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박이소, 〈블랙홀 예스〉, 2001, (후면)〈애즈 언 이스케이프〉, 1998-2001 © 박이소

박이소의 작업 세계는 흔히 뉴욕시기(1984-1994)의 ‘정체성의 정치학’과 서울시기(1995-2003)의 ‘보편성을 향한 탐구’라는 두 축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는 뉴욕시기를 확대 해석하여 그를 포스트민중미술의 새로운 지평으로 오해하거나, 그의 예술세계에서 드러나는 낭만주의적 태도를 통해 좌절된 방랑자로 신화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극단적 평가 속에서 그의 작업에 대한 엄밀한 분석이나 그의 개념주의적 태도에 대한 미술사적 평가는 부족한 실정이다. 그는 명확히 1994년 〈호모 아이덴투르푸스〉를 통해서 뉴욕시기의 문제의식과 결별을 선언하고, 다른 세계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 다른 세계에 대한 탐구를 모색하며, 미완의 유작, 〈우리는 행복해요〉를 남긴 채 2004년 사망했다.
 
그의 뉴욕시기는 남겨진 작업을 통해서 어느 정도 명확하게 분석할 수 있지만, 서울시기 작업을 해석의 근거를 갖고, 그 과정을 추적하고, 그 내용과 의미를 분석하는 것은 간단치 않다. 조형적으로 전기(前期) 작업은 회화에서 점차 매체의 확장으로 나아갔다면, 후기(後期) 작업은 매체의 고유성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개념과 매체의 가단적(malleable) 결합을 통해 ‘그 개념을 작동시키고 그 여정을 기존 세계에서 탈주시키는 방식’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후기 작업 세계를 낭만화하지 않으면서 그 전환점을 정밀하게 포착할 수 있는 계기는 무엇일까? 많은 연구자들은 1997년 광주비엔날레와 1998년 타이페이비엔날레 및 《도시와 영상전 – 의식주》에서 선보인 작업들을 그 출발점으로 제시한다. 실제로 이 시기 그는 〈유엔 타워〉(1997)를 통해 여전히 권력 구조를 비판하고, 〈Don’t Look Back〉(1998)을 통해서 세계화와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다. 그리고 통로와 방 등을 떠올리는 임시 구조체와 광물, 바람, 빛 등 자연의 요소 및 콘크리트, 각목 등 산업 재료를 알레고리로 다양하게 활용하여 조형적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은 주제적으로는 뉴욕시기 사유의 지평을 넘어서지 못했고, 조형적으로는 이후 작업을 위한 예비적 실험의 성격이 강했다. 이는 후기 작업 세계의 문을 여는 본격적인 선언이라기보다는, 과도기적 탐색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과도기적 탐색을 지나, 박이소의 후기 작업 세계는 2000년 미국 아트페이스(artpace)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개인전을 통해 비로소 명확한 분기점을 맞이한다. 그러나 이 전시는 그 중요성에 비해서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 따라서 이 글은 그의 2000년 개인전을 심층적으로 검토하여, 그의 개념주의적 실천이 어떻게 보편적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살펴 보고자 한다. 이 탐구를 위해 작가가 남긴 최종적인 작품 설명만으로는 다소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작가는 작업을 진행할 때, 그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단선적인 귀결이 아닌 중층적인 분화와 굴절을 거치는 비선형적 과정으로 전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개념과정이 갖는 복합적인 궤적을 보다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핵심적인 자료로서, 그가 남긴 작가수첩인 ‘저널’ 16권과 17권의 기록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글은 그 기록들을 토대로, 뉴욕시기의 정치적 발언이 어떻게 제도와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실천으로 변모했는지를 분석하며, 이로써 그의 서울시기가 갖는 보편성의 탐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000년 아트페이스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박이소의 개인전은 모든 작품이 ‘Untitled’로 명명된, 지극히 추상적이고 물질적인 풍경으로 귀결되었다. 