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 KÖNIG Seoul

쾨닉 서울이 아시아 출신 여성 작가 12인의 작품 40여 점을 소개하는 그룹전 《흔적과 실》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쾨닉 서울에서 처음 선보이는 작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목탄과 아크릴, 캔버스와 종이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른다. 하지만 매체의 차이를 넘어, 드로잉이라는 공통된 언어를 통해 동시대 회화의 경향을 조망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구성 공간 안에서 ‘선’이 지닌 구조적 역할에 집중하며, 전시 제목 그대로 '흔적'과 '실'의 관계가 주요 개념으로 작동한다.

영국 사회인류학자 팀 잉골드(Tim Ingold)는 "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흔적(trace), 다른 하나는 실(thread)"이라며, 흔적은 표면 위에서 형성되고 실은 공기 중으로 뻗어나가며 결국 서로 전환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그는 또 "모든 선은 붓을 쥔 손의 섬세한 제스처에서 비롯된다"고 말하며, 드로잉을 실을 당기듯 이어가는 동작이자, 실로 새기듯 새기는 움직임으로 본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잉골드의 개념을 바탕으로, 아시아 여성 작가들이 실천하는 동시대 드로잉의 다양한 양상을 소개한다.

아야코 록카쿠는 손으로 직접 그린 강렬한 제스처 드로잉을 선보이고, 시오타 치하루는 종이 작업에 실제 실을 이용해 정교한 조형을 구성한다. 시야오 왕은 자신의 신체를 따라 흘러가는 목탄의 흔적을 통해 선의 운동성을 극대화한다. 이처럼 ‘선’은 각각의 작가들에게 구성 도구이자 행위의 흔적이며, 표현의 축으로 기능한다.

하지에 샤피는 페르시아어로 쓰인 텍스트를 종이 나선 속에 감추고, 모니카 킴 가르자는 빠르고 직설적인 붓질을 통해 대담한 여성 형상을 그린다. 신민은 젊은 노동자들의 초상을 왜곡된 콜라주 형식으로 풀어내며 현실의 고통을 시각화한다. 김지영은 유화 붓질의 레이어를 중첩하며 개인 서사와 집단 기억이 만나는 접점을 화면에 구현한다.

모바나 첸은 니트 재료를 사용해 연결의 가능성과 그 섬세함을 탐구하고, 리나 배너지는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적 회화를 선보인다. 그는 선과 콜라주 요소를 조합적이면서도 분석적으로 구성하여 전시의 주제를 응축시킨다. 오돈치멕 다바도르지는 종이 앞뒤를 뚫는 방식으로 점과 선, 면을 연결해 젊은 세대의 현실과 환경 문제를 표현한다. 김명주는 고슈(gouache)를 사용해 왜곡된 얼굴의 형상을 구현하며 낭만주의의 잔혹함을 회화로 전개한다. 우지아루는 자동 드로잉 기법을 통해 의식의 개입을 배제하고 신체의 반응에 따라 화면을 완성한다.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드로잉이라는 전통적 장르의 현재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쾨닉 서울의 전시 공간은 이러한 섬세한 작업들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작가들이 마주했던 감각과 시간을 관람자가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참여 작가: 리나 배너지(Rina Banerjee), 모바나 첸(Movana Chen), 오돈치멕 다바도르지(Odonchimeg Davaadorj), 우지아루(Wu Jiaru), 김지영(Keem Jiyoung), 모니카 킴 가르자(Monica Kim Garza), 김명주(Myung-Joo Kim), 아야코 록카쿠(Ayako Rokkaku), 하지에 샤피(Hadieh Shafie), 신민(Min Shin), 시오타 치하루(Chiharu Shiota), 시야오 왕(Xiyao Wang)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