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혜(b. 1987)는 암묵적 합의를 매개로 하는 사회적 질서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가 최선이라고 믿는 가치 기준에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해 왔다. 입체와 설치를 기반으로 하는 그의 작업은 글, 영상, 퍼포먼스까지 확장된 조형적 에세이의 형식을 띤다.


박지혜, 〈실패하지 않는 실패〉, 2018, 골판지, 에폭시, 우레탄, 레진, 퍼티, 집성목, 가변크기 © 박지혜

박지혜의 작업은 ‘인간의 불완전성,’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실수와 모순이 관계 안에서 다양하게 소화되는 모양을 추적하는 과정을 담는다. 작가는 실패를 줄이는 효율적인 예술 생산 방식을 탐구하며, 작품에 형식, 규격, 단위로 구분되는 공산품, 디자인, 생활 양식을 차용하는 입체, 설치 작업을 전개해 왔다.


박지혜, 〈아시다시피〉, 2018, 합판, 각목, 스티로폼, 레진, 가변크기 © 박지혜

사회에서 실패하지 않으려면 최선을 다해 주어진 조건들에 적응해야 한다. 박지혜는 규격-한계-단위-양식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시스템 내 책임의 프레임을 읽어내고, 그 과정에서 익숙하기 때문에 옳은 것, 명분으로서만 잔재하는 것들을 마주하며 그 기준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박지혜의 작업은 이러한 시대의 요구와는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영역들에 주목한다. 불편하거나 불필요하다고 인식되는 영역과 사회 일반 가치 영역 사이를 메우고 있는 수많은 현실의 단계를 비추어 냄으로써, 우리의 인식을 고정적인 이분법적 사고로부터 해방시킨다.


박지혜, 〈실전작업요가〉, 2015 © 박지혜

그 과정에서 박지혜는 예술을 현실적인 영역 안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생활 노동으로 실천해 왔다. 조각을 다루는 그는 자기 자신의 신체와 작품 모두를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고 버텨내야 하는 하나의 몸으로 인식하고, 작품 속에 신체와 작품을 연결하는 태도를 녹여낸다.
 
가령, 요가교본의 형식을 띠고 있는 소책자 작업 〈실전작업요가〉(2015)와 텍스트 설치 작업 〈헌신의 요가〉(2015)는 주어진 물리적 공간과 규격 안에서 작업을 하는데 필요한 특정한 동작들을 자세히 설명한다.


박지혜, 《공감오류: 기꺼운 만남》 전시 전경(아트스페이스 풀, 2016) © 아트스페이스 풀

그리고 2016년 아트스페이스 풀에서 열린 단체전 《공감오류: 기꺼운 만남》에서 선보인 〈순수한 소진_일시적 구조재〉(2016)는 일정한 규격으로 생산되고 판매되는 합판과 각목을 구입하여 치수를 정교하게 계산해서 자투리가 조금도 남지 않도록 효율적으로 잘라 붙여 만든 정육면체 덩어리들이다.
 
각 정육면체는 작가가 양팔로 들어올릴 수 있을 정도의 무게와 크기로 되어 있었다. 세상이 정해준 치수를 자신의 몸에 맞추되 아무런 잔여물도 남기지 않는 이 행위에 대해 안소현 비평가는 “예술가로 살기의 빡빡함을 드러내는 척도가 되면서 세상에 눈싸움을 걸 듯 오기를 내비친다”고 평한다.


《평범한 실패》 전시 전경(갤러리조선, 2018) © 갤러리조선

이후 박지혜는 사회가 말하는 ‘합리성’에 대한 추종에서 필연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불합리성이나, 그 추종의 끝에 찾아 오는 모호한 결과와 같은 ‘모순적 상황’을 조명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를테면, 박지혜는 2018년 갤러리조선에서 열린 개인전 《평범한 실패》를 통해 이와 같은 이율배반적인 삶으로부터 채집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펼쳐 보이며 실패와 성공을 나누는 사회적 기준에 대한 합리성에 의구심을 표출하였다.
 
