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에 살기 위하여
주시영(아트센터예술의시간 디렉터)
디지털과 디지털 세계에 관해 ‘강해’를 한다는 것은 가능한 것인가. ‘강해’는 보통 어떤 주제에 관한 텍스트, 해석, 해설 등을 논하면서 풀어내는 강의 방식이다. 디지털의 어원은 라틴어 digitus(디기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손가락’을 의미하고, ‘이야기하다’라는 단어와도 연관 있는 digit은 숫자의 세계, 가상의 세계, 디지털 세계의 근간이 되었다.
디지털 강해를 시도하는 장입규의 실험은 디지털 세계에서 활용하는 디자인 도구들과 그 결과물을 실제 세계 안에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복기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디지털 세계에 관해 심도있게 설명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실제 세계를 디지털로 변환하고자 하는 인간의 궁극적 의도, 즉 물질세계를 손아귀에 장악하고자 하는 시도는 보이고 경험되는 모든 것을 digit 0과 1의 궤도 안으로 모조리 변환하고 흡수한다.
비트의 세계와 원자의 세계는 분리되어 존재하지만, 두 세계는 모방과 흡수를 반복하며 연결을 강화하고 있다. 실제 세계의 고유성을 흉내 내는 디지털 세계의 감각적 스펙터클은 점차 다양한 자극으로 변모한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실제 세계를 모방하는 것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 대상이 간직하고 있는 본래의 아름다움에 관한 심미적 경험은 과연 어떤 가치 기준으로 평가될 수 있을까.
장입규는 아날로그 세계가 디지털 세계로 전환되는 과정을 역으로 추적하는 방식을 통해 디지털 세계에 관한 강해를 풀어간다. 전시는 인간이 놓인 이 두 세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감각과 지각, 그리고 세계관의 변화에 관한 비유적 설명(anological teaching)이 될 것이다.
손안에 있는 사물을 다루면서 사물과 관계를 만들어간 것은 태초부터 인간이 살아온 고유한 방식이었다. 생존을 위해 손을 사용했던 인간의 역사는 움켜쥔 사물을 도구화하여 손을 활용한 노동을 통해 삶을 영위해 나갔다. 손을 통해 사물과 관계를 맺으며 경험해 온 감각의 변화는 결국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움켜쥐고, 쓰다듬고, 터치하는 손놀림과 손가락 사이에 스며들었다. 손안에 쥐어질 수 있는 세계는 나만의 세계, 내가 조작할 수 있는 세계가 된다.
스마트 글래스(smart glasses)가 가져올 감각의 재편은 터치스크린의 조작을 넘어선다. 동공으로 클릭하기, 목소리로 명령하기, 손바닥으로 쓸어내기, 손가락 꼬집기 등의 움직임은 손바닥 안에 담긴 작은 사물을 조작하는 것 너머의 감각과 지각의 변화로 이어진다. 우리는 허공에서 허우적거리거나 허공을 응시한 채 머무를 곳 없는 그곳에서의 몸부림을 익히는 것으로 어지러운 유영에 적응해 갈 것이다.
장입규는 디지털 세계에서의 디자인 도구(tool)를 활용한 제작 방식을 실제 세계로 가져와 그 과정과 결과물을 실물로 제작한다. 그는 디지털 펜을 이용하는 대신, 손과 연필을 이용하여 밑그림을 그린다. 실제 사용하는 사물들, 목재, 톱, 페인트 등의 재료와 도구를 활용하는 작업은 자르고, 다듬고, 문지르고, 칠하고, 붙이는 과정을 거친다.
작가의 작업이 디지털 세계에서의 제작 과정을 실제 세계에서 성실하게 복기하는 과정을 따라가면서도 회화적, 조각적 감각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인간이 잃어버렸거나 잃어버릴 수 있는 감각을 되돌리는 과정이 된다. 작가는 작업에 동원한 그의 모든 감각과 노동을 통한 제작 과정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으로 디지털 세계에서 벌어지는 감각의 모방에 역으로 접근한다.
〈study of layers〉는 디지털 편집 창에서의 레이어(layer) 발생 과정과 결과를 실물화한 작품이다. 이 작업을 통해 작가는 디지털 화면 안에서 무한대로 쌓이고 겹쳐질 수 있는 레이어(layer)의 반복된 모양새가 실제 세계에서 어떤 모양이 되는지 보여준다. 이것은 일정한 두께와 질감을 감각할 수 있는 프레임의 반복 제작을 통해 인간과 사물 사이에 층층이 쌓인 보이지 않는 감각의 연구로 발전한다.
