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b. 1987)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과 이동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으며, 그곳에서 경험한 사회 문화적 특성을 주관적 기록으로 재구성한다. 그는 주로 인간과 동물, 문명과 자연,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살피고, 각자가 발 디딘 시공 너머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새롭게 조망하도록 이끈다.


박신영, 〈부활절〉, 2017, 종이에 수채, 와인, 잉크, 형광펜, 24x93.5cm ©박신영

타지에서 발견한 독특한 색감과 질감의 사물, 인물, 풍경은 박신영의 손을 거쳐 종이, 나무,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판화, 드로잉, 입체로 기록된다. 이는 몽환적이고 촉각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이미지가 되어 보는 이를 현실과 가상,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로 인도한다.


박신영, 〈무언의 경계〉, 2019, 종이에 수채, 와인, 잉크, 형광펜, 20.5x29.5cm ©박신영

박신영의 작업은 특정한 매체에 한정되거나 그 매체에 따른 전통적인 재료 및 작업 방식에 매어 있지 않는다. 작가는 주로 기존의 미술사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거나 산업미술 혹은 공예의 분류에 속하는 기법, 각 매체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재료들을 작업으로 끌어오는 시도를 하며, 그것이 각 매체가 지닌 기존의 문법과 만들어내는 시너지에 관심을 둔다.


박신영, 〈테라스〉, 2017, 종이에 와인, 잉크, 20.4x28.9cm ©박신영

이러한 재료 및 매체의 실험은 작가의 초기 잉크 드로잉 시리즈에서부터 나타난다. 박신영은 드로잉 작업에서 물감 대신 와인을 이용해 밑작업을 하고, 그 위에 잉크의 자국을 남기며 그림을 그린다.
 
여기서 작가는 와인의 향, 잉크의 번짐이 만들어내는 얼룩, 그리고 동판화에서 니들로 판을 긁을 때 생기는 자국과 텍스처의 감각을 적용하며, 낯선 이국적인 풍경을 공감각적으로 환기시킨다.

박신영, 〈당신은 말의 마음을 모른다〉, 2018, 자작나무 합판에 실크스크린, 우드버닝, 우드컷, 유화, 잉크,185x192cm ©박신영

이렇듯 박신영의 작업에서 이미지와 재료는 상호적인 관계 속에 놓인다. 재료의 물성이나 매체가 가진 매력이 작가로 하여금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는 동시에, 이미지를 구상한 다음에 그 이미지에 맞는 재료와 매체를 발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18년도 작업인 〈당신은 말의 마음을 모른다〉는 아주 작은 드로잉 한 점에서 출발했다. 박신영은 그 이미지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매체를 찾고자 슈가 리프트로 제작한 동판화에서 시작해 실크스크린, 유화, 우드버닝, 음각에 이르는 다양한 기법들을 작업에 적용하였다.
 
그 결과, 작품은 회화와 판화, 조각이 서로 간의 경계를 허물며 하나로 결합된 형태를 이루게 된다.


박신영, 〈소금광산〉, 2018, 종이에 에칭, 165x225cm ©박신영

이렇듯 박신영은 여러 지역에서 조우한 이질적인 환경, 문화적 맥락을 소재로 다양한 작업 방식을 탐구하고 한 작업에 공존시킴으로써, 그 형식과 서로 다른 시공간의 기억들을 융합시킨다.
 
또한 그는 내용이나 형식적으로나 이질적으로 인지될 수 있는 작품들의 병치를 통해 결국 감상의 병치가 어떻게 감각의 치환과 상호작용이라는 특별한 예술적 체험을 제공할 수 있는가를 묻고 이에 답하는 작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거울보다 낯선》 전시 전경(디스위켄드룸, 2021) ©디스위켄드룸

2021년 디스위켄드룸에서 열린 2인전 《거울보다 낯선》에서 박신영은 낯선 환경 속에서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경험을 초언어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다. 그의 작품은 낯선 환경에서의 낯선 경험이 그로 인해 느낀 낯선 심정과 뒤섞여 마치 꿈속에서 등장한 모습을 표현한 것 같은 몽환적인 인상을 남긴다.


《거울보다 낯선》 전시 전경(디스위켄드룸, 2021) ©디스위켄드룸

형태적인 측면에서 박신영의 자아는 작품 속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에 그 경험과 심정의 충돌과 결합으로 구성된 변증법으로써 제작된 화면을 통해, 그 이전과 이후의 자신을 보다 새롭게 이해하게 되는 여정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보여준다.


박신영, 〈영원을 향한 겨냥〉, 2024, 레지온 스톤헨지 종이(245gsm)에 스크린프린트 모노타이프, 35.2x47.2cm ©디스위켄드룸

한편, 코로나19라는 국제적인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해 물리적 이동이 제한됨에 따라 작가는 온라인 네트워크를 이용한 시공의 이동을 통해 환경의 변화를 목도했다. 그는 온라인상에 떠도는 빈티지 포토를 찾아보거나 오래된 물건을 구매하는 일부터 스크린으로 접하게 되는 환경 변화를 목도하면서, 인류가 만들어 놓은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불안감, 공포감과 향수를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의 변화는 곧 구축하는 이미지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게 되며, 그의 작품은 더욱더 복잡다단한 상징물로 엮인 풍경으로 변해갔다.


