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s
《밤이 없는 방》, 2022.09.30 – 2022.10.23, 공간 힘
2022.09.29
공간 힘

권하형, 〈상세 서비스〉, 2022, 《밤이 없는 방》 전시 전경(공간 힘, 2022) © 공간 힘
이번 전시는 2021 공간 힘 ‘큐레토리얼 프로그램’에 참여한 기획자 이다솔의 기획 전시다. 공간 힘은 2021년 5월부터 10월까지 프로그램 참여자들 간의 토론 및 전시기획 관련 전문가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 결과로 《밤이 없는 방》을 개최한다.
《밤이 없는 방》은 누군가의 방에 그늘이 드리워진 상황과 이에서 벗어나려는 상반되는 움직임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본 전시는 여성의 사적 공간과 관련된 중층적인 이미지를 탐구한다. 참여 작가는 다방면에 걸친 스토리텔링으로 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끌어내거나, 저변에 깔린 권력관계를 살펴보는 방식으로 주제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권하형, 〈상세 서비스〉, 2022, 《밤이 없는 방》 전시 전경(공간 힘, 2022) © 공간 힘
(전시서문) 밤이 없는 방
1. 들어가며
2년 전 인터넷상에서 한 트위터리안의 글로 인해 소란이 발생했다. ‘현관문 옆방은 K-장녀의 방이다.’* 문장이 등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커뮤니티에서 이를 두고 갑론을박을 펼치는 상황이 벌어졌다. 현재 원문은 확인되지 않지만 많은 여성 누리꾼들이 위 문장에 남긴 동감의 메시지는 아직도 검색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최초의 문장을 리트윗하고 인용하며 자기 생각을 덧붙여나갔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실제 그들의 방이 현관문 옆방이었기 때문이라고 딱 잘라서 말할 수 없다. 그보다는 위의 짧은 문장에 함축된 의미가 많은 여성들의 공통된 의문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 역사학자 미셸 페로(Michelle Perrot, 1928 -)는 『방의 역사(Histoire de chambres)』**에서 방이라는 단어의 기원이 휴식의 공간에서 비롯되었으나 역사적 흐름에 따라 점차 정치적인 공간으로 확장되었음을 언급한다. 그중에서도 여성의 방은 오랜 시간 동안 남성의 영역에 부록처럼 끼워져있거나 (하렘), 순결한 성역으로 구분되거나(수녀원), 출산과 노동이 이루어지는 곳(가정)으로 한정되어 독립성을 인정받는 공간으로 존재하기 어려웠다. 성별의 차이에 의해 방의 기능이 공평하게 분배되어오지 못했다는 문제는 역사 안에서 계속해서 되풀이되어 왔다.
한편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하고부터 기존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대두되기 시작했고,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는 여성에게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라며 여성의 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울프의 주장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이곳에서도 유효하게 작동한다. 단, 그녀가 언급했던 금액과 방의 유무 문제가 단순히 물질적인 것에만 한정되지 않음을 유의해야 한다.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온전히 낼 수 있고 타성에 지배받지 않는 상태, 즉 현관문 옆방에서 벗어난…….
2. 제어되는 공간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는 고리타분하고 케케묵은 기성 이데올로기 중에서 가부장제의 현주소는 어떠하며, 이것이 여성의 활동 공간을 어떻게 통제하려 드는가. 권하형은 이번 전시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두고 그동안 주로 사용했던 사진 대신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전시장 가장 높은 곳, 20여개 액자로 구성된 〈상세 서비스〉(2022)에는 작가가 한 달간 수집한 부모님의 통화 대화록이 담겨있다. 일견 별문제 없이, 때로는 다정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두 인물의 일상 대화를 읽다 보면 조금씩 미묘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그들의 대화 대부분이 요구와 그에 대한 응대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작가의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 집 안에 ‘원하는 곳에 있을 것’ 또는 ‘원하는 상태를 준비해 놓을 것’을 지시한다. 이는 빅스비 루틴****처럼 일상의 일부가 되어 어머니의 행동반경을 야금야금, 앤틱 액자의 테두리 안으로 통제하려 드는 듯 보인다.
