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우(b. 1994)는 소리와 조형을 엮어 만든 ‘소리-조각’을 통해 청각적 경험을 시각/촉각화 하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작가는 음악과 소음, 조각의 요소를 기호화 하고, 음악의 몸통 부분과 조각 안쪽의 빈 공간을 상상하며 음향적 사물을 제작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의 소리-조각은 소리를 물질적 경험으로 전이시키며, 감각의 경계가 확장되는 순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서민우, 〈small rock Generator_Harsh〉, 2023, 돌, 익사이터, 앰프, 아크릴, 150x135x125mm, 4'08"; 사진: 아인아 아카이브 ©서민우

서민우는 소리-조각을 제작하기 위해, 우선 일상 속 다양한 소리들을 수집하고 조합하여 청각적 산물로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를 직접 제작한 스피커로 송출하는데, 이때 그는 스피커를 일종의 내장 기관으로 보고 그 위에 또 다른 외피를 씌워 새로운 시공간에 설치한다.
 
관객은 소리를 듣기 위해 눈을 감고 집중하고, 때론 낯선 스피커를 마주하며 시각 중심의 관람 방식에 균열과 감각의 위계가 뒤섞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EarTrain_Reverse》 전시 전경(RASA, 2021) ©서민우

그의 첫 번째 개인전 《EarTrain_Reverse》(RASA, 2021)는 열차라는 공간의 경험을 가져와 소리의 ‘조형 가능성’을 실험하며 새로운 감각으로 인도하는 여정 속으로 관객을 초대했다. 《EarTrain_Reverse》는 청각 정보로만 공간감과 서사를 부여해 주는 가상의 열차로, 자신이 외부 환경에서 듣는 소리를 승객에게 들려주며 소리의 변주를 지속해 나갔다.

서민우, 〈열차 50-00, 50-08, 08-00〉, 2021, 혼합매체, 275x310x330 mm, 365x310x330 mm, 365x310x770 mm ©서민우

전시장 한가운데에 설치되어 있던 작품 〈열차 50-00, 50-08, 08-00〉(2021)은 전 객실을 관통하는 음향 환경 – 공간음 - 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관객이 듣고 느끼는 “청각 경관”을 변환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 열차는 특정 공간에서 들리는 소리의 질감과 속성을 강조하며 공간음을 조성하며, 이는 여행을 이어 나감에 있어서 공간적 ‘조형’을 상상하게 하고 감각을 증폭하는 역할을 한다.

서민우, 〈여행객 E&C〉, 2021, 헤드폰, mp3 플레이어, 가변 크기, 1’04 ©서민우

열차 한 켠에는 세 명의 여행객 〈여행객 E&C〉(2021), 〈여행객 A&C〉(2021), 〈여행객 H〉(2021)가 자리잡고 있었다. 여행객들은 음식이나 음료를 먹고, 헤드셋으로 음악을 들으며 각자의 여행을 이어 나간다. 이들 각자가 내는 일상적 소음들은 마치 ASMR의 팅글(tingle)을 연상시키며, 소리의 질감과 물성을 상상하게 만든다.
 
따라서 ‘여행객’ 시리즈는 소리를 파생시키는 사건을 일으키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타격음에서 시작되는 ‘팅글’부터 특정 환경에서의 소리 간섭까지를 포괄하는 ‘여행객’ 시리즈는, 소리의 구체성부터 음악적 가능성까지 아우르며 그것이 어떻게 서로를 구성하고 있는지를 가시화 한다. 


서민우, 〈여행담 E&C〉, 2021, 혼합매체, 300x300x410mm, 1’14 ©서민우

이와 함께 자리하고 있던 세 점의 조각들(〈여행담 E&C〉(2021), 〈여행담 A&C〉(2021), 〈여행담 H〉(2021))은 ‘여행객’들이 “EarTrain”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제작한, ‘소리-조각’ 형태의 소리 후기들이다. 이 조각 시리즈는 ‘여행객’의 다양한 소리들을 사물의 형태로 재조형한 것으로, 소리만을 재료로 하여 합성한 결과물이 음악의 화음과 같은 기능을 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며 소리의 ‘조형 가능성’을 역동적으로 탐색한다.