박신영, 〈부활의 연금술〉, 2024, 레지온 스톤헨지 종이(245gsm)에 스크린프린트 모노타이프, 홀로그램 포일링, 44.5x35cm ©디스위켄드룸

가령, 2024년 디스위켄드룸에서 열린 단체전 《흔들리는 빛으로도》에서 선보인 작품들 속 인물들은 각자 다양한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었다. 이들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모를 여러 마리의 물고기를 벽에 매달거나, 아직 부화하지 않은 알들로 가득한 찬장 앞에서 무언가를 쓰고 그리거나,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계절이나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기 위해 애쓰거나, 영원한 순간을 향해 활을 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등장하는 다양한 동물과 곤충은 해결의 실마리로서 기능하거나, 인간의 욕심, 그로 인한 위기를 투영하는 도상으로써 그 과정을 매개하고 있다.


《모든 것은 사막으로 돌아간다》 전시 전경(디스위켄드룸, 2025) ©디스위켄드룸

한편, 2025년 디스위켄드룸에서 열린 개인전 《모든 것은 사막으로 돌아간다》은 박신영의 과거 모로코 기행을 바탕으로 그가 몇 년간 소화하지 못했던 기억과 감정의 잔여물을 살핀다. 소화의 과정에서 걸러진 흔적들이 작가의 조형적 규칙에 따라 시각화되고, 단순한 회상을 넘어 현재와 미래의 경험 속에서 그에게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사하라 사막, 아틀라스산맥, 대서양과 지중해 연안 등 다양한 지형으로 이루어진 모로코는 아랍, 아프리카, 유럽의 요소가 어우러진 독특한 정체성을 지닌다. 또한, 전통 의례와 축제가 살아있고 목축과 농업이 여전히 삶의 근간을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박신영, 〈사슬 속의 포옹〉, 2025, 종이에 실크스크린 모노타이프, 34.5x24.7cm ©디스위켄드룸

그곳에서 작가는 자연의 섭리와 더불어 지나온, 혹은 앞으로 마주할 이데올로기적 층위에 대해 자문했다. 그리고 사하라 사막의 모래를 밟으며 그는 생명과 소멸의 순환 과정에 직면한 개체들의 위기와 대처에 대해 생각하고, 이를 작업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눈병 걸린 고양이, 원피스를 입은 원숭이, 밧줄에 묶인 매와 뱀, 우리에 갇힌 사막 여우 등은 작가가 여행 중 목격한 대상들이기도 하다. 작가는 오직 수단으로써 이용되는 이들로부터 어린 시절 보았던 동물원의 물개, 교문 앞 장수가 팔던 형형색색의 병아리를 떠올렸다고 한다.


박신영, 〈살과 숨〉, 2025, 종이에 카보런덤, 잉크, 55.9x75.8cm ©디스위켄드룸

이렇듯 목적지 곳곳에서 촉발된 마음의 동요는 쉽게 휘발되지 않은 채 계속해서 그의 개인적 장면들과 연결되었다. 화면 속 대립하기도, 화합하기도 하는 인간과 동물의 모습은 기억의 퇴적층으로부터 꺼내어지는 과정에서 작가에 의해 번안된 결과물과도 같다.
 
그 밖에 모로코 페즈(Fes) 천연 가죽 염색공장의 가죽 빛깔을 흉내 낸 카보런덤 판화(〈빛과 모래의 노동〉, 〈살과 숨〉)와 ‘블루 시티’라 불리는 셰프샤오엔(Chefchaouen) 건물 양식에 착안한 입체(〈The Shelters〉) 작품은 실제 이미지와 유사한 모습으로 재현된다.


박신영, 〈여행자의 환상〉, 2022, 자작나무 합판에 실크스크린, 우드버닝, 우드컷, 유화, 잉크, 146.5x116.7x7.5cm ©디스위켄드룸

이러한 박신영의 작업은 단순히 추억이나 헌사를 위한 것이기보다 그곳에서 관찰한 것들을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상징물로 번안함으로써 현대 문명이 거세해 온 감각들과 자연과학적 설명에 의해 소거된 본능들을 소환한다.
 
또한, 다양한 매체와 재료를 혼합한 그의 작업은 감상자로 하여금 공감각적인 감상을 유도하는 데에서 나아가, 그러한 감각을 이미지와 결합하여 각자의 머릿속에 진한 잔상을 남김으로써 우리가 위치한 시공 너머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사건들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한다.

 "망막에 잠시 맺혔다 사라지는 이미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뇌에 침범하고 계속 머물며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습니다."    (박신영, 디스위켄드룸 인터뷰 중) 


박신영 작가 ©디스위켄드룸

박신영은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 영국왕립예술대학교에서 판화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모든 것은 사막으로 돌아간다》(디스위켄드룸, 서울, 2025), 《황금빛 태양 아래》(현대미술회관, 부산, 2020), 《장면: 운둔된 자아들》(사이아트스페이스, 서울, 2014)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언박싱 프로젝트2: 이동하는 갤러리》(뉴스프링프로젝트, 서울, 2023), 《거울보다 낯선》(디스위켄드룸, 서울, 2021), 《Re Collect》(서울대학교미술관, 서울, 2020), 《Sunny Art Prize》(Sunny Art Centre, 런던, 2018), 《Rage: The Odious Smell of Truth》(Hockney Gallery, 런던, 2017)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박신영은 Augustus Martin Prize(영국, 2018)를 수상하였고, 서울대학교미술관, KIAS고등과학원에 작품이 소장되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