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유리는 영상, 텍스트, 사운드, 출판, 웹 기반 작업 등의 매체를 오가며 ‘말’과 ‘목소리’를 중심으로
작품을 제작한다. 초기부터 그는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설명하거나 재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보다, 텍스트와 소리가 이미지를 다른 방향으로 읽게 만드는 구조를 선호했다.
〈항해하는
말들; 시인과의 대화, 허수경〉(2015)은 시인 허수경과 주고받은 서신을 텍스트 설치와 3채널 영상으로
구성하고, 개인전 《추수할 수 없는 바다》(아트 스페이스
풀, 서울, 2015)에서는 영상과 이미지, 글을 공간 안에 느슨하게 배치했다. 사람의 얼굴을 직접 보여주기보다
풍경과 목소리를 남겨두는 방식 역시 이때부터 반복된다. 관객이 인물의 외모나 배경을 통해 빠르게 판단하지
않고, 말과 풍경 사이에서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프로젝트를 거치며 영상의 채널 수와 구조도 내용에 따라 달라진다. 〈월강〉, 〈몸〉, 〈말〉, 〈소리〉가 각각 단채널로 제작되었다면, 이를 확장한 〈불온한 별들〉은
세 개의 공간적 관계를 동시에 보여주기 위해 3채널 영상으로 재구성되었다. 안유리는 단채널에서는 한 화면 안에 여러 시간을 중첩시키고, 다채널에서는
서로 다른 화자와 공간을 수평적으로 병치한다.
〈파레시아: 하나의
몸, 두 개의 말〉에서는 독백·방백·대화라는 연극적 구조와 ‘라쇼몽 효과’를 활용해 동일한 사건을 둘러싼 네 사람의 상반된 진술을 배치한다. 이처럼
형식은 미학적 선택에 앞서 서로 다른 목소리와 시간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텍스트와 시는 안유리
작업에서 영상만큼 중요한 재료다. 〈포말(泡沫)의 말(言)〉(2021)은 오가사와라를 둘러싼 김옥균의 망명과 유배의 기억을 두 화자의 대화 형식으로 이어 쓰고, 〈약속의 땅, 추방된 기억〉(2021)은 2010년에 촬영한 멜라 난민캠프와 홍콩의 사진을 1988년 미얀마
민주항쟁, 홍콩 반환, 2019년 홍콩 시위와 2021년 미얀마 민주항쟁이라는 서로 다른 시간축에 연결한다.
같은
해 발표한 사운드 설치 〈하늘강 마믅소리〉는 고정희의 시를 현재 여성들의 목소리로 반복해 낭독하며, 시를
과거에 머무는 문학 텍스트가 아니라 현재에 다시 발화되는 소리로 만든다. 안유리가 스스로를 ‘Poetry Weaver’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다른 시대의 시와 기록, 자신의 문장을 서로 직조해 한 장소의 역사나 한 개인의 경험을 단일한 서사로
고정하지 않는다.
최근 작업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더욱 영화적이고 감각적인 구성으로 발전한다. 〈스틱스 심포니〉는 두 개의 화면을 이승과 저승,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존재하는 경계로 설정하고, 네 여성 시인의
서로 다른 언어와 여덟 여성의 목소리를 교향곡처럼 연결한다. 〈은막(銀幕)의 방랑자〉에서는 두 실존 인물의 삶을 환등상이라는 무대로 재구성하고, 영화
이전의 시각 장치와 ‘은막’의 이미지를 통해 역사적 인물이
어떻게 국가가 만든 이미지 속에서 연기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포효하는 잿더미들〉에서는 다시 단채널로
돌아와 해안과 바다, 목소리와 침묵을 따라가는 보다 내밀한 리듬을 만든다. 작품마다 형식은 달라지지만, 이미지와 텍스트, 소리는 서로를 설명하지 않고 약간씩 어긋난 채 놓이며, 그 틈에서
관객이 역사와 개인의 이야기를 다시 연결하도록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