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아 - 오도라마 시티》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2024, 설치전경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간관의 영향력

티베트 불교는 ‘절대 자유의 경지’에 들기 위한 승려들의 수행 지침서에서 과거 미래 현재를 우리가 아는 시간관과는 다르게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과거는 텅 비어 자취도 없으며, 미래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새로운 것이며, 현재는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일 뿐”1이다. 물리적 운동과 수량으로 따지는 기계적 선형적 시간관이 아님은 물론 주관적이고 질적인 시간 경험을 근거로 삼는 카이로스적 비선형적 시간관과도 다르다. 결정적으로 그 수행 지침서는 과거를 축적된 무엇으로 정의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과거 현재 미래는 상관관계로 엮이지 않으며, 현재는 ‘있는 그대로일 뿐’이라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

나는 이러한 티베트 불교의 시간관념이 20세기 후반부터 서구 모더니즘에 대한 반대급부로써 현대 미학과 미술계 담론이 부각시켜온 기억, 아카이브, 주관성의 테제들을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인간과 역사에 관한 포스트 모던적 이해, 반미학적 예술 형식과 태도에 거리를 두고 다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할 수 있는 단초라고 본다. 학계의 전문어에 의해 굳어진 경험기억의 문화화, 아카이브아트의 정형화된 시각형식, 판박이처럼 대량 제조되고 있는 개인성의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작가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기념 강연에서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를 20대 중반부터 일기장 첫머리에 적었다고 했다. 그러나 2010년대 초반 1980년 5월의 광주를 알아나가기 시작하면서 그 질문을 뒤집어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를 자문하며 『소년이 온다』를 썼다고 밝혔다.2 사람들은 그에 감동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한강의 답이 ‘그렇다’라고 이해하면서 현재에 미치는 과거의 선한 영향력에 기대를 건다. 그런데 우리가 티베트 불교처럼 과거를 흔적조차 없는 텅 빔으로 간주한다면 어떨까. 나는 그러한 관점이 과거를 무無나 공허空虛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석한다. 오히려 어떤 독특한 존재의 절대적 있음을 포섭하는 과거의 긍정이라 주장하고 싶다. 비물질성의 차원은 물론 생성과 소멸을 관장하는 물리적 질서의 차원까지 포괄하는 ‘자연Physis’ 그 자체로서 말이다.

이제부터 논할 미술가 구정아의 작업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티베트 불교의 세계관을 이해하도록 이끌었다. 그녀가 사람들의 사적 경험과 기억들을 수용해 미술로 주조하는 과거와 현재의 관계, 그녀의 설치작품에서 현상되는 지금 여기의 시공간적 속성은 매우 특이하다. 해서 나는 그 특이성이 무엇인지 미학적으로 고민하다가 문득 그 시간관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요컨대 구정아의 미술은 과거 현재 미래를 자율적인 단독자들로 보는 것 같다. 그리고 현재의 실체를 인과적 시간의 지속이나 경험적 사실들의 축적으로 연역하는 대신 현상現像의 있음存在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아르코미술관 전관에서 열린 《구정아-오도라마 시티 KooJeoun A-Odorama Cities》2024.12.20.-2025.3.23.)는 베니스비엔날레 제60회 국제미술전 한국관에서 열린 동명의 전시(2024.4.20.-11.24.)를 국내 감상자를 위해 다시 새롭게 만든 ‘귀국보고전’이다. 구정아가 한국관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작품을 창작했고, 한국의 이설희 큐레이터와 덴마크 출신 큐레이터 야콥 파브리시우스가 공동 예술감독을 맡아 전시를 만들었다.

베니스비엔날레는 1895년 시작해 역사상 가장 유서 깊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290여 개 비엔날레3 중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제미술전으로 2년에 한 번씩 베니스 섬을 무대로 펼쳐진다. 본전시는 아르세날레와 자르디니에서, 국가관 전시는 자르디니에서 열리는데 1995년 26번째 국가관으로 건립된 한국관은 30주년이 되는 올해까지 총 15회 전시를 구현했다. 예술감독(2015년까지 커미셔너)과 참여작가(단독 또는 다수) 체제로 이뤄지는 한국관 전시는4 당대 국내외 미술의 담론과 미적 형식을 대표하고 견인하는 무게를 갖는다. 그런 맥락에서 구정아의 《오도라마 시티》는 예외적이다. 동시대의 시공간적 질, 과거와 현재의 관계, 개인의 마음과 지각이 구정아의 《오도라마 시티》에서는 ‘향 또는 냄새’라는 지극히 현재적이고 휘발적인 현상을 중심으로 다뤄지기 때문이다.

