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하형(b. 1989)은 사진을 매개로 개인의 경험과 기억이 담긴 장소를 포착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사진에 담긴 공간은 단지 지리적인 공간뿐 아니라 개인의 애착과 기억이 스며든 정서적인 공간이다. 이러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으로 포착된 장면들은 보이는 것 이면의 복합적인 감정의 레이어를 드러내며, 관객의 시선뿐 아니라 정서적인 부분 또한 자극한다. 


권하형, ‘이발 史’ 시리즈, 2011 © 권하형

권하형은 초기의 작업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지향해 왔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특성상 대상과 함께 생활하고 소통하면서 촬영이 진행된다. 따라서 피사체를 선택한 이후 촬영과 동시에 대상에 대한 이해가 진행되는 것이다.
 
2011년 서울 영등포 문래동의 이름 없는 이발소에서 약 2개월 동안 촬영하며 시작한 ‘이발 史’ 시리즈는 그러한 작가와 대상 사이의 이해와 소통의 시간이 잘 담겨져 있다.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오늘날 점차 사라져 가는 이발소라는 공간과 문화를 사진이라는 매체로 기록하고자 하였다.
 
권하형은 이발소라는 공간뿐 아니라 이발사의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포트레이트 형식과 함께 내부의 요소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하였다.


권하형, ‘이발 史’ 시리즈, 2011 © 권하형

이를 시작으로 그는 소멸해가는 이발소 문화를 최대한 기록하고, 사진의 무게를 더하기 위해 대상의 범위를 전국으로 확대시켰다. 검색 포털 사이트에 “이발”, “이발소”,“ 이용원”, “낡은 이발소”, “오래된 이발소”, “산골 이발소”, “마을 이발소” 등 관련 단어를 검색해 나타나는 모든 페이지를 살펴보며, 이발소 외부나 내부의 이미지 정보를 통해 그가 원하는 ‘이발소’를 선정했다.


권하형, ‘이발 史’ 시리즈, 2011 © 권하형

원하는 이미지를 찾았다고 해도 이발소의 이름이나 전화번호 그리고 주소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또 다시 자료 찾기가 반복되었다. 발품을 팔아 힘들게 찾아간 이발소를 들어가기 전에는 작은 음료와 미리 촬영해둔 사진을 들고가서 어떤 촬영을 하려하는지, 왜 하려는지 충분히 설명을 드리고, 이 곳을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고 멀리서 왔는지 최대한 상세히 말씀드렸다.
 
이처럼 그의 사진은 그저 피사체를 정하고 사진을 촬영하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장소를 리서치하는 것에서부터 직접 그 곳에 방문해 사진의 대상이 되어줄 이들과 진심을 나누며 소통하는 모든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그의 사진에는 사라져 가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작가의 정성과 노력의 시간이 녹아져 있다.


권하형, 〈가데나 공군기지, 오키나와〉, 2016 © 권하형

이후 권하형은 세월호 참사와 연관된 안산의 팽목항, 송전탑 건설 반대 농성을 했던 밀양,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제주 강정, 여전히 미군 기지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오키나와 등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이러한 장소들은 여전히 무거운 사회적 맥락을 가지고 있는 현장들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는 곳들이었다. 작가는 카메라를 들고 그러한 장소들을 직접 돌아다니며, 그 장소들의 지금의 모습과 찰나의 순간들을 포착해 나갔다.


권하형, 〈벗어난 지도 #1〉, 2020, 캔버스에 피그먼트 프린트, 279x419cm © 권하형

2017년 무렵, 권하형은 타지에서 오랜 기간 생활하다 자신의 고향인 창원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방문한 고향은 그의 기억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변화해 있었다.
 
계획도시로 구획되고, 재개발된 새로운 모습의 도시에서 작가는 내비게이션 시스템 안에 포착되지 않은 ‘경로를 이탈한 곳’ 즉, 현대화의 잣대에서 비켜난 과거의 장소에서만 안정을 느낄 수 있었다. 


권하형, ‘벗어난 지도’ 시리즈, 2020,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2020 – 낯선 곳에 선》 전시 전경(부산시립미술관, 2020) © 권하형

2020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단체전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2020 – 낯선 곳에 선》에서 선보인 ‘벗어난 지도’ 시리즈는 그러한 작가의 정서와 기억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로를 이탈한’ 공간들을 담고 있었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고향’을 지형적으로 한정시키지 않고, 그가 느끼고 있던 감각 그리고 정서적인 부분들로 재구성하였다. 그리고 작가는 관객에게 철제 구조물에 걸린 작품들 사이를 헤매는 행위를 유도함으로써, 경로 이탈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하였다.


