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
부재를 냄새 맡기: 한국의 향기 메모리 600여 편
사실
나 또한 그 600여 명 오픈 콜 참여자 중 한 명이다. 두
예술감독의 요청 이메일을 받은 시기는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일 년이 채 안 됐고, 그로부터 6개월 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세 달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그즈음
나는 침대 양 옆에 아버지의 흰색 내의와 어머니의 얇은 스카프를 놓아두고 밤마다 그것들을 코에 대고 냄새 맡으며 눈물 흘렀다.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품에 배어있는 체취, 삶의 냄새를 붙들고
현재의 비애를 견뎠던 것 같다.
해서 구정아의 《오도라마 시티》에 향/냄새
이야기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오히려 감사하고 기뻤다. 미술 작품 속에서 내 부모가 추념된다면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더 깊은 속내는 미학과 미술비평을 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의 현대미술가 중에서 가장
명징한 조형언어와 가장 추상적인 사고를 한다고 인정해온 구정아의 미술을 통해 내 부모의 부재와 나의 현존이 불가능한 관계를 유지하기 바랐다. 두 분의 몸을 감싼 사물들에서 생의 냄새를 맡는 나의 지금 여기를 말이다.
내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강조하고 싶은 점은 구정아의 미술이 가진 비개념적이고 무의지적인 파급력이다. 또한
그 작품/설치 전시에서 가능해지는 현재시간이다. 몇백 명의
향/냄새 기억은 얼핏 생각하면 축적된 과거 경험의 환기 같다. 하지만
사실상 그것은 모든 비물질적인 존재들이 그렇듯이 단속斷續적이고 현재적이다. 우리는 어떤 냄새에 자극받아
뭔가를 떠올렸다 놓쳤다 하고, 열심히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제를 따지지만 언제나 이미 현재의 있음
자체에 처한다.
티베트 불교는 “순수하고 투명한 각성”은 저 너머 초월적 삶도 아니고 켜켜이 쌓인 옛 추억의 세계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볼 때라고 가르친다.8 구정아가 타인의 경험을 거친 현재적
기억의 냄새를 작품의 비조형적 원천으로 수용함으로써 확보할 수 있었던 예술적 잠재성이 그것이라 생각한다. 작가의
의도가 투사된 작품의 미래적 가치든 사연자의 기억이 불러낸 과거 경험이든 감상자에게 《오도라마 시티》는 배너의 글을 읽고 조향된 냄새를 맡는 순수하고
투명한 각성의 시간과 공간 조건인 셈이다.
작가
이력 초창기에 구정아는 자신의 파리 스튜디오에 있는 작은 옷장에 좀약을 설치한 〈스웨터의 옷장〉 작품을 전시로 선보였다. 이후 30년 이상의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작가는 ‘향’이라는 주제를 블록 형태의 풍선껌(딸기, 녹차, 민트, 레몬) 설치, 지름 80cm 좀약 설치, 런던 지하철역의 사용 중지된 플랫폼에 디퓨저
설치 등으로 변주하며 심화시켰다. 한국관의 두 예술감독은 “향의
본질을 탐구하고 분자를 들이쉬고 내쉬는 과정에 대한 [구정아의] 관심은
비물질주의, 무중력, 무한,
공중부양이라는 그의 작업 주제를” 잇고 있다고 썼다.9
그렇다면
나는 큐레이터이자 건축가인 프랑크 뵘Frank Boehm의 글을 인용해서, 구정아가 ‘미술’이라는
범용한 장르를 빌려 “각종 힘의 작용과 여타 무형의 효과들”10을
긍정하는 우주를 만든다고 평하고 싶다. 그 힘과 효과들이 600여
명의 사연에 고유하다는 점에서 구정아의 《오도라마 시티》는 특별한 ‘냄새-기억의 우주’를 형성했다. 누군가의
내면에, 또는 감각 기억에 저장된 냄새는 전적으로 표상 불가능하고 타인과 공유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나 당신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큼 실체적이며, 우리 존재의
무수함만큼 다양하고, 같은 시공간적 조건에서 살아가는 만큼의 공감은 가능하다. 구정아는 그런 차원에서 타인의 향기 메모리를 개별성singularity 차원에서
보편성universality 차원으로 도약시켰다. 풍부한
양만큼 섬세하고 정중한 절차다.
끝으로
다른 조건에서 향을 애지중지 다룬 이를 기억하고 싶다. 한국 미술계에서 존경받는 미술사학자이자 미술
비평가였던 강태희 선생님이 그다. 몇 해 전 타계하셨는데 생전 선생님의 품성처럼 조용하고 정갈하게 떠나신
것으로 안다. 그런 선생님이 직접 기획하고 작가들을 초청해 출간한 ‘책
속의 미술관 시리즈’ 첫 번째가 ‘향’이었다. 2009년 출간된 『향』의 말미에 실린 ‘기획자의 글’에서 선생님은 자신만의 향 이야기를 썼다.
수십 년 전 다녀갔던 동해의 어느 해변을 벼르고 별러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나중에 남해에 갔다가 그 동해의
해변이 자신에게는 “향”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는 내용이다. 그녀는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지금은 그 어디에도 없는 싱싱한
바다의 냄새 (…) 비린내와는 무관한, 딱 짚어 기술하기
어려운 그 냄새는 부재를 통해 기억의 꼭지를 건드렸고, 내 허술했던 기억 여행이 역시 부재를 확인하는
것으로 끝났을 나만의 바다의 냄새 즉 시공의 간극을 초월하는 향 찾기 여행이었던 것을 한순간 깨달았던 것”11이라고. 여기서 순수하고 투명한 각성의 한 주체를 다시 만난다.
1 파드마삼바바, 『티벳 사자의 서』, 로버트 A.
F. 서먼(영역), 정창영(한역), 시공사, 2000, 97쪽.
2 한강, 「한강의 노벨 강연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Svenska Akademien, The Nobel Foundation 2024,
https://www.nobelprize.org/uploads/2024/12/han-lecture-korean.pdf
3 Biennial Foundation,
https://www.biennialfoundation.org/network/biennialmap/(2025.01.14)
4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역대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및 참가작가 현황」, https://www.arko.or.kr/biennale/content/643 (2025.01.21.)
5 오도의 라틴어 어원은 ‘향’ 또는 ‘냄새’이고, 드라마의
고대 그리스어 어원은 ‘행위’이다.
6 이설&야콥 파브리시우스, 「서문」, 『베니스비엔날레 제60회 국제미술전 한국관 《구정아-오도라마 시티》 전시 도록, 한국문화예술위원회, DISTANZ Verlag, 2024, 30쪽.
7 「향기 색인」, 앞의 전시 도록, 478-486쪽
참조 및 인용.
8 앞의 책, 같은 곳.
9 이설&야콥 파브리시우스, 「서문」, 앞의 전시 도록, 25쪽.
10 프랑크 뵘, 「구정아의 작업 속 풍경」, 앞의
전시 도록, 105쪽.
11 강태희, 「기획자의 글: 향香 이야기」, 강태희 기획, 『향』, 시공사, 2009, 페이지 표기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