전시장에는 세 개의 작업이 놓였다. 하나는 갤러리 가벽을 뜯어내 만든 스크린 위로 샌안토니오의 하늘을 실시간 투사한 영상 작업(원제, 〈Untitled(Sky of San Antonio)〉, 이하 〈Sky〉)이었고, 다른 하나는 길상무늬가 새겨진 싸구려 리놀륨 장판 주변으로 야트막한 시멘트 제방을 쌓은 조각(원제 〈Untitled〉, 이하 〈리놀륨〉)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불투명한 비닐 가벽으로 만든 임시 공간 안에 멕시코만 바다 사진을 걸고, GPS 장치를 병에 넣어 바다에 띄운 뒤 그 표류의 흔적을 표기하려 한 설치 작업(원제 〈Untitled(Drift)〉, 이하 〈Drift〉)이었다. 이처럼 최종 전시는 작가의 직접적인 서사나 상징을 배제한 채, 관객에게 대상이 갖는 그 물질성과 특정 공간의 장소성 그리고 발생한 사건들에 강제된 익명성을 태양의 흐름과 조수의 흐름이라는 시간성으로 대면시키면서 미니멀한 형태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작가가 남긴 ‘저널’ 16권과 “Higher than Art”가 명기된 개념 드로잉을 보면, 초기 구상은 이와 전혀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원래 계획은 훨씬 더 설명적이고 상징적인 작업들로 채워져 있었다. 실제 전시장에 구현된 〈Sky〉를 제외하면, 두 계획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Monumenta Me〉, 〈Culture Mountain〉, 〈Natural Drawing〉 등 구체적인 제목을 가진 작업들이 전시장을 채울 예정이었다. 심지어 버려진 빌딩 위에 “I COME TO SAN ANT”라는 네온사인을 설치하는 야외 프로젝트까지 구상했다. 이처럼 초기 계획은 최종 전시의 추상성과는 거리가 먼, 작가의 욕망과 성찰, 그리고 예술적 야망과 예술의 이상적 차원 등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작업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 간극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열쇠는 “Higher than Art”이 명기된 드로잉에 담긴 다이어그램과 설명문에서 찾을 수 있다. 작가는 이 드로잉에 자신의 사유 체계를 독특한 “funnel”[깔때기] 혹은 옆으로 누인 삼각 플라스크 형태의 도표로 시각화한다. 도표의 넓은 왼쪽 축은 위아래로 나뉘어, 위쪽에는 “Sky”[하늘], “Mountain”[산], “Tree”[나무]와 같은 자연의 영역이, 아래쪽에는 “Art”[예술], “Monument/Tower”[기념비/탑], “Ceiling”[천장] 등 문명의 영역이 자리한다. 이 두 영역은 오른쪽의 좁은 입구를 향해 모이며, 그 개방된 입구에는 “Ideal”[이상적], “Life Goal”[삶의 목적], “Religion”[종교], “Drug”[약물]이라는 궁극의 지향점들이 적혀 있다. 이러한 구조는 작가가 자연과 문명이라는 양립하는 두 세계의 요소들이 서로 길항하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수렴되고 분출되기를 바랐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 도표 아래에 각 단어의 성격을 규정하며, 자신의 사유를 구체화한다. 예컨대 “Mountain”[산]이 “effort, growth, accumulation, evolution”[노력, 성장, 축적, 진화]과 같은 긍정적이고 과정적인 가치를 지닌다면, “Monument”[기념비]는 “desire, development, anti-time, power”[욕망, 개발, 반-시간, 권력] 등 세속적이고 결과적인 가치와 연결된다. 작가는“Sky”[하늘]를 “ultimitum[sic], the other side”[궁극, 저편]으로 명명하며, 두 세계를 초월하는 차원을 암시한다. 반면, “Art”[예술] 옆에는 화살표만 남겨져 있어, 작가가 예술을 이 양가적인 가치들 사이에서 규정하기를 유보하거나 고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작가는 이러한 세속적 욕망의 대상으로서 예술을 넘어, 하늘이나 산과 같은 ‘자연’과 더불어 “Higher than Art”[예술보다 더 높은]인 어떤 차원으로 나아가고자 했음을 암시한다. 작가의 예술은 (세속적) 예술보다 더 높은 어떤 것을 지향했다.
 
