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재(b. 1993)는 자연의 개념이 이미지로 가공된 상태를 회화로 다루고 있다. 특히, 그는 자연을 만지고 소유하기 위해 표본화하는 행위에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 개인의 욕망과 딜레마를 발견하고, 이를 회화적으로 탐구한다.


임희재, 〈HLN004〉, 2016, 캔버스에 유채, 130.3x162.2cm ©임희재

임희재는 박제된, 재현된, 그리고 정지된 생명체를 시공간과 생태적 맥락에서 분리해 유리막 너머에 전시하는 방식에 주목해 왔다. 움직임을 품고 고정된 상태로 전시되는 자연의 이미지로부터 삭제된 시공간을 상기하고, 이를 소비하는 태도를 동시대의 불완전한 이미지와 이미지 소유의 욕망으로 연결 짓는다.
 
또한 대상을 회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납작한 화면 위로 옮겨지고, 또 유리막을 경유하면서 변형과 왜곡이 일어나는 지점에서 정지된 이미지의 유동성과 확장의 모순된 가능성을 찾는다.


《Noli Me Tangere》 전시 전경(갤러리도스, 2017) ©임희재

2017년 갤러리도스에서 열린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 《Noli Me Tangere》는 이러한 유리막 사이로 보여지는 가공된 자연의 세계를 주제로 이루어졌다. 특히, 이 전시에서 작가는 다큐멘터리 영상 속 동물들이 보여주는 생존의 장면들에 주목했다.

임희재, 〈MNK001〉, 2017, 캔버스에 유채, 130.3x162.2cm ©임희재

임희재는 텔레비전의 유리막 너머로 펼쳐지는 생존의 현장은 “화면 안의 압도적인 몰입감에도 불구하고 현실감을 상실한 연극무대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그는 그 안에 담겨진 자연의 모습이 원초적인 본연의 모습일 것이라 기대하곤 하지만, 사실 반사된 표면 뒤에 있는 이미지는 사람의 손길을 거쳐 탄생한 가공된 것들이란 점에 주목했다.


임희재, 〈HLN005〉, 2016, 캔버스에 유채, 112.1x193.9cm ©임희재

임희재는 자연을 더욱 자연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한 연출 장치들 중에서도 포식자와 먹잇감에 대한 만들어진 서사에 이입하기를 유도하는 시각적 장치에 주목하며, 이를 회화라는 이미지의 맥락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그는 텔레비전의 화면처럼 가공된 틀과 달리, 캔버스는 “이미지가 단순한 미끼나 장치가 아닌 인상 그 자체로 기능할 수 있는 안전망이 되어준다”고 보았다.


임희재, 〈MOB003〉, 2016, 캔버스에 유채, 162.2x260.6cm (2pc) ©임희재

작가는 다큐멘터리 속 동물들이 보여주는 생존의 한 장면을 캔버스 위에 재현하되 의도적으로 형체를 깨트리고 흐려지게 함으로써 그 정체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화면의 이미지는 하나의 인상으로 더욱 강하게 다가오게 된다.
 
그리고 이 인상은 물감과 캔버스라는 물리적인 형태를 만나 기능하지도 흡수하려 하지도 않는 상태로서 관객과 마주하게 된다. 이는 곧 보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며,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일부분에 불과했던 장면은 작가의 손길을 거쳐 다양한 이야기를 지니게 된다.


임희재, 〈이층표본〉, 2019, 캔버스에 유채, 162.2x130.3cm ©임희재

이렇듯 임희재는 평면의 캔버스 화면과 살아있는 것들의 속도감이 유기적으로 만들어내는 관계와 그로부터 발생하는 인상과 감각에 대해 탐구해 왔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림들은 어떠한 장면인지 유추할 수 있게끔 하는 동시에 유리에 반사된 빛이나, 어딘가 뒤틀린 원근 등의 변형을 통해 해당 장면이 가공된 풍경이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게 한다.


