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 컬렉터 리서치 플랫폼인 래리스 리스트(Larry’s List)는 전 세계 사립 현대 미술관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 14일 두 번째 ‘사립 미술관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이번 보고서는 최근 몇 년간 사립 미술관 수가 급증한 한국을 따로 조명했다. 국가별로 조사했을 때 한국이 상위 3번째, 도시별로는 서울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립 현대 미술관을 운영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Museum SAN. © Museum SAN.
오늘날 사고방식, 사회 경제적 역학 관계 그리고 기술의 변화로 인해 사립 현대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
현대 미술 컬렉터 리서치 기업인 래리스 리스트(Larry’s List)는 2016년에 전 세계 사립 현대 미술관의 현황을 파악하는 첫 번째 ‘사립 미술관 보고서’를 발표했다. 두 번째 보고서는 지난 6월 14일 웹사이트를 통해 발표되었다.
래리스 리스트는 현대 미술품 컬렉터와 미술 향유자를 위한 데이터 및 연구 자료를 제공하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전 세계 300명 이상의 미술품 수집가들의 인터뷰와 현대 미술품 수집 관련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사립 미술관 보고서’는 전 세계 사립 현대 미술관을 국가별, 도시별로 분석하여 그 발전 과정을 보여 준다. 또한 미술관의 운영 방식과 온라인 홍보 방법을 살펴보고, 사립 미술관을 설립한 컬렉터와 이를 관리하는 미술계 인사들을 소개한다.
이번 보고서의 네 번째 장에서는 한국 사립 현대 미술관의 현황을 별도로 분석했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의 미술계는 급격한 성장을 거듭하며 세계 미술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로 자리 잡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립 현대 미술관을 보유한 상위 3개 국가 중 하나이며, 서울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미술관이 있는 도시이다.
사립 현대 미술관의 범위는 국가별, 기관별로 상이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정의가 없다. 전 세계 사립 현대 미술관의 양상은 다양하나, 보고서에서 기준으로 삼고 있는 사립 현대 미술관은 작품을 수집하여 개인 미술 컬렉션을 일반 대중에게 공개한다는 핵심 가치를 따른다는 공통점을 공유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 보고서는 현대 미술 컬렉터의 역할과 사명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립 미술관을 세운 많은 개인 컬렉터들은 단순히 개인의 이익을 위한 투자의 목적이 아닌 미술 생태계의 발전과 공익을 고려하여 미술관을 설립했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집계된 전 세계 사립 현대 미술관의 수는 총 59개국의 446개 기관이다. 래리스 리스트가 처음 ‘사립 미술관 보고서’를 발행한 2016년 이후 전 세계에 98개의 사립 현대 미술관이 새로이 문을 열었으며, 현재도 운영되고 있다.
국가별로 사립 현대 미술관 수를 조사했을 때 독일이 60개, 미국이 59개, 한국이 50개 순으로 드러났으며, 중화권과 이탈리아가 각각 30개로 그 뒤를 이었다. 상위 5개국의 사립 미술관의 수가 전 세계 사립 미술관의 5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별로 따져 봤을 때 1위를 차지한 서울에는 17개의 사립 현대 미술관이 위치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서울에 뒤이어 베를린이 14개, 베이징이 11개, 뉴욕이 10개, 아테네가 9개 미술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또한 7번째로 많은 사립 현대 미술관이 설립된 지역으로 드러났다.
미술품 수집 역사가 시작된 서양 문화권에서 수집 활동은 아시아권보다 보편적으로 이뤄진다. 사립 미술관 수가 상위 5위 안에 들었던 서구권 국가인 독일, 미국, 이탈리아는 모두 오랜 미술품 수집 전통을 갖고 있다.