여기서 그의 작업은 견고한, 그렇기에 때로는 강압적인 시스템에 미묘한 파동을 일으키려 할 뿐, 이를 완전히 전복하거나 또 다른 담론화를 선동하지 않는다. 작가의 시선은 그저 조건 없는 복종이나 거부, 그 극단적인 두 선택의 지점 양 끝에 좌초하고 있는 동시대의 단면을 진정으로 바라보기를 권유한다.


《영광의 상처를 찾아》 전시 전경(송은아트큐브, 2019) © 송은아트큐브

이러한 사유의 연장선에서 출발한 2019년도 개인전 《영광의 상처를 찾아》에서 박지혜는 합당한 것으로 여겨지는 믿음에 따라 개인이 가져야 하는 자그마한 상처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작가는 이러한 상처를 조명하는 데에 있어서 보편적인 규칙을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거나 재맥락화하는 대신, 특정한 의미를 대표하는 상징물들을 전시장 안에 부유하게 하며 우리의 선택에 대해 물음을 던지도록 하였다.


박지헤, 〈사랑하는 나의 친구여〉, 2019, 스티로폼, 레진, 전선관, 빨대, 종이, 가변설치 © 박지혜

전시를 살펴보면, 삽살개 형상을 한 오브제 작업 〈blind〉(2019)가 전시장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마포걸레로 만든 털을 가진 개 조각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흰 개는 귀신을 본다"는 미신을 연상케 한다. 일반적인 흰색 털을 가진 개에서 벗어난 이 형상은 윈도우 갤러리에서 전시장 전반의 액운을 막아보려는 시도로 보이나, 그 의지는 불분명하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여〉(2019)는 메인 갤러리 입구에서부터 시작하여 통로를 형성한 설치 작업으로, 여기서 관람객은 무언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혹은 일어난 것) 같은 습지에 모여있는 까마귀 23마리를 만나게 된다.
 
예로부터 까치를 보면 행운이 오고 까마귀를 보면 운이 좋지 않다는 설화가 있을 정도로 현대 한국에서는 보통 까마귀를 흉조로 보는 반면, 북유럽 신화에서 까마귀는 지혜를 상징하는 길조이기도 하다. 즉, 그것이 속한 문화권에 따라 흉조와 길조 양 극단에서 상이하게 해석되는 까마귀는 결국 모호한 의미로 남게 된다.


박지헤, 〈home sweet home〉, 2019, OSB 합판, 목봉, 물고기밥 타이머, LED, 소금, 가변설치 © 박지혜

한편, 〈home sweet home〉(2019)은 튼튼하고 안전하게 지어졌지만 결국 불에 타고 있는 오두막을 형상화한 설치 작업이다. 소금은 본디 부정한 것을 막아주고 액운을 떨쳐낸다는 미신으로 이어지는데 안타깝게도 소금이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두막은 불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다.
 
확실한 서사가 없이 배치된 작업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부여된 의미에 따라 뜻이 달라진 상징물들과 함께한다. 작가는 결국 맥락에 따라 통용되는 의미를 따르는 듯하지만 결국 우리가 바라보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게 개인인지, 혹은 집단의 합의에서 도출된 의미인지 하는 이 상황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아들의 시간 1/2》 전시 전경(한국근대문학관, 2022) © 박지혜

나아가, 2021년부터 박지혜는 총 2부로 이루어진 전시 《아들의 시간》를 통해 현대 도시의 질서 가장자리에 위치하여 삶의 불편함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지역에 방문하며 지각한 분절된 삶과 그 충돌의 감정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본 프로젝트를 위해 작가는 인천 도서지역 리서치를 진행하고, 공동체와 역사를 다루는 작업을 전개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물의 이미지와 서사를 탐색하는 한편, 개인이 배제된 시스템에 질문을 던지고자 하였다.