이러한 내면적 갈등은 그가 구상했으나 최종적으로 전시하지 않은 작업들 중, 두 작업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뾰족한 4개의 오벨리스크들이 나란히 뭉쳐져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형태의 〈Monumenta Me〉(1996-1997) 개념 드로잉에는, “(나는) 하늘로 치솟는 걸작을 만들고 싶다. I’d like to make a masterpiece that reaches up to the sky.”는 문장을 직접 적어 작가로서의 세속적 성공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그와 정반대의 지점에는 〈Natural Drawing〉(1996-1999/2001)이 있다. 거대한 벽면에 연필로 겹겹이 4개의 연속된 산들을 그려나가는 이 작업에서 ‘산’은 고난과 숭고의 대상을 상징(문화적 대상으로 산)하면서도 본연 그대로의 자연을 함축(자연적 대상으로서 산)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를 “natural drawing”이라 명명함으로써 단순히 자연 풍경으로서의 산을 넘어, 모든 조형적 작위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그리기’의 태도, 즉 예술의 본래적 상태에 도달하려는 열망을 드러낸다. 결국 〈Monumenta Me〉의 기념비적 욕망과 〈Natural Drawing〉의 숭고한 열망은, 앞서 다이어그램에서 확인한 “Culture”[문명]과 “Nature”[자연]이라는 두 축의 대립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박이소의 초기 구상안은 ‘기념비적 욕망’과 ‘본래적인 것(자연)을 향한 열망’이라는 두 축 사이의 내면적 갈등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2000년 아트페이스에서 최종적으로 실현된 전시는 이러한 서사적이고 상징적인 작업들을 모두 폐기하고, 모든 작품이 ‘Untitled’로 명명된 지극히 침묵적이고 추상적인 풍경으로 나타났다. 이는 작가가 자신의 내면적 갈등을 직접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을 버리고, ‘바닥’, ‘하늘’, 그리고 ‘표류’라는 세 개의 감각적이고 인지적인 조건 자체를 토큰(token)으로 제시하며 자신의 새로운 세계관을 이야기하려는 시도였다. 1994년 〈호모 아이덴투르푸스〉를 통해 ‘정체성의 정치학’과의 결별을 선언했던 그가, 20세기를 마무리하며 그 선언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을 내놓은 것이 바로 이 세 개의 〈Untitled〉라고 말할 수 있다.
 
아트페이스 전시의 첫 번째 작업은 세 개의 〈Untitled〉 중 유일하게 부제가 없는 〈리놀륨〉이다. 이 작업은 당시 한국 가정에서 흔히 쓰던 저렴한 리놀륨 장판을 1인용 간이침대 크기로 잘라 바닥에 두고, 그 경계를 투박하고 야트막한 시멘트 제방을 두른 지극히 미니멀한 형태를 띤다. 작가의 기록에 따르면, 이 사각형의 장판은 가장 기본적인 생활 공간인 ‘방’ 혹은 ‘집’을 의미한다. 콘크리트 제방은 방의 영역과 외부와의 경계를 만든다는 차원에서 사면에 걸쳐 설치되지만, 저널 16권의 다른 페이지에서는 각 4면의 꼭짓점에 콘크리트 덩어리를 설치하고, 그 덩어리 위에 각목이나 철빔을 박아 연결하여 정육면체나 직육면체의 구조체를 얹는 것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는 흥미롭게도 이 콘크리트 덩어리 위에 각목이나 철빔 기둥을 세워 놓은 단일 조형물들에 대해서 12지간을 적어 놓아, 이 기둥 조형물이 사주에서 그 기둥을 상징하는 것을 함축했다. 한편 이 작업은 단순히 방과 집을 상징하는 것을 넘어, 한 개인의 운명과 생애가 펼쳐지는 삶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결국 이 ‘바닥’은 한 개인의 삶의 터전이자 운명의 무대로서, 땅과 세계, 그리고 문명 전체의 축소판이 되는 것이다. 이곳은 생명이 시작되는 현장이지만, 동시에 모든 유한한 생이 마감되는 죽음의 공간이기도 하다. 실제로 어두운 전시장 안에서 나지막하게 자리한 작업의 모습은 하나의 관(棺)을 연상시키며 이러한 양가적 의미를 시각적으로 증폭시킨다.
 
