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두(b. 1987)는 즉흥적인 몸의 움직임을 담은 추상적인 색채와 선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의 회화는 작가가 자신을 둘러싼 자극에 반응하며 그러한 감각을 붓과 물감을 사용해 표현한 시간의 집적물이다.
 
따라서 정현두의 회화는 대상이나 형상에서 출발하기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몸이 느끼는 감각과 시간,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포착하면서 전개된다. 작가는 이러한 변화의 순간을 담은 각각의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뒤섞이고 관계를 맺음으로써 새롭게 해석되는 열린 회화를 시도하고 있다.


정현두, 〈도망〉, 2015, 가변 크기 ©정현두

작업 초기에 정현두는 자연 풍경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그의 신체로써 받아들인 자극들을 붓질이라는 몸의 움직임으로 풀어냈다. 새와 바람, 나뭇잎 등의 자연 속 이야기들은 작가의 동작이 되어 네모난 화면 안과 밖에서 관계한다.
 
감각적 능력이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도시 환경과 달리, 숲의 환경은 고르지 않은 지면의 굴곡, 피부에 맞닿는 공기의 온도와 습도를 비롯한 풍부한 감각을 제공한다. 이러한 자연 환경이 주는 다양한 감각들은 몸을 자극하고 그에 상응하는 무의식적인 몸의 반응을 촉발한다.


정현두, 〈해와 달의 얼굴〉, 2016, 캔버스에 유채, 163.8x130cm ©정현두

이처럼 온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숲이라는 공간은, 정현두로 하여금 자신이 그리는 대상과의 ‘거리를 좁히는’ 방법을 모색하도록 이끌었다. 그 방법은 대상을 눈앞으로 끌어당기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다.
 
즉, 정현두는 신체의 감각과 가장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연결된 붓질의 제스처를 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방법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정현두, 〈새나무〉, 2016, 캔버스에 유채, 163.8x130cm ©정현두

아직 대상과 일정한 시각적인 거리를 두고 그림을 그렸던 2016년도 풍경화에는 새와 사슴, 나무 등 대상의 형태가 비교적 선명한 윤곽선을 가진 채 묘사되었지만, 몸의 언어를 통한 그리기를 수행한 이후의 작업에는 숲의 사물이나 풍경을 명확하게 지시하는 요소가 확연히 줄어들어 있다.


《무지개를 쓴 사나이》 전시 전경(공간형, 2017) ©정현두

2017년 공간형에서 열린 그의 첫 번째 개인전 《무지개를 쓴 사나이》에서 정현두는 머릿속에 존재하는 상상의 공간을 그리기라는 신체적 행위를 통해 화면에 옮기는 시도를 보였다.
 
이 전시에서의 작업은 숲을 하나의 백일몽의 공간, 실제와 외계로서 존재하는 공간이라고 상상하면서 시작되었다. 숲이 작가의 내면으로 들어올수록 그림은 또 하나의 생명이 되었고, 작가가 그의 내부에 집중하여 자신과 외계의 거리가 멀어질 수록 그림은 작가 자신과 닮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작가의 내면과 신체적 행위인 붓질이 연결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화면은 숲에서 작가 자신으로, 즉 한 명의 사람으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밤과 낮의 대화》 전시 전경(위켄드, 2018) ©정현두

이러한 신체 감각에 대한 작가의 집중은 곧 ‘몸’을 화면의 주제로 나타나도록 이끌었다. 가령, 2018년 위켄드에서 열린 개인전 《밤과 낮의 대화》에서 선보인 회화 작품 〈숲과 몸_덩어리〉(2017) 3점의 화면에는 추상화된 인물의 형태가 나타난다.
 
화면 속 인물의 얼굴과 머리는 때로는 하늘이나 산과 포개어지고 무지개에 맞닿아 있으며, 그 스스로 풍경이 되고, 해와 달은 곧 인물의 눈이 되기도 한다. 또한 그가 그린 인물의 몸은 화면의 다른 부분들과 구별되는 독립적인 ‘살’을 지니지 않는다.