박지혜, 〈ㅇㅇ〉, 2022, 방수천 위에 페인트, 가변설치 © 박지혜

이때 작가는 지역성을 규정하기보다 그 안에 살아가는 이들의 관계와 삶, 그리고 갈등과 같은 인간 본성에 집중했다. 그렇기에 각 작품들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선택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생의 형태, 떨어져 있는 부모와 자식이 혹은 세대가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며, 신경 쓰며 어색하게 나누는 인사,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공동체라는 이름이 가진 팽팽하고도 느슨한 모양 등이 조각에 얹혀 있었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인 《아들의 시간 1/2》(한국근대문학관, 2022)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그래서인지 그 내용이 유기적이기보다는 띄엄띄엄 분절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듯한 각 작품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결국에는 하나의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좌) 박지혜, 〈나의 섬〉, 2022, 나무, 청테이프, 철물, 가변설치 / (우) 박지혜, 〈너의 성〉, 2022, 천, 레진, 시멘트 조각, 가변설치 © 박지혜

대화 중 발생한 침묵 그리고 세대별 차이를 말 줄임표와 빛의 색으로 형상화한 〈시차〉(2022), 조심스레 혹은 눈치 보며 안부를 묻는 연락에 대강 대꾸하는 듯한 〈ㅇㅇ〉(2022) 등은 관계의 거리만큼 깊어진 오해의 골짜기에 나름의 방식으로 뿌려 놓는 배려와 염려의 표현을 담고 있다.
 
또한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설치 작업 〈나의 섬〉(2022)과 〈너의 성〉(2022)은 견고해 보이지만 테이프로 얽어진 껍질 아래 곧 무너질 것만 같은 연약한 섬과 함께 밥상의 뼈대만 남은 공간에 작은 도기로 된 성이 덩그러니 놓인 풍경을 충돌시킨다.
 
작가는 이 작품에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 ‘난 잘있어’, ‘아마도 혼자 차려먹을 밥상’, ‘고립’ 등의 문구를 걸쳐 놓고 어떤 장면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 연상 속에서 관객은 마음을 쓰는 일의 고마움, 그리고 어려움과 불편함을 인식하면서 테이프로 된 유약한 섬과 검은 밥상 속 보잘것 없는 성을 누군가의 모습과 겹쳐 보게 된다.
 
작가는 리서치 과정에서 엿본 이러한 작은 마음들을 작업을 통해 재조합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이 ‘작은 마음 씀’을 통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봉합될 수 있는지 탐색하고자 하였다. 


박지혜, 〈아니요, 나는 나의 안녕을 바랍니다.〉, 2023, 단채널 비디오, 5분 10초 © 박지혜

2023년 스페이스 빔에서 열린 본 프로젝트의 마지막 전시 《아들의 시간 2/2》는 2019년부터 제작한 총 5편의 단채널 영상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시장의 크고 작은 스크린이 비추는 이미지들은 곧 사라질 실존들과 그것을 치우고 지우는 노동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작가는 별다른 설명 없이 각기 다른 시기, 상황에서 몰두했던 문제의식을 나열하며 전시의 제목에 들어간 ‘아들’과 ‘시간’에 대해 관객 스스로 연결해 보도록 유도했다. 각각의 작품은 작가 본인의 경험 중 유난히 마음이 쓰인 일들을 차분히 기록한 뒤 더이상 걷어낼 것이 없을 때까지 압축한 것이다.
 
허무한 몸부림에 가까운 그의 영상들은 그동안 입체, 설치를 중심으로 ‘애써’, ‘버리던’ 작가의 창작 활동과 궤를 나란히 하면서도 거침없이 휘발되는 시간성을 붙잡고자 하는 치열한 노력으로 보인다.


