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영(b. 1983)은 삶과 죽음의 순환 안에서 유한하게 살아가는 존재에 대한 사유를 영상과 설치 작업을 통해 풀어내 왔다. 그의 작업은 비물질과 물질, 몸의 안과 밖, 삶과 죽음 사이의 모호한 영역을 넘나들며 실존의 조건과 우리 ‘몸’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장서영, 〈Circle〉, 2017, 싱글채널 영상, 8분 © 장서영

유한하고 연약한 ‘몸’에 대한 장서영의 관심은 소위 ‘정상성’에서 벗어난 신체의 감각을 직접 경험한 일에서 출발한다. 작가 활동 초반에 ‘사회적 의미의 존재’를 주제로 작업해 온 장서영은 의학적으로 진단되지 않는 이상 증상을 직접 몸으로 경험한 이후 ‘신체의 존재’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사회 구조와 그 안에서의 존재에 대해 사유해 온 초기 작업에서 장서영은 물리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개인들이 어떻게 서로 다른 존재감을 갖게 되는지에 주목했다. 누군가는 사회 안에서 더 큰 영향력과 존재감을 갖는 반면, 누군가는 분명히 존재함에도 그 존재가 희미해지거나 누락되는 상황에 대해 고민해 왔다.


장서영, 〈유어 딜리버리〉, 2019, 싱글채널 영상, 7분 19초 © 장서영

이러한 관심은 사회적 인식과 인정, 가시성에 따라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 없는 것으로 취급되거나, 반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상황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장서영은 이처럼 존재와 부재 사이에 놓인 모호한 상태에 주목하며, 사회 안에서 무엇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무엇이 지워지는지를 영상으로 표현해 왔다.
 
사회적 관계와 구조 속에서 비가시화되는 존재에 대한 사유는 이후 ‘신체의 존재’라는 보다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세계로 확장된다.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이지만 ‘건강하고 생산적인’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순간 존재의 의미가 축소되거나 지워지는 ‘신체’에 주목하면서, 장서영은 온전히 존재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몸이 어떠한 형식과 형태로 간신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지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블랙홀바디》 전시 전경(씨알콜렉티브, 2017) © 장서영

이러한 탐구를 바탕으로 전개된 2017년 씨알콜렉티브에서 열린 개인전 《블랙홀바디》는 ‘블랙홀바디(Black Hole Body)’라 칭하는 신체의 특이성에 주목한다. 작가는 다음 동작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몸속에서 무언가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주저앉게 되는 느낌을 ‘블랙홀바디’라 명명한다.
 
이 전시에서 장서영은 호명되지 못하고 타자화된, 그리고 조직화된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몸과 오히려 구속과 통제에서 벗어난 불안한 의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존의 이성/비이성 담론을 기반으로 진화해 온 사회의 제도와 권력은 그 사이의 구멍을 계속해서 만들어 오며, 그로부터 타자를 발생시키고 또 소외하기를 반복해 왔다. 장서영은 이렇게 중층으로 소외되어 온 타자를 발견하고 조명한다.
 
흑백의 영상매체와 거울, 가림막 구조물로 이루어진 전시는 마치 수술실처럼 연출되어 “증상만 있는 정상인”에 대한 제도적 구멍, 소외를 드러내는 이야기에 더욱 몰입시킨다.


장서영, 〈Until Your Name Is Called〉, 2017, 싱글채널 영상, 26분 30초 © 장서영

먼저, 영상 설치 작업 〈Until Your Name Is Called〉(2017)는 안무를 연습하는 발레리나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러나 작품 속에는 으레 발레리나에게 기대되는 고전적이고 아름다운 춤과 우아한 움직임 대신 낯설거나 불안한 상황들이 연출된다.
 
예상치 못한 전개와 불안한 정서를 드러내는 버퍼링, 반복 기능, 그리고 스크린의 조각적 활용은 기술적 완성도와는 다른 미세한 차이를 만들어 감성적 몰입감을 이끌어낸다.


