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정(b. 1983)은 강제 이주나 추방, 피난 등 외부의 거대한 힘에 의해 자신의 장소를 상실한 사람들과 그들이 여전히 회복하지 못한 물리적 혹은 정신적 공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지역 사회 내 이주민을 ‘타자(Autre)’로 보는 시선과 그 시선을 받아온 당사자의 기억을 영상으로 표현해왔다. 주로 필드워크(fieldwork)를 통해 수집된 구술 채록과 사료들을 기반으로 영상을 만들고 있으며, 이미지와 기록의 경계에서 드러나는 긴장 속에서 미시적 내러티브의 구축을 실험하고 있다.


신미정, 〈Self-defense_text #4〉, 2013, HD, 퍼포먼스 비디오, 사운드, 2분 33초 © 신미정

초기 작업에서 신미정은 현대 사회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방어(Self-defense)로 인해 발생되는 불안과 그 관계 속의 경계 지점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였다.
 
예를 들어, ‘Self-defense’(2014) 연작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스며들어 있는 타자를 향한 자기방어적 본능이 인간의 일상적 삶 속에서 드러나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간의 상호적 관계에 대한 장소의 미학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였다.


《SELF-DEFENSE》 전시 전경(문래동 폐공장, 2014) © 신미정

작가는 재건축을 앞두고 있던 서울 문래동의 폐공장을 전시장소로 택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 공간은 일제시대에 지어져 철공소로 활발히 운영되다 새로운 공장을 짓기 위해 곧 허물어질 예정이었다. 공장이 운영될 당시 노동자들이 건물주와 임대차 문제로 다투다가 결국 모두 쫓겨나고 공장 철제들이 모두 뜯겨 나가게 되었다. 작가가 전시를 준비하던 당시에는 상가건물 임대차 보호법으로 재판중에 있었다.
 
작가는 폐허가 되어 방치된 이 공간이 자기 방어에 온전히 실패한 곳이라고 보며, 이곳을 전시 공간으로 택함으로써 작품의 의도를 더욱 극대화하고자 하였다. 그렇게 열린 그의 첫 번째 개인전 《SELF-DEFENSE》는 공장 내부의 구조적 특징을 활용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간의 상대성을 환기하고자 했다.


《SELF-DEFENSE》 전시 전경(문래동 폐공장, 2014) © 신미정

전시장 안에는 불안을 야기하는 연출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읊조리는 영상을 지나 전시장에 들어서면 제각각의 다리 길이를 가진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의자들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주변의 사물에 의지하고 있었는데, 이를테면 깨진 안전모와 불안에 관한 제목이 붙은 책들이 이를 받치고 있었다.
 
이처럼 정적인 상태로 감지되던 불안은 2층으로 이어지며 보다 역동적인 형태로 드러났다.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를 마주하며 올라선 2층에서는 방어와 공격의 관계가 역전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못으로 만든 코트를 입고 일상을 누비는 인물의 사진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타인을 위협하는 무기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직선을 그어 나가는 드로잉에서도 속도와 방향이 만들어내는 공격성이 드러나며, 그 이면에 잠재된 심리적 방어의 기제가 감지된다.


《폐공장 도난사건》 전시 전경(문래예술공장, 2014) © 신미정

한편 전시를 앞두고 대문 위가 뜯겨져 있던 탓에 작품과 조명기기를 모두 도난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작가는 매일 작품을 설치하고, 철거하는 일을 반복하며 전시를 진행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사건은 작품이 지닌 의도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열린 두 번의 개인전에서 작가는 첫 번째 개인전 당시의 폐공장 무단침입 및 절도 사건과 함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자신의 집과 가게, 그리고 동네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쫓겨날 수밖에 없고 그들의 고유한 감각의 기억을 담고 있는 장소들이 정량적인 가치에 대체되어 매일 사라지는 현실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현대시대의 ‘자본주의의 난민’을 이야기 했다.