권하형, 〈벗어난 지도 #2〉, 2020, 캔버스에 피그먼트 프린트, 166x110cm © 권하형

자신이 살아왔던 공간과 자신의 기억으로부터 출발하는 ‘벗어난 지도’ 시리즈는 외부적, 사회적 맥락이 담긴 장소들을 기록했던 지난 작업과 다른 방향성을 보인다. 외부를 향해 있던 카메라의 방향 자체가 내부로 돌아오게 된 이 시리즈는, 작가 권하형의 작업 세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권하형, 〈상세 서비스〉, 2022, 《밤이 없는 방》 전시 전경(공간 힘, 2022) © 공간 힘

한편, 2022년 공간 힘에서 열린 2인전 《밤이 없는 방》에서 작가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기성 이데올로기 중에서 가부장제의 현주소는 어떠하고, 또 이것이 여성의 활동 공간을 어떻게 통제하려 드는지를 고민하며, 그동안 주로 다뤄왔던 사진 대신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권하형, 〈상세 서비스〉, 2022, 《밤이 없는 방》 전시 전경(공간 힘, 2022) © 공간 힘

먼저, 전시장 가장 높은 곳에는 20여 개의 액자로 구성된 〈상세 서비스〉(2022)가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작가가 한 달간 수집한 부모님의 통화 대화록이 담겨 있었다. 일견 별문제 없이, 때로는 다정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두 인물의 일상 대화를 읽다 보면 조금씩 미묘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그들의 대화 대부분이 요구와 그에 대한 응대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작가의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 집 안에 ‘원하는 곳에 있을 것’ 또는 ‘원하는 상태를 준비해 놓을 것’을 지시한다.
 
마치 루틴처럼 일상의 일부가 되어 어머니의 행동반경을 야금야금, 앤틱 액자의 테두리 안으로 통제하려는 듯 보인다.


권하형, 〈호출〉, 2022, 《밤이 없는 방》 전시 전경(공간 힘, 2022) © 공간 힘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에 있는 〈호출〉(2022)은 반복되는 아버지의 통화가 일방향적으로 흐른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를 목조 부스와 몇 가지 장치들로 구현해본 것이다. 전시장에 설치된 센서의 일정 반경 안에 사람이 접근하면, 부스 안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리며 내부로의 진입을 유도하였다.
 
그 안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통화 내용이 자막 형태로 존재하고, 벽면에는 이러한 대화가 한 달 동안 얼마나 자주 있었는지를 정리한 명세서가 붙어 있었다. 권하형은 이러한 방식을 통해 언어와 권력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바깥에서 안으로》 전시 전경(영주맨션, 2024) © 영주맨션

그리고 2024년 영주맨션에서 열린 권하형의 개인전 《바깥에서 안으로》에서는 ‘바깥의 공간’에서 ‘안의 장소’로 이동하게 된 작업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었다. 작가는 외부를 향하던 시선이 점차 실내와 거주 공간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하나의 단절이 아닌 이어진 경로로 인식하며, 지난 작업들을 연결해 선보였다.
 
이 전시에서 경로의 이탈은 방향을 잃는 순간이 아니라, 목적지를 새롭게 설정하고 공간을 다시 인식하게 하는 계기로 작동한다.


《바깥에서 안으로》 전시 전경(영주맨션, 2024) © 영주맨션

전시가 열린 예술공간 영주맨션은 사적인 집이 전시공간으로 전환된 장소로, 안과 밖이 교차하는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공간에서 작가의 사진은 이동과 경계에 대한 감각을 환기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밖과 안 사이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하였다.


《바깥에서 안으로》 전시 전경(영주맨션, 2024) © 영주맨션

이렇듯 권하형의 작업은 ‘바깥’에서 시작해 ‘내부’로 이동하는 경로 안에서 지속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의 시선이 바깥을 향하든 안을 향하든 언제나 그의 사진에는 작가의 ‘진심’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그의 사진 속 대상들은 주로 사라져 가는 순간들과 존재들이지만, 작가가 가진 진심의 렌즈를 통해 전달됨으로써 관객의 마음과 기억 속에 새로이 자리잡는다.

"별수 없는 것들이 너무 별수 없이 당연하듯 지나가는 것, 사라져가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사진을 담아내고 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을 어찌 해야 할지 애써 시간을 들이고 있다." (권하형, 작가 노트)


권하형 작가 © 부산국제사진제

권하형은 상명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했다. 개인전으로는 《바깥에서 안으로》(영주맨션, 부산, 2024), 《여름사이》(로그캠프, 창원, 2019)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논카메라 리서치: 영도의 색》(부산복합문화공간 새모, 부산, 2025), 2025 부산국제사진제: 국제 청년 아티스트 교류전 《피부 아래; 열과 막》(일산수지, 부산, 2025), 《바이 휴먼》(대구예술발전소, 대구, 2024), 《밤이 없는 방》(공간 힘, 부산, 2022), 《10100: 10년을 기억하고, 100년을 상상하다》(KT&G 상상마당, 서울, 2021),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