장서영, 〈이름없는 병〉, 2016, 2채널 영상, 루프 © 장서영

한편, 〈Keep Calm and Wait〉(2017)에서는 “당신의 이름이 호명되기 전까지는 조용히 기다리라… 명단에 이름이 올라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라”라는 명령이 반복되며, 관객의 자리를 타자의 위치로 몰아낸다. 이를 통해 작가는 수긍도, 거부도, 외면도 못하는, 그리고 개별화, 대상화, 주체화도 힘든 몸의 특이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2채널 영상 설치 작업 〈이름없는 병〉(2016)은 심화된 불안과 기이함을 공감각적으로 드러낸다. 영상 속에는 까치발의 여인이 검은 원뿔 모양 천에 매달려 의미 없이 원을 그리며 반복적으로 돌고 있다. 미완료의 무의미한 동작을 반복하며 가장 목적이 없는 비생산적 노동을 감행하는 여인의 모습은 일반성을 상실한 특이한 정서를 드러낸다.


장서영, 〈크림〉, 2018, 싱글채널 영상, 6분. © 원앤제이 갤러리

이렇듯 불완전하게 존재하는 주체에 대한 고민을 지속해 온 장서영은 다양한 소재를 통해 인간이 가진 유한한 조건들을 상기시키는 작업 또한 전개해 왔다.
 
육체의 유한함과 그로 인해 변하는 시간성은 그의 작품에서 상자로, 때로는 안팎이 뒤집힌 양말로 혹은 공간으로, 구속복을 입은 퍼포머의 움직임이나 텍스트로 반복과 순환의 상황을 보여주었다.
 
2018년 영상 작업인 〈크림〉은 죽음을 중의적인 구조로 마주한다. 사체를 보관하는 가방의 지퍼 밖으로는 인물의 코와 입이 드러나 있다. 어떤 두 손이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알 수 없는 가죽을 마사지 한다.
 
가방 속 인물은 크림 광고에 사용되는 “안티에이징”과 “에이징”을 연상케 하는 단어들을 규칙적으로 읊는다. 크림은 피부의 노화를 늦추기 위해 바르는 크림과 가죽 제품을 관리하는 크림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죽(피부)에 크림이 발림으로써 두 크림 사이의 죽음에 대한 감각의 전환을 불러일으킨다.


장서영, 〈슬립스트림〉, 2019, 2채널 영상, 15분 10초. © 두산갤러리

한편, 2019년에 발표한 영상 작업 〈슬립스트림〉은 마치 차체가 인간의 몸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자동차 안에서 앞과 뒤의 유리로 바라보는 풍경과 더불어 네비게이션의 평범하지 않은 안내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관통하면서 유한한 시간을 사는 인간의 삶을 바라보게 한다.
 
인간의 시간은 시작과 끝이 있고, 평소에는 그 유한함을 잊고 있다가 신체에 닥치는 크고 작은 사건들로 인해 그것을 비로소 인지하게 된다. 장서영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 사실을 관객에게 끊임없이 주지시킨다.


《눈부신 미래》 전시 전경(아마도예술공간, 2021) © 아마도예술공간

그리고 2021년 아마도예술공간에서 열린 개인전 《눈부신 미래》에서 장서영은 이상적 미래 사회를 상징하는 동시에 이를 보전하는 ‘구체’에 대한 리서치로부터 출발한 작업들을 선보였다.
 
전시 《눈부신 미래》에서 작가는 비저너리 건축과 안구, 아이들의 미래상상도 등에서 발견되는 원형 이미지, 반구, 구체 이미지에 대해 탐구하고, 이를 풍선-비누방울-짐볼-수정구-폐(호흡)와 같은 해석적 형태로 전시장에 놓았다.