디지털 세계 안에서는 이야기와 삶이 파편화된다. 비선형적인 시간 안에서는 내용의 연속성이 부재하기 때문에 인간은 한 곳(시점)에서 다른 한 곳(시점)을 향해 나아간다는 개념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인간의 산책하는 움직임과 걸음걸이를 이제는 재핑(zapping)이 대체했다고 말했다. 미래의 걸음걸이는 더 이상 과거의 순례 또는 행진의 시대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며 물속에서 유영하듯이 방향을 알 수 없는 흐름에 몸을 맡기고 부유하는 듯한 모습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인간이 세계를 조작하고 통제 가능한 대상으로 여기게 되면서 선형적 역사로서의 삶과 세계는 이제 인간의 손에 달린 원본-복제-변형의 반복, 그리고 새로운 버전의 반복으로 변화하였다. 이제 스스로를 편집자로 여기는 우리 모두는 의미를 잃어버린 세계로 향한다. 잘려진 시간 안에서 의미와 목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허공을 응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모두가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삶과 세계는 시간의 흐름과 연속성 안에서 서서히 발견되거나 천천히 다가오기도 하고, 한참 후에 그 의미와 목적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여운을 느끼는 것,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 변화를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은 결코 즉각적 편집이나 중단된 이야기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편집은 시선을 차단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디지털 세계에서 시선의 수동성은 실재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개인의 시야를 좁힌다. 빈지워칭(binge watching)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내재된 눈으로만 응시하는 수동적, 소비적 태도는 세계를 시각적 자극을 쫓는 관조적 태도로만 바라보게 만든다. 스크롤 하는 순간에만 존재하는 지금, 이것은 잘게 쪼개져서 어떻게 주워 담을지도 모를 상황에 처한 것처럼 파편화된 인간의 원자화를 강화시킨다.
SNS 속 세계에서 사진, 동영상, 사건, 정보를 편집하고 자르고 붙이는 과정은 서사적 연속성을 모두 제거해 버린다. 서사적 연속성이 없는 것은 얼마나 삶을 공허하게 만드는가. 맥락 없음은 우리를 커다란 그림, 커다란 흐름으로부터 단절시키고 있다. 나를 설명할 수 없고,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해도 불가한 시대에 사는 인간은 빠르게 감각할 수 있는 것, 즉각적인 것, 직관적인 것, 모든 과정을 단축시키는 편집된 결과물에만 감흥한다.
처음도 끝도 없고, 밤도 낮도 없고, 기-승-전-결의 플롯도 없는, 현재에서 현재로, 이슈에서 이슈로, 정보에서 정보로, 지금에서 또 다른 지금으로만 이동하다가 불시에 종결되고 만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의 삶과 내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의 연결성도 끊어버린다. 이야기 하나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거나 듣기 힘들어진 시대에 인간의 삶은 에피소드의 연속으로 해석될 뿐이다.
잘려진 시간과 편집된 이미지, 이것을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장입규의 작업은 〈edited space(floating images)〉와 〈tangled timeline〉에서 심화된다. 〈edited space(floating images)〉에서 작가는 편집된 공간, 잘려진 시간의 컨셉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이는 〈edited space(floating images)〉와 연결되는 작품으로 동일한 크기로 구성한 일종의 공간 편집 기술을 실제화하고 있다. 편집한(edited) 화면이 실제적 공간감을 가지고 전시장 안에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하고 연관 없는 시공간이 나열되거나 부유한다.
작가는 편집한 이미지를 전시장으로 가져오기 위해 스케치하고, 물건을 선택하고, 가져오고, 자르고, 닦고, 문지르고, 붙이고, 꾸미고, 위치시키는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노동을 동반한 작업 과정을 거친다. 손으로 구현한 편집된 이미지는 실제적 두께와 무게와 질감을 담아 덩그러니 잘려진 채 전시장을 채운다. 공간을 무대 세트처럼 보이도록 조작, 배치하는 것을 통해 디지털 화면 안의 이미지가 언제든 편집, 삭제 가능한 성질을 내포하고 있음을 반영하였으며, 쉽게 철거하여 사라질 수 있는 공간으로 느껴지도록 의도하였다.
전시 공간을 채우는 7개의 파편적 공간 사이를 걸으며 디지털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삭제와 복구, 즉각적 편집 과정이 실제 세계와 어떤 연관을 갖는지 생각하게 한다. 작품은 이전 전시들에서 보여주었던 ‘타임라인 바(timeline bar)’ 시리즈 작업을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선형, 선회한 기이한 형태로 변형시켜 선보인다. 이 작업은 총 48개의 아날로그 시계를 세 덩어리로 나눠 규칙 없이 얽혀서 붙여놓은 작업으로, 각 시계는 제각각 다른 시간을 가리킨다.
디지털의 시간 개념에 관해 아날로그 시계를 가져와 접근하는 작가의 질문은 시침, 분침, 초침의 어지러운 회전 사이에 숨겨져 있다. 시간을 읽는 도구로써 아날로그 시계가 드러내는 시간성이 그의 사물을 다루는 조각적, 입체적 방식 안에서 비유적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작가는 이를 통해 디지털 시간성에 관한 실험으로 나아가고 있다. 48개의 아날로그 시계가 내는 초침 소리의 아우성은 SNS에서 벌어지는 맥락 없는 시간과 공간의 널뛰기처럼 우리를 또 다른 상상의 세계로 끌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