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s
《나는 이곳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2023.01.13 – 2023.02.25, 초이앤초이 갤러리
2023.01.12
초이앤초이 갤러리
Installation
view of 《How long have I been I here》 © CHOI&CHOI Gallery
초이앤초이
갤러리는 2023 년 1 월 13 일부터 2 월 25 일까지
정재호 작가의 개인전 《나는 이곳에서 얼마나 오랫동안》을 선보인다. 본 전시는 2020 년 쾰른 갤러리에서 열린 3 인전 《Moment to Monument》와 2022 년 베를린에서
열린 《Berlin meets Seoul》 단체전 및 서울에서 개최된 《FLOWER》 단체전에 이어 갤러리에서 열리는 작가의 첫 개인전이다. 한국 현대사의 잔재로 남아 있는 건물들을 한지와 캔버스에
사실적으로 묘사해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몇 년간 을지로를 배경으로 지속해온 작업의 신작들을
전시한다.
을지로는
한국의 급속한 성장기에 개발되어 역동적인 현대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지만 지금은 방치되고
낙후되어 점점 낡아가는 일종의 타임캡슐로 남았다. 이 구역의 건물들은 강력한 자본의 힘을 뒤에 업고 더 반짝이고 더 장황하고 더 현대적인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는 이 시대에도 주름이 가득한 노인의 얼굴처럼 여전히 살아남아 한 세대의 역사를 증언한다. 이 건물들은 혼란과 빈곤이 일상화되었던 과거를 방치하듯
바라보는 한국의 태도를 반영하면서 우리에게 콘크리트 벽 뒤 한때 머물렀던 삶,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인내했던 삶을 기억하라 말하고 있다.
작가는 이 사라져 가는 장소를 관찰하며 그 특성과 의미를 화폭에 담는 작업을 지속해왔고, 이러한 작품들을 이미 2020 년 참여했던 전시에 선보인 바 있다. 철거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건물들을 직면하며 정면의
구도로 그린 사실적인 그림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일종의 학구적인 아카이브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작업의 중심에 자리잡은 것은 가시적인 형태가
아닌 건물 하나하나에 스며 든 ‘삶의 체취’이다. 한 시대를 살아가던 이름 모를 인물들의 흔적을 담고자 한
작가의 그림은 그만큼 서정적이고 아련하다.
Installation
view of 《How long have I been I here》 © CHOI&CHOI Gallery
이러한
작업이 몇 년간 이어지며 을지로는 더 이상 관찰의 대상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어떤 장소는 그곳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이 있을 때 비로소 풍경이 된다.”라고
말하는 작가에게 이제 이 구역은 수 년을 함께 해온 동반자다. 작업을 시작할 때 중요시되었던 장소의
사회적인 특성, 기념비적인 상징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고, 그
자리에 작가 본인의 개인적인 사유들이 자리 잡아 섣불리 다룰 수 없게 되었다.
작가는 시대상을 포착하는 과제에서 점차 벗어나며 이 풍경을
제대로 그리고자 하는 회화적 재현 그 자체에 더 충실하게 되었고, 하루가 다르게 철거되고 사라져가는 풍경을 그리는 과정 또한 전과는 다른 절박함을 자아낸다. 철거를 앞두고 시간에 쫓기는 압박감을 달래고자 눈이 수북이
쌓인 겨울, 폭우가 쏟아지는 여름, 쨍한 햇빛을 머금은 일요일 아침 등 풍경과 함께했던 여러 시간들을 화폭에 영원히 담아보려 하지만, 매년 다시 돌아오는 계절과는 달리 이 풍경의 겨울은 이제
그림 속에만 존재한다. 점점 더 과거 속으로 멀어져
가는 풍경을 마주하는 작가는 이 장소와 함께한 자신의 몇 년을 직면하며 어느새 을지로에 스며
든 자신의 삶의 체취를 포착한다.
이
전시의 제목인 《나는 이곳에서 얼마나 오랫동안》은 작가가 20 여 년 전 그린 한강 부근의 풍경화에서 따온 것이다. 민족의 지나간 서사를 건축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기념하며 시작했던 일련의 작업이 지속되는 동안 이제는 그 건축물들마저 과거에
남게 되었다. 회화를 통해 잊힌 기억을 되살리고
과거에 파묻힌 것들을 재발굴하는 작가는 여러 해를 함께 해온 그 풍경에 애도를 표하며 과거로부터
지속되어 온 자신의 마음을 다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