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문정(b. 1990)은 도시를 구성하는 다층적인 요소들 간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현상들을 작가 특유의 섬세한 시선을 통해 탐구해 왔다.
 
특히 작가는 도시 구성 요소들 중 인간을 제외한 건축물이나 자연, 주변 환경들을 ‘비인간’이라 규정 짓고, 그것들에 대한 리서치를 통해 작품이 비치는 공간, 즉 인간과 비인간과 연결 지점을 탐구한다.


황문정, 〈재활용 조경〉, 2016, 오브제, 식물, 테이프, 나무, 가변크기 ©황문정

이와 같은 작가의 관심사는 어린 시절부터 도시의 변두리에 머물렀던 경험과 맞닿아 있다. 그는 도심의 계획된 풍경을 동경한 적도 있었으나, 외곽에서 펼쳐지는 예기치 못한 공간의 변칙들, 이야기들에 더욱 눈길이 갔다고 말한다.
 
도시 외곽에 머물면서 보이는 식물, 동물에 관심을 기울여 온 작가는 2016년부터 도시에 거주하면서 도시와 비인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도시는 살아 남으려는 옛것과 밀려들어 오는 새것 사이에서 흥미로운 충돌이 일어나는 장소다. 특히 괴물처럼 증식하는 건축물들과 틈바구니에 섞여 있는 자연물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는 작가를 매료시키는 것 중 하나다.


황문정, 〈세 나무가 함께 사는 방법〉, 2016, 나무, 소나무, 흙, 가변크기 ©황문정

황문정은 장소를 구성하는 다양하고 다층적인 관계의 구조와 질서를 파악하고 기능의 형태로 시각화 한다. 다양한 서사에 기반을 둔 재료의 물성과 구도, 대상을 재해석하는 과정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한 프로젝트가 작업의 주를 이룬다.
 
도시 속 다양한 요소들 중에서도 황문정은 줄곧 비인간에 관심을 가져 왔다. 예를 들어, 그는 〈세 나무가 함께 사는 방법〉(2016)에서 도시의 식물이 거주하는 희한한 방식을 보여주고, 〈신선한 먹이 주기〉(2015)에서는 높은 곳에 둥지를 튼 새들에게 먹이를 운반하는 리프트를 가동한다.

황문정, 〈사이 넘어 사이_홍예문〉, 2017, 벽돌 타일, 가짜 식물, 시멘트, 나무, 페인트, 가변크기 ©황문정

또 한편, ‘사이 넘어 사이’(2014-) 시리즈에서는 도시의 돌과 그것으로 쌓아 올린 벽을 제작했다. 이 작업에서 황문정은 벽돌과 시멘트로 가상의 벽을 만들고, 그 뒤편에서 도시의 과거에 대한 짜집기된 이야기가 흘러나오게 했다.
 
인간보다 먼저 생겨나서 인간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돌과 벽은, 도시의 역사적 무의식을 저장하고 전달한다. 이러한 작업은 다양한 지역에 대한 아카이브 설치물로 확장되며, 각 도시의 기록과 작가 자신의 상상, 그리고 그것을 읊어내는 어떤 인물, 설정된 화자를 경유한다. 이로써 작품은 가상과 실재 사이를 가로지르며 유실된 공동의 기억이나 경험을 가시화 한다.

황문정, 〈AIR SHOP: 식물 마스크 시리즈〉, 2017, 혼합재료, 3050x1220x1900cm ©황문정

또한, 황문정은 〈AIR SHOP: 식물 마스크 시리즈〉(2017)에서 대기오염이라는 심각한 도심의 문제를 소비사회의 부조리한 상황에 반영해 영상, 설치, 퍼포먼스로 구성하였다. 이는 대기오염이 심화되면서 10년 전에는 비현실적인 상상으로만 치부되었던 산소를 사고파는 행위가 이루어지고, 각종 대응책이 쏟아져 나오는 오늘날에 대한 작가의 사유를 반영한다.
 