정현두, 〈숲과 몸_덩어리〉, 2017, 캔버스에 유채, 193.9x130cm ©정현두

이렇듯 몸과 풍경의 경계를 흐트러뜨리고 교란하는 그의 붓질은, 숲이 제공하는 감각들을 받아들이고 반응하며 자신의 안과 밖이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순간을 풀어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화면은 풍경과 인물 사이에 뚜렷한 경계가 없는 하나의 몸, 큰 덩어리가 된다. 그렇게 숲과 교감하는 몸의 언어로 그려진 풍경과 인물은 서로의 형태와 살을 포개고 뒤섞고 교환하며 새로운 몸으로 태어난다.
 
이로써 그의 회화는 ‘물감의 살’과 ‘관념적 살’을 오고가는 덩어리로서 재현적 공간으로부터 독립적인 화면을 구축해 나갔다.


정현두, 〈숲과 몸_덩어리〉, 2017, 캔버스에 유채, 193.9x130cm ©정현두

숲이라는 풍경 자체가 전달하는 묘한 감정과 감각을 하나의 화면에 완결체로서 옮겨왔던 작가는 어느 순간 이러한 방식이 일종의 제약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나의 화면으로 완결시킨 그림이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벗어나기 힘들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시각정보로부터 추출된 주관적 감정을 그 객관적 형태의 묘사 과정에서 혹은 그 묘사된 장면에서 다시 이끌어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이에, 작가는 다시 이미지를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여러 화면 속에서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관념적 살’을 섞으며 눈에 보이는 ‘실제의 물질-살’을 뒤덮어 고정된 이미지로부터 자유롭고자 한 것이다.


《얼굴을 던지는 사람들》 전시 전경(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9) ©정현두

이러한 고민은 하나의 화면에서 끝나지 않고, 여러 그림을 통해 관계 맺는 ‘얼굴을 던지는 사람들’ 연작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연작을 진행하며 작가는 각각의 화면 속 인물이 자신, 혹은 상대방의 얼굴을 주고받는 장면을 상상했다. 이 익명의 행위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화면 위에 그어 둔 붓질 사이에 관념적 살을 찾고, 여러 화면을 바라보며 관념적 살을 지우고 입히는 과정과 중첩된다.
 
다시 말하자면, ‘얼굴을 던지는 사람들’에서 ‘사람’은 그림이 지닌 이미지이자 그리고 있는 사람,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 등 그림을 통해 무언가를 행하는 주체를 의미한다.


《부족한 별자리》 전시 전경(안팎스페이스, 2023) ©안팎스페이스

나아가, 이 연작은 일종의 시간성을 지닌다. 하나의 작업으로 연작을 진행하면서도, 한 그림을 끝내고 다음 그림으로 넘어갈 때마다 작가의 취향과 표현이 조금씩 변화하게 된다. 한편, 반복되는 제목은 여러 화면과 연관 짓고 이전 작업과 이후 작업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만든다.
 
이렇듯 ‘얼굴을 던지는 사람들’ 연작은 그림과 그림, 즉 익명의 얼굴과 얼굴 사이를 통과하고 침투하면서 지속적으로 “봄”과 “보여짐”의 관계 속에 놓이게 된다.


(왼쪽부터) 〈서서히〉, 〈구름이 되고〉, 〈우리의 몸과 신체〉, 〈그림자가 숨은〉, 2023, 《서서히, 그림자 다리 숨은》 전시 전경(에이라운지, 2024) ©정현두

그리고 2024년 에이라운지에서 열린 개인전 《서서히, 그림자 다리 숨은》에서 정현두는 그림과 그림, 화면과 화면 간의 거리/간극을 통해 어떤 이미지의 잠재적 가능성을 증명하고자 했다. 전시를 구성하고 있던 네 점의 회화(〈서서히〉, 〈구름이 되고〉, 〈우리의 몸과 신체〉, 〈그림자가 숨은〉)는 간격 없이 나란히 세워지며 하나의 큰 화면을 이루고 있었다.


