존 한국 사회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있으며 오히려 가부장적 규범에서 벗어난 반항적인 모습을 보인다. 박영숙 작가는 이러한 초상 사진을 통해 여성들을 주체적이고 저항적인 존재들로 포착한다.
장영혜중공업(f. 1999)은 장영혜와 마크 보주(Marc Voge)가 1999년에 결성한 2인조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이다. 이 그룹은 온라인에 작업 세계를 펼치는 ‘웹 아트’를 전개해 왔다. 특히, 이들은 사회 문제를 다루는 텍스트에 애니메이션 효과와 음악을 입힌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전시에는 ‘불행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다’라는 타이포그래피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영상은 한국 명절 때처럼 일가친척들이 모여 식사하는 장면의 내용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모임은 점점 험악한 욕설이 오가는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내용에 긴장감이 넘칠수록 음악의 템포도 점점 빨라지다가 결국 물리적 폭력이 오가는 클라이맥스에 이르게 된다. 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정상 가족의 이면에 있는 불화와 가정 내 폭력 문제를 드러낸다.
제2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은 우리 사회의 정상적인 가족의 범주에서 소외되는 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낸다.
문지영(b. 1983) 작가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돌봄의 의무를 떠안은 여성의 삶을 회화와 설치 작업으로 표현한다. 이를 통해 장애와 질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소수자를 향한 사회의 무관심을 드러낸다.
작품은 장애를 가진 자식의 완치를 종교에 기대어 간절하게 염원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 준다. 작품의 이미지에는 종교적 도상과 기복적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작품은 정상성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약자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 환자, 소수자들의 현실을 드러낸다.
이은새(b. 1987) 작가는 한국 사회에 대한 저항과 반항심을 회화 작업으로 담아낸다. 작가는 한국 사회에 대한 개인의 직접적인 경험과 대중문화나 소셜 미디어를 통한 간접적인 경험에서 느낀 불만과 반항적 상상을 단순하고 과감한 붓터치와 독창적인 색 조합으로 표현한다. 그의 작품 속에는 1인 가구, 한부모 가족, 반려동물과 이룬 가족, 동거 가족 등 전통적인 정상 가족의 범주에서 벗어난 다양한 유형의 가족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비록 가족 형태는 다양할지라도 이들의 삶 또한 정상 가족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작품을 통해 보여 준다.
치명타(b. 1988) 작가는 우리 사회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삶을 드로잉, 회화, 영상들을 통해 선보인다. 이를 통해 작가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존엄하고 가치 있게 살아가야 할 소수자들의 삶 속에 무엇이 부재하는지를 조명한다.
전시된 영상 작품 ‘실바니안 패밀리즘’은 ‘실바니안 패밀리’라는 완구 동물들이 등장하는 세계관을 담고 있다. 장난감들은 각각 HIV 감염인, 장애를 가진 난민, 성 소수자, 재난 피해자 등 서로 다른 소수자를 연기하며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종이 아래’ 연작은 서류가 있어야만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취약계층의 현실을 보여 줌으로써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방관을 드러낸다.
한국 내에서 성 소수자로 살아가고 있는 홍민키(b. 1992) 작가는 다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영상 작업을 소개해 왔다. 최근에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 사회 내에 숨겨진 성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실험적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전시에 상영되는 ‘들랑날랑 혼삿길’은 주인공이자 성 소수자인 민기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안정적으로 사회 제도에 진입한 친형과 달리 민기는 성 소수자에 외국인 남자 친구를 둔 인물이다. 민기와 그의 파트너는 결혼과 비자에 관한 법적 장애물에 직면하면서 그 대안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작품은 퀴어 가족 구성원이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게 된 이성애자 가족 구성원의 경험을 보여 준다.
제3부 ‘가족을 넘어’는 한국 사회에도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등장할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 준다.
안가영(b. 1985) 작가는 게임과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한 가상 공간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어 신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거나 여성으로서의 대안적 삶을 제시한다.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미래에 존재할 수도 있는 여러 종이 공생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인간종과 비인간종 사이에 이뤄지는 갈등,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교류를 통해 작가는 현실의 인간중심주의, 가부장제, 자본주의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동시에 공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업체eobchae(f. 2016)는 김나희, 오천석, 황휘로 구성된 오디오-비주얼 중심의 3인조 그룹으로 2016년에 결성되었다. 이들은 영상, 웹 기반 프로그래밍, 사운드, 퍼포먼스 등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가속화되고 있는 디지털 환경과 맞물리는 세계관을 그리고 나아가 그 속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관점을 조명하는 작업을 한다. 전시에는 ‘대디 레지던시’ 프로젝트와 관련 영상 작품 4점을 선보인다. 프로젝트는 업체의 멤버 중 한 명이 2025년에 인공수정으로 낳을 아기를 양육할 파트너를 모집하는 내용이다.
김용관(b. 1980) 작가는 과학과 수학적 사고 체계를 활용해 평면, 입체, 설치,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작품 세계를 전개하고 있다. 작가는 점, 선, 면, 도형, 패턴, 모듈, 테셀레이션 같은 수학적 개념에 비유해 기하학이나 프로그래밍을 연상시키는 시각적 요소로 이미지를 만든다. 전시된 ‘무지개 반사’ 연작은 벽과 갖가지 도형으로 이뤄진 설치물에 연속 스펙트럼처럼 무지개 색이 퍼져 나가는 듯한 색을 갖고 있다. 무지개 색은 무수한 존재를 상징한다. 이는 작가가 상상하는 이상향을 비유한 것으로 다양성이 공존하는 이상 세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