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성(b. 1989)은 신체의 존재 감각을 환기하고 서사적 가능성을 불러일으키는 입체 작품을 선보여 왔다. 가상과 실재가 모호하게 뒤섞이고 급속도로 디지털화 되어 가는 세상에서 이유성은 조각과 실재 공간의 풍부함, 손으로 만지는 재료의 촉각적 경험에 전념한다.


이유성, 〈주전자 여인〉, 2024, paint on FRP, 171 × 65 × 35 cm ©이유성

이유성은 목재, 점토, 금속, 종이, 레디메이드 오브제, 직물, 실 등 다양하지만 이질적인 재료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충돌시키듯 혼합하고, 제작의 과정에 내재된 촉각적 특성을 강조한다. 특히 고전 조각의 계보를 수용하지만 동시에 동시대적 감각을 불쑥 끼워 넣으면서 흥미로운 시각 언어를 구축하고 있다.


《플로피 하드 컴팩트》 전시 전경(175갤러리, 2016) ©이유성

그의 첫 번째 개인전 《플로피 하드 컴팩트》(175갤러리, 2016)에서는 플로피 디스크, 하드 디스크 등의 기억 장치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과 인상들을 회화와 목재 조각으로 풀어냈다.
 
그는 자신의 기억 장치 안의 데이터들을 하나씩 살펴보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유희하고, 기억하고, 화를 내고, 믿고, 슬퍼하고, 뭔가 만들어내던 모습들을 깨어진 조각들로서 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곧 모여 있는 기억과 인상들을 기록, 수집, 나열, 응축 혹은 탈락시키는 과정과 방식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플로피 하드 컴팩트》 전시 전경(175갤러리, 2016) ©이유성

이유성은 작업 과정에서 사적인 강박들을 기꺼이 응용해 기억의 해상도를 높이고자 했다. 이때 그는 메모리를 압축해 가상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오늘날의 기억 방식이 아닌 손의 감각을 통해 기억에 대한 조각들을 하나씩 오랜 시간동안 기록하고 그 몸체를 만들어 내는 방식을 택했다.
 
이러한 시도는 물질과 비물질의 관계에 대해 재고하게 하며, 현재 부재하는 순간이나 존재에 대한 추상적인 기억의 외형을 어떻게 상상하고 감각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제인》 전시 전경(위켄드/투더블유, 2019) ©이유성

이유성의 ‘기억’에 대한 탐구는 2019년 위켄드/투더블유에서 열린 개인전 《제인》에서도 이어졌다. 과거로부터 파생되어 현재에 닿는 이미지들이 가지는 구조와 영향력에 중심을 두고 그것을 가시화 하는 작업을 이어오던 작가는, 본 전시에서 ‘제인’이라는 이름에 엉켜 있는 유동적인 이미지들을 하나의 추상적 묶음으로 만들고 형태를 부여했다.
 
첫 번째 개인전은 ‘기억’을 주제로 그 추상적인 속성에 대해 다루었다면, 두 번째 전시 《제인》의 주제 의식은 ‘실제 인물의 삶과 몸’으로 구체화 되었다.


《제인》 전시 전경(위켄드/투더블유, 2019) ©이유성

전시를 이루고 있었던 이미지들은 피어싱, 야자수나 사막이 그려진 엽서, 야생화, 성조기가 그려진 모자, 어딘가 낙관적인 느낌을 주는 두툼한 영어 타입페이스들과 같은 구체적인 대상에서 시작하여, 오브제에 이미지로서 분명히 등장하거나 은밀히 암시되고 있었다. 이유성은 이 구체적 대상들을 ‘제인’에 의해 “간접적으로 각인되었으며, 지금까지 (작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밀레니엄 시기 미국의 이미지들”이라 일컫는다.
 
또한 “잘리고, 뿌려지고, 들어올려지거나 접히다시피 한” 오브제들이 제시하는 이미지는 시각적으로 뒤엉켜 있으나, 촉각적으로는 명료하게 다가온다. 우드 크래프트와 영어 폰트들이 연상시키는 두께감, 아크릴과 스테인리스 스틸이 유발하는 뾰족함은 보는 이들에게 시각적 재현을 넘어 촉각적인 경험을 유도한다.


