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라 니마이저상(Theodora Niemeijer Prize)은 네덜란드에 기반을 둔 여성 예술가에게 수여되는 최대 규모의 미술상이다. 지난 3월 8일 한국계 네덜란드인 사라 세진 장(사라 반 데어 헤이드, 장세진) 작가가 올해의 수상자로 선정됐다.
현대 미술은 보는 이에게도 어렵지만 만드는 이에게도 어렵다. 현대 미술 작품 속에는 동시대 흐름을 반영한 시각 언어가 들어 있는 동시에 작가 자신만이 갖는 독자적인 관점이 녹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현대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는 작가가 있다면 그는 그만큼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고 있는 어떠한 현상을 독특하고 매력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지난 3월 8일 네덜란드의 테오도라 니마이저상(Theodora Niemeijer Prize)을 수상한 사라 세진 장(사라 반 데어 헤이드, 이하 장세진) 작가를 살펴볼 만하다. 1977년 부산에서 출생해 네덜란드의 한 가정에 입양된 장세진 작가는 본인이 해외 입양인으로서 겪었던 경험을 더 큰 주제로 확장해 입양 산업을 둘러싼 현대의 상황을 작품으로 풀어낸다.
1990년대 말부터 작업을 이어 온 작가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미술계에 소개된 것은 작년인 2022년이 처음이다. 그는 지난 해 아르코 미술관과 부산비엔날레에서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작가의 작품은 역사 연구를 통해 영상, 텍스트, 사운드, 설치, 퍼포먼스, 회화 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며 탈식민화, 집단 치유, 샤머니즘을 통해 유럽 중심주의 사고와 인종 문제를 매우 서정적이면서도 친밀감 있게 다룬다. 특히 작가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이야기를 넘어서 차별, 인종 문제 등 현대 사회에 침투되어 있는 유럽 중심적 사고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테오도라 니마이저상 심사 과정에서 특히 주목을 받은 작품은 최근작이자 영상 설치 작업인 ‘4개월 4백만 광년’(2020)이다. 2022 부산비엔날레에서도 전시된 바 있는 ‘4개월 4백만 광년’의 제목에서 ‘4개월’은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되기 전 입양 허가를 받기 위해 고아원에 최소 4개월 머물러야 한다는 법을 상징한다.
작품은 한국 상황에서 나아가 아동 유괴와 인신 매매, 인종 간 입양 산업 등 전 세계적 트라우마를 포괄적으로 다루며, 대규모 다국적 입양 산업의 이면에 존재하는 식민 서사를 치유하는 무속적 과정을 그린다.
케찰 아트 센터(Quetzal Art Center) 디렉터인 아버리너 더 브라윈(Aveline de Bruin)은 장세진 작가가 “유럽 중심적 사고에 의문을 제기하고 개인적 경험에 근거한 이야기와 넓은 지정학적 관계를 다양한 분야에 걸친 풍부한 시각적 수사법으로 혼합했다”고 호평했다.
작품에는 아리랑 노래가 삽입되어 있고 한국 무속적 요소들이 들어가 있다. 부산일보와 진행한 장세진 작가의 인터뷰에 따르면 작가는 “한국의 문화와 샤머니즘은 전반적으로 풍부한 우주론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작품에 한국 무속에 대한 연구를 담고자 했다고 밝혔다.
‘4개월 4백만 광년’(2020)은 오는 4월 9일까지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문화공간 로젠스트랏(Rozenstraat – a rose is a rose is a rose)에서 관람할 수 있다. 해당 작품은 또한 스웨덴 스톡홀름의 현대미술관(Moderna Museet)의 소장품으로 들어가 8월 27일까지 관람 가능하다.
장세진 작가는 스테델릭 미술관(Stedelijk Museum), 위트레흐트 중앙 미술관(Centraal Museum Utrecht), 멜리 미술관(Kunstinstituut Melly), 아른헴 미술관(Museum Arnhem)이 선정한 후보 중 최종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2023년 테오도라 니메이어상의 심사위원단은 안수야 블롬(Ansuya Blom, 아티스트), 아버리너 더 브라윈(Aveline de Bruin, 케찰 아트 센터, 디렉터), 안드레아 다비나(Andrea Davina, 니메이어 기금 재단 디렉터), 지포라 엘더스(Zippora Elders, 그로피우스 바우 Gropius Bau Curatorial & Outreach 부서장), 찰스 에셔(Charles Esche, 반 아베뮤지엄 Van Abbemuseum 디렉터)로 구성되었다.
테오도라 니마이저상은 격년마다 시상되는 상으로 원래는 신진 여성 작가들에게 주어지는 상이었다. 하지만 장세진 작가가 선정된 올해부터 네덜란드 기반의 중진 여성 작가들에게 주어지는 최대 규모 미술상으로 개편되었다.
이는 미술관 소장품 내에 존재하는 남성과 여성 작가의 불평등의 문제를 조명하기 위해서다. 니마이저 기금 재단은 여러 미술관 소장선 내에서 남녀 작가들이 보다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 가길 바라면서 올해부터 상금 액수를 10배로 늘렸다.
상금 10만 유로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인 2만 5천 유로는 미술관이 장세진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기 위한 예산으로 사용되며, 나머지 7만 5천 유로는 작가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상금으로 돌아간다.
니마이저 기금 재단의 디렉터인 안드레아 다비나는 “보다 큰 규모의 상금으로 작가와 미술관 모두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남성과 여성 작가 간의 불평등을 문제를 의제로 삼아 앞으로 미술관들이 소장품을 구축하는 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2021년에 25주년을 맞이한 니마이저 기금 재단은 네덜란드 흐로닝언주(Groningen)의 유명 담배 제조업자의 딸인 테오도라 니마이저가 설립한 재단으로, 1996년 음악에서 시각 예술까지 다양한 분야의 신진 작가들을 조명하기 위해 세워졌다. 테오도라 니마이저는 2012년에는 반 아베뮤지엄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격년제 미술상인 테오도라 니마이저상을 제정해 네덜란드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는 여성 작가들을 조명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