신미정, 〈식민지/추억〉, 2015, 싱글채널 영상, 12분 17초 © 신미정

이처럼 버려진 폐공장에서 시작한 신미정의 작업은 보이지 않는 자본의 힘과 그로부터 밀려난 삶을 조명한다. 이후 작가는 자신 또한 작가로 생존하기 위해 여러 지역으로 이주하며 정착하지 못한 사람들과 장소를 발굴해 왔다.
 
예를 들어, 2015년 영상 작업인 〈식민지/추억〉은 일제강점기 전북 이리에서 태어난 타무라 요시코라는 일본 여성이 그린 지도에서 출발한다. 현재 익산으로 지명이 바뀐 이리는 일본 수탈의 거점 도시 중 하나였다. 작가가 익산에서 발견한 1945년도 이리 지도는 일제 당시 이리의 모습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신미정, 〈식민지/추억〉, 2015, 싱글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2분 17초 © 신미정

이 지도를 그린 타무라 요시코는 고향인 이리에서 소학교 교원으로 지내다가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일본으로 퇴거당했다. 타무라 요시코에게 익산은 식민지가 아닌 고향이었고 그녀는 일본으로의 퇴거 이후 자신의 고향을 잊지 않기 위해 자신이 살던 이리의 지도를 손수 상세하게 만들어 간직해둔 것이다.
 
〈식민지/추억〉은 한 개인으로서 일본인 여성이 해방 전후 식민지 공간에 대해 어떻게 인지하고 기억하고 있는지 그녀의 지도를 통해 보여준다. 이러한 작업은 ‘국가’라는 거대 서사 안에서의 한 명의 개인이 간직한 추억을 조명하며, 개인과 국가, 추억과 역사, 서정과 서사가 교차하는 묘한 지점을 건드린다.


신미정, 〈자신의 경로〉, 2016, 싱글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1분 20초 © 신미정

한편, 이듬해 발표한 영상 〈자신의 경로〉(2016)에서 신미정은 인민군과 한국군, 두 체제를 거친 권문국이라는 남자의 시간을 좇는다. 작가는 속초에 거주하는 실향민 권문국을 자신의 작품 속으로 초대하여 격랑 속의 한국 역사와 그 속에서의 삶이 녹아 있는 그의 일기를 그의 목소리를 통해 되살려 놓는다.
 
속초는 해방 이후 38선이 생겼을 때 소련군이 점령했던 북한의 지역에 속했던 곳으로, 한국전쟁 이후 다시 남한으로 들어오게 되는 한국사의 비극적인 시간을 담지하고 있는 장소이다.


신미정, 〈자신의 경로〉, 2016, 싱글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1분 20초 © 신미정

신미정은 그곳에서 실향민으로서 살아온 권문국의 고향 상실을 슬퍼하며 떨리는 목소리에 속초의 자연 풍경으로 화답한다. 그 자연 풍경은 원초적인 이미지로 향하며, 속초라는 특정 지역의 자연 풍경이 가진 클리셰에 저항한다.
 
그 저항은 시각적 이미지로서의 풍경 뿐 아니라, 파도소리, 풀잎소리, 벌레 소리 같은 청각적 풍경 이미지를 통해 더해진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자연에 숨겨져 있는 한국 역사의 시간의 지층들도 함께 탐색한다.
 
속초의 풍경은 이제 자신의 고향이 되었으면서도 고향이 아닌, 고향 풍경에 대한 실향민의 향수의 풍경이면서, 위로의 풍경이 된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고향 상실의 절망감이 자연 풍경의 아름다움 속에서 풍경이 위로의 장소가 될 때, 이 작업 속의 이미지들은 위로를 넘어 치유의 장소가 된다.


신미정, 〈출향(出鄕)〉, 2018, 싱글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3분 3초 © 신미정

이외에도 신미정은 제주 4.3 사건과 연안 개발로 고향집과 일터를 잃은 해녀 양순택(〈출향(出鄕)〉(2018)), 한강개발계획으로 자신의 고향 밤섬이 폭파되어 집을 잃은 조선공 이일용(〈율도(栗島)〉(2020))의 목소리를 작업으로 가져와 밀려난 ‘타자’의 현존을 드러내고 그들의 빼앗긴 영역을 복원하길 시도한다.
 