장서영, 〈백내장〉, 2021, 싱글채널 영상, 6분 17초. 《눈부신 미래》 전시 전경(아마도예술공간, 2021) © 아마도예술공간

영상 〈메리-고-라운드〉(2021)에서는 반복해서 원점으로 돌아오는 행위가 이어지고, 〈AIR〉(2021)에서는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신체의 움직임과 미묘한 엇갈림을 자아내는 목소리가 매 순간 죽음으로 수렴하는 신체의 노화 작용과 그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미래사회의 노화를 직/간접적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수정체의 단백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질되고 퇴화되듯 점차 선명도를 잃어가는 화면(〈렌즈탑〉(2019), 〈백내장〉(2021))과 텍스트(〈구, 돔, 파이프〉(2021))가 이를 뒷받침한다.
 
작가는 이러한 영상– 텍스트의 연쇄를 통해 과거에 우리가 상상해 왔던 미래상과 피부로 체감하는 현재의 감각 사이의 간극을 표현한다.


《F.O.R.D. 매일 고치고 수리하세요》 전시 전경(우민아트센터, 2025) © 장서영

이처럼 장서영은 신체를 물질적이면서도 시간적인 형식으로 바라보며, 열화의 과정을 거쳐 변형되는 육체가 인지하는 시공간의 재편성을 탐구해 왔다.
 
2025년 우민아트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F.O.R.D. 매일 고치고 수리하세요》에서 작가는 초-가속하는 시간 안에서 끊임없이 갱신되고 마모되는 신체가 기술적 환경과 충돌하고 동기화하는 과정을 드러낸다.
 
‘단일 경로에서도 길을 잃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전시는 건강검진센터, 대형 병원, 키오스크, 무빙워크, 고속도로 하이패스 등 명확하게 설계된 동선과 절차 속에서도 때로는 미궁을 경험하는 인간의 감각에 주목한다.
 
장서영은 매일 수리와 교체, 보완을 거듭해야 하는 신체의 조건을 통해 점점 기술적 인터페이스가 간편해지는 사회 속에서도 물질적 실존으로서의 ‘나’를 감각하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기술의 작동원리와 신체 사이의 마찰, 그리고 그 사이에 작동하는 인터페이스를 조형 언어로 풀어내며 신체와 기술, 시간과의 관계를 재고하게 한다.


《오인환 vs. 장서영: 휴먼 에러》 전시 전경(북서울미술관, 2026) © 서울시립미술관

그리고 2026년 북서울미술관 타이틀 매치 《오인환 vs. 장서영: 휴먼 에러》에서 장서영은 ‘실리콘 바니타스(Silicon Vanitas)’를 주제로 신체 내부에서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오류를 겪어 나가는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조명한다.
 
‘실리콘 바니타스‘는 반도체 핵심 재료인 실리콘(규소)과 삶의 덧없음을 성찰하는 예술 형식인 바니타스를 결합한 개념으로, 작가는 완전무결함을 추구하는 기술 문명과 노화하고 병들고 죽는 인간 신체를 대비시키며 인간 존재의 조건을 다시 묻는다.
 
장서영은 기억의 휘발이나 체력의 소진과 같이 일상생활 속에서 겪는 사소한 일부터 악성 신생물이나 유전 질환과 같은 심각한 질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신체의 사건들을 작업의 모티프로 삼았다.
 
〈A의 실타래〉(2025)는 기록 매체의 발전과 단종에 따라 데이터가 끊임없이 이동하는 과정을 세포의 생성과 소멸, 망각과 연결하며 기술과 신체가 공유하는 시간성을 탐구하며, 신작 〈폴룩스의 거울〉(2026)은 인간을 양분으로 성장하는 쌍둥이 같은 존재인 AI와 악성 신생물, 그리고 비인간 존재에게는 전달되지 않는 인간의 고통에 대해 사유한다.


장서영, 〈Exhausted〉, 2026, 철에 크롬 도금, 118×106×400cm © 서울시립미술관

한편 장서영의 조각 설치 작업은 전시와 영상 작업의 개념을 물질적으로 구현하며 전시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점유한다. 시간 기반의 무빙 이미지인 영상에 공간 기반의 정지 이미지인 조각을 결합함으로써, 관객은 작품을 시각적일 뿐만 아니라 촉각적이고 신체적인 방식으로 경험하게 된다.
 