작가는 도시에 은밀하게 존재해 온 오염물질이 심각해짐에 따라 점차 가시화 되면서 사람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미디어는 이를 증폭시키며, 자본주의 시장은 상품을 쏟아내는 현상에 주목했다.


황문정, 〈AIR SHOP: 식물 마스크 시리즈〉, 2017, 혼합재료, 3050x1220x1900cm ©황문정

작가는 도시에 은밀하게 존재해 온 오염물질이 심각해짐에 따라 점차 가시화 되면서 사람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미디어는 이를 증폭시키며, 자본주의 시장은 상품을 쏟아내는 현상에 주목했다.
 
〈AIR SHOP: 식물 마스크 시리즈〉는 이에 대한 대응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공기정화식물을 이용해 인간의 심리적 공포,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원리를 드러내는 장치로서 제시된다. 여기서 그가 제작한 ‘식물 마스크’는 현대 유전공학과는 상관없이 공기정화식물을 방독면에 결합시킨 로우테크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상점처럼 연출된 공간 안에서 이 마스크는 과장된 방식으로 구매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오늘날의 홈쇼핑 방송을 연상케 하는 영상과 함께 획기적인 상품인 것처럼 홍보된다. 이처럼 작가는 개인과 사회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동시대의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방식으로 재배열하고 독특한 형태로 작업화 한다.


황문정, 〈무애착 도시_궤도〉, 2018, 단채널 영상 ©송은

그리고 2018년 송은아트큐브에서 열린 개인전 《무애착 도시》에서 황문정은 도시 생태계에서 펼쳐지는 서사를 전시 공간 전체에 담아내는 시도를 보였다. 먼저, 전시장 입구에 설치되어 있었던 〈무애착 도시_궤도〉(2018)는 현대 직장인들의 일반적인 옷가지가 회전문에 걸려 빙글빙글 돌기를 반복하는 영상작품으로, 옷의 반복적인 회전과 기계적으로 출퇴근을 반복하는 현대인의 형태가 오버랩된다.


《무애착 도시》 전시 전경(송은아트큐브, 2018) ©송은

이와 더불어, 전시장 내부에는 빌딩 외장재로 흔히 쓰이는 유리, 아파트 단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회양목, 도심 곳곳에 흐르는 작은 개천 그리고 가로등이 현수막에 사용되는 천에 프린트되어 공간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쪽 벽면에 널려 있던 붉은 벽돌 벽과 시선의 가장 먼 곳에 비스듬히 놓여진 아파트는 모두 풍선으로 제작되었다. 내재된 공기의 상태에 따라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풍선은 도시 생태계 안에서 각각의 요소들이 상호작용하여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양상과 맞닿아 있으며, 그 물성적 측면에서 작가 특유의 아날로그적인 표현 방식과 도시 풍경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이 돋보인다.


《무애착 도시》 전시 전경(송은아트큐브, 2018) ©송은

한편 송은아트큐브가 위치해 있는 삼탄 빌딩 건물 자체를 다룬 작품 〈무애착 도시_표본화〉(2018)는 삼탄 빌딩이라는 모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건축 재료들을 추출하여 한데 뭉쳐 조각화 한 것이었다. 위에서 작품을 내려다보면 바닥과 평면을 이루는 듯 하지만, 측면에서 보면 마치 바닥이 솟아올라 그 내부가 드러난 듯한 모양새를 띈다.
 
전시장 바닥의 원목, 벽면에 붙어 있는 화강석, 창문의 유리와 난간 손잡이를 이루는 황동 그리고 조경용 회양목까지 건물을 구성하고 있지만 쉽게 인식되지 않는 건축재를 작품화 하여 눈에 띄게 만듦으로써 요소 각각의 고유한 특성을 더욱 활성화 시킨다.


