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주(b. 1985)는 도시 공간과 공공장소에 대한 개입에서 쉽게 감지되지 않는 환경과 감각의 조건을 탐구하는 작업을 확장해 왔다. 작가는 사진, 영상, 사운드, 아카이브 등 다양한 매체를 경유하는 시청각 설치를 통해 특정 장소에 축적된 역사와 인간의 감각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색한다.


전혜주, 〈PRIVAT〉, 2009, 공공장소 개입행위, 투명 시트지에 하얀색 프린트(500x500mm) © 전혜주

초기 작업에서 전혜주는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공적인 장소의 틈새를 파고드는 다양한 실험들을 전개했다.
 
이를테면, 〈PRIVAT〉(2009)는 벤치, 계단, 주차장 등의 공공장소에 누구든지 ‘Privat(사유)’라는 단어가 적힌 표시물을 가져다 놓도록 함으로써 구분과 경계가 모호한 도시에서 사적 영역에 대한 표현의 주도권을 일시적으로 가져오게 한다. 


전혜주, 〈Kopierfehler (copying errors)〉, 2009, 공공장소 개입행위 © 전혜주

한편, 〈Kopierfehler (copying errors)〉(2009)에서 작가는 투명한 비닐에 육안으로는 읽을 수 없는 작은 문구들을 인쇄하여 공공장소에 놓여있는 복사기 유리면에 몰래 붙였다.
 
자료나 서류 또는 보고서들을 복사하기 위해 방문한 행인들은 숨어 있는 메시지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자그마한 얼룩처럼 생긴 메시지가 붙어 있는 복사기로 복사한 종이를 챙겨 가게 되었다.
 
그 자그마한 문구는 오래된 복사기에 묻은 얼룩처럼 보이도록 디자인 되었고, 사람들은 돋보기의 도움을 통해서만 문구의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전혜주, 〈환각지〉, 2014, 3D 스캔, 3D 프린트(PLA), 폴리에스터 캐스팅, 레진 © 전혜주

이후의 작업에서 전혜주의 개입 행위는 카메라와 프로젝터, 3D 스캐닝 등의 기술을 활용하며 더욱 공감각적인 방식으로 확장해 나갔다.
 
예를 들어, 2014년 작업 〈환각지〉는 베를린 도시 건물에 남아 있는 총탄의 흔적을 캐스팅해 관객의 그림자 위로 총탄의 형상이 드러나도록 함으로써, 사라진 신체의 부위로부터 감각을 느끼는 환각증상처럼 역사적 상흔을 환기한다.
 
관객의 몸 위로 드리워지는 상흔의 빛은 의식 너머에 잠재된 아픔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다시 말해, 작업은 관객의 의식에 개입하며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하며 무감각해진 도심 속 총탄의 흔적을 환기하고, 잊혀가는 전쟁의 아픔을 상기시킨다.


《무심(無心), 한 물줄기의 이름》 전시 전경(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2017) © 전혜주

이처럼 공간의 역사성, 흔적, 경험에 대한 전혜주의 관심은 도시공간을 배경으로 일어난 개인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가시화하는 작업으로 확장해 나갔다.
 
2017년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열린 개인전 《무심(無心), 한 물줄기의 이름》은 청주라는 지역을 리서치하는 과정에서 접한 오래된 주택가의 폐허에서 출발한다.
 
작가 노트에 따르면, 그는 재개발 지역의 부서진 잔해들을 바라보며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고 한다. 그러던 중 철거 현장을 답사하다가 우연히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한 중년 남성을 마주쳤고, 그의 고향인 청주의 역사와 개인의 인생사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전시 《무심(無心), 한 물줄기의 이름》 리서치 과정에서 촬영한 사진 © 전혜주

청주는 철기문화가 발달한 백제시대의 요충지로 철 생산지 중 하나였으나, 이러한 과거와는 달리 현재 이곳에 남겨진 철들은 단지 철근이라는 형태로 건축물을 채우고 지탱하다가 또 다시 재개발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처참하게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에 묶여 구부러지고 엉켜져 있는 모습으로 존재한다.
 
작업 과정에서 전혜주는 철이 가진 고유의 속성과 쓰임새, 그리고 그 역할이 과거와 현재 도시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대변해 왔고, 또 그것으로부터 우리의 삶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지 찾아보고자 했다.


전혜주, 〈무심(無心), 한 물줄기의 이름〉, 2017, 시멘트, 철근, 진동스피커, 앰프, 가변설치 © 전혜주

공사 현장에서 수집되어 전시장으로 옮겨온 철근들은 각자 제각기 구부러진 모양으로 관객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관객은 진열된 철근을 직접 손에 쥐고 귀에 가까이 댈 때 철근이 진동하며 만들어내는 사운드를 들을 수 있었다.
 
철근을 통해 들려오는 소리는 우연히 철거된 주택가에서 만난 중년 남성의 이야기를 토대로 구성된 청주의 역사와 장소에 얽힌 개인사이다. 더불어 철이라는 물질을 모티브로 변화하는 문명과 그 속에 묻혀 온 노동에 대해 고민한 사유의 흔적들이 텍스트화 되어 소리로 읊어졌다.


