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 Kyoungtack, Pencil, 1998, oil on canvas, 259.1x581.7cm © Hong Kyoungtack

“종교에서 포르노까지 우리 시대의 모습을 생생한 날것 그대로 그리고 싶었어요.” 화가 중의 화가 고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현란한 어둠의 목소리의 팝가수 프린스. 일견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인물들이 공존하는 풍경이 화가 홍경택의 그림 속 세상이다.

2006년 혜화동의 한 갤러리에서 있었던 그 전시는 《훵케스트라(Funkchestra)》라는 희한한 제목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말은 현대 대중음악 훵크와 고전음악의 대명사인 오케스트라를 합성한 말이었다. 화려하게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성인의 모습과 ‘새옹지마’ 같은 격언뿐 아니라 나이트클럽의 DJ와 팝송의 가사가 함께 드러나는 엉뚱한 퓨전의 세계다. 화가 홍경택의 그림은 한국 미술사에서 드디어 얼굴을 내비친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을 보여 준다.

홍경택의 이름을 알린 것은 커다란 화면 가득히 연필을 빽빽하게 그려 넣은 〈연필 그림〉이었다. 색색의 연필들은 마치 분수가 솟아오르듯 하늘에 불꽃놀이가 펼쳐지듯이 분출한다. 이 강렬한 이미지는 새로운 그림을 찾던 젊은 기획자들의 눈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초현실주의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서재 그림〉과 글씨, 이미지와 패턴을 결합시킨 글자 그림 역시 젊은 작가 홍경택을 한국 미술의 유망주로 단단히 자리매김하게 하였다.


Hong Kyoungtack, Gogh, 2005, Acrylic on linen, 162x130cm © Hong Kyoungtack

강렬한 색감의 그림을 보면서 상상했던 모습과 달리 홍경택은 갈데없는 ‘범생이’ 모습이었다. 입고 있는 옷과 단정한 머리 모양이 그러하며, 타고난 생김새 자체가 그러하다. ‘튀는’ 그림을 보면서 아마도 나는 그가 좀 튀는 사람이길 기대했었나 보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 ‘범생이’의 내면은 그림처럼 범상치 않았다. 고흐, 요한 바오로 2세, 프린스 등이 공존하는 그의 세계는 성과 속을 모두 끌어안고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는 아이들의 잔인한 장난에 마음 아파하며 연민을 느끼던 여린 소년이었다. 크게 굴곡 없는 삶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의 자질구레한 모순과 불협화음 자체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그는 사뭇 고전적인 예술가의 감수성을 가지고 태어났던 것이다. 마흔이 된 이제는 모든 삶의 모순, 옷가게와 술집들 사이에 성당이 자리 잡고 있는 혼돈스러운 삶의 모습을 인정한다. 이 혼돈스러운 세상의 모순을 TV와 영화, 팝송 속에서 성장하고 MTV의 현란한 이미지에 익숙해져 온 세대의 감각으로 표현한다.

그의 작업실에는 관록을 자랑하는 구형 산요 라디오에서 쉬지 않고 노래가 흘러나온다. 한쪽 벽에 중학교 때부터 사모으기 시작한 2000여 장의 LP판과 CD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일어나자마자 음악을 켜고, 잠들기 전 음악을 끄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할 정도로 그는 음악에 푹 빠져 산다. 보이지 않는 음악은 공기 중을 떠다니다 어느 날 그의 그림 속에 안착하기도 한다. 영국 테크노 그룹 펫 샵 보이스의 노래 는 “네가 나의 집세를 내주기 때문에 너를 사랑한다(I love you, you pay my rent)”라는 선정적인 가사와 우울한 멜로디로 현대인의 사랑을 풍자한다. 그는 이 곡의 가사를 인용하면서 곡의 분위기를 패턴과 색채로 표현하였다.