〈Exhausted〉(2026)는 영어 단어의 중의적 의미를 활용해 지쳐있는 내연기관의 배기장치를 구현한 작업으로, 전시 전반을 관통하는 소진과 순환의 개념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파이프 ver.2〉(2026)는 인간 신체의 생리적 순환 과정을 과도하게 연장된 파이프로 형상화하며, 시스템 속에 수동화된 인간의 모습을 은유한다.


장서영, 〈이 기억〉, 2026, 싱글채널 영상,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41분 36초 © 서울시립미술관

자율주행, 플랫폼의 알고리즘, AI 기술 등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개발되었지만, 자동화가 심화될수록 인간과 세계 사이의 물리적 접촉은 점차 약화된다. 인간의 판단(grip)이 제거된 매끄러운 세계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올 노 그립(All No Grip)〉(2025), 그에 대한 조각적 해석인 〈평활근〉(2025)은 자신이 일궈낸 기술 시스템의 가도로부터 이탈하여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장서영은 인간 신체가 사라진 미래에 대해 상상한다. 〈안녕, 클라우드에서 만나요〉(2026)는 신체가 물질 세계에서 클라우드 서버라는 가상 세계로 이행하며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이 기억〉(2026)은 인간이 사라진 이후 촛불을 꺼줄 존재를 찾아 헤매는 케이크를 통해 인간이 부재하는 세계를 우화적으로 그려낸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모티프와 개념을 통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관객은 서킷이나 컨베이어 벨트를 연상시키는 미로 같은 전시공간을 이동하며, 흩어져 있는 단서들을 연결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장서영이 구축한 세계의 지도를 더듬어 따라가게 된다.


장서영, 〈폴룩스의 거울〉, 2026, 2채널 영상, 컬러, 2.1채널 사운드, 16분 41초 © 서울시립미술관

이렇듯 장서영은 가속화되는 기술자본주의 시대 안에서 신체와 시간의 관계에 대해 주목해 왔다. 특히 작가는 사회가 요구하는 완전성과 그로부터 탈락할 수밖에 없는 연약하고 취약한 신체를 가진 인간 존재를 조명하며, 더더욱 ‘완전’한 삶을 향해 나아가려는 인류 사회의 빈틈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조건에 대해 다시금 사유하게 한다.

"우리가 몸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존재하고, 이 형식이 물질적이면서도 시간적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일정 시간 동안만 유효하다가 만료된다는 것, 시간 안에서 열화된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변질된 육체가 인지하는 시공간이 낯설게 재편성되어 신체에 다시 피드백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시간과 신체가 서로에 대해 갖는 관계의 지형을 그리는 일이 현재 나의 작업의 중심이 된다." (장서영, 작가 노트)


장서영 작가 © 서울시립미술관

장서영은 이화여자대학교 조소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 베를린예술대학의 Art in Context를 석사 졸업하였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올 노 그립》(스페이스 애프터, 서울, 2025), 《F.O.R.D. 매일 고치고 수리하세요》(우민아트센터, 청주, 2025), 《스키드》(신도문화공간, 서울, 2022), 《눈부신 미래》(아마도예술공간, 서울, 2021)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2026 타이틀매치 《오인환 vs. 장서영: 휴먼 에러》(북서울미술관, 서울, 2026), 《빅브라더 블록체인》(백남준아트센터, 용인, 2024), 《윈도우 리컨스트럭션》(아마도예술공간, 서울, 2023), 《우연을 기대》(d/p, 서울, 2022), 《SF 2021 : 판타지 오디세이》(북서울미술관, 서울, 2021), 《젊은 모색 2019: 액체 유리 바다》(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9)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장서영은 2024년 제23회 우민미술상을 수상했으며,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두산연강재단 등 다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