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수(b. 1988)는 조각과 이와 연계된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작업해 오면서,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사회적 관습에 따라 생성되는 부산물들에 관심을 가진다. 작가는 “왜 우리는 어떤 것을 옳은 행위로,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여길까?” 질문하며, 그것이 무엇인지 결정되는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무엇이고 그것을 인지하는 ‘나’라는 주체는 어떻게 정의되는지 탐구한다.


임정수, 〈정원용 배경〉, 2017, 종이, 목재, 조화, 가변설치 © 임정수

임정수는 이와 같은 질문들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으며,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동물, 식물의 외형을 따라한 장식적 패브릭, 자연에서 가져온 재료를 주로 사용해 조각을 제작해 왔다. 그의 조각은 동물, 식물, 사물의 물성이 동일 선상에 놓이며 재구성된 제3의 존재로서 고정된 주체와 시각을 벗어나게 한다.


임정수, 〈배경배경〉, 2017, 목재, 천, 스틸, 가변설치 © 임정수

임정수는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창조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에너지의 한 덩어리로서의 존재로 스스로를 정의하는 관점을 가지고 기존 범주 밖에 있거나 그 경계선에 있는 대상을 쫓는다. 그에 따르면, 이런 대상은 주어가 없는 문장, 배경 전체로서의 주체,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개인, 몸이 기억하는 미신, 원자로서의 마음, 비인간, 사물의 언어 등을 포함한다.


임정수, 〈배경배경〉, 2017, 2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5분 © 임정수

임정수는 조화, 신화 속 동물 모형, 동물 피부 패턴으로 디자인된 물건 등 자연을 모방하는 사물, 다중적 의미를 포함하는 글귀, 인간의 욕망이 응축된 싸구려 이미지 등을 하나의 장면으로 재배열하여 현재의 풍경을 조각, 퍼포먼스, 영상 등으로 풀어낸다.
 
이때 물건의 기존 용도보다는 색, 질감, 형태, 크기와 같은 사물의 피부를 통해 사물과 관계를 맺는다. 나아가 작가는 인간의 신체 또한 사물 중 하나로 규정하고 퍼포먼스를 통해 비인간과 인간의 신체가 중첩되는 시간과 장소를 다룬다.


《벽, 땅, 옆》 전시 전경(김종영미술관, 2017) © 김종영미술관

2017년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벽, 땅, 옆》에서 임정수는 카페트와 이불, 울타리, 빨래건조대 등 일상의 흔한 생활용품들을 재료로 한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이러한 사물들을 전시장 곳곳에 무리 지어 설치하고 나비, 동물, 해, 별, 나무, 구름, 풀, 물방울, 달, 꽃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너무나 익숙해 관객의 사고에 별다른 여지를 남기지 않는 생물용품들에 뜬금없이 자연물의 이름을 붙인 까닭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봐야만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 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임정수는 관객들이 작품제목을 자신이 제시한 생활용품의 조합물에 투사해 보기를 원했다. 그는 전통적인 방식, 즉 특정 사물의 형상을 재현하는 대신에 특정 사물을 연상시킬 수 있는 직간접적인 요소들을 조합하여 관객에게 제시하고, 작품제목을 말미암아 이 파편들을 각자 조합해 볼 것을 요청하였다.


임정수, 〈벽, 땅, 옆〉, 2017, 천, 목재, 철골구조, 가변설치 © 임정수

이러한 그의 작업에서 또 주목해야 할 점은 재료들을 선택한 기준이다. 임정수는 생활용품을 재료로 선택함에 있어서 어떠한 기능이나 내용보다 그것이 가진 장식적인 패턴에 주목한다. 그는 장식에 관점이나 가치관, 취향이 반영된다고 보고, 물건의 형태와 이를 나열하는 방식이 그 물건을 판매하던 장소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장소 특유의 성격을 드러내는 사물의 색과 질감, 형태 등을 고려하여 거주지에서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을 주재료로 사용해 왔다.


임정수, 〈벽, 땅, 옆〉, 2017, 천, 목재, 철골구조, 가변설치 © 임정수

그렇게 수집된 익숙한 사물들은 작가에 의해 낯선 제3의 존재로 거듭난다. 이러한 임정수의 조각은 단지 시각적으로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낯선 에너지가 발산하여 관객의 피부와 만나고 촉각적인 예술로 다가온다.
 
가령, 작가는 여러 단위로 나뉜 오브제로 공간을 구성해 설치된 오브제들이 개별 조각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전체 또한 하나의 큰 조각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공간 전체에 조각적 에너지가 유기적으로 흐를 수 있게 만든다.  
 
