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정은 영상을 중심
매체로 사용하지만, 그의 영상은 단순히 하나의 화면 안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 머물지 않는다. 작가는 단채널, 2채널, 3채널, 4채널, 다채널 설치를 오가며 화면과 소리, 관객의 위치, 전시장 구조를 함께 구성한다. 〈Mélange〉와 〈Hace
Viento〉에서 볼 수 있듯, 여러 화면의 반복과 겹침,
서로 다른 방향에서 발생하는 소리는 하나의 선형적 서사를 만들기보다 흩어진 감각과 단편들을 관객이 다시 연결하도록 만든다. 이때 관객은 완성된 이야기를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분산된
이미지와 소리 사이를 이동하며 의미를 구성하는 존재가 된다.
초기부터 이어지는 접기와
주름의 형식은 최희정 작업의 중요한 조형 언어다. 〈Galatea〉는 16mm 아날로그 흑백 필름과 입체 설치를 통해 접힌 종이의 구조가 어떻게 하나의 조각적 대상으로 확장되는지를
보여준다. 검은색과 흰색으로 분할된 화면, 상하와 좌우로
반전되는 이미지, 손으로 종이를 접는 행위, 탑처럼 쌓인
구조물은 모두 ‘주름’이라는 개념을 시각적이고 물리적인 형태로
드러낸다. 이때 접기는 단순한 수공예적 행위가 아니라, 기억과
관계, 예술가의 이상이 구체적인 형태를 얻는 과정이다. 접힌
흔적이 사라지지 않듯, 작가는 삶 속에서 남는 흔적과 관계의 깊이를 종이의 구조로 번역한다.
〈구원의 번개〉(2021)는 작가의 수행성과 반복의 문제를 4채널 영상 설치로 풀어낸다. 네 명의 인물은 팔찌를 스스로 채우기, 바닥에서 일어서기, 반짝이는 종이를 공중에 뿌리기, 사다리를 오르기 같은 행위를 반복하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한다. 이들의 반복은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보이지만, 작가에게는
예술을 만들기 위해 계속 시도하고 버티는 과정의 은유다. 네 인물은 각각 한 명의 예술가를 상징하며, 무의미해 보이는 행위들은 작품이 완성되고 관객과 만나기 전까지의 고군분투를 드러낸다. 마지막에 촬영 장비가 노출되는 구성 역시, 예술과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결과임을 보여준다.
최근 작업에서는 일상의
구체적 소재와 사회적 시스템이 더 직접적으로 결합된다. 《사랑의 반대는 버림》에서 작가는 반려 식물, 온라인 중고 거래, 식물 재테크,
희귀 식물 시장의 가격 형성 구조를 영상 설치로 다룬다. 〈분홍 꽃이 피는 매화〉(2023)는 죽을 뻔한 매화나무를 살리기 위해 가지를 쳐내고 한국식 분재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며, 〈사랑의 반대는 버림〉이 투사되는 스크린 뒤에 실제 매화나무를 배치한다. 한편
〈오랜만에 내 그림자를 보았다〉는 함부르크의 일상 풍경, 슬라임과 밀가루 반죽 놀이, 알츠하이머를 앓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 데이터 라벨링 푸티지, 파운드 푸티지를 교차시킨다. 이를 통해 작가는 즉물적 감각, 사라지는 기억, 자동화된 데이터 처리, 인간 경험의 삭제를 하나의 영상적 구조 안에 배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