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슬기는 시대를 횡단하는 대상의 현재와 그 서사를 흥미롭게 바라본다. 아크릴과 MDF, 석고 등을 재료로 동아시아 신화 속 동물인 용을 만들고 광장에 자리한 분수의 익숙한 도상들과 고대의
부조를 재형상화한다. 이때, 서로 다른 문화와 서사의 시간성이
교차된다. 일종의 ‘토템’으로
상정된 현재의 물질은 영적인 숭배 대상으로 올려지는 듯하지만, 쉴 새 없이 이미지를 투사하는 도시 문명의
지독한 가변성과 속도 등을 표상하며 별도의 이야기와 두께를 드러낸다. 작가의 손과 신체를 거친, 영원성과 초월성을 환기하는 현재의 물질과 형상은 오늘로 운반된 오랜 서사와 믿음을, 동시대 소비사회의 물신화된 상품의 위상과 기능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김혜원의 회화는 얼핏 디지털 이미지의 재현에 몰두하는 듯 보인다. 스마트 폰으로
찍은 사진을 그리는 작업은 드라마틱한 붓질이나 개인의 감정 표현을 최소화한 매뉴얼과 프로세스를 설정한다. 그림의
대상 역시 지하철역의 공중 전화기와 자판기, 시내버스의 내부처럼 액자에 들어가기에는 어딘지 평범하고
희미한 장면들이다. 하지만 작업은 디지털 사진의 픽셀이나 해상도와는 다른 회화의 표면과 물질, (심지어는) 사건을 드러낸다. 수채화로
이미지의 바탕을 잡고 과슈와 아라비아 고무액을 섞어 표면에 얹히는 과정은 그만의 회화적 (혹은 공예적) 형상과 층위를 만들며 재현과의 결탁을 해제한다. 그리고 그 해제는
색과 물성, 시점과 거리, 손과 신체의 움직임 같은 회화의
과정과 경험을 의식한다.
윤정의는 물질을 깎아 형상을 만드는 조각 행위와 덧붙이고 쌓아 올려 형태를 짓는 소조 행위를 아우르는 조소의 운용을 실험한다. 덩어리를 만드는 물질과 헤집고 썰고 뭉갠 흔적이 한데 엉켜 있는 조각은 그 대상과 과정의 나타남을 교란하며
주변의 잔상과 간극을 그러모은다. 인체의 부분과 전체, 평면과
입체, 작은 조각과 큰 조각을 왕래하는 작업은, 또 흙덩어리가
가마에서 소성되는 과정은 시차와 변형의 경위 자체에 주목하고 그것 그대로를 조각 행위에 포함시킨다. 전시장에
직립한 조각은 고정된 형상과 내용을 지시하기보다 내부와 외부, 뼈대와 살, 나와 대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완결된 상태에서 벗어나는, 녹아들고
변위하는 물질의 간극을 형상화한다.
이병호는 로댕의 방법론을 참조하며 하나의 오롯한 몸이 될 수 없는, 부분들로
조합된 인체 조각을 선보여 왔다. 또 기존 작품을 완성된 원본으로 두기보다 절단, 복제, 재조합하여 다른 작품을 만들어 내는 등 위 방법론을 신체뿐
아니라 작업 전반에 적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최근 디지털 복제와
3D 프린팅을 통해 더욱 확장되었는데, 작가는 2020년
이후 〈Eccentric Abattis〉를 위해 자신의 이전 작업을
3D 스캔하여 스케일을 조정하고 그 부분들을 떼어내 추상적 형태를 보여주거나 한데 뭉쳐 조합했다. 이번
전시의 〈Eccentric Scene〉(2023)에서는 역으로 3D 스캔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 이미 복제/조합된 – 신체를 다시 가져온다. 그리고
역시 스캔/조정된 덩어리에 조합하며 자기 방법론의 무한 서클을 재확인한다.
이소정의 회화는 서로 다른 세계를 (때론 모순적으로) 교차시킨다. 그간 작가는 먹의 우연적 효과를 배제하는 먹의 사용을
실험했고, 익숙한 기호에 자동 발생적 이미지를 포개 놓기도 했다. 최근
작업은 물감이 번지고 스며드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개인의 경험에 빗대며, 그것을 필연적 이미지로 되돌려 놓는다. 이전에 사용했던 종이를 먹에
적셔 화면에 찍어 우연을 복제하고, 아크릴 물감을 동양화 물감과 아울러 쓰며 형상을 정리한다. 밀랍을 활용해 화면 뒷면의 일정한 패턴과 앞면의 우연적 형상을 동시에 드러내기도 한다. 다양한 회화의 방식과 재료, 개념을 오가는 작업은 규정된 매체와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미지의 증식을, 확장하는 평면의 사태를 조율한다.
