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s
《비로소 밤》, 2026.03.11 – 2026.04.04, 갤러리 지우헌
2026.02.19
갤러리 지우헌
Installation view of 《Night, and Then》 © Designhouse
빠르게 변화하는 일상의 리듬 속에서 우리는 중심에 놓인 것들에 시선을 두고, 주변에 머무는 미세한 흔적과 관계들은 배경으로 밀어 보낸다. 그러나 시선을 잠시 늦춰 바라보면, 그 배경에는 사라지지 않은 채 아직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던 또 다른 층위의 세계가 존재한다.
이선, 김동해의 2인전 《비로소 밤(Night, and Then)》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층위에 대한 탐색에서 출발한다. 전시 제목이 암시하듯 낮이 사물의 형태를 또렷하게 드러내는 시간이라면, 밤은 그동안 밝은 시야 속에서 미처 드러나지 않았던 것들이 서서히 떠오르는 시간이다. 이 전시는 ‘밤’이라는 감각을 통해 우리가 쉽게 지나쳐왔던 세계의 결을 다시 바라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Installation view of 《Night, and Then》 © Designhouse
이선은 빠른 생산과 효율의 논리 속에서 가치가 밀려난 재료와 흔적에 주목한다. 작가는 전통 한지를 주요 재료로 삼아, 쌓고 찢고 분해하는 과정을 통해 작업을 만들어가는데, 그 과정에서 남겨진 물질의 결 또한 작업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한지를 찢어 섬유의 내부 구조를 드러내는 〈토템(Totem)〉, 〈깃털 한지(Feather Hanji)〉와 작업 과정에서 남겨진 조각들을 다시 모아 만드는 〈패딩 퍼(Padding-Fur)〉는 이러한 태도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버려지거나 지나치기 쉬운 것들을 다시 거두어 쌓는 이 반복적인 행위 속에서, 시간과 노동의 흔적은 작품의 물성에 고스란히 축적된다.
이번 전시에는 2023년부터 이어온 〈한지탑(Hanji Tower)〉과 더불어, 이를 새로운 형태로 발전시킨 신작 〈돌탑(Doltap)〉이 나란히 소개된다. 한지를 겹겹이 쌓아 덩어리 형태로 만든 것이 〈한지탑〉이라면, 이를 비정형의 납작한 조각들로 분해한 것이 〈돌탑〉이다. 두 작품은 마을 공동체가 함께 소원을 빌며 돌을 쌓던 오래된 행위를 환기하면서도, 개인적 흥미와 유행으로 소비되는 오늘날의 돌쌓기로까지 시선을 넓힌다. 두 작품을 나란히 마주하는 경험은 전통이라는 형식이 어떻게 끊임없이 다시 형성되는지를 조용히 드러낸다.
Installation view of 《Night, and Then》 © Designhouse
한편 김동해는 사물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환경과 관계에 주목한다. 빛과 그림자, 바람, 중력처럼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자연의 요소들이 작업의 출발점이다. 가느다란 금속선을 구부리고 연결해 만든 구조물들은 전시장 안의 공기 흐름에 따라 미세하게 움직이며 공간과 상호작용한다. 천장에서 나뭇가지처럼 바닥을 향해 늘어지는 〈고요(Stillness)〉는 단단한 금속이 보이지 않는 공기와 반응하는 흐름을 가시화하는 작품이다.
자연석에 금속을 끼워 만든 〈풍경(quiet)[Landscape(quiet)]〉과 〈가느다란 바람(A wisper of wind)〉의 경우, 최소한의 선으로 작품 주변의 여백까지 작업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작가가 수묵화의 여백에 비유하듯, 간결한 선과 열린 구조는 무언가를 더하기보다 어떻게 덜어낼지를 고민한 결과다. 그의 작품은 완성된 형상이라기보다, 멈춰 서서 바라볼 때 비로소 주변 공간과 함께 하나의 장면을 이루는 풍경에 가깝다.
이러한 방식은 그가 재료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이어진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황동은 구리와 아연이라는 서로 다른 금속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소재다. 두 금속이 만나 하나의 성질을 이루듯, 작가는 작업 전체를 서로 다른 존재들이 관계를 통해 균형을 이루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금속선을 구부리고 연결하는 행위는 그래서 단순한 조형적 구성이 아니라 '연결' 자체를 시각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선, 김동해 두 작가의 작업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하지만, 우리가 지나쳐온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는 지점에서 결국 만난다. 하나는 재료에 축적된 시간과 노동의 흔적을 통해, 다른 하나는 공간 속에 흐르는 미세한 관계를 통해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세계의 층위를 드러낸다.
비로소 밤, 그동안 배경에 머물러 있던 것들이 조용히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