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s
《고대의 냉장고》, 2024.11.30 – 2024.12.29, 실린더2
2024.11.30
실린더 2
《고대의 냉장고》 전시 전경(실린더2, 2024) ©박정혜
1“인류는 적어도 십만 년 전에 불을 다루는 법을 배웠고, 그 뒤로 내내 열과 빛을 통제했다. 그리고, 겨우 백 년 전에 차가움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
오늘날
차가움과 뜨거움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은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오랫동안 인간은 오직 피부로만 온도의
순환을 감각할 수 있었으므로, 그 둘의 관계가 우주의 비밀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열이 에너지의 한 형태이며, 뜨거움과 차가움은 열에너지의 상대적인
상태라는 사실은 비교적 최근에서야 상식이 되었다. 현대 물리학자들이 온도의 양면성으로부터 에너지의 흐름을
연구한 결과, 열을 밀어올림으로써 에너지의 순환을 일시적으로 거스르는
‘열펌프’가 개발되었다. 이는 인류가 열에너지의
혼돈을 예측하고 자연의 질서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했고, 그것은 냉장고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박정혜의
개인전 《고대의 냉장고》는 회화가 에너지를 저장하고 통제하는 매체라는 점에서 기능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냉장고와 닮아 있다는 가능성에서 출발한다. 공간과 상호 작용하는 빛의 언어를 회화적 기표로서 다루었던 지난 개인전 《Xagenexx》(2017), 《멜로우 멜로디》(2021)에서 ‘빛’의 속성을 ‘시각’의 기본 전제이자 회화의 핵심 조건으로 삼았다면, 《고대의 냉장고》에서는
빛과 열의 역학관계를 에너지의 순환 운동으로 간주하고, 이미지의 ‘저장장치’로서 회화의 매체성과 그 내부에 저장된 시각적 온도에 초점을 맞춘다.
박정혜, 〈Condenser〉, 2024, 나무 패널, 린넨에 아크릴, 160.2x130cm ©박정혜
전시는 2023년부터 지속 중인 신작 회화와 드로잉으로 구성된다. 직조된
캔버스 표면과 종이의 요철, 디지털 사진에 담긴 입체 공간의 양상이 교차할 때의 다차원적 국면을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재구성한 그림들이다. 각각의 작업에는 분무기를 통해 흩뿌려진 색채의 입자들, 조색 과정에서 형성된 물감의 덩어리, 평면적 조형 방법론으로서의
종이접기에서 비롯된 입체에 대한 관점 등이 스며들어 있다. 예컨대 ‘평면’이라는 프레임은 미시적, 거시적 공간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미적 에너지를
발생시키는데, 박정혜는 그러한 에너지를 붙잡아 두는 저장 장치로서 회화를 바라본다. 따라서 화면 내부에는 마치 열에너지처럼 그 자체의 순환고리를 띈 시각적 에너지가 생동한다는 것이다.
박정혜에게
인간이란 “예측할 수 없는 환경의 변화 속에서 생존을 위해 스스로가 느끼는 감각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사고해야 하는 존재”이며, 그러한 삶의 본질은 작업의 시간을
통해서 가시화된다. 작가는 타인의 삶과 외부 세계가 고유의 온도를 지닌 채 교차하고 있음을 감각하면서, 일련의 작업을 통해 모두가 서로 다른 시공간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환기하고자 한다. 즉, 《고대의 냉장고》는 “관객
각자가 간직하고 있던 물성에 관한 기억의 조각들이 각 작업 안에 차갑게 녹아들 수 있기를” 희망하며, 작품과 관객 사이에서 발생하는 시각적 에너지의 상호 작용을 모색하는 전시다.
1.
톰 잭슨, 『냉장고의 탄생』, 김희봉
옮김, 엠아이디, 2016, 10쪽.: 10p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