전혜주, 〈회전 Whirl〉, 2019, 복합매체 (대형소파, 진동변환장치, 부화장치, 모터, 달걀, 마이크, 오디오 믹서, 에터나 서사시 번역 및 각색, 수집된 이미지, 액자) © 전혜주

부서지고 다시 지어지기를 반복하는 도시 환경의 흐름과 그 이면에 대한 작가의 탐구는 2019년 개인전 《회전 Whirl》에서도 이어진다. 전시는 끊임없이 창조되고 멸망하기를 반복하는 도시의 순환을 다양한 방식으로 암시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탄생과 멸망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이미지가 전시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형상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했다.
 
전시장 2층에 설치된 부화기 속 달걀들의 태동 소리는 스피커 선을 통해 1층 피라미드 형태의 대형 소파의 특수 장치에 전해지며 진동의 형태로 변환되었다. 이때 소파에 앉은 관객은 마치 지진이 난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전혜주, 〈회전 Whirl〉, 2019, 복합매체 (대형소파, 진동변환장치, 부화장치, 모터, 달걀, 마이크, 오디오 믹서, 에터나 서사시 번역 및 각색, 수집된 이미지, 액자) © 전혜주

탄생을 상징하는 달걀의 태동과 멸망을 상징하는 피라미드의 감각적 조우는 고도의 기술과 문명이 발전한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종말에 대한 불안과 디스토피아적 전망이 고조되고 있는 동시대의 양가적 상태를 드러낸다.
 
작가는 이 두 가지 결말 사이에서 현재도 끊임없이 높은 탑을 쌓으려는 인간의 확장형이자 대형 프로젝트라 할 수 있는 도시의 열린 가능성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고자 했다.


전혜주, 〈노란경계〉, 2021, 진동장치, 미세가루, 수집된 식물과 꽃가루, 디지털인쇄, 영상(10분18초) © 전혜주

이후 전혜주는 꽃가루를 통해 특정 장소의 과거와 기록, 역사를 추적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이를 매개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미시적 차원에서 존재하고 서로 연결되는 현대 세계의 생태적·사회적 연속성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탐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코로나19가 외부와의 단절과 일상의 불안을 야기한 상황과 문명의 발전과 함께 심화된 미세먼지로 인한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과 맞물리며 더욱 구체화되었다.
 
이를테면, 2021년 작업 〈노란경계〉는 생물기원의 미세먼지인 꽃가루와 ‘Yellow Cake’라 불리는 원자력 원료인 우라늄 정제가루가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시작되었다.


전혜주, 〈노란경계〉, 2021, 진동장치, 미세가루, 수집된 식물과 꽃가루, 디지털인쇄, 영상(10분18초) © 전혜주

전혜주는 노란색 가루의 형태로 우리 몸의 경계를 넘나드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물질을 리서치하며, 이들이 분열 또는 확장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를 설치와 영상, 아카이브로 재구성하였다.
 
설치장치는 꽃으로부터 필요한 영양분을 얻기 위해 특정 주파수의 속도로 날개 짓을 하는 벌의 움직임을 모방하는 장치로서, 이 모방된 움직임은 자연에서의 법칙과 같이 꽃가루를 방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로 인해 바닥으로 떨어진 미세한 노란 가루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쌓이며 선명한 흔적으로 남게 된다.
 
이는 봄이 되면 지구 위의 대기와 물을 노랗게 물들이며 경계를 넘는 꽃가루와 다양한 경로로 우리에게 흡수되는 위험물질처럼 또렷하지 않지만 외면하거나 소외시킬 수 없는 외부 세계를 암시하며, 우리의 호흡 속에 살아 숨 쉬고 이동하는 통제 불가능한 미시적 세계를 이야기한다.


전혜주, 〈Hummer〉, 2022, 2채널 사운드, 표본테이블, 수집된 식물과 꽃가루 표본, 레퍼런스 이미지, 초지향성 스피커, 가변설치 © 전혜주

더 나아가, 2022년 작업인 〈Hummer〉에서 작가는 일상에서 상용화되고 있는 군사 무기 기술들을 대기 중에 부유하는 꽃가루의 생태적 법칙과 비교하여 나열하였다. 작가가 주목하는 이 기술들은 공기 중의 꽃가루처럼 비가시적인 영역에서 작동하여 우리의 신체로 서서히 침투하기에 그 영향력에 대하여 쉽게 망각하게 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전시장 양 끝에 설치된 초지향성 스피커 또한 실제 군중 무력화에 사용되는 기술 중 하나로, 벌의 움직임, 드론, 무인기 등 존재하지만 쉽게 감각하기 어려운 파동들을 인용하여 사운드로 재구성한다.


