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라오미, b. 1982)는 특정 장소의 역사적 사건과 현재의 풍경을 교차시키며, 이를 둘러싼 개인의 구술 기록, 문헌, 설화 사이에서 장소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비교 연구한다.
 
이때 수집한 이미지가 장소, 이데올로기, 시대에 따라 어떻게 번안되고 사라지는지 발견하고 추적하며, 그 과정에서 수집한 기록과 기억의 파편들을 디오라마 형식의 회화적 장면으로 시각화한다.


나오미, 〈라이거와 타이곤의 초상〉, 2017, 순지에 분채, 180x360cm © 나오미

초기의 작업에서 나오미는 극장의 무대 배경이 되는 그림에 대한 작업을 했다. 이러한 작업은 과거 영화미술, 무대미술 분야에서 활동하며 시나리오 속 장소를 실제에 가깝게 연출하고자 인물과 공간을 분석하고, 이와 연관된 이미지를 수집했던 경험에서 비롯된다.
 
이는 곧 그의 작업에서 근대 사진, 잡지, 조선화 및 극장의 배경그림 등을 수집, 활용하는 프로세스로 이어지게 되었다.


《동시상영》 전시 전경(바다극장, 2018) © 나오미

예를 들어, 2018년 개인전 《동시상영》은 1930년대 무대미술가였던 원우전(1985-1970)의 무대 스케치에서 출발한다. 나오미는 그 중에서 금강산 스케치를 바탕으로 ‘걸개그림으로서의 산수’와 ‘무대장치로서의 공간’ 그리고 그 사이에 놓여 있는 ‘시점과 거리 두기의 방식’으로 했던 무대 연출에 주목했다.
 
작가는 원우전의 그림에서 발견한 이미지를 토대로 과거의 흔적을 좇아가며 금강산 관광에 대한 인간의 끊임없는 갈망을 포착하였고, 이에 자신의 환상을 더해 재해석하였다.


《동시상영》 전시 전경(바다극장, 2018) © 나오미

나오미는 이러한 무대 배경 그림으로서의 산수, 무대 배경 그림의 장소로서의 금강산에서 출발하여 이상향이나 역사적 관광장소 등 공공의 기억뿐 아니라 개인의 기억을 유람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작가는 극장을 현실 세계로부터의 일탈이자 허구적 상상의 세계로 향하는 장소로 보았다. 즉 그에게 극장은 ”현실세계로부터 이상세계로의 수평적 이동의 장소, 신화적 장소”인 것이다.
 
전시가 열린 장소인 청계천 바다극장과 인천의 미림극장은 과거 성행했으나 현재는 폐관되어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작가는 이러한 장소적 특성을 활용해 인간의 욕망과 이상을 무대 위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동시상영》 전시 전경(바다극장, 2018) © 나오미

나오미는 이곳에서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사라져버린 이상적인 무언가를 현재의 시점으로 다시 불러오는 시도이자, 현실 도피가 아닌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모델로서의 작업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지향점을 보통의 이상향처럼 미래가 아닌 과거에서 찾으며 동시대 시공간 속에서 ‘동시 상영’하고자 했다.


《상상의 정원에 진짜 두꺼비들은》 전시 전경(송은아트큐브, 2020) © 나오미

이렇듯 나오미는 여전히 공동체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만, 점차 본래의 의미를 잃고 잊혀져 가는 존재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를 재조명하여 과거와 현재를 연결 짓는 작업을 전개해 왔다.
 
그리고 2020년 송은아트큐브에서 열린 개인전 《상상의 정원에 진짜 두꺼비들은》에서는 역사적, 문화적 자료에 기반하여 특정 장소나 사물 등을 둘러싼 사건 또는 연관된 이미지들을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상의 서사를 구현해냈다.