《무애착 도시》 전시 전경(송은아트큐브, 2018) ©송은

긴 세월 동안 제자리를 지켜 온 과거의 것들은 새로운 도시 계획으로 인해 한 순간 사라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것이 그 자리를 채운다. 그러나 이 새것 또한 옛것과 마찬가지로 언젠가 사라질 것들이며, 이러한 도시의 행태는 이제 너무나 익숙해져 오히려 그 양상이 반복되는 순간에도 우리는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다.
 
황문정의 ‘무애착 도시’는 이러한 행태가 조용히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됨으로써 우리 주변의 풍경을 재인식하게 하며 잊혀진 도시에 대한 애착의 흔적을 남긴다.


황문정, 〈비인간 지구〉, 2021-2023,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1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커미션 작품 ©서울시립미술관

이후 황문정은 관객 참여형 작업 〈비인간 지구〉(2021-2023)를 통해 도시에 존재하는 무수한 ‘비인간’ 존재들을 보드게임의 형태로 드러내기도 하였다.
 
그는 인간이 만든 도시 시스템이 무수히 않은 쓰레기, 바퀴벌레, 모기와 같은 곤충, 쥐, 잡초, 새 등과 같은 도시 곳곳에 퍼져 있는 비인간을 소멸시키려 하지만 인간보다 수명이 길거나 강한 번식력을 가졌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고 다시 인간의 눈앞에 나타난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황문정, 〈비인간 지구〉, 2021-2023,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1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커미션 작품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비인간 지구〉에서 관객들은 게임 테이블 위에 축소된 도시를 내려다보게 되며, 이때 ‘도시를 깨끗이 청소하세요’란 주문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관객이 비인간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 세계로 제거하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존재들은 사라지지 않고 지상 도시로 다시 올라오게 되면서 인간이 공존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임을 인지하게 된다.


《유사 도시 표본》 전시 전경(TINC, 2022) ©황문정

한편, 2022년 TINC에서 열린 개인전 《유사 도시 표본》에서 황문정은 도시 속에 잠재되어 있는 비인간 존재들의 비가시적 속성을 반전시키는 작업을 통해 그 이면의 풍경을 펼쳐 보이고자 했다. 이러한 작업은 큰 폭우 사태가 발생한 어느 날 순식간에 들이닥친 물에 의해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던 것들이 위치를 이탈하고 역류하는 것을 목격한 데서 출발했다.
 
이때 그는 우리의 인식 저 너머로 잊혀졌던, 마치 투명하게 보였던 존재들이 이따금 교란되는 도시 체계로 인해 강렬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현상에 주목했다. 이를 계기로, 황문정은 우리의 생활반경 안에 존재하지만 일상적으로는 인지되지 않는 비인간들을 포착하고 이들로 이루어진 유사 도시적 형태들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유사 도시 표본》 전시 전경(TINC, 2022) ©황문정

이러한 맥락에서 전개된 전시 《유사 도시 표본》을 통해 작가는 도시의 안팎에 서식하는 비인간 존재를 유사 채집 구조로서 재구성하였다. 그가 ‘유사 도시’의 표본으로 제시한 도시 바깥으로 밀려 난 비인간 종, 주변부에서 기생하거나 죽은 채로 남겨진 생물종, 상품에서 쓰레기로 역류한 사물의 파편들은 도시의 엔트로피 회로에서 억압되고 은폐된 존재들이다.
 
이때 그는 ‘비위생’이라는 혐오, 비인간 존재에 대한 부정과 이를 도구화 해 왔던 인간 중심적 사고관을 폐기하고, 이들을 생물학적 존재로서 바라보기를 시도했다.
 
황문정은 이러한 존재들이 가진 비가시적 속성을 관찰하고, 이를 유사 표본의 형식으로 기록해 기계적 몸체로서 연결하는 과정을 통해 도시 자본의 바깥에서 살아가는 비인간 존재와 대항적 삶의 가능성에 주목하게 한다.


《AFTER FLOW》 전시 전경(온드림 소사이어티, 2023) ©황문정

이어서 2023년 온드림 소사이어티에서 열린 개인전 《AFTER FLOW》에서 황문정은 기후위기로 인한 돌발성 폭우를 빈번하게 겪으며 관찰한 물과 도시의 비인간들이 결합하며 발생하는 다양한 양상을 작업의 형태로 풀어나갔다.
 
