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안에서 벌어진 작은 변화는 몸 전체의 의식과 감각을 지배했다. 의식이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터져 나간 파편들은 대립 구도 안에서 모든 것을 둘로 나누는 것 같았다. 기억있음-기억없음, 의식있음-의식없음, 감각-무감각, 이성-감정, 수용-거부, 삶-죽음처럼 경험하고 감각하는 것들 대부분이 양극단으로 갈라졌다. 김원진은 전시장 입구에서 마주치는 00. 〈바깥으로/부터의 스윙 (Outward Swing/Inward Sway)〉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질병의 발견은 작가에게 절대 납득되지 않았던 일종의 ‘가격’(pounding)으로 시작되었다. 외부로부터의 가격은 바깥에서 안으로, 다시 안에서 바깥으로 이어지며
양극의 지점을 오갔다.
김원진은 2023년 개인전 《무용한
무용(Dancing in the thin air)》5에서
하나의 고정점을 놓고 회전하는 피루엣(pirouette)6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 회전축을 중심으로 하는 회전 운동에서는 에너지의 지속성을 유지하려는 힘과 회전 방향에 저항하려는 힘이 동시에
발생한다. 지속성과 저항성이 갖는 선형적 움직임으로 인간 실존에 관해 말하고자 했던 작가는, 진자 운동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진자는 일정한
경로를 반복하여 움직이고, 그 시간이 주기적이다. 그리고, 진자 스스로가 평형점으로 되돌아가려는 복원력도 갖는다. 김원진은
이 진자 운동을 통해 내 몸에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관해 이야기한다.
태엽이 돌아가고, 메트로놈의 추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그는 병상에서 삶의 복잡성을
내려놓게 하는 죽음의 단순성 앞에 섰다. 태엽이 멈춘다면 이 운동은 멈출 것이다. 움직임이 멈추지 않기를 바라며 운동을 지속시키지만, 이 반복은 영원할
수는 없다. 물리적 죽음, 의식의 죽음, 고통의 끝, 질병의 끝은 온다. 박자는
맥박수 보다 조금 느린 정도를 유지하며, 꺼질 듯 사그라들 때 다시 운동을 지속시키는 자동 태엽 장치가
돌아가면, 삶이 유지된다. 태엽은 또 다른 스윙이다. 사건은 급작스럽게 시작되었지만 한 번의 스윙이 남긴 여파는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느리게 지속되었다.
질병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치료과정은 아픈 몸으로 살아갈 준비 단계가 되었다. 김원진은
병실의 좁은 침대에 누워 그의 케이스가 얼마나 놀라운 기적이었는지, 살아있는 현재를 담보할 수 없었다는, 그는 기억하지 못하는 지난 시간에 관해 들었다. 전시장 중앙에 위치한
작업, +01. 〈닿아가는, 기울어지는, 미끄러지는 (Drifting Close, Tilting Softly,
Holding On)〉은 그의 몸이 겪은 이야기들, 그리고 몸에 남은 흔적에 관한
작업이다. 만질 수 있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에 교차하는 촉감들이 존재한다. 간혹 우리 삶에서는 시각적인 것이 촉각적인 느낌을 부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햇살이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시각의 촉각성을 감탄하거나 설명하기도 한다. 7풍경, 소리, 냄새 같은 것들이 남긴 느낌도 촉각적으로 남는다. 그 느낌이 우리를
만지는 것이다. 촉각은 일방적인 감각이 아니라 만지는 동시에 만져지는 것으로 다가온다. 그 자체로 관계를 함축한다. 존재를 타인과 관계하게 하며 세계로
이어주는 감각, 현실감을 느끼게 하고, 내 몸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부여하고, 다른 존재를 감지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김원진에게 다가온 타인의 손은 만지는 동시에 만져지는 것으로 세계를 열어준 손이다. 그에게 닿고, 미끄러지고, 기울어진
손들이 막의 표면으로 제작되었다.
그 손은 모든 것을 투영할 수 있다.
그 손이 김원진에게는 세계를 불러들이고,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고, 미래를 긍정할 수 있게 한 현재의 손이 되었다. 세계와 나를 연결하는
막이 인간의 삶마다 가득하다. 막을 이루는 피부, 그는 이것을 ‘얇은 곳’이라 칭했다. 연약하지만
서로 연결된 얇은 막 사이에는 기억과 시간의 파편들이 담겼다. 그는 이 얇은 막을 실로 꿰맨다. 얇디얇은 피부는 흔적을 담으면서도 동시에 막 너머의 세계를 바라볼 틈도 허용한다. 너머의 세계에 존재하는 타인과 나의 그림자가 실재와 허상으로 엇갈린다.