바닥에 놓인 삶과 죽음의 공간을 넘어, 이제 작가가 제시한 또 다른 토큰인 〈Sky〉로 시선을 옮겨보자. 이 작업은 전시장 가벽 일부를 뜯어내 바닥에 떨어뜨린 뒤, 그 위에 샌안토니오의 하늘을 그리스식 십자가 형태로 투사하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작가의 의도가 초기 구상이었던 CCTV 통제실 같은 감시(surveillance)의 개념에서, 관객이 시공간 자체를 관조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변화했다는 점이다. 작가에게 하늘을 관찰하는 것은 별을 보기 위한 것이기도 하며, 미지의 어떤 대상과 조우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도달하고 성취해야 할,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이렇게 하늘은 칸트적 의미의 ‘초험적(transcendent)’ 대상, 즉 우리의 경험 세계 너머에 있는 ‘궁극’이자 ‘저편’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하늘에 대한 동경은 “Higher than Art”가 명기된 다른 드로잉에서도 확인되는데, 높은 구조체 꼭대기에 하늘 그림을 배치한 모습은 이상을 향한 열망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러나 박이소에게 하늘을 향한 열망은 언제나 이카루스처럼 “추락(falling)”의 불안을 동반했다. 실제로 그는 아트페이스 전시를 위해 하늘 영상과 더불어 “추락 비디오(falling video)”를 구상했는데, 이 미실현 영상은 사막에서 추락한 잔해와 그 안에서 발견된 낙하의 이미지가 담긴 필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하늘을 통해 그것을 바라보는 행위와 그것에서 떨어지는 행위의 양가적 의미를 동시에 모색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하늘로 상징되는 숭고한 목표와 세속적 욕망이 결국 허무하게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최종적으로 설치된 〈Sky〉는 이 추락의 서사를 직접 보여주는 대신, 그 결과만을 현장에 물질적으로 현존시킨다. 즉, 벽을 허물어 바닥에 떨어뜨리는 행위 자체가 바로 ‘추락’을 실행하는 것이며, 그 건축의 파편 위에 투사되는 고요한 하늘은 상승과 하강의 긴장 관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현재성의 포착은 2001년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출품작 〈Today (at Yokohama)〉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작가는 샌안토니오 버전에서 더 나아가, 뜨고 지는 태양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카메라 장치를 통해 변화하는 ‘오늘’의 하늘을 보여주고자 했다. 샌안토니오 버전의 하늘이 영상에 있어서 하늘의 시간성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요코하마의 하늘은 태양의 이동에 보다 집중함으로써 추락의 운명 속에서도 매 순간 지속되는 ‘지금 여기’의 의미를 극대화했다.
 
앞서 살펴본 두 작업은 전시 공간에 하나의 거대한 개념적 축을 세운다. 〈리놀륨〉이 문명과 유한한 삶의 조건이 펼쳐지는 ‘바닥’ 즉 땅을 상징한다면, 〈Sky〉는 그 너머의 초월적 이상과 추락의 운명이 교차하는 ‘하늘’을 제시했다. 하늘과 땅은 전시장 바닥에 대각선으로 마주하며 놓여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 작업인 〈Drift〉는 수평으로 늘여진 땅과 하늘이라는 세계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작동할까? 이 작업은 앞서 언급했던 도표에 따르면, 이상적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문명과 자연, 땅과 하늘 사이에서 이상적 상태를 찾아 떠나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상징한다. “drift”가 의미하는 표류는 작가라는 주체의 실존적 자기고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작업은 병 속에 편지를 놓고 바다에 던져 떠나보내고 누군가에게 가 닿아 소식을 전한다는 ‘병 편지’의 낭만적 서사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박이소는 이 낭만적 행위를 동시대적 기술로 변주한다. 그는 편지 대신 위치탐지장치(GPS)를 병에 넣고 멕시코만에 띄워, 그 기기가 송출하는 신호를 아무런 정보 없이, 오직 병을 띄워 보낸 이후 찍은 멕시코만 사진과 더불어 전시장 한쪽 벽면에 점으로 찍고자 했다. 작가는 실제로 2000년 9월 1일 멕시코만에서 GPS가 담긴 병을 띄워 보냈지만, 그 병은 10여 일을 지탱할 수 있게 충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시간 22분 동안만 신호를 보내고 사라졌다. 병은 아마도 멕시코만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행방불명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급작스러운 사라짐은 단순한 기술적 실패가 아니라, 작업의 개념적 핵심을 완성하는 사건이다. 작가가 저널 17에 남겼듯, 이 작업은 “knowledge of location”[위치의 지식]과 “disappearance”[사라짐], 그리고 “life”[삶]와 “death”[죽음]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 “as if it is alive”[살아있는 것처럼] 여겨지던 “signals”[신호]가 소멸하자, “bottel”[병]은 “lifeless tool”[생명 없는 도구]로 돌아갔다. 결국 이 작업은 “contemporary technology”[동시대적 기술]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증명하려던 주체가, “unpredictable”[예측 불가능]한 거대한 힘 앞에서 “powerless”[무력하고], “aimless”[목적 없이] “drift”[표류]하다 사라지는 운명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박이소의 ‘사라짐’은 캘리포니아 개념주의 작가들의 그것과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잭 골드스타인(Jack Goldstein), 크리스 버든(Chris Burden), 바스 얀 아더(Bas Jan Ader)의 사라짐이 중심부에서 스스로를 지우는 선택적 행위였다면, 박이소의 〈Drift〉는 디아스포라 주체가 겪는 구조적이고 실존적인 조건을 드러낸다. 즉, 위치를 증명하려던 주체가 스스로 자신을 “knowing”[알고 있는 것/알아가는 것] 하는 것에도 불구하고, “unpredictable”[예측 불가능]한 어떤 것에 의해서 지도 위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을 함축한다고 할 때, 이 작업은, 어느 곳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표류하는 탈식민적 주체의 운명에 대한 은유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표류’는 낭만적 방랑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 없음을 인정하고 수행하는 일종의 ‘사라짐을 위한 의례’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박이소의 사유는 특수한 정체성의 문제를 넘어 보편으로 나아간다. 그가 드러내는 탈식민적 주체의 ‘위치 없음’은 더 이상 특정 집단만의 경험이 아니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누구든 언제든 자신의 자리를 잃고 이방인이 될 수 있는 동시대 주체의 보편적 조건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사라짐의 의례는 정체성의 정치학을 넘어, 보증 없이 타자화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상태를 사유하는 행위가 된다.
 