《이어캐비넷 earcabinet》 전시 전경(문래예술공장, 2022) ©서민우

이듬해 문래예술공장에서 열린 개인전 《이어캐비넷 earcabinet》은 작가의 소리 물성에 대한 일련의 실험을 드러내는 동시에 ‘Eartrain’ 시리즈의 여정을 수렴하는 전시였다. 전시이자 공연으로 진행된 《이어캐비넷 earcabinet》은 우리에게 익숙한 공연장의 문법과는 다른 음향 환경을 설정하고자 했다.
 
그의 전시는 잘 들리거나 완벽한 것이 아닌, 오히려 어떤 곳에서도 절대 소리를 완벽하게 들을 수 없는 공간, 즉 ‘손실의 공간’을 은유한다. 이에 따라 청자는 본래의 익숙한 청취 방식을 역행하여 작가가 사전에 설계한 손실을 따라 소리를 감각해야 했다.


《이어캐비넷 earcabinet》 전시 전경(문래예술공장, 2022) ©서민우

공간의 축을 이루는 것은 ‘소리-조각’이었다. 서민우는 소리가 매질을 통해 전달되는 부딪힘의 경로를 형태적으로 변형하여 각기 다른 음파를 만들어 냈다. 결과물은 곧 조각과 같은 조형으로 구현되는데, 이 조각은 소리를 위한 지지체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그 출력을 변환하는 과정 사이에 놓인다.
 
소리를 내기 위해 만들어진 그의 조각은 전적으로 그 내부에 위치한 - 작가가 직접 제작한 – 스피커의 진동과 진폭, 그리고 주파수의 원리에 의존한다. 스피커는 그 모형에 따라 각기 다른 소리를 출력하고, 그것이 조형되는 방식과 위치하는 곳에 따라 결과값을 달리하게 된다.
 
이렇듯 그의 소리-조각은 물리적 조형과 재료적 특질의 마찰에서 생겨나는 소리의 형상을 실험하며, 이때의 변주와 재구성은 기존의 문법을 거스르는 ‘청취 환경’을 만들어내어 소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가능케 한다. 


《구획들》 전시 전경(Hall 1, 2023) ©서민우

2023년 Hall 1에서 열린 개인전 《구획들》에서 서민우는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청취 환경을 구획된 소리-공간을 통해 실험하고자 했다. 공간, 사물, 그리고 신체와 부딪히며 이동하는 소리의 파동은, 초대하지 않아도 항상 예기치 않게 우리를 감싸는 감각적 공간을 차지한다.
 
이러한 소리의 공간적 수행에 주목하며 소리를 조형의 재료로 사용해 온 서민우는, 전시 《구획들》에서 구획을 통해 소리에 각자의 공간-영토를 만들어 주고, 영토 바깥으로 삐져나오는 변형된 소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구획들》 전시 전경(Hall 1, 2023) ©서민우

구획을 구성하는 재료인 나무, 철, 돌은 소리를 정형화된 공간 내에 붙잡음과 동시에 바깥으로 새는 소리를 고유한 물성으로 변환시켜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흘려 보내는 역할을 한다. 관객들은 전시 공간 내부를 돌아다니며 구획된 소리를 각각 감상할 수 있었으며, 또한 무작위로 흐르는 소리를 따라다닐 수도 있었다.
 
이와 더불어, 전시 공간 옆 드라이아이스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작업 소리가 이따금 개입하며 또 다른 예기치 못한 감상 환경이 조성되기도 하였다. 전시는 이러한 사방의 감각들을 거리낌 없이 환영하며, 공간의 안과 밖, 관객의 몸 안과 밖을 포괄하는 총체적 공간으로서의 청취 환경을 제안했다.


음반 《허물과 궤적: 나선형 수평계》 ©서민우

나아가, 2025년 아케이드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 《허물과 궤적》에서 작가는 ‘청취의 조건’을 세 차례의 과정으로 전개하는 실험을 선보였다. 음반(5월), 퍼포먼스(8월), 전시(11월)로 이어지는 이 구조는 소리를 단일한 청각 경험이 아닌, 시간적·물질적 사건으로 재배치하는 실험이었다.
 
우선, 이러한 실험의 기점인 음반 《허물과 궤적: 나선형 수평계》는 필드 레코딩을 통해 수집한 소리들을 쪼개고, 겹치고, 변형시켜 음악적 문법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배열한 결과물이다. 이때 작가는 소리를 감정의 매개나 서사적 장치로 다루는 대신, 소리 자체의 물질성과 시간성을 탐색했다.