이 얇은 곳을 나는 피난처(shelter)라고 부르고 싶다. 김원진이 자신의 잃어버렸던 파편들을 그러모아 만든 피난처에는 수많은 몸짓이 새겨지고, 몸짓은 잃어버렸던 언어가 되거나 잃어버렸던 기억이 되어 춤으로 변화한다. 마치
하나의 무대 위에 누워있는 그를 많은 사람들이 둘러싼 춤의 모양, 군무는 매우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그의 치료과정은 그런 것이었다.
가장 깊숙한 곳, 내밀한 공간에 -01.
〈쫓았지만 쫓아오는, 잃기 일기 (Still
in the Drift)〉가 있다. 김원진은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이 공간에
넣어두었다. 하얗다 못해 푸르스름한 불빛 아래에서 어깨너비만큼의 침대에 누워있는 그에게 새겨진 수많은
잔상, 그는 시선이 따라갈 수 있는 만큼의 기억들, 안구의
궤적을 복원한다. 수많은 선의 연결, 기계음, 신호, 소리, 외침과
숨소리……시각, 청각, 촉각이
뒤섞인 무형의 궤적에는 차마 꺼지지 못한 불빛들이 있다. 이 불빛은 잠식당한 무게 아래에서, 침묵의 어둠 속에서, 느리지만 서서히 살아나는 언어와 기억의 조각들을
떠오르게 한다. 빛이 머무르는 곳은 그의 시선이 머물렀던 곳이다. 희미하지만
고통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점멸하지만 잃어버린 기억과 시간을 소환하는 빛들은 고통의 흔적을 더 뚜렷하게
새기고 있다.
다시 00. 〈바깥으로/부터의 스윙 (Outward Swing/Inward Sway)〉 앞에 선다. 김원진은 그의 절실한 경험을 통해 ‘죽음에 가까이 다가갔던 자’가 아닌, ‘죽음을 가까이에서 목격한 자’로 살아갈 것이다. 목격자 정체성은 작가로 하여금 자신의 아픈 몸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개인의 질병 서사를 자기 성찰적, 사회적 맥락 안에서 해석할 여지를 열 수 있도록 돕는다. 다시 피난처로
돌아가, 장막 안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모습, 그리고 내가
겪은(또는 목격한) 누구도 헤아리지 못할 깊은 고통을 보며, 꺼내지 못한 ‘말’을
거듭 중얼거린다. ‘모든 언어는 의미에 이르는 길’이라는
보르헤스의 말8로 김원진의 작업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을까.
그가
천착해 온 ‘언어’는 모든 것 너머의 체계이자 구조이며 자신과
작업,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길이다. 그는 여전히 의식과
감각, 시간과 공간, 기억과 기록에 관한 모든 레이어를 직조하고
변형하는 체계로서의 언어 앞에 서있으나, 아직 침묵을 유지한다. 말의
소리는 부재하지만, 침묵과 침묵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이 만나 더 큰 이야기로 이어지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겨울에 시작된 이 여정은 언어의 부재 속에서도 지속을 멈추지 않은 몸짓으로 느리게 이어져왔다. 김원진은 아직 그 여정 가운데 있다. 다만, 그는 이제 작품 안에 조용히 숨어 들어 자신에게 벌어졌던 사건을 배열하고, 구성할
가능성을 확보했다.
그가 전시장 안에 숨겨놓은 작은 토끼들이 작가와 당신과 나를 서로의 목격자로, 증인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반영하고 있다. 김원진은 몸에 남은 흔적과
기억에 남은 시간이 서서히 그의 언어로 발화할 지점을 찾을 것이다. 그의 ‘혀와 목구멍보다 더 깊숙한 곳에서 들끓는 말’은 진실을 가 리지
않는, 진실 본연의 것을 담은 언어가 되어 드러날 것이다.
1. 한강, 『희랍어 시간』, 문학동네, 2011
2. 김원진 개인전, 《흔적의 흔적》, 보안1942 아트스페이스 보안3, 서울,
2024
3.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 민음사, 2011
4. 한강, 『희랍어 시간』, 문학동네, 2011, p.122
5. 김원진 개인전, 《무용한 무용》, 금호영아티스트
선정작가전, 금호미술관, 서울, 2023
6. 피루엣(pirouette)은 발레 용어로 ‘한
쪽 다리를 축으로 하여 제자리에서 회전하는 동작’을 뜻한다.
7. 모리스 메를로 퐁티, 『지각의 현상학』, 문학과
지성사, 2002
8.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윌리스 반스톤, 『보르헤스의
말』, 마음산책,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