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봉 (b.1957) - K-ARTIST
이기봉 (b.1957)

이기봉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1980년대부터 회화·설치 작업을 병행하며 작업을 지속해 왔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조형학부 교수 및 학부장으로 재직하며 교육과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개인전 (요약)

1988년 인공갤러리(서울)를 시작으로 국제갤러리(1997-2022, 서울·부산), 신도리코아트센터(2005, 아산), 아르코미술관(2012, 서울), 티나킴갤러리(2011, 2024, 뉴욕)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룹전 (요약)

국립현대미술관·서울시립미술관·경기도미술관·금호미술관·대구미술관·LACMA·ZKM 등 주요 미술관과 티나킴갤러리·국제갤러리·갤러리시몬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광주비엔날레(1997), 부산비엔날레(2010), 모스크바비엔날레(2011), 세비야비엔날레·싱가포르비엔날레(2008), 창원조각비엔날레(2016) 등 국내외 주요 비엔날레 및 국제전에 초청되었다.

수상 (선정)

1986년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과 1994년 토탈미술상을 수상했다.

작품소장 (선정)

이기봉의 작품은 리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세화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아트선재센터를 비롯해 ZKM 미술관(독일), 노이버거 버먼 컬렉션(뉴욕), 루이 비통 컬렉션(프랑스) 등 국내외 주요 기관 및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Works of Art

주제와 개념

이기봉의 작업은 세계를 구성하는 본질적 구조와 흐름에 대한 사유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인간과 사물, 자연을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생성과 소멸, 순환이라는 동일한 체계 안에서 움직이는 관계적 존재로 바라본다. 물, 안개, 거품, 수증기와 같은 비고정적 매체는 이러한 세계관을 드러내는 핵심 모티브로, 형상을 분명하게 드러내기보다 사라짐의 과정 자체를 드러낸다. 그의 풍경은 특정 장소의 재현이 아니라 존재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순간의 상태, 즉 세계가 완결되지 않은 상태로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때 ‘사라짐’은 단순한 부재나 종말이 아니라 인식의 조건이 된다. 작가는 세계가 명확히 규정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며, 우리가 파악한다고 믿는 현실 역시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본다. 따라서 그의 작업에서 흐릿함은 표현의 한계가 아니라 인식의 방식이다. 안개는 사물을 가리는 동시에 드러내며, 관객이 세계를 확정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지연시킨다. 이 지연된 인식의 상태가 바로 그의 작업이 요구하는 감각적 사유의 시간이다.
 
이기봉에게 텍스트와 언어는 중요한 대립항으로 등장한다. 언어는 세계를 분류하고 고정하려는 체계이지만, 그의 작품은 이를 끊임없이 무력화한다. 텍스트를 덮어버리는 거품, 사라지는 수증기, 인식되지 않는 풍경은 언어 이전의 감각 영역을 환기한다. 그는 언어가 설명하지 못하는 실재의 층위를 드러내며, 보이지만 말할 수 없는 것에 접근하려 한다.
 
결국 그의 작업은 존재의 본질을 규정하기보다 그 불가능성을 드러내는 데 있다. 재현의 정확성이 아니라 지각의 불확실성이 그의 회화를 구성하며, 세계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욕망 자체를 성찰하게 만든다. 이기봉의 작품은 실재를 보여주기보다 실재에 접근하는 과정의 상태를 드러내며, 그 사이의 틈에서 형성되는 감각적 경험을 예술의 영역으로 제시한다.

형식과 내용

이기봉의 형식은 회화와 설치의 경계를 넘나드는 복합적 구조로 이루어진다. 그는 캔버스 위에 직접 이미지를 그리는 전통적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플렉시글라스, 반투명 천, 물, 안개 장치 등을 중첩하여 화면을 하나의 공간적 장치로 확장한다. 이러한 다층 구조는 단일 시점을 해체하며, 관객이 이동하면서 다른 이미지를 경험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그의 작품은 보는 대상이 아니라 통과하는 환경이 된다.
 
특히 레이어의 사용은 그의 조형 언어에서 핵심적이다. 서로 다른 층은 명확히 분리되지 않으며, 이미지와 반사, 실제 공간이 동시에 겹쳐진다. 이는 회화를 창문이나 표면이 아니라 ‘통로(passage)’로 이해하는 태도와 연결된다. 관객은 이미지 앞에 서는 대신 이미지 사이에 위치하게 되며, 작품은 재현된 풍경이 아니라 감각적 경험의 장으로 전환된다.
 
그의 풍경은 사진처럼 정밀해 보이지만 실상은 불확정적이다. 수평선은 흐려지고, 반사면은 사라지며, 공간의 좌표는 붕괴된다. 이러한 형식은 회화의 전통적 기능인 재현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무효화한다. 즉, 그는 사실적 묘사를 통해 비가시적인 상태를 드러내는 역설적 방식을 택한다.
 
설치 작업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동한다. 실제 물과 안개, 빛의 움직임은 시간성을 작품 내부로 끌어들인다. 고정된 조형물이 아니라 변화하는 상태가 작품의 본질이 되며, 관객은 완성된 이미지를 보는 대신 변화의 과정 속에 놓인다. 이처럼 이기봉의 형식은 감각과 인식 사이의 긴장을 만들어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지형도와 지속성

이기봉의 작업은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 일관된 문제의식을 유지하면서 매체와 형식을 확장해 왔다. 초기에는 조각과 설치를 중심으로 물질의 상태 변화를 탐구했고, 이후 회화로 이동하면서도 동일한 주제를 지속했다. 이는 매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 구조가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의 작업에서 변화는 양식의 변화가 아니라 접근 방식의 확장이다.
 
그의 풍경은 특정 지역의 자연이 아니라 보편적 상태의 자연을 지향한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물가의 나무, 안개 낀 공간, 흐릿한 수평선은 하나의 상징적 지형도를 형성한다. 이 지형은 장소의 기록이 아니라 존재 상태의 지도에 가깝다. 따라서 작품은 개별 이미지들의 집합이 아니라 동일한 사유가 변주되는 연속적 장면으로 읽힌다.
 
시간 역시 중요한 지속성의 축이다. 그의 작품에서 시간은 서사적 흐름이 아니라 축적된 상태로 나타난다. 사라지는 것과 남아 있는 것이 동시에 존재하며, 현재는 과거와 미래 사이의 얇은 층으로 제시된다. 이는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순환 구조를 시각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결과적으로 이기봉의 작업은 하나의 완결된 단계로 나아가기보다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갱신되는 과정에 가깝다. 동일한 모티브와 구조가 다양한 매체에서 다시 나타나며, 작품들은 서로 독립적이기보다 하나의 장기적 사유 체계 안에서 연결된다. 이러한 지속성은 작가의 작업을 개별 작품의 집합이 아닌 하나의 장기적 탐구로 이해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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