이유성, 〈Pierce〉, 2019, 나무, 스테인리스 스틸, 귀걸이, 30 × 25 × 39 cm ©이유성

《제인》은 이유성이 회화에서 조각으로 매체를 전환하기 시작한 과도기적인 전시였다. 당시 작가는 부조를 ‘벽에 거는 회화’라고 칭하며, 손에 익은 회화의 형식을 응용해 캔버스와 패널의 나무 프레임에 글자와 기호를 새겼다.
 
한편 이와 함께 선보인 환조는 신체 일부에 공산품을 결합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는 소비 사회 속 파편화된 현대인의 삶을 ‘하이브리드 신체’로 은유했던 작가의 관점이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이처럼 이유성은 동시대의 시스템 속 인간의 삶과 존재에 대해 고민해 온 작가는 점차 ‘인체’로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유성, 〈쿠로스〉, 2021, 나무, 알루미늄, 철, 180 × 65 × 7.5 cm ©이유성

이러한 관심은 곧 신체의 동세를 조각하거나 사물의 신체성을 탐구하는 작업으로 연결되었다. 예를 들어, 2021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단체전 《트랜스포지션》에서 선보인 일련의 ‘트렁크’(2021) 작업은 인체의 실제 사용을 대비한 스케일(아마도 테이블이 될 뻔한)로 재단되어 있던 3개의 두터운 나무판을 신체로 인식해 보는 실험을 담고 있었다.


이유성, 〈스피돈나 (봉합선이 선명한)〉, 2021, 나무, 알루미늄, 천, 30 × 36 × 33 cm ©이유성

이 작업에서 작가는 윤곽의 바깥-골조-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내부의 세 가지의 공간으로 나누어 신체를 인식해보고, 재료가 이미 갖고 있는 동세, 윤곽 그리고 밀도의 한계를 존중하며 미미한 볼륨부터 높은 부조까지 흩뿌리듯 기입해 나갔다. 그리고 이를 다시 뼈와 피부, 피부 표면 아래의 구성으로 상상하며 조각의 신체와 신경에 나무 고유의 재질을 접합했다.


《카우보이》 전시 전경(아트스페이스 보안, 2023) ©아트스페이스 보안

나아가 2023년 아트스페이스 보안에서 열린 개인전 《카우보이》는 인체의 상징과 형상에 대한 탐구로 작업적 폭을 넓힌 결과로서의 전시였다. 이유성은 실존하는 타인의 몸을 석고붕대로 주재료로 떠낸 다음 그 틀을 자르고 봉합하고 다시 세운 입상 5점과 자신의 몸 부분을 직접 본뜬 알루미늄 파편을 불완전하게 재결합해 뉘어 놓은 조각 설치 1점으로 이 전시를 구성했다.
 
그의 전작에서부터 어떠한 신체적 특성(체적, 뼈대, 동세)으로 읽힐 수 있는 요소를 통해 신체성에 대한 조각적 탐구가 나타나긴 했지만, 실제 인체의 형태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전신을 구현하는 방식이 구현된 것은 이 전시가 처음이었다.


이유성, 〈계곡〉, 2023, 석고 붕대에 채색, 철사, 실, 나무, 165 × 50 ×40 cm ©이유성

이유성은 신체를 사물의 집합체로 보고 ‘껍질’과 ‘봉합’의 방법론을 도입하였다. 과거에는 사물과 오브제를 이어 붙여 ‘사물화된 인간’을 조각했다면, 이 전시에서는 마치 사물을 조립하듯 다양한 면으로 나누어진 인체의 파편을 겹치고 엮어 전신상을 완성했다.
 
이때 작가는 대형 캐스팅 작업을 하기 전 간이 캐스팅에 사용하는 재료인 석고 붕대를 주재료로 활용하였다. 얇은 석고붕대로 덧씌운 타인의 살갗 위를 연신 두드리고 문지르고 덮는 과정을 거듭하며 살과 근육의 형태가 정교하게 찍힌 얇고 연약한 ‘껍질’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유성, 〈신부〉, 2023, 석고 붕대, 나무, 철사, 천, 180 × 45 ×40 cm ©이유성

이렇게 만들어진 껍질은 부재하는 몸의 자국이 되며 ‘유령’으로서의 몸 이미지에 대한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한편 이 작업을 위해 그가 탐구한 인체 형상은 석고 붕대가 주는 임시성과 전혀 다른 시공간의 전형성을 내포하는 것들이었다. 도나텔로의 다비드상, 비욘세의 퍼포먼스와 의상, 바티칸 박물관의 천사상, 불교 전통의 약사여래상, 앙리 마티스의 ‘등’ 부조, 미라의 관이 이 껍질들의 유령적 원형이었던 것이다.
 
