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로 99-1 - K-ARTIST

소공로 99-1

2018
한지에 아크릴
280 x 280 cm 
About The Work

정재호는 한국의 근대화 시기에 국가의 주도로 구축된 도시의 발전과 쇠락의 과정을 회화로써 재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서울의 야경, 도시 개발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역, 새로 세워진 건물 등 도시의 풍경을 장기간 면밀하게 관찰하고 이를 세밀하게 옮긴다.
 
정재호 작업의 지속적인 핵심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집요한 응시’와 ‘시간이 축적된 표면에 대한 신뢰’다. 초기 도시 야경부터 오래된 아파트, 근대 건축, 아카이브 회화, 그리고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그는 일관되게 도시의 발전 이면에 남은 흔적을 회화로 기록해 왔다. 건물은 그에게 역사와 인간의 삶을 담아내는 생명력 있는 존재다.
 
정재호는 현재에 녹아 있는 과거의 연속성을 우리 사회의 풍경 속에서 발견한다. 그의 작업은 과거 사건들과 건물, 사물, 인물을 담아내며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그것이 지금의 현실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개인전 (요약)

정재호는 《나는 이곳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초이앤초이 갤러리, 2023), 《창과 더미》 (상업화랑, 2020), 《열섬》 (인디프레스, 2017), 《혹성》 (갤러리 소소, 2011), 《아버지의 날》 (갤러리현대, 2009) 등 다양한 개인전은 치뤘다.

그룹전 (요약)

또한 정재호는 OCI미술관(2017), 청주시립미술관(2016), 일민미술관(2015), 아르코미술관(2014),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2014)을 비롯한 다수의 기관에서 개최된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수상 (선정)

작가는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로 선정되었다.

작품소장 (선정)

정재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금호미술관, OCI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Works of Art

도시의 발전 이면에 남은 흔적

주제와 개념

정재호의 작업은 한국 근대화 과정 속에서 형성되고 쇠락해온 도시의 건축물들을 통해, 한 시대를 살아온 개인과 집단의 삶을 기록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의 회화에 등장하는 오래된 아파트와 빌딩들은 언제든 철거될 수 있는 존재로 보이지만, 동시에 국가 주도의 개발 논리 속에서 축적된 시간과 기억을 온몸으로 증언하는 구조물들이다. 작가는 이러한 건물의 외관을 단순한 풍경이 아닌, 삶의 흔적이 응축된 표면으로 바라본다.

2001년 첫 개인전에서 서울의 야경을 조감적 시선으로 포착한 이후, 정재호는 도시를 장기적으로 관찰하며 그 이면으로 시선을 이동시켜 왔다. 〈청운동 기념비〉(2004)에서 본격화된 오래된 아파트 작업은 재개발로 인해 사라져가는 주거 공간을 기록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의 부재를 감각적으로 드러낸다. 이 시기부터 작가에게 건물은 물리적 대상이 아니라 기억과 삶이 축적된 존재로 자리 잡는다.

이후 작업은 점차 건물 자체를 넘어, 그 건물이 형성된 사회·역사적 맥락으로 확장된다. 개인전 《아버지의 날》(갤러리현대, 2009)은 작가 개인의 가족사와 한국 사회의 집단적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사라진 공간과 사물을 가상의 시공간으로 재구성한다. 이는 과거를 복원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가 어떤 의미로 호출되는지를 묻는 작업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아카이브 회화’ 작업과 〈혹성〉(2011), 〈난장이의 공〉(2018) 등으로 이어지며, 산업화와 과학기술이 약속했던 미래, 그리고 그것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현재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정재호의 회화는 특정한 메시지를 단정적으로 제시하기보다, 근대화의 잔재가 남긴 불균질한 시간들을 병치함으로써 우리가 살아 있는 현재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형식과 내용

정재호의 회화는 사실적이고 집요한 묘사를 특징으로 한다. 초기 아파트 작업인 〈청운동 기념비〉와 〈금화시민아파트〉(2005)에서 그는 한지, 먹, 목탄, 아크릴을 병용하며 건물 외벽의 얼룩, 균열, 노후한 질감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전통 동양화 재료와 서양화 재료를 병치하는 방식은, 사라져가는 건축물의 희미한 존재감을 더욱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개인전 《오래된 아파트》(금호미술관, 2005) 이후에는 건물의 입면을 화면 전체와 정면으로 일치시키는 구성이 두드러진다. 〈리버사이드 호텔–중산시범아파트〉(2005)처럼, 가로로 긴 화면에 아파트의 전면을 밀도 높게 배치하는 방식은 건물을 하나의 초상처럼 제시하며, 개인의 얼굴을 마주하듯 건축을 응시하게 만든다. 이 시기부터 그의 작업은 ‘종이 기념비’라는 성격을 분명히 갖게 된다.

‘황홀한 건축’(2006–2007) 시리즈에서는 건물에 대한 사실적 기록 위에 작가의 개입이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현대 오락장〉(2007)처럼 현실의 건물을 기반으로 하되, 과장된 패턴이나 층수의 변형을 통해 작가가 느낀 시간의 밀도와 감각을 가시화한다. 이는 기록과 재현을 넘어, 건물과의 관계 맺기를 회화적 형식으로 드러내는 단계라 할 수 있다.

2010년대 이후의 ‘아카이브 회화’에서는 사진, 영상, 인터넷 이미지 등 다양한 시각 자료가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청춘〉(2012), 〈밝은 미래〉(2011), 〈난장이의 공〉은 서로 다른 시공간의 이미지를 결합하거나 변형함으로써, 과거가 단절된 기억이 아니라 현재를 구성하는 연속적인 층위임을 드러낸다. 이때 회화는 기록의 매체이자, 역사적 이미지에 개입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지형도와 지속성

정재호 작업의 지속적인 핵심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집요한 응시’와 ‘시간이 축적된 표면에 대한 신뢰’다. 초기 도시 야경부터 오래된 아파트, 근대 건축, 아카이브 회화, 그리고 〈난장이의 공〉에 이르기까지, 그는 일관되게 도시의 발전 이면에 남은 흔적을 회화로 기록해 왔다. 건물은 그에게 역사와 인간의 삶을 담아내는 생명력 있는 존재다.

정재호는 근대화와 도시 개발이라는 거대한 서사를 개인의 시선과 회화적 노동을 통해 재구성해온 작가로 국내 미술계에 자리한다. 사진이나 영상이 아닌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그는 속도와 효율의 논리에 맞서 느린 관찰과 축적의 시간을 제시해 왔다. 이는 기록과 회화, 개인사와 사회사가 교차하는 독자적인 위치를 형성한다.

〈난장이의 공〉을 통해 드러난 헤테로토피아적 미래에 대한 질문은 그의 작업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 한국 사회의 정체성과 감각을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학기술과 발전의 서사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대에, 그의 회화는 가능한 것만을 꿈꾸게 된 사회의 풍경을 조용히 드러낸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 선정(2018), 그리고 현재 세종대학교 회화과 교수로서의 위치는 정재호가 이미 동시대 미술계에서 확고한 신뢰를 얻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창작과 교육을 병행하며, 도시와 회화, 기록과 감각 사이의 긴장을 지속적으로 갱신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정재호의 작업은 한국 근대화의 기억을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기억을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사고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참조점으로 남게 될 것이다.

Works of Art

도시의 발전 이면에 남은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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