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주(b. 1988)는 시간의 흐름, 빛과 어두움처럼 비물질적이고 비가시적인 형태를 회화의 언어로 감각함으로써 세상의 본질을 헤아리고 그 변모를 인지해 나간다. 작가는 익숙한 감각으로만 접근하는 태도를 경계하며, 자신의 근처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철저히 타자의 시선으로 접근하면서 찾고자 하는 대상의 움직임을 드로잉으로 기록하여 그 궤적을 담아낸다.


강동주, 〈155분 37초의 하늘〉, 2013, 캔버스에 유채, 각 22.7x15.8cm (156점) ©두산아트센터

강동주의 작업은 ‘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서 출발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으로서의 회화적 언어로 이어졌다. ‘어떻게 그리냐’의 문제에서 ‘무엇을 보느냐’의 문제로 연결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그를 둘러싼 세계의 ‘시간’과 ‘공간’을 인지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서, 작가는 ‘그리기’라는 행위를 통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의 본질에 다가가는 회화 작업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시간, 변화하는 계절과 날씨, 장소와 지형의 탈바꿈을 마주했을 때, 작가는 각 상황을 시각화하기에 유리하고 편안한 지지체와 드로잉 방식을 선택한다. 프로타주, 판화, 연필 혹은 흑연 드로잉과 채색 등 다양한 매체를 혼합해 세계의 생김을 충실하고 꾸준하게 재현해 왔다.


《창문에서》 전시 전경(취미가, 2018) ©취미가

이러한 미학적 방법론에 기초한 초기의 작업에서 강동주는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서울이라는 도시의 단면을 종이 위에 기록했다. 그의 첫 번째 개인전 《정전》(누하동 256번지, 2012)에서는 도시의 시간과 공간을 ‘빛’과 ‘먹지’라는 도구를 이용해 추적하고자 했다.
 
강동주는 전시 장소인 누하동 256번지의 유리창을 중간 지대로 삼으며, 매시간 유리창에 비춰진 맞은편 주택가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그 빛의 궤적을 먹지 드로잉에 옮겼다.
 
동시에, 작가는 유리창 뒷면에 덧붙여져 있던 나무판을 비가시성을 일으키는 가로막이의 접면으로 해석하며, 이를 뜯어내 전시 작품의 일부로 삼았다. 그리고 나무판을 철거하는 당일에는 그 판재의 표면에 조각칼과 망치로 그날의 풍경과 움직임을 아로새겼다.
 
이러한 강동주의 드로잉 작업은 가시성과 비가시성의 접면을 다루며,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도시라는 시공간의 구조를 드러낸다.


강동주, 〈324초의 달〉, 2013, 먹지, 250x122cm ©두산아트센터

이러한 탐구는 이듬해 OCI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부도심》에서도 이어졌다. 강동주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청량리, 영등포 등의 서울 부도심 지역의 밤 풍경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먹지와 캔버스 위로 기록했다.
 
모든 것들이 빛 아래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낯 시간대가 아닌 어두운 밤을 택한 이유는 시각적인 감각 뒤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감각을 발현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는 종이 아래에 먹지를 두고, 밤의 어렴풋한 빛들이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을 기록했다.
 
먹지는 그의 작업에서 밤이라는 시간의 풍경과 감성을 종이에 옮기기 위한 적절한 도구로 기능한다. 종이 드로잉에서는 빛을 검은 연필의 선으로 묘사하지만, 반대로 종이 아래 먹지에 빛을 그려나간 선들은 밝아진다. 빛이 부재한 어두운 밤에는 적은 양의 빛으로만 주변을 인지할 수 있는 것처럼, 그의 먹지 드로잉은 한 눈에 그 모습을 파악할 수 없이 어렴풋하게 남긴다.

《부도심》 전시 전경(OCI 미술관, 2013) ©OCI 미술관

전시에서 선보인 ‘빛 드로잉,’ ‘달 드로잉,’ ‘하늘 회화’ 세 연작은 실상 하나의 프로젝트로서, 부도심 지역을 관통하는 자동차 여행의 비디오 촬영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작가는 청량리 재개발 구역에서 출발해 영등포를 거쳐 다시 청량리에 도달하기까지의 동선을 계획하고 그에 따라 보름달이 뜨는 2013년 2월 25일 일몰시간인 6시 28분부터 승용차로 이동하면서, 좌우 거리의 풍경과 하늘의 풍경을 비디오카메라 석 대로 촬영했다.


강동주, 〈부도심-빛 드로잉〉, 2013, 종이에 연필, 30x122cm (26점) ©강동주

그 중, ‘빛 드로잉’ 연작은 좌우 거리를 촬영한 비디오 기록 가운데 왼쪽을 촬영한 기록을 보면서 그 빛의 궤적을 먹지로 옮겨 그린 결과로, 먹지 위에 놓은 백지에 직접 그린 드로잉, 그 이면에 전사된 드로잉, 먹지 드로잉, 이 세 가지 모두가 작업이 된다.
 
