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는 영화의 문법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방식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사운드, 자막, 시점숏, 배우의 연기, 로케이션
이미지처럼 영화가 감정과 의미를 만들어내는 각각의 요소를 원래의 서사에서 분리한 뒤 새로운 관계 속에 배치한다.
〈Open Your Eyes〉(2017)는 공포영화의
사운드, 시나리오, 미술,
특수분장과 시점의 구조를 드러내면서 관객이 누구의 눈을 통해 이미지를 보고 있는지 되묻는다.
〈아들아, 저건 그냥 자욱한 안개란다〉(2017)는 신문과 홍보물에서 수집한
독재자의 이미지와 슬로건에 일상적이고 무관한 사물을 병치해 원래 이미지가 가졌던 정치적 목적을 흐린다. 초기부터
그에게 편집과 재배열은 새로운 서사를 만드는 수단인 동시에 기존 이미지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방법이었다.
2019년
전후로는 역재생과 반복, 다채널 영상이 중요한 형식으로 들어온다. ‘대난굴시대’ 연작에서 뉴스, 영화, 배우의
인터뷰, 역사적 장소를 서로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재구성하고, 이미지와
소리, 자막을 뒤집거나 어긋나게 배치한다. 〈무제-완벽한 순간들〉(2018)은 네 개의 아날로그 시계 이미지를 디지털화해
시간을 가속하거나 감속시키며, 관객이 시간이 앞으로 가는지 뒤로 가는지 쉽게 구별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든다. 이처럼 이정우는 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는 영상의 시간과 실제 세계에서 되돌릴 수
없는 역사적 시간의 차이를 작품의 구조 안에 직접 삽입해왔다.
이후 드론과 포토그래메트리, 모션캡처, 3D 스캔, 게임엔진처럼
현실 공간을 측정하고 재현하는 기술이 본격적으로 사용된다. 〈아수라발발타〉(2021)는 드론 사진계측 데이터를 통해 공간을 3D로 스캔하고 렌더링하며, 《승선하지 않았다》에서는 스트림 리핑, 파운드푸티지, FPV 드론 촬영, 레퍼런스 이미지와 3D 공간 스캔을 동시에 활용한다.
세 개의 스크린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배치해 한 번에 모든 화면을 볼 수 없도록 한 설치 방식 역시 중요하다. 관객은 한 화면을 보는 동안
다른 화면에서 벌어지는 일을 소리로만 짐작해야 한다. 완전한 시야를 제공하는 대신 일부를 의도적으로
누락시키면서, 작품을 보는 경험 자체를 정보가 선택되고 제한되는 시스템처럼 구성한다.
최근에는 AI를 비롯한 기술의 결과를 일부러 보정하지 않는 방식이 더욱 분명해진다. 〈To Be Determined〉(2024)는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을
기록한 포토그래메트리 데이터를 사용하지만 파편화된 3D 메시를 완전한 형태로 복원하지 않고, 〈Plant Apples and Get Avocados〉(2024)는 같은 위치와 동작을 반복해도 다른 결과를 내놓는 AR 좌표
추적의 불안정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Because:
Surrounded by Three Dimensions〉(2024)는 게임엔진의 파라미터를
의도적으로 초과해 파도와 중력의 작동을 비틀고, 〈씌여진 영화, 씌여질
역사〉에서는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인물의 인종, 의상, 행동의 오류와 편향을 삭제하지 않는다. 결과를 매끈하게 완성하는
대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긋남을 남기는 것은, 작동과 오작동을 가르는 기준 자체를 작품의 내용으로
가져오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