낯선 단어인 ‘오도라마’는 ‘향’의 ‘오도odor’와 ‘드라마’의 ‘라마-rama’를 조어한 것으로 구정아가 만들었다. 직역하면 ‘향의 드라마’이고, 두 단어의 어원과 이번 전시 제목을 고려해 해석을 해보자면 ‘향/냄새로 얽힌 도시들의 행위 서사’ 정도가 될 것이다.5 한국관 전시에서 그 도시는 ‘한반도’로 제한되었다. 그리고 작가는 2023년 여름, 전시 준비팀과 함께 한국에 살거나 적어도 한국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국(코리아)의 도시, 고향에 얽힌 향의 기억” 또는 “향기 메모리”를 묻는 오픈 콜을 진행했다.6 

그렇게 해서 모인 600여 편의 내밀한 향/냄새 기억을 작가는 몇 가지 주제어 범주로 분류했고, 작가와 협업한 국내외 조향사들은 참여자들의 사연과 주제어를 바탕으로 16개의 키워드를 가진 향과 상업용 향수를 만들었다. “공기 중에 떠도는 알코올과 매캐한 담배 연기”, “진흙 내음과 발효된 김치의 향을 섞어”, “조부모님댁의 서정적인 냄새”, “공중목욕탕”, “오래된 전자제품” 등이다.7 한국관 전시에서 그 향들은 몰입형 설치작품으로 제시되었고 오픈 콜 참여자들의 사연은 한국관 홈페이지를 통해 공유되었다.

이 지점에서 《오도라마 시티》는 베니스의 한국관 전시와 서울의 귀국전으로 갈라진다. 자르디니 공원 한 구석에 자리한 한국관은 전시장 크기가 작고 반원의 유리 파사드 형태인 건축 구조로 인해 작품의 제시와 전시 구현 면에서 한계가 있다. 때문에 구정아와 예술감독들은 전시의 드라마적 바탕이라 할 수 있는 오픈 콜 참여자들의 향/냄새 서사는 온라인에 집대성하고, 전시장에서는 우주의 태아 같기도 하고 어린 선승 같기도 한 포스트휴먼 조각상과 뫼비우스 띠 형태의 나무 조각을 제시하는 기획력을 발휘했다.

반면 귀국전에서는 120개의 배너에 600여 참여자의 사연/문장을 정성스럽고 정확하게 수록해 감상자가 아르코 미술관의 커다란 1층 전시 공간 전체에서 읽고 보도록 했다. 베니스비엔날레 기간 내내 전시의 “비하인드 스토리텔링”이었던 그 사연들에 대한 관심이 이어졌다는데, 그것들은 귀국해 더 이상 예술작품의 배후가 아니라 아이보리 직물 위의 언어들로 전면화된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 2층 전시장에서는 아주 작은 뫼비우스 나무 조각들이 마치 우주의 성좌처럼 공중에 떠서 옅은 향기를 피우며 감상자를 매혹의 순간으로 이끌었다.

《구정아 - 오도라마 시티》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귀국전, 2024, 아르코미술관, 설치 전경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생과 부재를 냄새 맡기: 한국의 향기 메모리 600여 편

사실 나 또한 그 600여 명 오픈 콜 참여자 중 한 명이다. 두 예술감독의 요청 이메일을 받은 시기는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일 년이 채 안 됐고, 그로부터 6개월 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세 달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그즈음 나는 침대 양 옆에 아버지의 흰색 내의와 어머니의 얇은 스카프를 놓아두고 밤마다 그것들을 코에 대고 냄새 맡으며 눈물 흘렀다.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품에 배어있는 체취, 삶의 냄새를 붙들고 현재의 비애를 견뎠던 것 같다.

해서 구정아의 《오도라마 시티》에 향/냄새 이야기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오히려 감사하고 기뻤다. 미술 작품 속에서 내 부모가 추념된다면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더 깊은 속내는 미학과 미술비평을 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의 현대미술가 중에서 가장 명징한 조형언어와 가장 추상적인 사고를 한다고 인정해온 구정아의 미술을 통해 내 부모의 부재와 나의 현존이 불가능한 관계를 유지하기 바랐다. 두 분의 몸을 감싼 사물들에서 생의 냄새를 맡는 나의 지금 여기를 말이다.

내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강조하고 싶은 점은 구정아의 미술이 가진 비개념적이고 무의지적인 파급력이다. 또한 그 작품/설치 전시에서 가능해지는 현재시간이다. 몇백 명의 향/냄새 기억은 얼핏 생각하면 축적된 과거 경험의 환기 같다. 하지만 사실상 그것은 모든 비물질적인 존재들이 그렇듯이 단속斷續적이고 현재적이다. 우리는 어떤 냄새에 자극받아 뭔가를 떠올렸다 놓쳤다 하고, 열심히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제를 따지지만 언제나 이미 현재의 있음 자체에 처한다.

티베트 불교는 “순수하고 투명한 각성”은 저 너머 초월적 삶도 아니고 켜켜이 쌓인 옛 추억의 세계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볼 때라고 가르친다.8 구정아가 타인의 경험을 거친 현재적 기억의 냄새를 작품의 비조형적 원천으로 수용함으로써 확보할 수 있었던 예술적 잠재성이 그것이라 생각한다. 작가의 의도가 투사된 작품의 미래적 가치든 사연자의 기억이 불러낸 과거 경험이든 감상자에게 《오도라마 시티》는 배너의 글을 읽고 조향된 냄새를 맡는 순수하고 투명한 각성의 시간과 공간 조건인 셈이다.