그에 비해 중국의 미술품 수집 역사는 짧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 중국 미술계는 빠른 속도로 성장해 왔으며, 2002년 최초의 사립 현대 미술관이 문을 연 이후 그 수는 계속해서 증가해 왔다. 비록 중국의 미술품 수집 역사는 짧지만 중국은 2022년 세계 미술 시장 점유율 17%를 기록하며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미술 시장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만큼 중국 사립 미술관 수는 많을 것으로 예상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미술품 수집 역사가 짧지만 미술 시장 규모는 중국에 미치지 못한다. 한국은 2022년에 들어서야 세계 미술 시장 점유율의 1%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가장 많은 사립 미술관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로 성장했다.
한국의 사립 미술관 중 76%가 2000년 이후에 문을 열었으며, 이 중 55%는 2010년 이후에 설립된 신생 미술관이다.
수도권인 서울 및 경기도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60%가 거주하는 지역으로, 한국의 사립 현대 미술관의 58%가 밀집되어 있다. 전체 사립 미술관의 34%가 서울, 21%가 경기도에 위치해 있으며, 서울 다음으로 큰 도시인 부산에는 1개, 제주도에는 3개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사립 미술관 설립자의 성비는 고무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립 미술관 설립자 48명 중 남성이 27명, 여성이 21명으로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60:40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만의 특수한 문화적 배경이 작용한 통계이긴 했으나 전 세계적으로 남성이 58%, 여성이 16%를 기록한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였다.
Back: El Anatsui, 'Rehearsal,' 2015. © The Donum Collection. Photo by Robert Berg.
보고서는 한국의 사립 현대 미술관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지원과 여러 환경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정부는 박물관 설립을 장려하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지원법’을 갖추고 있다. 일정 규모의 소장품, 전문 인력, 시설 그리고 개관 요건을 갖춘 곳이라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에서 인정하는 미술관으로 등록할 수 있으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대한민국은 연간 예산 중 약 1.3%를 문체부에 배정하며, 이 중 문화 예술에는 약 30%의 예산을 책정하고 있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2023년도 문화체육관광부에 편성된 예산은 6조 7,408억 원이었으며, 그중 문화 예술 부문에 2조 3,140억 원이 배정되었다.
한국 미술계는 최근 부흥한 ‘한류’ 문화에 힘입어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케이팝과 e-스포츠, 영화, 뷰티 문화 등을 통해 한국은 최근 글로벌 문화 수출국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K팝 아이돌 그룹 빅뱅의 탑과 지드래곤 그리고 BTS의 RM 등이 컬렉터로서 활동하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공유하면서 젊은 세대가 미술 향유와 미술품 컬렉팅을 트렌디한 활동으로 인식할 수 있는 효과가 발생다.
래리스 리스트의 ‘사립 미술관 보고서’에 한국 사립 미술관 현황이 조명된 것은 한국 미술계가 국제 미술 무대에 존재감이 커졌음을 방증한다. 이는 한국 미술계가 높아진 위상을 바탕으로 국제 미술 무대에서 어떻게 나아갈지 고민해야 할 때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래리스 리스트의 보고서는 전 세계 여러 개인 현대 미술 컬렉터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는 점에서 미술품 컬렉터로서의 역할을 고민하는 데 참고가 된다.
해당 보고서는 특정 미술품 컬렉터 그룹, 즉 대중들의 미술 향유를 장려하기 위해 자신의 컬렉션을 공개하기로 결정한 컬렉터들을 바탕으로 조사되었다. 이들은 사립 미술관을 설립하고 다양한 전시를 통해 자신의 컬렉션을 선보임으로써 예술가를 지원하는 것을 넘어 도시와 국가의 문화 환경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들의 컬렉션은 문화적 유산으로서, 컬렉터들이 미술계에서 어떠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보여 준다.
*보고서는 래리스 리스트가 구축한 현대 미술 컬렉터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경제사회학, 예술사회학, 문화사회학을 연구하는 기관 중 하나인 암스테르담 대학교 사회학과 프로젝트 팀과 함께 진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