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최근 김주리 작업의 근원적이고 절대적인 성질을, 다소 강박적이었던 재현 이후, 한 시대의 모형과 그 특수성이 물에 녹아서 사라진 이후로, 혹은 그것들의 퇴적과 침식으로 다시 사고해 본다. 도시 개발의 장면들을 꽤나 직접적으로 경유한 이전 물질(흙과 물)의 역할은 이제 특정 지역이나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전 지구적 도시 풍경의 공통된 생리와 맞닿는다.
과거 작업이 보여주었던 세부적인 리얼리티는 특수한 시간과 공간을 통과하며 근원적 시간성을 구현하는 최근 작업으로 또다시 응축, 확장된 것은 아닐까. 그 결과, 전시의 풍경은 하나의 역사적 장면처럼 혹은 오래된 기원처럼, 음울하지만 너무나도 보편적인 장면처럼 제시되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흙은 작업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또 다른 퇴적의 의미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거듭되고 있는 개발의 장면들을 저 멀리 떠올리게 하는 한편, 순간의 변화나 단순한 결정에서 비롯되지 않는 오랜 시간의 퇴적, 그 안의 무수한 관계와 실제 사건이 겹겹이 쌓여 형성된 ‘흙/덩어리’로 다가온다. 벽에 걸린 ‘clay tablet: Seoul-style’(2025), ‘desert’(2025) 시리즈 역시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물질과 기억의 긴밀한 관계를 드러낸다. 흙과 물이 함께 응고된 표면은 시간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자연적 소멸의 장면을 체화한 듯 보인다.
때로는 퇴적층을 절단해 드러낸 단면처럼, 표면에는 생성과 소멸이 교차하는 미세한 균열과 흔적이 자리하기도 한다. 관객은 이 앞에서 모종의 절대성과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그것은 한순간의 포착과 현실적 재현이 아니라, 사라짐과 지속, 변형과 보존이 긴 시간을 함축하여 맞물린 장면이다. 물질은 기억이 서로를 지탱하며 만든 단면으로 드러나며, 마주 보는 절대적 시점 안에서 비가역적인 흐름을 감각하게 한다.
위에서 설명한 물과 흙, 시간의 관계성을 장소·물질·도시·사회 일반의 차원을 넘어 동시대 미디어 환경과 인지 전반으로 확장해 본다면 어떨까. 물질적 기반 위에 형성된 기억과 시간의 감각이 어떻게 또 다른 형태의 축적과 소멸, 변형과 보존의 과정과 맞닿는지 질문해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김주리 작업의 ‘물과 흙’은 감각과 인식의 구조를 재편하는 매개로서, 동시대 인지 환경 속으로까지 그 작용 범위를 확장하게 된다.
작가는 《일기(一期)생멸(生滅)》(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2017), 《빈 페이지》(금호미술관, 2017)와 같은 전시에서, 흙과 물이 만나 만들어낸 ‘휘경’의 풍경을 보다 추상적인 사유로 확장한 바 있다. 이들 작업에는 여러 장소, 환경, 소리, 오브제, 미디어 등이 기억과 시간의 대체물로 호명되었다. 작가가 지속적으로 미디어의 확장적 인지를 모색했다는 전제하에, 김주리의 ‘퇴적’에 대한 관심은 디지털 이미지·네트워크·데이터가 형성하는 비물질적 축적과도 연결된다.
그리고 주요 모티프인 ‘흙과 물’은 단순한 조형 재료를 넘어 그러한 미디어 조건/환경의 은유가 된다. 유튜브와 셔터스톡, 그리고 수많은 이미지 축적 웹 플랫폼이 말 그대로 일상이자 자연으로 자리하는 오늘, 기억의 퇴적작용은 조금 다른 각도와 지평에서 사고될 수 있다. 작가의 과거 작업에서 목격되는 주택들, 담벼락, 비탈길의 모습은 오늘 유튜브 영상 클립과 인터뷰, 블로그 사진 등에 남는다.
사라진 도시의 모습을 ‘기억’하는 건, 그 시절을 ‘보게’ 하는 건, 어쩌면 물질의 흔적이 아니라 이러한 디지털 매체를 통해서일지도, 그렇게 퇴적은 땅 밑에서만 아니라 서버 안에서 작동하는지 모른다. 바꿔 말하면, 김주리 작업에서 감각되는 ‘흙’의 ‘퇴적’ 작용은 반드시 물질만이 아니라 가상의 재생 가능한 퇴적, 다시 보기 가능한 기억의 형상화된 입자 단위들, 시간, 장소, 맥락을 캡슐화하여 보존하고 배포하는 메가바이트의 네트워크와 클라우드를 환기하고 질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