《엔도스코페이아》 전시 전경(송은, 2026) © 송은문화재단

외부 환경이 인간의 신체와 사회 구조를 조직하는 방식을 드러낸 이 작업은 이후 작가가 미세 물질과 감각을 매개로 세계를 이루는 연결 관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송은에서 열린 개인전 《엔도스코페이아》(2026)는 그리스어 어원인 endo(내부)와 skopein(관찰하다)에서 출발한 개념으로 외부 세계가 신체 내부로 유입되는 과정과 방식에 주목하며, 전시 공간 전체를 하나의 관(管) 구조로 설정한다.
 
관객은 지층에서 생장, 대기로 이어지는 흐름 속을 이동하며 공기 중에 부유하는 미세한 존재들이 역사와 생태, 기술과 권력, 신체와 사회를 가로지르는 양상을 경험하게 된다.
 
지층에 축적된 흔적은 생장과 통제의 구조를 지나 대기와 순환의 감각으로 확장되며, 인간과 환경을 구분해 온 경계가 실은 끊임없이 교환되고 변화하는 과정 속에 놓여 있음을 드러낸다.
 
그동안 전혜주는 주변의 대상을 관찰하고 수집해 분류·나열하는 방식을 통해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탐구해왔다면 본 전시에서는 하나의 환경 자체를 구축해 그 안에서 인간의 신체가 공기와 습기, 그리고 소리의 진동에 반응하는 감각의 장이 되도록 유도한다. 


전혜주, 〈레퓨지아〉, 2026, 꽃가루, 실크스크린, 가변 크기 © 송은문화재단

먼저, 신작 〈레퓨지아〉(2026)는 전작 〈새로운 꽃의 탄생〉(2023)에서 출발한 작업으로, 식물 종의 이동과 번식에 대한 관심을 보다 미시적인 차원으로 확장한다. 작가는 건물의 유리 표면을 안과 밖이 교차하는 피부의 막으로 바라보며, 그 사이를 통과하거나 일시적으로 머무는 균사망, 꽃가루, 먼지 입자 등의 움직임을 시각화한다.
 
오랜 시간 수집해 온 식물과 미생물, 공기 중 입자에 관한 시각 자료를 바탕으로, 생명과 물질이 서로 얽히고 퍼져 나가는 과정을 하나의 유기적 구조로 재구성한다. 유리 위에 펼쳐진 형상들은 특정 개체를 지시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이동과 연결의 흐름을 암시하며, 안과 밖, 자연과 인공, 개체와 환경을 구분하는 경계가 고정된 선이 아니라 끊임없이 침투와 교환이 이루어지는 상태임을 드러낸다.


전혜주, 〈대기, 장소〉, 2026, 다채널 사운드, 초지향성 스피커, 가변 크기 © 송은문화재단

또 다른 신작인 〈대기, 장소〉(2026)는 공기와 먼지, 곰팡이, 습기처럼 일상에 스며 있으나 쉽게 의식되지 않는 비가시적 물질의 흐름에서 출발해, 외부 환경이 신체 내부로 스며드는 과정을 소화기관과 호흡기 같은 신체 구조, 공조 시스템과 곰팡이 증식이 반복되는 건축적 순환 구조와 병치해 드러낸다.
 
전시장 내 설치된 초지향성 스피커와 점멸하는 조명은 공간 내부에 보이지 않는 기류와 진동을 형성하고, 관객은 그 흐름을 통과하며 대기의 움직임을 신체적으로 감각하게 된다.


《엔도스코페이아》 전시 전경(송은, 2026) © 송은문화재단

이렇듯 전헤주는 안과 밖의 경계가 고정된 구분이 아닌 지속적인 교환과 반응 속에서 형성되는 상태임을 보여주며, 나아가 인간과 자연, 내부와 외부를 나누는 경계보다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순환과 상호작용, 그리고 생동하는 상태 자체에 주목해 왔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거시적인 시스템과 질서 아래 가려진 이면을 감각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며, 세계를 이루는 비가시적이고 미시적인 연결관계를 우리의 신체를 통해 감지할 수 있게 한다.

"결국 ‘나’라는 상태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외부와 섞이며 계속 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조금 더 관대해지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전혜주, 노블레스 인터뷰 중)


전혜주 작가 © 송은문화재단

전혜주는 독일 오펜바흐 조형예술대학에서 뉴미디어와 무대미술을 전공하고,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Art and Media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마이스터슐러 과정을 수료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엔도스코페이아》(송은, 서울, 2026), 《결박의 패턴들》(쉬, 인천, 2025), 《망상 – 사라진 생명과 마주하는 법》(수림큐브, 서울, 2025), 《All-Over》(문화비축기지, 서울, 2022)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사랑의 기원》(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6), 《LAYERED MEDIUM: WE ARE IN OPEN CIRCUITS》(Manarat Al Saadiyat, 아부다비, 아랍에미리트, 2025),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광주비엔날레 전시관, 광주, 2024), 《끝없이 갈라지는 세계의 끝에서》(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4), 《제22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서울, 2022),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아르코미술관, 서울, 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전혜주는 2023년 제22회 송은미술대상의 대상을 수상했으며, 그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송은문화재단,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등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