한 장의 종이 위에 멈춰선 순간마다의 이미지들을 먹지를 바꿔가며 그린 ‘빛 드로잉’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종이 위에 겹겹이 쌓여 중첩되어 보여진다. 이동과 시간에 따라 그려진 드로잉은 각각 다른 농도의 밤 풍경을 담고 있다.


강동주, 〈155분 37초의 하늘〉(세부 이미지), 2013, 캔버스에 유채, 각 22.7x15.8cm (156점) ©강동주

한편, ‘달 드로잉’ 연작은 좌측 거리를 촬영한 비디오 기록에 등장한 보름달을 좇아 기록한 결과물이다. 영상 기록 속에서 달이 등장하는 횟수는 모두 22회고, 등장하는 시간은 총 5분 24초다. 달을 옮겨 그릴 때, 1초의 등장 시간을 지름 0.33cm의 크기로 환산했다.
 
마지막으로, ‘하늘 회화’ 연작은 해가 지기 시작하는 시간부터 총 2시간 35분 37초 동안, 청량리 재개발 구역을 출발해 영등포를 거쳐 다시 청량리에 도달하기까지의 여행 과정에서 하늘만을 촬영한 영상을, 1호 크기의 캔버스 156개로 옮겨 기록한 결과다.


강동주, 〈324초의 달〉, 2013, 종이에 먹지, 180x122cm ©강동주

이렇듯 직전의 개인전 《정전》에서는 유리창을 매개로 빛을 새기는 작업을 선보였다면, 《부도심》에서 소개된 작업들은 새기는 감각과 지워 나가는 감각이 공존한다. 이로써 작가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서로가 서로를 반영하고 있는 관계의 장면을 포착하며, 익숙하지 않은 감각으로 익숙한 시공간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한다. 


《언젠가의, 그곳에 빛이 비추고》 전시 전경(에이라운지, 2022) ©에이라운지

한편, 2022년 에이라운지에서 열린 개인전 《언젠가의, 그곳에 빛이 비추고》에서 강동주는 그간 천착해 왔던 시공간을 기록하는 과정으로서의 드로잉 작업을, 물질화되지 않은 시간과 빛의 내적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방식으로 실행하였다.
 
전시는 창문을 본 뜬 ‘기대는 빛’ 연작과 ‘저기’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먼저, ‘기대는 빛’ 연작은 작가가 오랫동안 지냈던 공간인 집, 작업실 등지의 창문에 먹지를 대고 문지름으로써 유리 위에 남아있는 자국들을 평면에 옮기는 수행의 과정을 통해 완성되었다.
 
그는 창을 관통했던 빛의 자리를 종이 위에 기록함으로써 우리가 막연하게 그려왔던 빛의 이미지를 구현하고자 했다.


강동주, 〈기대는 빛(2017) #3〉, 2022, 종이에 먹지, 흑연가루, 아라비아 고무, 77.1x56.3cm ©에이라운지

작가에게 있어서, 빛은 어둠을 반증하는 물질이자 주변과 접촉하며 반응함으로써 내가 세상과 소통하고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매체로서 이해되어 왔다. 본 전시에서 작가는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빛의 작용을 이해하고 그 과정을 모사해 은유적으로 표현해보고자 하였다.
 
‘기대는 빛’ 연작이 시간이 누적되는 과정을 재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저기’ 연작은 강동주가 부여한 빛의 의미를 주제로 한다.


강동주, 〈저기 #6〉, 2022, 종이에 사진 전사, 흑연 가루, 35.8x54cm ©에이라운지

‘저기’ 연작의 화면에는 두 가지의 이미지가 병치되어 나타난다. 하나는 지난한 격리 기간 동안 부모님과 친구들이 보내온 풍경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가 무작위로 선별한 특정할 수 없는 장소의 땅을 먹지와 목탄으로 본 뜬 드로잉이다.
 
어딘지 모를 풍경의 단상과 강동주가 직접 접촉했던 땅의 이미지가 작가에 의해 조합됨으로써 두 공간은 지시될 수 없는 모호한 공간으로 변모해 실재하지만 빛이 닿지 않으면 인지될 수 없는 존재와 부재 사이 어딘가를 제시한다. 동시에, 이는 작가가 느끼는 공허와 추억 사이에서 생겨난 정서적 풍경이기도 하다.


《Cast》 전시 전경(아마도예술공간, 2025) ©아마도예술공간

이렇듯 강동주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공간과 그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대상을 반복적으로 관찰하고, 이를 ‘옮겨냄’이라는 신체적 행위로써 감각하고 현재화한다. 2025년 아마도예술공간에서 열린 개인전 《Cast》에서도 작가의 ‘수행’이 통과해내는 시공간과 그 장면의 속성이 드러난다.
 
