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화연(b. 1979)은 남겨진 역사적 기록들을 추적하고 관찰하며 상상력을 더해 작품으로 재구축해 왔다. 이때 작가는 역사적, 물리적 시간이 비선형적으로 교차하는 궤도를 포착하며, 이러한 시간성 안에서 발생하는 파동을 퍼포먼스와 비디오와 같은 매체를 통해 가시화한다.

남화연, 〈작전하는 희곡 2009 서울〉, 2009 ©국립현대미술관

남화연의 초기 작업은 신체의 움직임으로부터 점, 선, 면이라는 조형의 기본 단위를 탐구하거나(〈망상 해수욕장〉(2008)) 특정한 언어가 가진 기의로부터 분리시켜 퍼포먼스를 위한 시나리오로 재구성하는 등의 실험을 보여준다.

그의 안무가 가진 언어나 문법은 느슨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의 연출로 꾸려지는 무대이지만, 느슨한 방식으로 짜인 대본은 작가의 통제에 의한 철저한 움직임보다도 퍼포머들의 자유분방한 신체적 움직임을 유도한다.

예컨대, 2009년 에르메스 미술상 전시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영상 〈작전하는 희곡〉에서는 전문 무용수가 아닌 일반인들이 퍼포머로 등장하며 느슨한 대본에 따라 즉흥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남화연, 〈작전하는 희곡 2009 서울〉, 2009 ©국립현대미술관

남화연은 우연히 TV 뉴스를 보다 들은 ‘사막의 폭풍(Desert Storm)’이라는 단어에 집중하게 되며, 이 단어가 1991년 걸프전 당시 연합군의 바그다드 공습 작전명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평범한 단어들의 임의적 합성으로 이루어진 여러 코드명들을 수집하게 되었고, 이 단어들을 카드에 각각 적어 늘어놓은 후 일종의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전명으로만 구성된 시나리오 〈작전하는 희곡〉는 퍼포먼스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작가는 작전명에 해당하는 가면을 제작해 일반인 퍼포머들에게 그에 따른 역할을 부여했다.

남화연, 〈작전하는 희곡 2009 위트레흐트〉, 2009 ©국립현대미술관

이 즉흥적인 퍼포먼스는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와 서울이라는 두 도시의 열려 있는 야외 공간을 무대로 삼는다. 작가는 동일한 가면을 두 도시의 퍼포머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가면을 받은 개인들은 자신만의 움직임으로 인물을 즉흥적으로 해석하며 다양한 태도를 취했다.

임의적인 단어들로 이루어진 모호한 대본은 불특정한 익명의 개인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며, 그에 따른 움직임이 파생됨에 따라 작품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남화연, 〈코레앙 109〉, 2014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후 남화연의 작업에는 ‘시간성’이라는 요소가 새로운 주제로 등장한다. 가령, 〈개미시간〉(2014)에서는 개미를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움직이는 퍼포머로 상정하여 그들의 동선을 기록하였으며, 〈코레앙 109〉(2014)에서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직지심체요절의 지난 이동의 역사를 추적하고 그 경로 속에서 발견한 푸티지들을 추상적으로 연결했다.

남화연, 〈반도의 무희〉, 2015 ©남화연

그리고 남화연은 2012년부터 현재까지 무용가 최승희(1911-1969)에 대한 연구와 그에 따른 생각의 여정을 예술로써 전개해 오고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활동했던 최승희의 춤과 행보는 당시 조선과 일본,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구 사이에 선 예술가의 주체성에 대한 고민과 시대적 갈등을 담고 있다.

2015년에 발표한 〈반도의 무희〉는 최승희의 1941년부터 월북 이후까지의 시간과 그 궤적으로 남은 그의 예술에 주목한다. 이때 남화연은 무용가 최승희라는 인물을 역사적 인물이 아닌 예술적 사건으로 바라보며, 그의 예술적 행보가 지나간 과거로 기술되는 것이 아닌 현재에 던져진 존재론적 질문으로 굴절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남화연, 〈반도의 무희〉, 2015 ©남화연

남화연은 〈반도의 무희〉에서 최승희의 예술 작업들과 연구 활동의 과정을 외부의 힘, 예술가로서의 열망, 개인의 생존 의지, 급박한 내일과 이상이 향하는 먼 미래라는 두 개의 시간이 충돌하며 분열한 복수의 신체들로, 또는 꿈꾸거나 탈주했으나 결코 도착할(land) 수 없었던 추상적이고 모순적인 공간의 윤곽선으로 응시한다.

남화연, 〈이태리 정원〉, 2012,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전경 ©더아트로. 사진: Davide Giacometti

남화연의 최승희에 대한 연구는 극히 제한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하며, 최승희의 불완전한 기록과 이미지 위에서 하나의 경로를 상상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한 작업 중 하나로 2012년에 제작한 〈이태리 정원〉은 최승희의 개인사와 전형적인 이미지를 최소화하면서 퍼포먼스를 통해 나타났다 사라지는 임시적이며 대안적인 아카이브를 실험한다.

남화연, 〈이태리 정원〉, 2012 / 〈반도의 무희〉, 2019,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전경 ©더아트로.

그의 작업은 최승희에 대한 기록을 실증적으로 검토하고 작업 과정을 설명하기보다는 실제의 빈 자리에서 우회하고 이탈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태리 정원〉 역시 최승희의 퍼포먼스에 대한 기록이 극장에서 공연되었다는 사실 외에는 별다른 정보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을 직시하며, 최승희라는 무용가를 재현하기보다는 오히려 재현의 불가능성을 드러낸다.