조각적 규범으로서의 이 인체 형태들은 실존 인물의 몸과 겹쳐져 ‘껍질’로 캐스팅되는 과정에서 수수께끼처럼 반영되거나 지워지게 된다.


이유성, 〈달걀껍질〉, 2023, 알루미늄, 철사, 55 × 170 ×28 cm ©이유성

이렇게 그의 작업은 존재가 소거된 후 발생하는 몸, 즉, 죽음 이후의 몸 또는 사물로서의 신체의 문제를 건드린다. 과거부터 시체는 물건이기에 성스러움을 가진다고 여겨졌으며, 살아있는 인체 또한 조각으로 제작될 때 신성화 되어 왔다.
 
한편, 작가가 작업실을 방문한 가까운 친구들의 손, 발, 얼굴을 가볍게 떠내 봤던 “사소한 의례”에서 비롯된 ‘껍질’이라는 조형은, 이 전시에서 한 사람의 신체 구조와 행위 조건을 바탕으로 몸 이미지를 조각내는 작업 언어가 되었다.
 
파편이 된 몸은 전신과 비교했을 때 온전한 신체로 보게 하기보다는 사물로서의 몸을 인식하게 만든다. 인격적인 것을 상실했을 때, “그렇게 만들어진 텅 빈 껍질”로서 몸은 우리로 하여금 그 껍질 아래 인간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며 인간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Epitaphs》 전시 전경(TSA NY, 2023) ©두산아트센터

한편, 같은 해 뉴욕 TSA에서 열린 개인전 《Epitaphs》에서 이유성의 조각은 사라질 것이 당연한 신체와 기억을 의미심장하게 축약하고 새겨 넣은 일종의 ‘비문(죽은 사람들을 위해 새겨진 문장)’으로 등장한다.
 
‘비문’은 외마디의 탄식처럼 무척 간결하지만 떠난 사람이 맺어온 관계들을 유추할 수 있는 다양한 기억을 불러내고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시간에 대한 감정을 불현듯 생생하게 만든다.


《Epitaphs》 전시 전경(TSA NY, 2023) ©두산아트센터

단단한 물질에 자국을 내거나 이질적인 기호와 재료를 충돌시키며 세워진 이유성의 조각은 작가 개인의 서사와 동시대 안에서 변화의 속도를 겪어내는 사람들 공동의 신체적 기억과 감각이 두서없이 서로를 호명하고, 현재로 데려오게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렇듯 이유성은 과거와 현재를 경유하며 기억의 충동을 일으키는 요소들을 조각이라는 매체를 통해 다뤄왔다. 그리고 이때 그는 ‘신체’를 개개인의 경험을 통한 감정, 또는 감각이 새겨진 기표로 인식하며, 이를 매개로 동시대적 감각을 환기시키고 급변하는 사회 시스템 안에 놓인 우리 신체 존재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나의 조각 안에서는 늘 인지가능한 정도의 물질적인 이물감이 존재했으면 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다양한 이질감이 공존하는 것이 온전한 상태이듯 말이다.”   (이유성, 하퍼스 바자 인터뷰 중) 


이유성 작가 ©Woojae

이유성은 홍익대학교 회화과 학사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 과정을 졸업했다. 개인전으로는 《Epitaphs》(TSA NY, 뉴욕, 미국, 2023), 《카우보이》(아트스페이스 보안3, 서울, 2023), 《제인》(위켄드/투더블유, 서울, 2019), 《플로피 하드 컴팩트》(175갤러리, 서울, 2016)이 있다.
 
또한 작가는 《Ringing Saga》(두산갤러리, 서울, 2025), 《말하는 머리들》(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5),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큰 사과가 소리없이》(창원 동남운동장, 창원, 2024), 《Open-Hands》(갤러리현대 x Commonwealth and Council, 서울, 2024),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일민미술관, 서울, 2024), 《Sometimes it sticks to my body》(WESS, 서울, 2023), 《Memory of Rib》(N/A, 서울, 2022), 《트랜스포지션》(아트선재센터, 서울, 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이유성은 2022년 서울시립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 입주작가로 참여하였으며, 2023년 SeMA 신진미술인에 선정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