《우리 집에 가자》 전시 전경(인사미술공간, 2024) © 박지혜

이듬해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린 개인전 《우리 집에 가자》는 《아들의 시간》의 연장선상에 놓인 두 번째 가족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시는 한 뿌리를 두고 서울과 인천, 부산 각 지역에 거주하는 3대 여성(할머니-엄마-딸)의 이야기를 시각화한 입체 설치 작업으로 구성되었다. 전시장 곳곳에 놓인 작품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정서와 겹겹이 쌓아 올린 시간성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이야기는 화자 중 한 명인 딸이 제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벅찬 서울 생활에 치여 지내다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가족과 조우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간 섣불리 물어볼 수 없었던 서로의 고통을 보듬는 자리에서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 ‘정상’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취한 선택들이 얼마나 무기력한 것으로 평가절하되었는지를 확인한다.
 
전시 《우리 집에 가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수면 아래에서 고군분투해온 보통 시민들의 미시사에 주목함으로써 평범한 이들의 위치값을 더듬어 볼 것을 제안한다.


박지혜, 〈돌아서면 잊어버릴 것을〉, 2024, 나무, 천, 포맥스, 모터, LED, 타이머, 50x50x250cm © 박지혜

이듬해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린 개인전 《우리 집에 가자》는 《아들의 시간》의 연장선상에 놓인 두 번째 가족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시는 한 뿌리를 두고 서울과 인천, 부산 각 지역에 거주하는 3대 여성(할머니-엄마-딸)의 이야기를 시각화한 입체 설치 작업으로 구성되었다. 전시장 곳곳에 놓인 작품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정서와 겹겹이 쌓아 올린 시간성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이야기는 화자 중 한 명인 딸이 제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벅찬 서울 생활에 치여 지내다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가족과 조우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간 섣불리 물어볼 수 없었던 서로의 고통을 보듬는 자리에서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 ‘정상’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취한 선택들이 얼마나 무기력한 것으로 평가절하되었는지를 확인한다.
 
전시 《우리 집에 가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수면 아래에서 고군분투해온 보통 시민들의 미시사에 주목함으로써 평범한 이들의 위치값을 더듬어 볼 것을 제안한다.


박지혜,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에게〉, 2025, 털실, 나무, 모터, 흑연, 종이, 가변설치 © 박지혜

이렇듯 박지혜는 예술 생산을 위시한 비경제적 노동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해, 아무 의심 없이 통용되어 온 사회 시스템과 이를 관통하는 ‘합리성,’ ‘기준’에 숨겨진 모순을 발견하는 작업을 이어 왔다.
 
그리고 최근의 작업에서는 작가 본인의 서사를 조금씩 확장하며, 거대한 시스템에 가려진 평범한 개개인의 작고 불완전한 이야기 조각들을 모으고 다시 조합해 흩어진 마음들을 하나로 봉합한다.  

"알면서도 반복하는 실패, 닿을 듯 닿지 않는 용서의 시간을 통틀어 저는 현재를 가능케 한 원동력으로 '인간의 불완전성',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실수와 모순이 관계 안에서 다양하게 소화되는 모양을 추적합니다." (박지혜, 작가 노트)


박지혜 작가 © 인천아트플랫폼

박지혜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에서 입체조형전공으로 예술전문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우리 집에 가자》(인사미술공간, 서울, 2024), 《아들의 시간 2/2》(스페이스 빔, 쉬, 인천, 2023), 《아들의 시간 1/2》(한국근대문학관, 인천, 2022), 《영광의 상처를 찾아》(송은아트큐브, 서울, 2019)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부산시립미술관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2025》(성곡미술관, 서울, 2025), 《밤의 터미널》(부평아트센터, 인천, 2024), 《SUMMER LOVE》(송은, 서울, 2022), 《미술원, 우리와 우리 사이》(국립현대미술관, 청주, 2021), 《다층의 기록》(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양주, 2018)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박지혜는 부산 예술지구P(2024), 인천아트플랫폼(2023),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19)에서 입주작가로 활동하였으며, 『실전작업요가』(2015) 『표준의 탄생』(2018), 『우리 집에 가자』(2024) 등의 글을 생산하고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