《Cast》에서는 우리가 직접 마주할 수 없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거리를 거쳐 빛과 어둠으로 전해져 온 공간을 다뤘다. 달 표면의 세세한 얼굴, 찰나의 궤적으로 조우한 유성우, 텅 빈 어둠 속을 가득히 채운 은하들. 가시영역을 넘어 먼 시공간을 응시하려는 오랜 의지가 연장되어 마침내 마주친 이 장면들을, 작가 역시 긴 호흡으로 지켜보며 다시 스스로의 시공간으로 거쳐낸다.


《Cast》 전시 전경(아마도예술공간, 2025) ©아마도예술공간

그러나 《Cast》에서는 그의 신체와 행위 외에, 옮겨냄의 과정에 개입하는 ‘또 다른’ 시공간이 등장한다. 그 물질적 증거로서 등장하는 청색의 이미지들은 시아노타입(청사진)이라 불리는 초기적 사진(인화)술을 거친 것이다. 감광액을 도포한 면 위에 물체나 이미지를 올리고 자외선에 노출하면 빛이 투과한 영역은 푸르게, 차단된 영역은 밝게 남으며 대상의 형과 태가 청-백의 이미지로 맺힌다.
 
옮겨낼 시공간-대상은 이전과 유사한 방식으로 분절되어, 각각 약 하루의 시간 동안 그 날의 빛과 어둠의 변화에 노출된다. 예컨대 이미지 전체가 각 30개의 청색 면으로 나뉘어 있다면, 이는 대략 한 달에 거쳐서야 옮겨진 것이다. 전시에 나열되거나 중첩된 푸른 장면들이, 마치 각기 다른 농도의 염료로 물든 천들을 이어 붙인 얼룩덜룩한 조각보 같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강동주, 〈블루아워〉, 2025, 장지에 청사진 인화, 141x117.5cm, 《Cast》 전시 전경(아마도예술공간, 2025) ©아마도예술공간

시아노타입 과정에서는 빛의 세기와 노출 시간에 따라 상의 휘도와 음영의 깊이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옮겨질 시공간은 더 밝게(하얗게) 흐려지고, 반대의 경우엔 더 어둡게(푸르게) 선명해진다. 옮김의 시간이 흐르는 장소의 채광 조건이 바뀌어도, 혹은 계절이 바뀌어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장소의 사물들이 움직여 빛을 가리거나 빛에 길을 내준다면, 그 변화 역시도 푸르거나 흰 흔적을 남긴다.
 
다시 말하자면, 작가의 수행에서 대상이자 조건이었던 어둠과 빛, 낮과 밤, 계절과 시공간은 이제 스스로를 틀 짓는 작업의 주체가 된다.


강동주, 〈1시간 30분 35초의 땅(2014.5)〉, 2014, 종이에 연필, 각 23.5x16.5cm (36점) ©강동주

이처럼 영속할/사라질 대상을 계속해서 들여다 보려는 강동주의 작업은, 지금-여기에 존재한다는 감각을 남기고, 오롯이 현재에 가닿기 위한 시도다. 동시에, 작가는 보이지 않는 시간에 대한 복원 과정을 통해 드러난 대상의 이미지 너머에서 아직 닿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곤 한다.
 
이는 세상을 이해하고 대응하며, 소통하고자 하는 작가의 미학적 방법론으로, 강동주는 자신과 외부를 연결하기 위해 그 관계성을 부단히 기록함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가늠하고 그 소용을 모색하고자 한다.

 "그린다는 것은 때론 미래를 향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을 이루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가 손으로 쥐고자 했던 물리적 형태가 이끌어낸 정신적 가치는 무엇인지 전해진 이미지들 너머로 생각해 본다."   (강동주, 작가 노트) 


강동주 작가 ©에이라운지

강동주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조형예술학과 학사, 석사를 졸업했다. 개인전으로는 《Cast》(아마도예술공간, 서울, 2025), 《언젠가의, 그곳에 빛이 비추고》(에이라운지, 서울, 2022), 《창문에서》(취미가, 서울, 2018), 《서울》(두산갤러리, 뉴욕, 미국, 2016)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틸팅 그라운드》(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5), 《Open Corridor》(Interim, 서울, 2024), 《걷기, 헤매기》(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 2023), 《부기우기 미술관: 어느 정도 예술 공동체 - PORTRAIT OF》(울산시립미술관, 울산, 2023), 《미니멀리즘-맥시멀리즘-메커니즈즈즘》(아트선재센터, 서울; 쿤스탈 오르후스, 오르후스, 덴마크, 2022), 《그 가운데 땅》(아르코미술관, 서울, 2021), 《판화, 판화, 판화》(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0)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강동주는 2025년 제2회 아마도작가상, 2014년 제5회 두산연강예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