MTV 세대의 감각은 그의 다른 그림에서도 느껴진다. 연필 그림이 내면의 폭발하는 열정을 표현하고 있다면, 서재는 안으로 움츠러드는 은밀한 공간의 표현이다. 그의 그림 속 책은 읽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성을 쌓는 벽돌 같은 것이다. “거대한 역사 앞에서 개인의 미시적이고 조그만 세계를 지키고 싶었어요.” 그는 자신의 작품을 일본의 오타쿠 문화와 관련 지어 설명한 바 있다.

핵가족으로 성장한 이 세대는 경제적 혜택을 누리며 자라났고, 개인주의적이며 정치에 무관심하다. 꿈을 잃어버린 세대로 일컬어지는 오타쿠 세대들은 대신 자신이 관심을 갖는 대상의 뿌리까지 찾아 들어가는 집요함을 발휘하며 자신만의 소우주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젊은 문화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된다. UCC와 블로그, 미니 홈피 등 인터넷은 이런 세대들이 활동하는 공간이다.


Hong Kyoungtack, Prince, 2005, Acrylic on linen, 162x130cm © Hong Kyoungtack

은둔자의 몫대로 살았다

재기 발랄한 감각으로 홍경택은 각자 자기 속으로 숨어든 젊은이들의 내면을 보여 준다. 1968년생인 홍경택이 이 오타쿠 세대의 감각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의 격렬함 때문이다. “은둔자에게는 운둔자의 몫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를 비껴 산 게 부끄럽기도 하고 너무 개인적인 삶을 산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다 광장에 나서면, 그 빈 세상은 누가 채우겠는가라는 생각을 했지요.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저는 제 몫을 하고 있어요.” 이 은둔자는 나름의 대안적인 전략을 제시함으로써 제 몫을 충분히 하고 있다.

플라스틱 질감이 번뜩이고 현란한 형광색으로 중무장된 그의 그림은 세계 구원에 관한 명상이 담겨져 있다.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해골은 예수가 최후를 맞이한 골고다 언덕을 상징하며 십자가와 기독교적인 도상이 함께한다. 그림 속에서 작가는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는 서가가 넘어지지 않도록 지탱하고 있다. 한쪽 발에는 군화가 신겨져 있고, 그 군화발로 악을 상징하는 뱀의 꼬리가 달린 인형을 밟으려고 하는데 다리에 끈이 묶여져 있다. 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악을 없앴을 수는 없다는 아이러니를 그린 그림이다. 나름의 대안적인 세계를 구성하려는 의도로 출발한 그의 작품은 조밀한 이야기의 구조를 가지게 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기독교적 도상에 익숙하며 서양미술사의 전통을 재치 있게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서양 사람들이 그의 진가를 더 빨리 알아차린다. 강렬한 이미지뿐 아니라 이렇게 조밀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홍경택을 한국미술사에서 단연 돋보이게 만드는 장점이며, 그의 무한한 가능성을 점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자신의 내면에 집중했던 덕에 홍경택의 작품 세계는 일찍이 형성되었다. 작가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여러 가지 시험 단계를 단축할 수 있었다. 지금의 홍경택 이름을 알린 연필 그림과 서재 그림도 사실은 대학교 때부터 그렸던 것이다. 처음에 이 그림들은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미술 개인 교습, 작품 설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그의 작품을 주목한 것은 새로운 이미지를 갈망하던 젊은 전시기획자들이었다. 2000년 첫 전시를 했던 그는 이제 홍콩 크리스티 경매 등의 세계 미술시장에서 안목 높은 컬렉터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한국 미술계의 블루칩 작가로 떠올랐다.


Hong Kyoungtack, Library, 2004, oil on canvas, 162x130cm © Hong Kyoungtack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서 편한 포즈를 취해 달라고 하자 그가 가슴 위에 양팔을 교차시킨다. 무슨 포즈냐고 묻자 춥고 배고픈 포즈라고 수줍게 웃으며 말한다. 내 눈에는 웅크린 태아의 포즈처럼 보였다. 이제 불혹의 나이에 들어섰지만 수줍은 청년의 순수함을 가진 그에게 세상은 여전히 갈망과 연민, 그리고 상처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자신에게 솔직할 때 예술가는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 아닐까?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