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훈(b. 1987)은 작가 겸 기획자로 우리 사회 속 소수자를 억압하고 분리하는 것은 무엇인지, 넘지 못한 경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해 왔다. 그는 퍼포먼스와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경유하며 소수자의 목소리와 실패의 감각, 사라지고 있는 것의 정서를 연결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우리는 끝없이 불화할 것이다》 전시 전경(킵인터치, 2019) © 킵인터치

문상훈의 작업은 미술사 안에서 존재하지 않는 레즈비언의 미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령, 2019년 킵인터치에서 열린 문상훈의 첫 번째 개인전 《우리는 끝없이 불화할 것이다》는 미술사, 그리고 사회 속에서 가려져야 했던 여성-소수자를 다루며 그들의 존재를 미술의 맥락 위로 드러내기를 시도한다.


문상훈, ‘손 Genital’ 시리즈, 2019, 다양한 촬영자와 협업, 트레이싱지에 프린트, 《우리는 끝없이 불화할 것이다》 전시 전경(킵인터치, 2019) © 일다

먼저, 전시에서 선보인 작업 ‘손 Genital’(2019)는 자신을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하고 유성애를 하는 연인이 서로의 손을 촬영한 사진 연작이다. 작가는 작업을 위해 온라인에서 현재 연애 중인 레즈비언 커플을 모집해, 간이 스튜디오에서 서로의 손을 찍게 했다.
 
유형학적 사진과 닮아 있는 이 작업은 마치 레즈비언의 손 생김새를 아카이브한 것처럼 보이지만, 부제인 ‘Genital(생식기)’라는 영어 제목을 붙임으로써 작품의 초점이 레즈비언 관계에서 손의 함의를 드러내는 것임을 알게 한다. 이로써 성기 중심의 이분법적 구분과 경계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문상훈, 〈Hello, Strangers〉, 2018, 단채널 영상, 5분 12초 © 문상훈

한편, 또 다른 전시 작품인 〈Hello, Strangers〉(2018)는 레즈비언의 만남에 대한 현실을 환기시키는 영상 작업이다. 문상훈은 커뮤니티에서 만난 사람에게 자신의 이상형을 설명하고, 그 사람은 지인 중에서 작가의 이상형에 맞는 사람을 찾아내어 그에게 위치추적기를 전달했다.
 
그리고 지정한 날짜로부터 한 달 중, 무작위의 1주일 간 위치추적기가 작동하고, 그 사람과 작가의 동선을 기록하였다. 한 달 후, 위치 정보를 열람해 비교해볼 수 있으며, 이때 사는 곳 등의 정보는 참여자에 의해 삭제되었다.
 
이 모든 내용은 계약서의 형식으로 전달되어 언제 어느 때 모르는 타인으로 서로를 지나쳤는지 보여준다.


문상훈, 〈Hello, Strangers〉, 2018, 단채널 영상, 5분 12초 © 문상훈

지리적 거리와 정보값을 통해 타인과의 만남 혹은 스침을 확인하는 방식은 레즈비언이 주로 이용하는 데이팅 어플에서 사용자들을 확인하는 방식을 부분적으로 전유하는 한편, 누군가의 소개를 매개로 타인과 우연한 만남을 기대한다는 점에서 판타지적이다. 
 
이에 남웅 비평가는 “익명의 타인과의 우연한 만남을 비교적 낭만적으로 의미부여하는 작업은 한편으로 데이팅 어플의 냉정하고 무심한 네트워크를 어떻게 설명해낼 것인가에 대해 빈칸으로 남겨둔다”고 말한다.


문상훈, 〈FUTURE QUEER IS HERE〉, 2019, 아크릴에 네온사인, 포토 스팟 © 문상훈

그리고 인스타그램의 포토 스팟의 형태로 구성된 설치 작품 〈FUTURE QUEER IS HERE〉(2019)은 관객으로 하여금 “미래의 퀴어가 여기 있다”라는 문장 아래에서 사진을 찍게 함으로써 퀴어성이 이미지로 소비되는 현상에 대해 질문함과 동시에, 이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확산되는 수만큼 현상에 대한 이론이 입증될 수 있도록 한다.
 
문상훈은 화합할 수 없는 미래가 주어진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미래에 당신은 퀴어일 수 있다”는 문구로써 퀴어와 정상성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넌 이 전시를 못 보겠지만》 전시 전경(연무지개x오손도손, 2020) © 문상훈

그리고 2020년에 열린 그의 두 번째 개인전 《넌 이 전시를 못 보겠지만》에서는 실제 레즈비언 커뮤니티에 부유하던 익명의 소리들을 전시공간으로 이동시켰다.
 