따라서 박이소의 이러한 사라짐의 윤리는 허무주의적인 자기 소멸에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사라짐이라는 극단적인 자기 비움을 통해, 역설적으로 타자를 향한 윤리적 공간을 만든다. 여기에서 타자는 단지 소외된 주체들뿐만 아니라, 잊힌 사물, 도시, 공간 모두를 포함한다. 2002년 작 〈바캉스〉가 서울 길거리에서 버려진 사물들의 바캉스를 위해 자신의 스페인 미술관 초대를 활용한 프로젝트였다는 것, 그리고 2003년 작 〈드넓은 넓은 세상(Wide World Wide)〉이 푸른색 세계지도 위에 아무도 모르는 도시들의 이름을 적어 기념하고 그 앞에 촛불을 켠 작업이었다는 점은 이러한 ‘사라짐의 윤리학’을 명확히 드러낸다.
 
이러한 윤리적 태도는 그의 미완의 유작, 〈우리는 행복해요〉 에서 가장 숭고한 형태로 암시된다. 작가는 낡은 빌딩 위에 북한의 선전 문구에서 가져온 듯한 이 문장을 거대한 광고판으로 설치하고자 했다. 이 행위는 언뜻 정치적 메시지처럼 보이지만, 그가 샌안토니오에서 구상했던 또 다른 야외 프로젝트, 즉 UFO를 향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했던 “I COME TO SAN ANT” 네온사인 계획과 함께 읽어야 그 진정한 의미가 드러난다. 두 작업 모두, 작가가 지상의 존재를 넘어 미지의 세계, 즉 외계적 타자의 시선을 상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샌안토니오의 네온사인이 미지의 존재를 향해 ‘나, 여기 있다’고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신호였다면, 〈우리는 행복해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행복하다’고 지구 전체의 실존적 상태를 선언하는 발신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선언이, 설사 삶이 비참하고 끔찍할지라도, 오르고 떨어지는 운명의 부침 속에서도 행복을 말하는 긍정의 선언이라는 점이다. 이는 더 이상 후기식민적 주체의 피해 의식에 기반한 자기 증명이 아니다. 결국 박이소의 ‘사라짐’은 자신을 비워냄으로써 인간과 비인간 모두의 세계를 받아들이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우리 지구의 보편적 상태로서 행복을 선언하는 긍정의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다시, 2000년 아트페이스 샌안토니오 전시의 초기 작품 설치를 위한 개념 드로잉으로 돌아가 보자. 자연으로 표상되는 ‘하늘, 산, 나무’와 문명으로 표상되는 ‘예술, 기념비/탑’은 ‘이상적 삶의 목적’이라는 하나의 통로로 수렴된다. 이는 하늘(자연)과 예술(문명)의 대립을 넘어, 그 긴장 속에서 새로운 차원을 생성하려는 작가의 의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생성된 목표는 칸트적 의미에서 경험 너머의 세계가 아니라,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인식 구조, 즉 ‘초월적(transcendental)’ 성격을 띤다.
 