《상상의 정원에 진짜 두꺼비들은》 전시 전경(송은아트큐브, 2020) © 나오미

이 전시에서 나오미는 무대 배경 그림에 대한 작업에서 벗어나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해항도시의 지역적 특성에 주목했다. 그는 인천항에서 중국 단둥항까지 떠났던 긴 여정 속에서 보고 접한 시대성, 역사성을 지닌 특정 장소와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작업을 진행했다.
 
가령 떠나는 배의 뒷모습을 담은 〈상상의 정원에 진짜 두꺼비들은〉(2019)에서는 배에서 마주했던 실제 사건들과 유람 중에 각 도시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물, 건물 등에서 찾은 도상을 동일 선상에 펼쳐내며, 여기에 본인이 직접 경험한 이 곳의 풍경을 더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상상의 정원에 진짜 두꺼비들은》 전시 전경(송은아트큐브, 2020) © 나오미

이 과정에서 한 골동품 상가에서 인쇄 병풍 그림을 수집하였고, 1930년대 일본 신문과 조선오노다(朝鮮小野田) 포대자루 등으로 배접된 병풍의 뒷면에 주목해 일본과 서울, 함경남도, 신의주 등을 거쳐 왔을 병풍 그림의 행로를 추정했다. 또한 수집한 병풍 그림을 전시를 통해 본인의 시공간에 머무르게 하며 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단둥에서 바라본 신의주 공장과 근대 건축물, 상징적 모뉴먼트를 한 화면 안에 중첩한 〈끝없는 환희를 그대에게〉(2020)는 역사와 이와 관련된 사건, 이야기 등이 혼재되어 실제와 상상이 동존하는 한 편의 현대적 설화로 재탄생 되었다.


《상상의 정원에 진짜 두꺼비들은》 전시 전경(송은아트큐브, 2020) © 나오미

이처럼 수집한 역사적 자료 등을 통해 과거의 흔적을 추적하고 현재와 연결 짓는 과정에서 작가는 디오라마와 같은 대형 회화의 형식을 택했다. 대형 회화의 설치 방식은 단순한 형식적 연출이 아니라 공간적 연출 효과를 내어 관객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을 다른 장소가 되도록 한다.
 
사료를 토대로 하는 역사적 사실 또는 추측,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에 작가의 환상을 더한 상상의 정원에서 관객은, 작가가 펼쳐낸 내러티브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각자만의 상상을 더하게 된다.


나오미, 〈how to walk an elephant〉, 2020, 아사에 분채, 130x194cm © 나오미

이후 나오미는 《Liberation of coastline landscape》(중국 루쉰미술대학교 미술관, 2021), 《River of shadows》(탈영역우정국, 2021) 등의 전시를 통해 ‘연안해방’(2019-) 프로젝트를 확장해 나갔다.
 
이 프로젝트는 자연 해안선의 변화, 연안 기능의 상실, 갯벌의 매립 등 서해(Yellow Sea) 해항 풍경의 변화를 중국 해항에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교차하며 사라진 혹은 잔존한 이미지를 발견하는 작업이다.


《파시波市_Lost village on the sea》 전시 전경(아트스페이스 보안, 2022) © 나오미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개인전 《파시波市_Lost village on the sea》(아트스페이스 보안, 2022)는 매립이 진행중이던 인천 북성포구를 연구조사 할 당시 이 곳에서 선상 파시(波市) 풍경을 보았던 작가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파시를 실제 마주했을 때 작가는 그 특징이 희미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다. 파시는 해류를 따라 북상하던 어류를 따라 어획한 어선들이 연 해상 시장을 일컫는다. 연평도 파시를 기록한 근현대 사진을 보면, 임시성과 이동성의 특징으로 인해 마치 해상 도시가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과 같은 일시적 풍경이 펼쳐졌던 것을 알 수 있다.