‘Lesbian’이라는 단어는 세계 최대 크기의 포르노 사이트의 1순위 검색어다. 하지만 실제 레즈비언은 무엇을 하고 있으며, 레즈비언 커뮤니티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관음하기를 원하는 이들이 바라는 음란한 장면이 펼쳐질까? 작가는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문화를 공감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익명 게시판에는 열여덟 살 때 잊지 못할 첫 사랑, 클럽에서 본 이상형, 며칠 전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글 등이 매일 지치지 않고 올라온다. 이 게시판엔 전달되지 못한 편지가 쌓이고 또 내게 온 편지가 아닐지 확인하는 과정이 무한 반복된다. 작가는 이것이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일상이라고 말한다.


《넌 이 전시를 못 보겠지만》 전시 전경(연무지개x오손도손, 2020) © 연무지개

작가는 이렇게 웹 공간에서 부유하던 익명의 소리들을 전시공간으로 불러왔다. 어두운 전시공간은 자신만의 고해 장소가 되고, 미처 발송되지 못한 말들을 발신하는 곳이 된다.
 
테이블 위에서 오롯이 조명을 받고 있는 기기에는 녹음 기능만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작가가 남긴 첫 번째 쪽지를 뒤로 하여 관객들의 메시지가 이어진다. 그렇게 그곳에는 각자의 목소리와 말만이 남게 된다.
 
따라서 레즈비언 섹스, 레즈비언 관음 등으로 소비될 수 있는 포르노는 이 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서로에게 오가는 위로의 말들이 있었다.


《No Future》 전시 이미지(공간:일리, 2021) © 문상훈

한편, 2021년 개인전 《No Future》에서 문상훈은 불법과 합법의 경계,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보통과 이상한 것의 차이에 대해 질문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우리 사회에는 그 기준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기준에 도달하려 노력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기준에 전혀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는 그 경계에 서서 그가 그리는 미래를 직접 몸에 실현해보고자 했다.


《No Future》 전시 전경(공간:일리, 2021) © 공간:일리

작업은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작가가 닮고 싶어하던 이상 자아의 타투를 몸에 새기는 것, 다른 하나는 수염 모발이식 상담을 받는 과정을 담은 파일럿 영상작업이다. 그리고 전시장에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가득하게 들리고, 이를 수어통역으로 번역한 영상이 함께 상영되었다.


문상훈, 〈No Future: Beards〉, 2021 © 문상훈

지정 성별 ‘여성’으로 태어난 작가에게 있어서 그가 되고자 하는 이상적인 자아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기준에서 애매하게 빗겨져 있었다. 그는 작가 노트에서 “남자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이입할 만한 남성성을 가진 스크린 속 캐릭터는 남성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성장한 그는 “그 캐릭터들의 유해함을 알게 되었고 또 세상에 남성성을 가진 비남성 캐릭터가 등장하게 되면서, 조금 더 확장된 자아상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No Future》 전시 이미지(공간:일리, 2021) © 문상훈

그러나 이 전시에서 작가는 “미래는 없다(No Future)”는 다소 비관적인 선언을 제목으로 내건다. 이상과 현실의 낙차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우울감 속에서 작가는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자신의 몸에 새기며, 자신의 미래 그리고 그가 바라는 이상향을 풀어낸다.
 
피부라는 몸의 경계에 이상향을 새김으로써 여러 사회적 경계 사이에 서 있는 작가 자신에 대한 자아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레즈비언!》 전시 전경(별관, 2019) © 문상훈

이렇듯 문상훈은 본인의 몸과 자전적 서사를 경유하면서 가려져야 했던 소수자의 존재를 미술과 일상의 맥락 속에 연결시킨다. 작업뿐 아니라 전시 기획에 참여하면서 가려져 있던 레즈비언 작가들을 공동체로 엮어내고,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여성-소수자 예술에 대한 담론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작동하고 있는 무수한 경계들을 다시 점검하게 만들며, 그것들이 배제하고 억압해온 존재들의 이야기가 퍼져나갈 수 있도록 한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보통과 이상한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문상훈, 작가 노트) 


문상훈 작가 © 아트선재센터

문상훈은 미술작가이자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개인전으로는 《No Future》(공간:일리, 서울, 2021), 《넌 이 전시를 못 보겠지만》(연무지개x오손도손, 수원, 2020), 《우리는 끝없이 불화할 것이다》(킵인터치, 서울, 2019)가 있으며, 《실패전》(플랜비프로젝트스페이스, 서울, 2020) 및 《레즈비언!》(별관, 서울, 2019)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또한 작가는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아트선재센터, 서울, 2026),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서울, 2025), 《오프사이트 2: 열한 가지 에피소드》(국제갤러리, (투게더)(투게더), 서울, 2025), 《씨 뿌리는 여자들》(공간:일리, 서울, 2020), 《퀴어락》(합정지구, 서울, 2019)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문상훈은 2018년 스페인 FABER Residency의 입주 작가로 활동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