2019년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선보인 〈이태리 정원〉은 한국관 마당에 식물로 꾸며진 정원과 랜드스케이프를 연상시키는 내부 구조물, 그리고 최승희가 부르는 〈이태리 정원〉(1936)으로 구성된다. 작가는 최승희의 극장에 대한 기록에서 무대 위와 아래라는 묘한 연결감을 추출하고, 이를 한국관의 내부와 외부라는 제3의 장소로 옮겨 놓았다.

유리창을 통해 안과 밖이 연결되는 한국관 건물의 열린 구조 안에서 〈이태리 정원〉은 내부에 설치된 영상 작품 〈반도의 무희〉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영상의 시공과 현재의 시공이 미묘하게 혼재된다.

 “마음의 흐름” 전시 전경(아트선재센터, 2020) ©아트선재센터

이듬해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최한 개인전 “마음의 흐름”은 부족한 아카이브를 퍼포먼스 아카이브 일반의 태생적 불완전성과 연결하여 만들었던 〈이태리 정원〉과 개념적으로 연결된다. 전시는 최승희에 대한 자료를 제시하는 동시에 지난 수 년간 작가가 쌓아온 최승희를 통한 작업 및 아카이브를 함께 엮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남화연, 〈에헤라 노아라〉, 2020, “마음의 흐름” 퍼포먼스 전경(아트선재센터, 2020) ©아트선재센터

전시의 일환으로 진행된 〈에헤라 노아라〉(2020)는 라이브 퍼포먼스 작업이자 자료이면서 동시에 움직이는 기록으로 제시된다. 이 작업은 본래 남자처럼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춤을 추는 해학적인 작품으로 알려진 최승희의 〈에헤라 노아라〉(1933)에 대해 전해지는 기록들을 기반으로 재구성된 작업이다.

남화연은 원작을 최대한 재현하려 하기 보다, 몇 개의 포즈로 남아있는 정지된 이미지 자료들 사이의 부재하는 시간과 움직임에 개입한다. 그의 〈에헤라 노아라〉에 등장하는 여성 퍼포머는 원작과 달리 남성을 연기하지 않으며, 최승희에 대한 평론가의 말, 스승 이시이 바쿠의 말, 그리고 최승희 자신의 말을 차례대로 발화하며 춤을 춘다. 그리고 조각난 최승희에 대한 기록들은 퍼포머의 몸을 통해 교차되고 뒤섞인다.

“가브리엘” 전시 전경(아뜰리에 에르메스, 2022-2023) ©아뜰리에 에르메스

남화연은 최승희에 대한 작업에서 과거의 자료로부터 촉발된 현재의 사건을 만들어내는 데에 집중했다면, 최근 그의 관심은 미래라는 시제로 이행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의 개인전 “가브리엘”에서 선보인 신작들은 실체를 알 수 없는, 도래할 사건을 고지하고 예감하는 이미지와 소리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나 전쟁과 파멸의 소식을 전하는 대천사 가브리엘을 제목으로 하여 암시하듯이, 비디오 작업 〈가브리엘〉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사건의 징후들로 가득 차 있다. 여기에는 어떠한 서사도 존재하지 않으며, 실체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경이로움만이 표현되어 있다.

 “가브리엘” 전시 전경(아뜰리에 에르메스, 2022-2023) ©아뜰리에 에르메스

관악기를 변형하여 제작한 사운드 조각 〈코다(Coda)〉에서는 알 수 없는 박자로 부는 바람 소리, 관악기 연습 소리, 금속 파이프 소리가 흘러나온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모든 소리가 뒤섞이는 소용돌이(vortex) 같은 시간의 운동을 상상한다.

작품의 제목인 ‘코다’는 소나타의 종결부를 뜻하는 음악 용어로, 이전에 미리 들었던 주제 선율이 반복, 변주 및 확장되는 특성이 있다. 전시 공간 초입에 〈코다〉가 놓이는 것은 작품에서의 시간 궤도가 선형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남화연은 비가역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 남겨진 희미한 존재의 흔적을 추적하고 현재라는 시간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얽혀 나타나는지를 가시적 형태로 구현해 왔다. 나아가 이러한 움직임과 시간의 관계에 대한 그의 탐구는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움직임들, 그리고 실체가 불분명한 사건과 이를 둘러싼 시간에 대한 감각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고 있다.

“나한테 작업은 외부 세계와 만나서 나를 운동하게 만드는 장치와도 같다.” (남화연 인터뷰, BAZAAR ART 2019 April vol.11)


남화연 작가 ©더아트로. 사진: 김흥규

남화연은 미국 코넬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전문사를 졸업했다. “가브리엘”(아뜰리에 에르메스, 서울, 2022-2023), “마음의 흐름”(아트선재센터, 서울, 2020), “앱도미날 루츠/Abdominal Routes”(쿤스트할 오르후스, 오르후스, 2019), “임진가와”(시청각, 서울, 2017), “시간의 기술”(아르코 미술관, 서울, 2015) 등 국내외의 기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또한 참여한 그룹전으로는 “물결 위 우리”(부산비엔날레, 부산, 2022), “역사가 우리를 망쳤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베니스, 2019), “역사를 몸으로 쓰다”(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7), “유명한 무명”(국제갤러리, 서울, 2016), “모든 세계의 미래 All the World’s Future”(베니스비엔날레, 베니스, 2015), “Nouvelle Vague”(팔레드도쿄, 파리, 2015) 등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