《허물과 궤적: 궤적들》 공연 현장 사진 ©아케이드 서울

이후의 공연 《허물과 궤적: 궤적들》에서는 청취의 사건이 신체적 차원으로 확장되었다. 공연장 바닥 전체를 덮은 라텍스는 소리를 받아내는 동시에 기록하는 매체로 기능했다. 관객들은 그 위를 걸으며 밟고, 머뭇거리며, 각자의 흔적을 남겼다.
 
이때 발자국과 주름, 체중의 이동은 단순한 동선이 아니라 청취의 물리적 잔존물로 남는다. 이는 공연이 더 이상 귀로만 감각되는 것이 아닌, 발 아래의 압력, 표면의 마찰, 그리고 산만함과 긴장감으로 몸에 침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흔적이자 그 궤적이 된다.
 
또한 서민우의 공연에서는 기존 체계에서 배제된 영역들이 음악으로 불렸던 것과 함께 엉키며, 들리지 않았던 감각을 다시 불러온다. 이때 청취는 단순한 인식이 아니라 경험의 온전함이며, 경험함의 다른 궤적을 만들어 나간다.


《허물과 궤적》 전시 전경(아케이드 서울, 2025) ©아케이드 서울

프로젝트의 마지막 장인 전시 《허물과 궤적》은 앞선 앨범과 공연의 잔여가 공간 속에서 다시 재연되는 장소가 된다. 8월 공연장에서 사용된 라텍스는 수거되어 전시장으로 옮겨지고, 그 위에 남겨진 발자국과 주름, 흔적은 그대로 보존된다.
 
라텍스는 표면으로의 물질이 아니라, 청취의 사건이 남긴 허물이자 기록하지 않은 기록이다. 작가는 이 잔존물을 전시장 안에서 다시 배치하며, 소리의 부재가 남긴 물리적 흔적을 감각의 새로운 질서로 전환한다. 


《허물과 궤적》 전시 전경(아케이드 서울, 2025) ©아케이드 서울

이 전시에서 새로운 소리는 재생되지 않았다. 오히려 소리 이후 발생한 사건과 감각적 파편들이 서로 얽히며 새로운 청취의 구조를 만들어 냈다. 서민우는 완결된 형식 대신 현장성 속에서 감각 임시적으로 구성하고, 음악의 변두리에 있는 불안정한 소리들을 끌어들이며 감각의 생명력을 활성화 시킨다.
 
따라서 이 전시에서 청취는 특정한 순간이나 형태로 고정되지 않는다. 음향은 공간과 신체, 그리고 사유와의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떠돌아 다닌다. 여기서 모든 감각은 어떠한 우열을 따지지 않으며, 서로의 표면을 통과하고 동등하게 흔들린다.


《허물과 궤적》 전시 전경(아케이드 서울, 2025) ©아케이드 서울

이렇듯 서민우의 작업은 고정된 형식에 머무르기를 거부하며, 소리를 채집하고 재구성하는 과정, 그리고 음향을 담아내기 위한 사물의 제작을 통해 감각이 발생하고 남겨지는 방식을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다. 표면적으로는 음악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의 작업은 기존의 음악적 범주를 넘어서는 지점에 위치한다.
 
다시 말해, 그는 소리의 청각적 산물을 시공간 속에 배치함으로써 청취가 이루어지는 조건을 실험하고, 그 과정에서 감각이 어떻게 형성되고 조직되는지를 묻는 조형적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작업을 하다 나타나는 어떤 결함과 대립을 긍정하고 이들을 조율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서민우, 2025 아르코데이 인터뷰 중) 


서민우 작가 ©서민우

서민우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개인전으로는 《허물과 궤적》(아케이드 서울, 서울, 2025), 《구획들》(Hall 1, 서울, 2023), 《이어케비넷 earcabinet》(문래예술공장, 서울, 2022), 《EarTrain_Reverse》(RASA, 서울, 2021)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페리지 언폴드 2025 《Don’t Be Hasty》(페리지갤러리, 서울, 2025), 《코르크 가루를 위한 스코어》(시청각, 서울, 2025), 《토성의 고리》(부천아트벙커B39, 부천, 2024),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우란문화재단, 서울, 2024), 《Thick as Thieves: 돈독도둑》(팩션, 서울, 2023), 《Hovering》(2/W, 서울, 2018)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서민우는 음반  『허물과 궤적: 나선형 수평계』(2025)를 발매했으며, 2025 아르코데이 ‘프레젠테이션’ 작가로 참여하며 주목을 받았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