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혜 (b.1959) - K-ARTIST
홍승혜 (b.1959)

홍승혜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개인전 (요약)

1986년 관훈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했고, 1997년 국제갤러리 《유기적 기하학》 이후 픽셀 기반 작업을 본격화했다. 이후 국제갤러리(1995–2023), 아뜰리에 에르메스(2012), 스페이스 윌링앤딜링(2016), 북서울시립미술관(2016), 일민미술관(2021)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최근에는 《The Painter’s Architecture, The Painter’s Furniture》(2025, 스페이스 제로원, 뉴욕)를 통해 회화·조각·공간·사운드를 아우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룹전 (요약)

국립현대미술관(2002, 2015, 2019, 2020, 2024), 서울시립미술관(2012, 2013, 2015, 2016), 일민미술관(2015, 2017), 송은(2023) 등 국내 주요 기관의 단체 기획전에 참여했으며, 광주디자인비엔날레(2017),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2002, 2012, 2016),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2022)에 참가했다. 또한 파리, 베이징, 뉴욕, 아부다비 등 해외 각국의 전시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수상 (선정)

작가는 1997년 토탈미술상과 2007년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했다.

작품소장 (선정)

홍승혜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성곡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등에 소장되어 있다.

Works of Art

주제와 개념

홍승혜의 작업은 디지털 화면의 최소 단위인 픽셀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동일한 형태가 반복되면서도 미묘하게 차이를 만들어내는 구조를 통해, 동일성과 차이가 공존하는 관계망을 드러낸다. 이는 개별 존재들이 서로 유사성을 공유하면서도 완전히 동일하지 않은 상태로 공존하는 삶의 조건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픽셀은 더 이상 화면을 구성하는 물질적 단위가 아니라 관계를 만드는 사유의 단위가 된다.
 
그가 ‘유기적 기하학’이라 명명한 개념은 이러한 인식을 드러낸다. 기하학이 불변의 질서와 논리를 상징한다면, 유기성은 변화와 상호의존성을 의미한다. 상반된 두 개념을 결합하는 방식은 작가가 이분법적 체계를 거부하고 모순을 포용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의 작업에서 질서는 고정된 체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형되는 상태이며, 구조는 완결된 형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태도는 추상에 대한 작가의 접근에서도 드러난다. 홍승혜에게 추상은 대상을 제거하는 순수성의 전략이 아니라 의미를 단정하지 않기 위한 유보의 상태다. 명확한 결론 대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남겨두려는 태도는 그의 작업을 열린 구조로 만든다. 그는 공간의 구조를 통해 삶의 구조를 말하며, 기하학을 통해 구체적인 삶을 우회적으로 사유한다.
 
결과적으로 홍승혜의 작업은 하나의 형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방식을 반복한다. 그의 픽셀은 형식이 아니라 태도이며, 작가의 정체성은 특정 양식이 아니라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형성된다. 동일한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상태로 이동하는 작업의 성격은 그의 예술이 고정된 스타일이 아니라 지속적인 사유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형식과 내용

홍승혜의 작업은 회화에서 시작하지만 평면에 머무르지 않는다. 픽셀을 기본 단위로 한 기하학적 이미지는 캔버스에서 출발하여 부조, 조각, 가구, 벽화, 애니메이션, 사운드로 확장된다. 동일한 구조가 서로 다른 매체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형식은 고정된 결과가 아니라 변환 가능한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매체의 변화는 표현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구조가 다른 환경에서 작동하는 실험에 가깝다.
 
그의 형식은 모더니즘 기하 추상과 닮아 있으나 목적은 다르다. 엄격한 질서와 순수성을 추구했던 기하 추상과 달리, 홍승혜의 픽셀은 창문, 계단, 집 같은 일상적 이미지로 인지된다. 추상과 구상은 구분되지 않고 하나의 층위 안에서 동시에 작동한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재현을 제거하기보다 재현이 발생하는 순간을 드러낸다. 형태는 기호이면서 사물이 되고, 구조는 이미지이면서 공간이 된다.
 
또한 반복은 기계적 균일성을 만들지 않는다. 동일한 단위를 증식시키면서 미세한 변화를 도입해 리듬을 형성한다. 이는 음악적 구성과 유사하며, 실제로 애니메이션과 사운드를 결합한 작업에서 시각적 리듬은 시간적 리듬으로 전환된다. 픽셀은 시각적 요소를 넘어 시간의 단위로 작동하며, 화면은 악보처럼 읽히기 시작한다.
 
이처럼 그의 형식은 내용과 분리되지 않는다. 구조는 의미를 담는 틀이 아니라 의미가 생성되는 과정이며, 조형은 개념의 결과가 아니라 개념의 작동 방식이다. 따라서 홍승혜의 작업에서 형식은 내용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발생시키는 조건이 된다.

지형도와 지속성

홍승혜의 작업은 평면에서 공간으로, 물질에서 비물질로 지속적으로 이동한다. 초기의 콜라주와 회화는 오브제로 확장되었고, 이후 건축적 환경으로 침투하며 전시 공간 전체를 구성하는 단계에 이른다. 벽, 바닥, 기둥, 가구는 작품의 배경이 아니라 동일한 조형 단위로 재편성된다. 이 과정에서 관람자는 작품을 보는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그 내부를 통과하는 존재가 된다.
 
그의 작업이 건축과 긴밀히 연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픽셀은 화면의 단위이면서 동시에 공간을 구성하는 모듈로 기능한다. 축적된 단위는 구조를 형성하고 구조는 환경을 만든다. 이는 현대 도시의 형성과 유사한 방식이며, 그의 작업이 종종 도시 풍경을 연상시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업은 독립된 오브제가 아니라 환경적 조건으로 존재한다.
 
시간에 대한 인식 또한 확장된다. 애니메이션과 사운드 작업에서 픽셀은 움직이며 서사를 생성하고, 전시는 사건처럼 경험된다. 반복되는 형식은 동일한 결과를 만드는 대신 매번 다른 상황을 만들어내며, 작업은 완결된 결과보다 지속되는 상태에 가까워진다. 그의 작업은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장면들의 연속으로 이해된다.
 
결국 홍승혜의 작업은 특정 시기의 양식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동일한 구조를 유지하면서 매체와 환경,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갱신되며 이어진다. 이러한 지속성은 변화의 부재가 아니라 변화의 방식의 일관성에서 비롯된다. 그의 작업은 그리드의 안에 머무르지 않고 밖으로 확장되며, 동시에 밖으로 나가면서 다시 그리드로 귀환하는 순환적 운동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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