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구, 〈내집사랑〉, 2009, 디지털 사진 인화, 100 x 200cm © 강홍구

"나는 지극히 무의미한 가짜 사진들을 만들고 싶었다. 미술 작품을 둘러싼 제도와 말과 이론들이 너무 짜증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사진들이 무의미하고, 공허하고, 황당무계하기를 바랐다."- 강홍구, 드라마세트/파편/위장

미술사와 제도의 틀을 벗어나서 기존에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모든 작가들의 바람이다. 그러나 선배들이 이미 모든 가능성을 탐구한 바 있고, 이제 미술사의 종말을 논하는 이 시기에 변화를 만들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게 보일 수 있다. 아무리 절실하게 노력해도 이미 세워진 체제에서 벗어나기는 힘들고, 차이를 만들려는 노력은 결국 다시 제도를 강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그러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사회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세상이 새로운 비전을 보여 주면서 작가의 여정을 계속하도록 부추기기 때문이다.

현대의 발명품인 사진은 이제 독자적인 예술 장르로 인정받을 뿐 아니라 현대의 삶에 주요한 시각문화로 자리잡았다. 기존의 아날로그를 대체하는 디지털이 등장한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디지털 사진은 현대를 반영하는 시각 이미지로 우리의 눈을 대체할 만한 기능을 맡았다. 90년대 초부터 스캐너를 사용하여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조작하면서 디지털 사진을 만들기 시작한 강홍구의 경우처럼 디지털은 미술제도의 틀을 벗어나 동시대에 맞는 표현 방법을 찾는 작가에게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몇년 간의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정리하고 화가를 꿈꾸며 미술대학에 진학한 강홍구는 처음에는 회화를 전공했지만 곧 광고나 영화스틸 이미지를 활용한 합성 사진으로 자신만의 작업방향을 찾기 시작하였다. 작가는 위대하고 독창적인 미술을 기준으로 내세우는 기존 미술 체계에 대한 저항으로 합성 사진을 시도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스스로를 천재 작가인 A급이 아니라 한급 떨어지는 B급 작가라고 칭하면서 그는 대중매체에서 빌어 온 이미지를 가지고 엉뚱하고 기괴한 가짜 사진을 만들었다. 

현실의 갈등들을 해결할 수 없는 무력감을 표현하기에는 손으로 그리는 수공적인 회화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들을 활용하는 편이 더 어울리고, 기계로 인화지를 출력해서 낱장을 벽에 꽂은 전시방식은 컴퓨터 사진의 가볍고 일회적인 특성을 강조했다. 초고속 근대화를 이룬 한국사회의 특수한 현실을 직접 겪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결합한 이 사진들은 작가의 첫 사진전시 제목처럼 '위치, 속물, 가짜'를 탐구하는 연작을 이루었다.

초기작을 이루는 스캐너 합성사진에서 초현실적으로 처리된 불길에 휩싸인 풍경들(〈인간이 나무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나 가부장제의 억압아래 괴물이 출몰하는 가정(〈행복한 우리집Home Sweet Home〉), 분단상황에 대한 공포가 일상에서 드러나는 장면 등은(〈전쟁공포Warphobia〉)은 갑작스럽게 피어난 경제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불안과 갈등을 드러내 보여 주고있다. 한편 작가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영화스틸 시리즈들은 노골적으로 폭력과 섹스를 남용하는 영화 속 주인공으로 자신을 연출하며 나르시시즘과 자기연민이 얽힌 드라마를 보여 주고 있다. 심각하고 엄숙하여야 할 미술은 싸구려 장르영화와 상업광고의 상투적인 장면으로 변환되고, 그 속에서 감독이자 주연인 작가는 고민과 절망들을 조잡하게 위조한 사진으로 삐딱하게 선보여 웃음거리로 만든다.(〈나는 누구인가Who Am I〉)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거칠게 만든 합성사진 이미지들은 실상 세련되고 고상하지 못한 우리 현실을 그럴듯하게 재현하여 보여 주고 있다. 스캐너로 여러 이질적인 요소를 결합한 초현실적인 몽타지풍의 연출 방식은 디지털 카메라를 손에 넣은 시점에서 점차 작가가 직접 촬영한 한국 사회의 풍경과 결합하며 현실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디지털 풍경사진으로 바뀌어 갔다. 그러나 이는 현실의 부조리함이 작가가 연출한 부조리함보다 더 크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변화이기도 하다.

