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주(b. 1978)는 소외되거나 숨겨진 소수자의 신체에 대한 이야기를
예술적 행위와 역사, 스토리텔링으로 구현한다. 그 중에서도
작가는 ‘여성’의 신체와 이를 둘러싼 환경과의 관계를 탐구하며, 그로부터 파생된 요소들을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의 연결성을 통해 연구해 왔다.
여성으로서 살아오며 경험한 작가의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이야기들은 퍼포먼스, 사진, 설치, 영상, 사운드, 안무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가시화됨으로써, 타자화되고 전형화된
여성성의 기호들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여 보여준다.
조영주의 초기 작업들은 주로 유럽에서의 유학 시절
‘동양인 여성’이라는 소수자로서 작가가 경험한 타자에 대한
시선과 편견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요컨대, 우연히 만난
백인 남성들의 티셔츠를 빌려 입고 하룻밤 잔 후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찍은 사진들로 이루어진 〈One Night with Someone’s T-shirt in My
Bed〉(2006-2007)는 서양 사회에서 동양인 여성들에 대한 편견을 이용한 작업이다.
이를 비롯해, 당시의
그는 서구 사회 안에서 동양인 여성으로서 겪은 언어적인 콤플렉스를 다루기도 하며 이방인으로서 소외되는 지점들을 작업으로 풀어냈다.
2010년대 초반,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조영주는 한국 사회 안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작업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2013년에
발표한 사운드 설치 작업 〈아름다운 인연〉은 30대 여성이 한국 사회 안에서 어떻게 읽히는지에 대해 실험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작가는 결혼정보회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등록하고, 맞선 상대를 소개받는 과정을 녹음했다. 당시
기혼이었던 작가는 재혼을 상담했는데, 이때 나이, 키, 몸무게와 더불어 출산 경험 유무에 따라 분류되는 우스꽝스럽고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인연〉은
제목과 달리, 전근대적 가부장제를 바탕으로 형성된 결혼이라는 제도와 자본주의가 결합해 탄생한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한국 사회의 우습고 우울한 단면을 드러낸다.
2014년에 발표한 〈유니버셜 콜라보레이터, 서울〉은 한국 사회, 특히 한국 미술계 안에서 서양 남성과 한국 여성의 관계에 대해 다룬다. 유럽에
머물던 시절에는 동양 여성에 대한 서구 사회의 시선의 문제를 다뤘다면, 〈유니버셜 콜라보레이터, 서울〉은 서양 남성과 어울리는 한국 여성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에 주목한다.
이 작업은 서양 백인 남성과
함께 전시 오프닝에 방문했을 때 혼자일 때보다 미술 관계자들의 환대를 받은 경험과 서양 남성과의 직업적 관계를 이성적 관계로 오해를 받거나 가십의
대상이 되는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비롯됐다.
퍼포먼스와 인터뷰 영상으로
이루어진 이 작업은 작가가 주관적 기준으로 선택한 ‘서양’ 남성과
협업하여 한국 미술계에서 ‘서양 남자와 어울리는 한국 여성 작가’로
수행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때 고용된 퍼포머는 작가가 정한 의상과 헤어를 준비하고 행동지침을 숙지한
상태로 오프닝 내내 작가를 에스코트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인터뷰의 질문들은 한국 사회의
편견에 대한 것들이나 유럽에서 오래 생활한 동양인 여성 작가에 관한 것들로 선정되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실제로 느끼는 지점에 대해 말하고 애매하게 대답을 피하며 현실과 연출된 상황이 서로 교차하도록 했다.
이처럼 작가는 자기 자신을 매체로 삼아 한국 사회에 만연한 편견을 들추어 내는 작업을 선보이거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사회적인 이야기로 확장시키는 작업들을 펼쳐왔다. 이와 함께 작가는 그러한 한국 사회 안에서 오랫동안
자기 자신을 희생해오며 살아온 소위 ‘아줌마’라 불리는 한국의
평범한 중년 여성들에 주목해왔다.
부산, 오산, 대전, 철원의
비무장지대(DMZ), 양평 이렇게 5개의 지역에서 그 지역의
중년 여성들과 제작한 댄스 필름 〈꽃가라 로맨스〉(2014)는 중년 여성들이 사회가 덧씌운 역할로부터
벗어나 한 명의 여성 개인으로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일탈의 장을 마련한다.
한국전쟁 직후 태어난 이들은
주로 선을 보고 결혼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왔다. 그 중에는 막 갱년기를 거치고 자식들을
출가시켰지만, 여전히 생업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적지 않았다. 누구의 ‘아내’ 또는 ‘엄마’로 불리던 여성들은 조영주의 프로젝트를 통해 아주 잠시나마 ‘아름다운’ 자신을 발견하고 아이처럼 기뻐하거나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꽃가라 로맨스〉는 지난 수십 년을 한국의 역사와
함께 한국 여성으로서 살아온 이들을 통해 그 세대와 그녀들의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한다.