전혜림은 이전 회화의 도상과 구성 방식을 일종의 오픈소스로 채택한다. 이상화된
공간을 그린 중국의 산수화와 그리스의 아르카디아 풍경화를 비롯해 선명한 색조의 우키요에와 이발소 그림, 심지어는
만화 원피스까지, 전혜림의 회화는 특정 시대와 문화의 회화/방법을
환기시킨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개별 소스가 상정하는 필법이나 관념을 충실하게 따르기보다 그 자체를
차용하는데 주력하며, 결과적으로 못 그린, 무근본의 그림을
만들어 낸다. 재해석된 곽희, 구영, 티에풀로는 화면에서 작가의 선택에 의해 분해되고 초과의 시제 안에서 부활한다.
그렇게 작가는 각각의 소스가 가지고 있는 역사성을 시각적으로 지시함과 동시에 기존 위계와 위상을 배반하며 입체적 시간을 가늠해본다.
최수련은 흔히 고전이나 전통으로 여겨지는 대상들을 낯설고 기묘한 이미지로 등장시킨다. 동아시아
설화 속 선녀는 작가의 작업에서 다재다능하면서도 정숙한 여성이 아닌, 음산하고 때론 비애 가득한 인물로
나타난다. 이 밖에도 작가는 황당무계한 고전 설화를 성실하게 해석하고 필사하는가 하면, 즐겨봤던 (주로 중화권) 드라마나
영화의 장면과 대사를 베껴 그린다. 이를 통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전통적 이미지/서사의 구조를, 또 그를 지탱하는 고정관념을 생경하게 드러낸다. 작업은 한자와 고전 이미지/설화처럼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대상을
학습하고 모방하는 듯하지만, 보편적이고 당연한 것의 초시간성과 부조리함을 동시에 드러내 보이며, 결국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의 면면을 유령처럼 소환해낸다.
기획/글 권혁규
[1] 《언모뉴멘탈
Unmonumental》은 리처드 플러드Richard Flood, 로라 홉트만Laura Hoptman, 마시밀리아노 지오니Massimiliano Gioni가
공동 기획하였다.
[2] 전체 4부의 기획은
다음과 같이 전개되었다.
– 1. Unmonumental: The
Object in the 21st Century (2007.12.01.-2008.03.30.)
– 2. Collage: The
Unmonumental Picture (2008.01.16.-03.30.)
– 3. The Sound of Things:
Unmonumental Audio (2008.02.13.-03.30.)
– 4. Montage: Unmonumental
Online (2008.02.15.-03.30.)
[3] Richard Flood, Laura Hoptman, Massimiliano
Gioni, Unmonumental: the object in the 21st century (London; New
York: Phaidon in association with New Museum, 2007)
[4] 이와 관련해 평론가 로베르타 스미스는 《언모뉴멘탈 Unmonumental》이 완결된 형태나 유통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다와 초현실주의 등 반-미술 조류를 상기할 수 있다고 언급한다. 또, 매끈한 마감이나 스펙터클적 보여주기 방식이 아닌 거친 마감과 미숙함(Un
skill)을 드러내는 면모는 아르떼 포베라(Arte Povera) 등과 연결 지을 수
있고, 파운드 이미지 등을 활용해 복제하고 재조합하는 방식은 팝 아트와 연결해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Roberta Smith, “[Art Review: ‘UNMONUMENTAL’] In Galleries, a Nervy
Opening Volley,” NY Times (Nov. 30, 2007),
https://www.nytimes.com/2007/11/30/arts/design/30newm.html
[5] 《언모뉴멘탈
Unmonumental》을 기획한 큐레이터 중 한 명인 로라 홉트만은 해당 전시가 1961년 MoMA에서 당대 미술의 한 경향을 ‘아상블라주’로 집대성하여 보여준 전시 《The Art of Assemblage》 (1961. 윌리엄 자이츠William Seitz 기획)의 계보를 잇는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후에 홉트만은 MoMA에서 20세기
미술의 전통을 재발견하는 회화의 현재를 선보인 전시 《Forever now: Contemporary
Painting in an Atemporal World》 (2014.12.14.-2015.4.5.)를
기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