디지털 카메라가 갓 상품화되어 대중에게 소개되던 시절, 부족한 용량 때문에 여러 사진을 이어 붙여서 만든 풍경들은 좌우로 긴 파노라마를 이룬다. 그러나 이 풍경들은 넓은 시야를 일관되게 포착하여 현실을 충실하게 재현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풍광들을 조각조각 이어 붙인 조합들이다. 작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전근대를 배경으로 시작해서 한 세대를 지나기도 전에 곧바로 정보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에는 건너뛴 시간과 공간을 반영하는 다양한 모순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강홍구의 디지털 사진에서 보이는 풍경들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진화된 인류가 지배하는 미래사회가 아니라 파시즘적 군사문화와 집단이기주의 같은 근대화 과정의 잔재들이 가라앉은 풍경들이다. 압축성장의 와중에서 자본주의와 상업화로 왜곡되고 삐뚤어진 현실은 보이는 대로 찍는 것이 아니라 파편들을 이어 붙여 위조한 사진에서 더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강홍구, 〈드라마 세트 8〉, 2002, 디지털 사진 인화, 100 x 340cm © 강홍구

일관되고 매끈한 표면을 유지하지 못하는 현실의 파편들을 조합한 디지털 사진은 현실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 주는 가장 적절한 방식이 될 수 있다. 서울 근교 개발제한구역인 그린벨트의 풍경을 찍은 사진들은 도심 속에 남은 마지막 자연의 보루라기보다 갑작스러운 개발열풍 속에서 뒤쳐진 쇠락과 노후의 흔적들을 보여 준다. 촌락을 중심으로 한 농경사회는 도시화의 필연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무너졌고 그 과정에 남은 잔재들은 녹색의 이상향이 아니라 회색조의 우울한 풍경을 만든다. (〈그린벨트Greenbelt〉) 가짜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의 풍광 속에서 "진짜 가짜"인 드라마 촬영세트는 역사와 맥락을 무시하고 세워져 실체없이 허울만 존재하는 배경막으로써 현실을 일깨워 준다. 현실과 가상이 뒤섞인 드라마 촬영 세트 위에 오려 붙인 인물들이 이루는 풍경은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가 한 공간에 담겨 있는 가짜 풍경의 허구성을 돋보이게 한다.(〈드라마세트Drama set〉) 

김포공항 근처 소음피해 보상지역이자 주민 이주 후 폐허가 된 지역인 오쇠리에서 찍은 사진에서는 경제개발의 희생양이 된 도시 근교에서 작가가 느낀 무력감이 절실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은 떠나고 쓰레기와 텃밭만 남은 동네의 지금도 진행 중인 비참한 사연을 알지 못해도, 색감를 조절하여 일부러 부조화하게 만든 풍경은 유령마을 특유의 음산함과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과거의 유령들을 느끼게 한다. 도시의 고층건물과 고속도로 밑에 숨은 어두운 그림자처럼 오쇠리의 황량한 풍경은 우리 사회의 발전상을 위해 버린 것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오쇠리 풍경Scene of Ohsoi-ri〉)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서도 우리의 주변을 이루는 환경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작가가 살고 있는 불광동 재개발 지역의 풍경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집은 더 이상 사람이 사는 주거 공간이 아니라 투기와 유랑의 장소가 되었으며, 북한산 자락을 끼고 옹기종기 모여있던 집들이 재개발을 위해 허물어진 풍경은 자연과 인공이 맞닥뜨리는 초현실주의적인 전쟁터가 된다. 산등성이를 따라 언덕을 파고들며 세워졌던 자그마한 집들이 다 허물어진 후에는 자연친화적인 환경과 참살이를 광고하며 하늘을 가리는 아파트들이 들어설 것이다. (〈미키네 집Mickey House〉, 〈수련자Trainee〉)

강홍구의 디지털 사진은 작가가 보고 느낀 시간과 기억과 역사가 얽힌 매끄럽지 않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디지털 사진의 왜곡을 통해서 일그러진 채로 보여 준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파편들은 견고하고 완벽한 풍경을 이루지 못하지만 실재감없이 가짜같은 현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상 이는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디지털 사진이 일상의 일부가 되고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미래를 지배하는 사회에도 사람의 마음과 주변의 환경은 아직도 우리를 잡아 끄는 무게를 가지고 과거의 모습과 갑작스러운 변화의 트라우마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화가 아직 진행 중 것처럼 21세기 정보화 사회라는 엄청난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풍경의 물리적인 실체는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으며 우리를 살고 있는 현실세계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강홍구의 디지털 풍경은 디지털로 포착한 풍경일 뿐 아니라 진짜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 사회의 만화경을 보여 주는 풍경이다.

가짜보다 더 가짜같은 현실을 대면하기 위해서는 엄숙하고 진지한 자세가 아니라 치고 빠지는 가벼운 접근이 더 유용하다. 작가 작업실 주변의 재건축 철거 현장에서 주은 게임 캐릭터 인형으로 연출한 폐허의 장면을 천하를 들썩이게 할 수 있는 수련자의 무공으로 비약시키는 강홍구의 사진은 세상의 변화와 제도의 견고함에도 불구하고 돈키호테다운 여정을 계속해 온 작가의 내공을 보여 준다. 90년대를 지나 계속되는 강홍구의 풍경연작들은 제도와 현실의 무게에 눌려서 고민하면서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는 작가의 자전적인 고백이기도 하다. 10여 년에 걸친 강홍구의 디지털 사진의 탐구의 결과인 이번 전시는 B급 작가가 결국은 A급이 된다는 속설의 또 다른 예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B급 작가가 찍은 디지털 풍경을 보여 주는 이번 전시가 기존의 미술에 대한 저항이 미술사와 제도 안에 통합되는 예정된 수순이라기보다 성실한 B급 작가가 지나쳐온 풍경을 가감없이 보여 주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