작가 이력 초창기에 구정아는 자신의 파리 스튜디오에 있는 작은 옷장에 좀약을 설치한 〈스웨터의 옷장〉 작품을 전시로 선보였다. 이후 30년 이상의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작가는 ‘향’이라는 주제를 블록 형태의 풍선껌(딸기, 녹차, 민트, 레몬) 설치, 지름 80cm 좀약 설치, 런던 지하철역의 사용 중지된 플랫폼에 디퓨저 설치 등으로 변주하며 심화시켰다. 한국관의 두 예술감독은 “향의 본질을 탐구하고 분자를 들이쉬고 내쉬는 과정에 대한 [구정아의] 관심은 비물질주의, 무중력, 무한, 공중부양이라는 그의 작업 주제를” 잇고 있다고 썼다.9 

그렇다면 나는 큐레이터이자 건축가인 프랑크 뵘Frank Boehm의 글을 인용해서, 구정아가 ‘미술’이라는 범용한 장르를 빌려 “각종 힘의 작용과 여타 무형의 효과들”10을 긍정하는 우주를 만든다고 평하고 싶다. 그 힘과 효과들이 600여 명의 사연에 고유하다는 점에서 구정아의 《오도라마 시티》는 특별한 ‘냄새-기억의 우주’를 형성했다. 누군가의 내면에, 또는 감각 기억에 저장된 냄새는 전적으로 표상 불가능하고 타인과 공유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나 당신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큼 실체적이며, 우리 존재의 무수함만큼 다양하고, 같은 시공간적 조건에서 살아가는 만큼의 공감은 가능하다. 구정아는 그런 차원에서 타인의 향기 메모리를 개별성singularity 차원에서 보편성universality 차원으로 도약시켰다. 풍부한 양만큼 섬세하고 정중한 절차다.

끝으로 다른 조건에서 향을 애지중지 다룬 이를 기억하고 싶다. 한국 미술계에서 존경받는 미술사학자이자 미술 비평가였던 강태희 선생님이 그다. 몇 해 전 타계하셨는데 생전 선생님의 품성처럼 조용하고 정갈하게 떠나신 것으로 안다. 그런 선생님이 직접 기획하고 작가들을 초청해 출간한 ‘책 속의 미술관 시리즈’ 첫 번째가 ‘향’이었다. 2009년 출간된 『향』의 말미에 실린 ‘기획자의 글’에서 선생님은 자신만의 향 이야기를 썼다.

수십 년 전 다녀갔던 동해의 어느 해변을 벼르고 별러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나중에 남해에 갔다가 그 동해의 해변이 자신에게는 “향”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는 내용이다. 그녀는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지금은 그 어디에도 없는 싱싱한 바다의 냄새 (…) 비린내와는 무관한, 딱 짚어 기술하기 어려운 그 냄새는 부재를 통해 기억의 꼭지를 건드렸고, 내 허술했던 기억 여행이 역시 부재를 확인하는 것으로 끝났을 나만의 바다의 냄새 즉 시공의 간극을 초월하는 향 찾기 여행이었던 것을 한순간 깨달았던 것”11이라고. 여기서 순수하고 투명한 각성의 한 주체를 다시 만난다.


 
1 파드마삼바바, 『티벳 사자의 서』, 로버트 A. F. 서먼(영역), 정창영(한역), 시공사, 2000, 97쪽.
2 한강, 「한강의 노벨 강연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Svenska Akademien, The Nobel Foundation 2024, https://www.nobelprize.org/uploads/2024/12/han-lecture-korean.pdf
3 Biennial Foundation, https://www.biennialfoundation.org/network/biennialmap/(2025.01.14)
4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역대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및 참가작가 현황」, https://www.arko.or.kr/biennale/content/643 (2025.01.21.)
5 오도의 라틴어 어원은 ‘향’ 또는 ‘냄새’이고, 드라마의 고대 그리스어 어원은 ‘행위’이다.
6 이설&야콥 파브리시우스, 「서문」, 『베니스비엔날레 제60회 국제미술전 한국관 《구정아-오도라마 시티》 전시 도록, 한국문화예술위원회, DISTANZ Verlag, 2024, 30쪽.
7 「향기 색인」, 앞의 전시 도록, 478-486쪽 참조 및 인용.
8 앞의 책, 같은 곳.
9 이설&야콥 파브리시우스, 「서문」, 앞의 전시 도록, 25쪽. 
10 프랑크 뵘, 「구정아의 작업 속 풍경」, 앞의 전시 도록, 105쪽.

11 강태희, 「기획자의 글: 향香 이야기」, 강태희 기획, 『향』, 시공사, 2009, 페이지 표기 없음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