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s
《강박²》, 2019.11.27 – 2020.03.08, 서울시립미술관
2019.11.15
서울시립미술관
Installation
view © SeMA
서울시립미술관의
기획전시 《강박²》은 ‘반복’이라는 일상적
개념이 동시대 예술 속에 구현되는 양상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를 구성하고 사로잡는 심리적 강박을
조명한다. 반복은 우리 삶 속에 다양한 형태로 녹아있으며, 가시적이든
그렇지 않든 우리 몸과 정신 활동의 많은 부분을 포함하여 세계가 구조화되는 방식 또한 반복에
기초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것’을 뜻하는 반복은 기원, 생성, 창조, 새로움 등의 관념보다는 복제, 모방 등과 연결되며
의미론적으로 열등하게 취급되어 왔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반복이 갖는 본질적 특성은 더 이상 같은 것의 회귀를 의미하는 동일성의 메커니즘으로 귀결되지 않고, 이른바 ‘차이는 반복의 결과’라는 동시대 사유
속에서 창조의 근원으로 부상하며 사회적, 정치적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이 전시는 반복이 우리 삶의 안팎을 지배적으로 점유하는 정신병리학적 현상으로서 ‘강박’을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닌 동시대 사회구조의 문제 속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강박은 ‘내적인 강제에 의하여 실행하지 않을 수 없는 반복적 행동의 형태’를 뜻한다. 이 전시는 강박이 그 자체로 지니는 반복적인 속성에 주목함과 동시에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반복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를 위해 《강박²》은
자본주의 체제가 삶의 지평을 잠식해버린 오늘날, ‘의미 있는 삶의 추구’로 대변되는 현대인의
강박적 상황을 터전 삼아 아홉 명(팀)의 작가가 세상을 읽고
질문하는 과정을 통해 비판적 사유의 실험장을 구성한다.
이곳에서 생겨나는 사유의 가능성들은
외부에서 새로운 답을 찾는 대신 내파(內破)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그것의 위반이나 대안과 같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강박의 심리적 측면을 넘어서는 행위의 가능성이 있다. 강박 속에서 스스로를 반복하는 강박, 즉 ‘강박의 강박’, 혹은 ‘강박X강박’은 이 전시를 관통하는 예술적 전유의 전략이다.
그렇다면 ‘강박²’은 반복이 바로 강박의 자리임을 알려주는 고유한 기호가 된다. 반복은 강박에 틈을 낼 수 있는 유일한 형식이자 강박 행위로서의 예술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작동한다. 여기 초대된 아홉 명(팀)의
작가는 회화, 영상, 사진, 조각 등 다양한 매체로 현실의 반복을 변주함으로써 다양체적인 세계의 모습을 작품에 투영하고 있다. 전시를 이루는 개별 작품들이 강박에 저항하기 위하여 시간적, 공간적
반복 혹은 주제적, 구조적 반복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반복이 어떻게 창조하는가에 관한 끊임없는
실험이자 탐구다.
Installation
view of works by Jeongsu Wu © SeMA
우정수는
‘바다’, ‘모험’, ‘낭만’ 등을 주제로 요나, 모비딕, 오디세이아와 같은 고전과 성서의 모티프를 차용한 작품을
선보인다. 고정된 이미지나 서사 자체를 한정된 조건으로 인식하고 이를 조정 및 변형하는 우정수의 작업은
부분이 전체를 변화시키며 새로운 해석을 창출하는 효과를 갖는다. 이야기와 이미지가 맺는 전형적인 관계를
무너뜨리는 회화는 이야기가 없는 정물이나 패턴에도 주목한다. 다양한 의미가 담긴 도상이 맥락과 관계없이
패턴처럼 소비될 때 창출되는 독특한 낭만의 감성은 현실 속에 반복되는 판타지에 기인한다.
Yeondu
Jung, ‘DMZ Theater’ Series - Dora Theater © SeMA
연출가
수르야와 협업으로 진행된 정연두의 작품은 강화도부터 고성에 이르는 13개 지역의 DMZ 전망대를 계절별로 촬영하고, 그 DMZ 지역에 얽힌 이야기들을 연출하여 담은 사진 설치 연작 중 하나다. 객석과
마주한 통유리 너머로 DMZ의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내려다보이는 도라전망대는 분단의 역사를 상징하는 장소인
동시에 통일안보관광이라는 목적 하에 만들어진 자본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작가는 이곳에서 현실과 상상이
교차, 공존하는 하나의 장면을 만들기 위해 여러 장의 사진을 한 화면에 중첩하는 다중 노출 형식으로
파노라마 사진을 촬영했다. 이 독특한 현실극장은 ‘분단의 현실 혹은 통일’이라는 이 시대의 강박을 매체적, 주제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지금껏 존재하지 않은 제3의 장소를 상상해낸다.

Inbai
Kim, Untouched Side © SeMA
김인배의
〈건드리지 않은 면〉은 반복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작가 고유의 방식을 감각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작가는
자신이 연근이라는 대상을 처음 만났던 순간의 연근(이미 잘라진 연근)
형태로부터 통째의 연근(잘리기 전의 연근)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구상했다. 전체를 알 수 없지만 바로 앞의 것을 반복함으로써 전체를 완성할 수 있다는
믿음이 이 작품을 구성한다. 이 작품은 이러한 연근의 이미지를 마음에 품은 채 서로의 모양을 반복해가며
일으켜 세우는 감각의 실체다.

Jaye
Rhee, Once Called Future (Still image) © SeMA
미국
텍사스의 로이스시티와 코르시카나에서 촬영된 이재이의 3채널 영상작품 〈한때 미래였던〉은 고속도로 주변의
버려진 푸투로 주택을 배경으로 한다. 이제는 ‘복고 미래적 유물’이 되어버린 푸투로 주택은 20세기에 구현된 ‘미래적’ 형식 안에 과거에 기대했던 미래이자 도래하지 않고 지나가버린 미래를 담고 있다. 현재는 ‘이미 항상’과 ‘아직 아닌’이라는 틈 속에서만 포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끝없는 환유의 구조 속에 담고
있는 이 작품은 과거를 미래의 모습으로 현재 속에 기입함으로써 동시대성의 본질을 구현한다.

Yongkwan
Kim, A New Wave © SeMA
김용관은
체계의 절대성이나 필연성에 의문을 품으며 기존의 가치를 수평으로 재배열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작업해왔다. 특정
규칙에 의존하여 구축되는 시공간을 설정함으로써 생겨나는 이미지와 이야기의 관계, 즉 이야기의 이미지, 이미지의 이야기를 탐구한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인 〈시계방향으로의
항해〉, 〈미메시스의 폐허들, 폐허들의 미메시스〉, 〈신파〉는 작가가 오랜 시간 다뤄온 주제인 ‘무한’에 관한 3부작이다. 이 작품들은 비주얼 노블 혹은 아트픽션(AF)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 소재의 측면에서 예술, 죽음, 강박을 다루고 있다.
〈신파〉는
‘미래의 게임리뷰어가 〈New Wave〉라는 게임을 플레이한 것을 재생(리플레이)한 영상’이라는 콘셉트의 애니메이션이다. 철 지난 온라인 게임화면 형식의 이 작품은 현재 모습의 인간, 사랑, 자본주의 같은 것이 미래에도 변하지 않았다는 설정 아래 탄생과 소멸의 반복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