또한, 어떤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풍경을 발견하며 사물들을 다층적으로 감각할 수 있도록 동선과 시야 등을 섬세하게 고려함으로써, 관객이 작품을 감상할 때 마치 복합적인 요소를 조합하여 작곡한 음악을 듣는 듯한 경험으로 이끈다.


임정수, 〈너의 가로수가 되거나, 너의 베란다 울타리가 되거나〉, 2017, 혼합매체, 가변크기 © 임정수

이렇듯 공간으로 확장된 조각은 더 나아가 퍼포먼스라는 하나의 상황을 위한 무대이자 그 주체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도시에 비치된 ‘식물’과 관련된 장식을 소재로 한 〈너의 가로수가 되거나, 너의 베란다 울타리가 되거나〉(2017)는 하나의 설치 작품인 동시에 퍼포머의 몸짓, 언어와 상호 작용하며 공간을 변화시키고 사건을 만들어 내는 또 하나의 퍼포머로 기능했다.
 
먼저, 이 작업에서 작가는 인공 식물이 인간이 자연을 소유할 수 없다는 점을 반영한 낭만적인 형태라 보며, 파편 형태의 식물 장식들을 모아 분류하고, 연결하고, 변형하면서 정원과 같은 구체적인 장면을 상상하며 설치를 완성했다.


임정수, 〈너의 가로수가 되거나, 너의 베란다 울타리가 되거나〉, 2017,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7분 7초. © 임정수

그 다음, 식물 장식들의 특징을 정리한 문장을 만들어 퍼포먼스의 지시문으로 사용했다. "흔들대는 것들과 어울리자," "순서없이 차례로 있자," "가끔 매달려 있자"와 같은 지령을 퍼포머에게 제시하고, 이를 수행하는 퍼포머의 몸동작을 설치 공간에 삽입하여 몸과 사물, 언어가 연결되는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가도록 했다.
 
임정수는 이를 통한 “설치는 몸을 위한 무대이자 확장된 조각이 되고, 이 장면을 촬영한 영상은 ‘설치가 구현된 장소’라고 할 수 있다”며, “이렇게 진행되는 매체의 변화 속에서 ‘공간의 평면화, 사건의 기록, 과정으로서의 영화’에 대해 질문한다”고 설명한다.


임정수, 〈'자스타브카'와 '스타니체'〉, 2019,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7분 © 임정수

2019년 개인전 《자스타브카 & 스타니체》는 이러한 ‘무대이자 확장된 조각’의 가능성을 더욱 발전시켜 보였다. 전시에는 대략 십여 개의 무대에 배치된 오브제들과 함께 직접적인 신체 이미지가 등장했다.
 
신체에서 연장된 불규칙한 형태, 다양한 질감과 무늬로 구성된 오브제들을 임정수는 ‘껍질 오브제’라고 부른다. 신체를 닮은, 그리고 신체를 지칭하는 이름을 가지는 이 오브제들을 무대 위에서 움직임에 참가하는 신체와 동일한 하나의 오브제로 다루어졌다. 따라서 무대 위에서는 인간과 사물, 주체와 객체 간의 위계는 지워지며, 이름으로 규정되는 인식과 감각, 상황 속에 뒤엉킨다.  


《핀치새》 전시 전경(갤러리도스, 2024) © 갤러리도스

나아가, 2024년 갤러리도스에서 열린 개인전 《핀치새》를 통해 작가는 인간이 규정한 범주에서 벗어난 혼종적 주체들의 존재를 조각으로 구현하며 낯선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현재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온 보편적인 개념이나 사회적 관습을 재고하게 만들었다.
 
임정수는 그간 인간의 소유욕에 의해 타자화되고 대상화되어 온 비인간 존재들의 이미지를 친숙하고도 낯선 모습으로 조합하여 제3의 존재로 재탄생시키고자 하였다. 표면을 덮고 있는 껍데기의 형체나 빛깔과 같이 대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소재들은 작가의 시선 안에서 또 하나의 주체가 되어 전시장을 누볐다.
 
각각의 명확한 근원지를 알지 못한 채 어느 곳으로부터 말미암아 작품으로 놓이는 덩어리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치를 지니며 사회적으로 규정된 범주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었다.