이듬해 조영주는 중년 여성들을
자신의 작업실에 초대해 그들과 나눈 삶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물로 남기는 지역민 참여 리서치 프로젝트 〈드레스를 입은 대화〉(2015)를
전개했다. 작가는 희생을 미덕으로 삼아 오며 가족을 위해 살아온 어머니 세대 여성들이 온전히
자신만을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을 마련하고자 파우더룸으로 꾸민 작업실에 그 주변의 50~60대 여성들을
초대했다.
작가는 미용사이자 코디네이터가
되어 그들에게 화장과 머리 손질을 해주는 동안 참여자인 중년 여성들이 연애 시절 이야기 혹은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 등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꾸밈을 마친 참여자들은 드레스로 갈아 입고 에스코트를 받으며 가까운 사진관으로 이동해 독사진을 찍었다. 인화된 사진은 참여자에게는 기념물로, 작가에게는 대화 내용과 함께
아카이브로 남게 된다.
이후 조영주는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며, ‘돌봄’이라는 주제가 그의 작업에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주짓수와 레슬링의 동작을 참조하여 만들어진 퍼포먼스 영상 〈입술 위의 깃털〉(2020)은 육아 과정에서 아이와의 신체적 접촉을 통해 촉발된 잊고 있던 몸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한다.
영상에서 4명의 퍼포머는 2명씩 짝을 지어 신체 대결을 벌인다. 서로의 몸이 접촉되는 모습은 폭력적으로 보이는 동시에 사랑을 나누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타인과의 접촉이 불가피한 육아와 같은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신체적 뉘앙스들을 표현한다. 이러한 몸짓들은 육아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여성의 신체를 통해 흔히 겪거나 느낄 수 있는 사적인 지점들
또한 포착한다.
나아가 조영주는 돌봄 노동을 관객이 직접 자신의 신체를 통해 수행하며 경험할 수 있는 참여형 설치 작업 〈휴먼가르텐〉(2021-2024)을 제작했다. 이 작업은 가정집, 어린이집, 병원, 요양원
등 주로 돌봄이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그러한 장소에서 흔히 사용되는 재료들로
만들어진 매트와 운동기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작품 내부의 공간으로 관객을 초대해 그 안에서 쉬거나 자신 또는 타인을 돌보게 하는 행위를 유도함으로써
돌봄 노동의 과정에서 감각할 수 있는 신체적 경험을 공유한다.
2021년부터 작가가 제시한 돌봄 노동에 대한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제작된 〈살핌 운동〉(2023)은
‘모두가 돌보는 자이자 보살핌 받는자’라는 유대 관계를 기반으로
한 참여형 퍼포먼스와 이를 재구성한 영상 작품으로 이루어진다.
〈살핌 운동〉은 어린이, 청소년, 청년, 장애인, 노인 등 기존 돌봄 관계의 틀을 깨는 다양한 퍼포머들이 미술작가, 심리치료사, 운동가, 무용가로 구성된 연구팀이 재활치료 운동을 기반으로 개발한
듀오 운동을 각자의 방식으로 행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퍼포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돌봄을 다루며 주고
받는 관계성 속에서 서로의 신체적 취약성을 보완하고 상호적으로 재활한다.
이때 〈휴먼가르텐〉의
하얀색 스펀지 조형물이 퍼포머와 참여자의 운동 도구로 사용되며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다.
이처럼 조영주는 타자화, 주변화되었던 여성의 신체와 경험을 주체의
경험으로 환기시키거나, ‘그림자 노동’을 행하는 돌봄 노동자들의
존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들을 선보였다. 그러한 작업들은 ‘신체’를 매개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나는 내 경험을 바탕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입술 위의 깃털〉은) 육아, 아이와의
신체적 접촉이 소재가 되어 시작한 작품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을 그대로 재현한 것은 아니다. 그런 소재로부터 자극 받은 다양한 지점이 있었다. 나와 나를 둘러싼
관계, 다양한 관계성이 추상적인 신체 움직임으로부터 드러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보면 결국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조영주, 리포에틱 인터뷰, 2021.06.14)
조영주 작가 ©한국경제
조영주는 성균관대학교 서양화과, 파리 제8대학교 조형예술학과 석사과정을 수학했고 파리-세르지 국립고등미술학교를 졸업했다. 작가는 런던 델피나레지던시(2023),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2021),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2020), 인천아트플랫폼(2017), 베를린 골드러쉬 예술가 프로젝트(2009) 등의 레지던시에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작가는 제20회 송은미술대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최근 송은에서의 개인전 “카덴짜”(2024)를 가졌으며, “코튼 시대”(대안공간 루프, 서울,
2020), “오계(五季)”(서울로 미디어캔버스, 서울, 2020), “젤리비 부인의 돋보기”(플레이스막 레이져, 서울,
2019) 등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또한 원앤제이 갤러리(서울, 2023), 국립현대미술관(과천,
2022), 부산시립미술관(부산, 2022), Focus
On X비디오 페스티벌 오브니(니스, 프랑스, 2019) 등 국내외 주요 기관에서 열린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 부산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송은문화재단 등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