인간의 사적인 공간에 은밀하게 침투하는 것부터 도시 체계에 균열을 발생시키기까지 물은 끊임없이 이동하며 광범위한 작용을 일으킨다. 또한 순환을 통해 인간의 의식에서 벗어나 있던 도시 내부의 비인간들과 접촉하고,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한다.
 
작가는 이로 인해 지하세계에 은둔해 있던 비인간 존재들이 홍수처럼 범람하며, 영원히 접촉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서로 다른 개체들이 충돌하는 이례적인 현상들에 주목했다.


황문정, 〈아쿠아 바운드〉, 2023, 천, 돌, 점토, 가변크기 ©황문정

이러한 현상 안에서 다량의 물은 자연물과 인공물을 혼합하여 한 덩어리로 만들고, 지하층에 있던 식물들의 뿌리를 뽑아 지상으로 건져 올린다. 또한 하수구에 쌓여 있던 쓰레기를 역류시키고, 콘크리트를 해체하여 내부에 있던 흙을 끄집어 내어 지상과 지하의 경계를 흐린다.
 
한편, 소량의 물은 은밀히 침입하여 비인간의 몸통을 관통해 물성을 바꾸거나 외부에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가령, 수증기의 형태로 공간을 떠돌고 있다가 곰팡이, 유리와 같은 투명한 존재와 접촉하여 이들을 불-투명화 시키기도 한다.


황문정, 〈리퀴드 보드〉, 2023, 단채널 영상, 4분 33초 ©황문정

이처럼 물의 힘으로 원위치를 이탈한 도시의 비인간들은 마치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한 것처럼 새롭게 재구성된다. 작가는 이 개편된 세계 안에서 이들은 또 다른 속성을 획득하고 확장된 네트워크에 편입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서, 황문정은 도시 공간을 이루는, 그러나 눈에 띄지 않는 존재들을 물의 흐르는 속성과 함께 결합시켜 그 스펙타클한 네트워크의 현장을 전시장에 구현하였다. 작품의 형태로 다시금 수면 위에 올라온 비인간 존재들은 인간 세계의 공식 아래 ‘질서 속 존재’라는 제약에서 벗어나, 역으로 인간 세계의 경계를 침범하여 기묘하고 미스터리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가 될 가능성을 내포하게 된다


황문정, 〈지구에서 온 자들〉, 2024, 혼합재료, 가변설치 ©서울시립미술관

이렇듯 황문정은 인간과 비인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도시 시스템에 대한 관찰을 지속해 오며, 화려한 도시 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현실과 마주할 수 있는 작업을 제작해 왔다.
 
그의 작업은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에 존재하지만 우리의 의식에서 벗어나 있는 존재들이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와 접촉하고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포착함으로써,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난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에 대한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나는 도시의 살아 남으려는 옛 것과 밀려들어오는 새 것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충돌 ,특히 괴물처럼 불어나는 건축물들과 틈바구니에 섞여 있는 자연물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에 주목한다.”    (황문정, 작가 노트) 


황문정 작가 ©인천아트플랫폼

황문정은 서울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글래스고 예술학교(Glasgow School of Art)에서 Masters of Letters of Fine Art Practice 과를 졸업했다. 개인전으로는 《AFTER FLOW》(온드림 소사이어티, 서울, 2023), 《유사 도시 표본》(TINC, 서울, 2022), 《무애착 도시》(송은아트큐브, 서울, 2018)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협업의 기술》(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4-2025), 《제9행성》(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서울, 2024), 《제23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서울, 2023-2024),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 2022 《미래도시》(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22), 《블루 플래닛 - 바다》(아트스페이스 보안, 서울, 2022), 《포스트휴먼 앙상블》(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 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황문정은 인천아트플랫폼(2017),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16), 웨스트버리 아트센터(2015)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