임정수, 〈미신이 아닌 것은 없다〉, 2024, 철사, 와이어 메쉬, 시멘트, 점토, 인공돌, 털, 가죽, 15x25x30cm (12개) © 임정수

이를테면, 〈미신이 아닌 것은 없다〉(2024)는 십이지에 해당하는 각 동물의 형태에 깨진 물건, 유물, 껍질, 토기 등의 형태를 조합한 12점의 조각으로 이루어진다. 이 조각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각각 어떤 동물을 나타내는지 유추하게 만드나, 실상 부서진 토기, 잔해, 껍데기의 형상에 가깝다.
 
실제로 접하기 힘든 생명체들의 이미지로부터 형태를 차용하고 혼합한 〈욕망이 도착했다는 소문을 들었다〉(2024)는 친숙하고도 낯선 느낌을 주는 가상의 존재로, 여러 환상과 욕망이 투영된다.


《진달래거나 궤양》 전시 전경(공간서로, 2025) © 임정수

그리고 최근의 작업에서 임정수는 문학과 글을 몸짓, 오브제, 퍼포먼스로 확장하는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예를 들어, 퍼포먼스 〈진달래거나 궤양〉(2025)은 요세프 촤펙(Josef Čapek)의 책 『강아지와 고양이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작가는 이 책을 번역하며 책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이름과 사물에 주목했다. 이들 사이의 관계가 고정되지 않고, 잠시 서로가 서로에게 얇게 포개져 있는 듯한 모습, 그 중첩된 상태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다.
 
이러한 경험을 배경으로 한 〈진달래거나 궤양〉을 통해 작가는 이름과 기억이 어긋나는 틈에서 생겨나는 혼종의 순간을 포착해 우화적이고 조각적인 장면으로 펼쳐낸다.


임정수, 〈모든 고래가 다리를 가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25,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25분 35초 © 임정수

이렇듯 임정수는 인간 문화의 여러 부산물을 다루며, 언어가 대상을 명명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환상과 낭만, 그리고 언어 행위와 신체 행위가 ‘정상성’과 ‘타자성’을 조직하는 방식을 해체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인간·비인간의 표면에 주목하며, 각자의 피부를 통해 서로 관계를 맺고 중첩되는 시간과 장소를 다룬다. 그는 주체가 표면이나 파편과 같이 찰나에 유동적으로 형성된다는 관점을 기반으로 사물, 동물, 식물이라는 대상을 관통하는 서사를 만들고, 그 안에서 인간의 몸을 사물화하여 주체와 객체 간의 우위를 벗어나 서로 순환하도록 함으로써 인간 중심의 관점을 전복한다.


임정수, 〈갈라파고스 핀치〉, 2024, 복합재료(모피, 철망, 철사, 아크릴, 점토), 가변크기 © 임정수

"왜 우리는 어떤 것은 옳은 행위로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여길까. ‘그것’이 무엇인지 결정되는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무엇이고 그것을 인지하는 ‘나’라는 주체는 어떻게 정의되는지에 대한 질문은 작업의 시발점이다. 주체는 여러 대상과 교차하는 관계의 설정 속에서 형성된다. 무엇이 올바른가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욕망, 신화, 관습에 따라 결정된다.
 
즉 주체는 흘러가는 순간의 찰나에만 존재하거나 혹은 다른 대상과의 거리, 즉 끊임없이 변화하는 그 모양 자체 일지 모른다.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창조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에너지의 한 덩어리로서의 존재로 스스로를 정의하는 관점을 가지고 기존 범주 밖에 있거나 그 경계선에 있는 대상을 쫓는다." (임정수, 작가 노트)


임정수 작가 © 임정수

임정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 전문사를 졸업하고, 프라하의 예술 건축 및 디자인 아카데미에서 순수예술과 조각 스튜디오 후속석사에 재학 중이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About One Thing》(Artotéka, 프라하, 2026), 《진달래거나 궤양》(공간서로, 서울, 2025), 《핀치새》(갤러리도스, 서울, 2024), 《자스타브카 & 스타니체》(2/W + 위켄드, 서울, 2019)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파상경계》(스페이스 458, 서울, 2026), 《Primeval Water》(Galerie 1, 프라하, 2025), 《두산아트랩 전시 2024》(두산갤러리, 서울, 2024), 《우리가 모여 산을 이루는 이야기》(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3-2024), 《각》(하이트컬렉션, 서울, 2022), 《10 픽쳐스》(웨스, 서울, 2020), 《초-극적 단상》(SeMA 창고, 서울, 2019)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임정수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NCCA Art Residence Kronstadt(2018), 포르투갈 리스본의 Zaratan–Arte Contemporânea(2018), 네덜란드 엔스헤데의 ARE Holland(2017), 스페인 이룬의 Bitamine Faktoria(2016) 등 해외 레지던시에 참여하였으며, 그의 작품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