나오미, 〈파시波市_Lost village on the sea〉, 2022, 캔버스에 안료, 227x910cm (227×182cm 5pieces) © 나오미

작가는 과거 사진을 통해 그 잔상을 떠올리며, 작품 〈파시波市_Lost village on the sea〉(2022)에 이러한 일시적 풍경의 서사를 디오라마 형식으로 전개했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배가 땅이 되고 수평선이 없던 바다, 일본인이 설립한 동양포경주식회사의 대청도 고래잡이 등 사라진 풍경과 현재 배는 없고 닻만 놓인 연안, 매립과 개발에 의한 생태계 혼란으로 사라지고 있는 새와 물고기의 초상을 회화적으로 장면화한다.


《Floating Islands, Day for Night》 전시 전경(TINC, 2023) © 나오미

나오미는 이후의 전시들을 거치며, 서해(황해)를 공유하는 한국과 중국의 과거와 현재 연안 풍경을 문화 지리적, 역사적, 생태적으로 비교 연구하고 회화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확장시켜 왔다.
 
수집한 해양도시의 장소 이미지들을 통해, 분명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장소들이지만 동시적으로 비슷한 변화를 겪어 왔고 현재에 이르러 더욱 문화적 혼종성으로 장소의 정체성이 모호해져만 간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다의 가장자리로부터》 전시 전경(인천아트플랫폼, 부연, 2025) © 나오미

이에 대한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나오미는 역사적 사건과 그 곳의 풍경을 작가적 시선의 개입으로 재맥락화, 재장면화 할 수 있는지 고민하였다. 《Floating Islands, Day for Night》(TINC, 2023), 《바다의 가장자리로부터》(스페이스 빔, 2024; 인천아트플랫폼/부연, 2025) 등의 전시에서는 기록된 역사뿐만 아니라 비가시화된 풍경의 요소들 중 희미해져서 몸이 없어진 목소리들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작가는 바다의 신들, 해양 신앙에 주목하고 축제와 전쟁,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공존하는 풍경을 한 화면에 펼쳐 작업했다. 특히 최근의 작업에서는 마조, 심청처럼 바다를 통해 전승되어 온 여성과 여신 이야기에 주목하며, 여러 시공간이 교차하는 생동감 있고 웅장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나오미, 〈Graceful Ghost, to My Mothers〉, 2025, 병풍, 아사에 안료 및 먹, 150x360cm (6 panels, each 150x45cm) © 나오미

이렇듯 나오미는 대형 회화와 설치, 사진, 영상 매체 등의 작업으로, 서해안의 역사적 사건의 이미지와 기암괴석이 펼쳐진 현재 연안 풍경과 갯벌, 그 곳의 해양생물들, 해신설화와 해양신앙의 표상들이 혼재된 다층적인 내러티브를 시각화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중첩된 그의 회화는 단순한 풍경화를 넘어 바다를 매개로 한 거대한 서사적 무대로서 제시된다. 이를 통해 나오미는 특정한 역사적 맥락을 지닌 장소와 그 곳의 사람들이 공유했던 정서를 현대의 시점으로 소환해 재해석함으로써 보편적인 공감을 자아낸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역사이기에 소외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어요." (나오미, 디자인프레스 인터뷰 중)


나오미 작가 © 인천in

나오미(라오미)는 추계예술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바다의 가장자리로부터》(인천아트플랫폼/부연, 인천, 2025), 《바다의 가장자리로부터》(스페이스 빔, 인천, 2024), 《Floating Islands, Day for Night》(TINC, 서울, 2023)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북아현동의 기호들 2026》(누크갤러리, 서울, 2026), 《As She Descends》(아란야아트센터, 칭황다오, 중국, 2025), 《DMZ OPEN 전시: 통로》(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파주, 2024), 《소원을 말해봐》(북서울미술관, 서울, 2024), 《Korea in Color: A Legacy of Auspicious Images》(샌디에이고 미술관, 캘리포니아, 미국, 2023), 《Summer Love》(송은, 서울,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나오미는 국립현대미술관 고양 레지던시(2026),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22),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2017-2018)의 입주 작가로 활동하였으며, 그의 작품은 Sigg Collection, OCI미술관, 고려대학교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