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ng Hyun, Untitled, 2001-2006 © Chung Hyun

김종영미술관은 예술가이자 교육자로서 평생 일관된 자세를 유지한 우성 김종영 선생의 뜻을 기려 젊고 유능한 예술가를 발굴, 격려하기 위한 사업으로 《오늘의 작가》전을 마련하였다.

미술관은 매년 두 명 이상의 자기세계가 분명하고 작업의욕이 투철한 작가를 《오늘의 작가》로 선정, 이들의 개인전을 마련해 줌으로써 1990년부터 우성 김종영 기념사업회가 시행하고 있는 ‘우성 김종영조각상’과 함께 한국조각의 발전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자 한다.

《오늘의 작가》는 조각분야에서 작업성과가 현저하거나 장래가 촉망되는 작가를 미술관이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기준을 통해 엄선한다. 이 제도는 젊은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고 이들에게 작품발표의 장을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으므로 후학의 양성에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기울였던 김종영 선생의 뜻에 부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올해 처음으로 개최하는 첫 번째 《오늘의 작가》인 정현은 철로를 받치는 침목(枕木)을 재료로 강인하며 견고한 인체를 표현함으로써 주목받은 바 있다. 침목은 그 성질에 있어서 조각의 재료로 적절치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그것을 전기톱으로 자르거나 표면에 선명하고 예리한 흠집을 내는 방법을 통해 인체의 기본적인 형태만 표현함으로써 인체조각의 전통을 바꿔놓았다. 정현의 침목조각은 비단 예상치 않은 재료를 사용했다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그 물질이 지닌 상징성으로도 관심을 끄는 것임에 분명하다. 이를테면 오랜 세월에 걸쳐 그 위를 지나쳤을 기차의 육중한 하중을 견뎌내며 비, 바람, 먼지, 기름때를 받아들인 침목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 ‘인내(忍耐)의 침묵’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번 《오늘의 작가》 전시를 준비하며 정현은 아스팔트라는 또 하나의 낯선 재료와 맞서고 있다. 석유 아스팔트로 불려지는 이 인공적인 문명의 산물은 유전에서 석유를 정제하고 남은 검은 색의 찌꺼기인 탄화수소화합물을 일컫는다. 접착력이 높지만 온도에 민감한 아스팔트는 도로포장이나 건축용 재료로 많이 활용되고 있지만 조각의 재료로 사용된 예는 드물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도로보수를 위해 포클레인 등으로 파헤친 아스팔트 덩어리를 수집, 그라인드와 같은 도구를 이용하여 자르거나 표면에 예리하게 절개된 자국을 내는 방법으로 누워있는 인체를 구성하고 있다. 몇 개의 덩어리가 모여 구성된 인체는 마치 ‘큰 바위 얼굴’처럼 자연 풍경에서 인간의 형상을 찾고자 하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의 작품은 시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특징이 있다.

위에서 내려다볼 때 누워있는 인간의 형태를 발견할 수 있지만, 자세를 낮춘 시점으로 보면 넓은 바다 위에 떠있는 바위섬의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체와 자연의 형태를 동시에 지닌 그의 작품은 침목으로 제작한 작품처럼 견고한 덩어리와 날 것으로서의 물질이 만들어내는 ‘생명의 형태’를 지향하고 있다. 비단 조각에서뿐만 아니라 드로잉에서도 정현은 활달하며 힘에 넘친 선과 색채의 대비를 통해 인간의 머리로부터 솟구치는 정신의 에너지를 표현하고 있다.

정현의 작품은 일면 거칠고 단순하지만 그것에서 스스로 생성되고 소멸하는 자연의 과정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정현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특성은 김종영 선생이 강조했던 “예술은 한정된 공간에 무한의 질서를 설정하는 것”이란 아포리즘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미술관은 정현이 김종영 선생이 추구한 세계와 그 정신을 계승한 작가로 판단한 것이다. 김종영미술관이 의욕적으로 마련한 《오늘의 작가》전이 한국조각의 발전을 위해 작은 역할이나마 담당할 수 있도록 많은 격려와 지도편달을 부탁드린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