앞선 작품의 연장선에 있는 〈호출〉(2022)은 반복되는 아버지의 통화가 일방향적으로 흐른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를 목조 부스와 몇 가지 장치들로 구현해본 것이다. 전시장에 설치된 센서의 일정 반경 안에 사람이 접근하면, 부스 안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리며 내부로의 진입을 유도한다. 그 안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통화 내용이 자막 형태로 존재하고, 벽면에는 이러한 대화가 한 달 동안 얼마나 자주 있었는지를 정리한 명세서가 붙어있다. 권하형은 이러한 방식을 통해 언어와 권력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지적해본다.

권하형, 〈호출〉, 2022, 《밤이 없는 방》 전시 전경(공간 힘, 2022) © 공간 힘
3. 경계의 확장
한편 김혜연은 방의 물리적 경계를 허물어버리거나 경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대안적 태도를 기반으로 두 개의 영상 작업을 선보인다. 〈중요한 이야기〉(2022)는 세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 이야기는 90년대 간호사로 근무했던 ‘그녀’가 기억하는 방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녀는 자신의 방을 사회적 자아와 밀접하게 연결된 공간으로 인식하고 이에 따라 방의 물리적·정신적 경계를 집과 직장 안팎으로 확장하며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그녀의 방은 물리적으로 하나로 정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쉽게 좋다/나쁘다는 것으로 구분할 수 없는 복합적인 공간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새로운 인물 ‘그’가 소중하게 다루었던 난초 앨범에 관한 내용이 차분한 어조로 풀어진다. 난초 앨범 속 사진은 사람을 주인공으로 찍은 것이 아니어서 소중하게 여겨지지 못한 물건을 대표한다. 작가는 그러한 주변의 대상에 주목하는 한편, 앨범을 만들고 꾸미는 태도가 어쩌면 방을 대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연결해나간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익명의 화자’가 우연히 만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달이 떠오르는 순간을 기다리는 내용이다. 흥미롭게 달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떠나고 화자만이 제자리에 남아서 구석에서 뜨는 달을 마주하며 끝이 난다. 각 에피소드 사이에 존재하는 느슨한 여백은 주제에 대한 다층적인 해석을 끌어내고 있다.
이어서 〈숨만 쉬는 방〉(2020)은 가족 관계에서 딸로서 감내해야만 했던 답답함을 퍼포먼스로 풀어낸 작업이다. 작가는 말 대신 특정한 행위로 서로에게 진심을 전하는 계기를 마련해 보았다. 제목처럼 ‘숨만 쉴 수 있는’ 특정한 공간 조건 안에서 작가, 작가의 모, 조모는 종이를 찢거나 접는 방식으로 서로에 대한 진심을 전해 본다. 이 작품에서 ‘방’은 한정된 동작을 수행해야 하는 닫힌 조건이자 여성삼대가 화합을 이루는 대체 공간으로 기능한다. 감상자는 작품을 두고 둘러앉아서 자신도 그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듯한 감각을 체험할 수 있다.
4. 나가며
본 전시는 여성의 방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며, 그것이 어떻게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지 두 작가의 작업을 통해 풀어보았다. 전시는 여성의 방에 여전히 기성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에 머무르기만 하지 않고 대안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을 함께 다루어 본다. 현관문 옆방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밤은, 어느 순간 완결을 이룰지도 모르는 일이다.
* 신지민, 「현관문 옆방은 K-장녀 방이다」, 『한겨레21』, 2020. 7. 19.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8982.html (최종검색일: 2022. 9. 26
** 미셸 페로, 『방의 역사』, 이영림·이은주 옮김, 글항아리, 2009.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이미애 옮김, 민음사, 2006.
**** 생활패턴에 따라서 루틴을 자동화해 설정해주는 삼성 핸드폰의 한 기능을 말한다.
(글: 이다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