《서서히, 그림자 다리 숨은》 전시 전경(에이라운지, 2024) ©정현두

각각의 다른 이름을 가진, 다른 크기의 면적을 가진, 어떤 순간에 임의로 결합된 네 개의 그림이 마치 하나처럼 벽에 이어 붙여 있었다. 전시 서문에서 안소연 비평가는 이러한 한시적인 결합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간에 이루어진 붓질을 연속해 놓음으로써 아무 상관 없는 사건들을 하나의 “지연된 서사” 속에 연쇄시켜, 오히려 그들 사이의 명료한 시차를 흐릿하게 하는, 형상에 대한 보기(봄/보여짐)을 제안한다”고 설명한다.  


정현두, 〈그림자가 숨은〉, 2023, 린넨에 유채, 225x120cm ©정현두

또한 각 캔버스 사이의 뚝 끊어진 듯한 경계면들, 질서와 무관해 보이는 붓질의 움직임과 색의 겹침과 선의 엉킴 혹은 단절은 일종의 주름처럼 상상의 틈새를 만들어 내며, 그 사이에 숨겨진/잠재된 무한한 시공간의 이미지를 촉발시킨다.
 
이렇듯 정현두는 어떠한 계획이나 질서 없이 오로지 즉흥과 우연에 의해 한시적으로 그림들을 결합함으로써, 회화가 변화하는 환경에 조응하며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다른 그림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실험하고자 하였다.


《Shuffle》 전시 전경(성곡미술관, 2025) ©정현두

나아가, 2025년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Shuffle》은 그의 회화를 구성하는 뒤섞임의 양상에 주목해, 유동과 유예의 상태를 형식적으로 드러냈다. 전시장 가운데 세워진 바퀴 달린 그림들은 서로 다른 시간의 감각이 응축된 ‘대상’으로서 전시 공간 안에서 잠시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새로운 해석과 상상을 만들어 낸다.
 
한편, 벽에 걸린 그림들은 제작 년도 순서로 배치해, 최초의 작업과 최근의 작업이 서로 만나게 구성된다. 이를 통해 각각의 그림들이 서로 섞이며, 관람자는 선형적인 시간을 원형적이고 다층적인 시간 경험으로 체험하게 된다.
 
전시의 타이틀인 《shuffle》은 ‘무작위로 섞다’라는 뜻으로, 회화 속 시간, 이미지, 감각, 몸의 흔적을 뒤섞어 새로운 관계와 의미를 만들어내는 전략적 과정을 상징한다.


《Shuffle》 전시 전경(성곡미술관, 2025) ©정현두

이렇듯 정현두의 회화는 완성된 결과보다, 그리는 과정에서의 감각과 시간, 몸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포착하는 데 중점을 둔다. 그렇기에 붓질로 남겨진 흔적은 눈으로 볼 수 있지만, 그 의미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제한된 회화의 프레임 너머로 확장되는 그의 작업은, 고정된 의미를 벗어나 지속적으로 변화의 상태에 놓이며 새롭게 해석되는 열린 회화를 시도한다.

 "나의 생각과 몸, 그로 인해 그려진 이미지와 또 그것들이 쌓이며 변화해가는 과정들, 그 너머의 시공간까지 작업으로 다루고 싶다."   (정현두, 에이라운지 인터뷰 중) 


정현두 작가 ©ARTUE

정현두는 홍익대학교 회화과 학부 및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학 석사를 졸업했다. 개인전으로는 《Shuffle》(성곡미술관, 서울, 2025), 《서서히, 그림자 다리 숨은》(에이라운지, 서울, 2024), 《얼굴을 던지는 사람들》(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19)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연습주행》(로이 갤러리, 서울, 2025), 《다크 체인지》(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24), 《Discovery: 12 Contemporary Artist from Korea》(록펠러센터, 뉴욕, 미국, 2023), 《물질 구름》(아트스페이스 3, 서울, 2022), 《이것은 나(너)의 그림이다(아니다)》(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정현두는 2020년 경기문화재단 경기창작센터에서 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활동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