이러한 신미정의 작업은 지워지고 밀려난 개인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그들의 잃어버린 장소를 따라가 보며, 그곳에 대한 개개인의 기억을 이미지와 소리로 되살리려는 시도이다.


신미정, 〈타이완, 타향 그리고 타자〉, 2023, 싱글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6분 15초 © 신미정

이후 신미정은 〈타이완, 타향 그리고 타자〉(2023)에서 아시아 국가 경계를 넘나들며 이주해 온 대만계 화교 김성정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혼종적 정체성과 이동에 관한 고찰을 담는다. 특히 이데올로기 대립의 갈림길에서 마주한 거시적 사건들을 조망하고 이후 개인의 미시사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이야기한다.
 
이는 작가가 선택한 개인의 내밀한 과거의 경험에서 시작하여 사회적 맥락으로 확장되며, 그러한 과정에서 마주한 존재들을 일기를 기록하듯 담담하게 스크린 화면 위에 정착시킨다.


신미정, 〈펑후 섬〉, 2024, 싱글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1분 © 신미정

한편, 최근작인 〈펑후 섬〉(2024)은 앞선 작품들의 1인칭 서사와 달리 개별 인물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다. 중국과 대만 사이에 위치한 펑후 섬을 탐구하는 실험적 비디오 작업으로, 1949년 중국 내전 당시 중국 산둥성에서 펑후 섬으로 이주한 난민 학생들과 교사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작품의 중심에는 대만의 암흑기로 불리는 시기에 발생한 비극적 사건인 ‘펑후 7·13 사건’이 놓여 있다. 난민 학생들은 강제로 징집되어 군인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억압과 강요를 당했으며, 일부는 비극적이고도 이른 죽음을 맞이했다.


신미정, 〈펑후 섬〉, 2024, 싱글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1분 © 신미정

이 사건은 국적을 초월해 수많은 개인들의 삶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작품은 이러한 폭력과 억압이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메아리치고 있음을 드러낸다.
 
결국 〈펑후 섬〉은 단순히 역사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폭력, 정체성, 기억의 본질에 대해 관객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침묵하던 자들의 풍경》 전시 전경(스페이스나인, 2018) © 신미정

이렇듯 신미정은 국가적·정치적 권력에 의해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던 사람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체성과 경계의 문제를 탐구해 왔다.
 
현지인과 이방인, 떠남과 귀환, 이주와 재이주를 둘러싼 기록을 따라가며, 역사적 서술만으로는 온전히 드러나기 어려운 삶의 장면과 목소리를 포착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사라진 장소와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존재가 지닌 의미를 다시 되짚는다.

"작업들 모두 ‘장소’에 대한 내 관심의 산물이다. 장소는 공간과는 다른 개념이다. 공간이라는 것은 추상적이고 계량화 될 수 있는 것이지만 장소는 그 속에 사람이 있고 그 삶의 시간과 기억을 포함하고 있다. 내 작업은 그 장소를 재현하는 과정이다." (신미정, 중부일보 인터뷰 중)


신미정 작가 © 금천예술공장

신미정은 추계예술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프랑스 디종 보자르에서 조형예술전공으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세 개의 목소리, 드러나는 세계》(포항시립미술관, 포항, 2024), 《도시X섬X아카이브》(SeMA벙커, 서울, 2021), 《출향(出鄕)》(모하창작스튜디오, 울산, 2018)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아마도, 모두, 우리》(주캐나다 한국문화원, 오타와, 2026), 《송은 x 언박싱 프로젝트: 생성적 형상들》(송은, 서울, 2026), 《작품 위의 미술관》(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25), 《서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5), 《DMZ OPEN 전시: 통로》(캠프 그리브스, 파주, 2024),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 2024), 《제23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서울, 2023)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신미정은 타이페이 THAV(2024), 금천예술공장(2023),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22),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19)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거쳤으며,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대전시립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다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