아트페이스에서 세 점의 〈Untitled〉는 바로 이러한 구조를 전시장에 구현한다. 문명(〈리놀륨〉)과 자연(〈Sky〉)은 더 이상 대립하는 양극단이 아니라, 주체(〈Drift〉)가 그 사이를 부유하며 이상적 삶의 조건을 탐색하게 만드는 하나의 거대한 틀로서 작동한다. 결국 박이소가 도달하고자 한 것은 초험적 세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세계를 사유하고 거기에 가닿기 위한 조건으로서의 예술, 즉 ‘초월적 예술(transcendental art)’이었다. 작가는 기존 예술의 개념(물질, 제도, 작가)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예술을 삶의 이상을 새롭게 구축하고 실천하고자 했다. 따라서 앞선 드로잉에서 다른 단어들을 자세히 설명하면서도, “Art→ ”와 같은 방식으로 그 옆을 공백으로 남겨둔 것은, 그가 꿈꾼 아직 정의되지 않은 새로운 예술을 위한 빈 공간이었던 셈이다.
 
이 ‘빈 공간’의 가능성은 그가 반복적으로 탐구했던 “escape”[탈출]와 “blackhole”[블랙홀]이라는 모티프에서 구체화된다. 전시에서 작품들을 연결하면서도 동선을 교란하는 가변적 복도인 〈As an Escape〉(1998-2001)가 직접적으로 탈출을 제시한다면, 〈블랙홀 예스(Blackhole yes)〉(2001)와 〈블랙홀 의자(Blackhole Chair)〉(2001) 등은 각각 어긋난 시공간과 기능의 전환을 통해 미지의 차원으로 넘어가는 통로를 암시한다. 이 모티프들은 모두, 주어진 세계의 경계를 넘어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려는 그의 ‘탈주선(Lines of Flight)’을 위한 장치들이다. 결국 아트페이스 전시는 박이소가 ‘정체성의 정치학’을 넘어 도달한 새로운 예술적 지평을 보여주는 선언과도 같다. 여기서 ‘표류’와 ‘사라짐’은 더 이상 디아스포라의 비극적 운명이 아니라, 고정된 세계로부터 탈출하여 ‘예술보다 더 높은’ 보편적 차원을 창조하려는, 가장 적극적이고 숭고한 방법론이었던 것이다.
 
이 글의 마지막으로 박이소의 또 다른 미완성 유작, 〈팔라야바다(Fallayavada)〉를 이야기해야 한다. 박이소의 사유가 “드넓은 넓은 세상”이라는 수평적 세계를 향한 윤리적 긍정으로 아트페이스의 전시로 시작하고 〈우리는 행복해요〉로 끝을 맺는다면, 그의 또 다른 미완의 유작, 〈팔라야바다〉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의 수직적 우주관을 상상하게 한다. 아트페이스의 전시에서 포기되었던 “추락 비디오”는 그 내용과 전시 방식에서 발전되어, 2004년 샌디에고 미술관의 기획전 《Past in Reverse: Contempoary art of East Asia》에 선보일 예정이었다.

〈팔라야바다〉는 서로 다른 열 곳에서 촬영된 “추락 비디오”가 콜로세움 같은 구조물에서 연속 상영되는 것으로 작가는 이 작업은 수직적 우주에 관한 것이고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이지만 이 세계는 한편 우리의 수평적 우주와 얽혀 있고, 이 수직적 우주는 시간과 공간이 놀라운 속도로 수직으로 흐르고 영원히 반복된다고 설명한다. 이렇듯 ‘찰나’와 ‘윤회’라는 불교적 세계관을 암시하는 이 수직의 우주는, 우리가 발 딛고 선 수평의 세계와 얽혀 있으며, 이 두 세계는 무한히 서로 다른 궤도를 그리며 반복된다. 결국 그의 ‘사라짐’은 우리를 행복의 선언이 울려 퍼지는 지상의 끝과, 영원한 추락과 생성이 반복되는 우주의 시작, 그 경계에 가만히 데려다 놓는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