임희재, 〈Stuffed Antelopes〉, 2022, 캔버스에 유채, 162.2x336.3cm, 《Cabinet of Curiosity》 전시 전경(이유진갤러리, 2022) ©임희재

나아가, ‘박제’와 ‘재현’을 주제로 한 개인전 《Cabinet of Curiosity》(이유진갤러리, 2022)를 통해 임희재는 “살아있음”을 만지고 소유하려는 욕망이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지, 또 이는 해소될 수 있는 갈망인지를 자연사 박물관의 동물 표본들을 그린 연작을 통해 질문하였다.
 
전시의 제목인 ‘진품실(Cabinet of Curiosity)’은 특이하고 진귀한 물건들을 모아 놓은 방을 일컫는다. 16세기에 등장한 진품실은 역사적 유물, 예술작품, 골동품 등의 가치 있는 것을 소장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Cabinet of Curiosity》 전시 전경(이유진갤러리, 2022) ©이유진갤러리

박물관에서 보는 박제된 동물은 적극적으로 모방한 가공의 자연에 역동적인 자세로 고정되어 있다. 그리고 관람자와 대상 사이에는 유리벽이 존재하며, 관람자의 시선은 대상보다도 그 유리의 표면에 가장 먼저 닿는다.
 
임희재는 이 유리라는 표면과 캐비닛 안의 공간, 그리고 그 표본이 된 대상을 어떻게 캔버스 화면에 표현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Cabinet of Curiosity》 전시 전경(이유진갤러리, 2022) ©이유진갤러리

작가는 동물 표본이 담긴 캐비닛 앞을 관람자가 지나갈 때 시선의 움직임에 따라 유리 위에 비치는 반사광과 굴절현상, 그리고 평면처럼 압축된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흐르는 듯한 붓질로 동선을 만들었다. 이 붓의 유랑은 캔버스가 횡으로 확장하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며 이미지에 어항과 같은 속도감을 부여한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포물선과 박제된 동물의 시선은 화살표와 같이 보는 이의 시선을 움직여 화면을 동적으로 전환시킨다.


임희재, 〈Stuffed Chamois and Wild Sheep〉, 2021, 캔버스에 유채, 130.3x193.9cm ©임희재

작업이 완성되는 과정은 마치 태피스트리가 짜이는 방식과 유사하다. 임희재는 붓질의 짜임을 만들기 위해 물감을 천과 손으로 닦아내는 동작을 반복하는데, 이러한 동작이 작업 과정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렇게 완성된 직조물은 캐비닛 안의 동물 표본, 서식지를 그린 배경, 지지대, 그리고 유리에 반사된 이미지 같이 전혀 무관한 존재들의 우연한 만남이 만들어낸 인상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 인상의 재현을 통해 자신만의 새로운 진품실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둥지 짓기》 전시 전경(온수공간, 2023) ©임희재

한편, 이듬해 온수공간에서 열린 개인전 《둥지 짓기》에서는 기존 작업에서 화면 안에 머물던 유리막 또는 캐비닛의 ‘프레임’을 캔버스 바깥으로 확장하여 풀어낸 시도를 보였다.
 
임희재는 직전의 개인전 《Cabinet of Curiosity》에서 선보인 그림 〈Stuffed Chamois and Wild Sheep〉(2022)을 출발점으로 삼아 회화의 ‘틀’에 대한 지속적인 의문과 가능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의 회화적 탐구는 곧 그림 속의 형상들이 계속해서 변형하는 이미지로서 일종의 재현으로부터 벗어난 재/형상화(figuration)를 좇게 하였다.


《둥지 짓기》 전시 전경(온수공간, 2023) ©임희재

전시 《둥지 짓기》에서 이 구작은 틀 안의 이미지로 놓이게 된다. 박제된 샤모아와 야생 양이 화면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그림에서, 그는 이 형상들이 일종의 “보이기 위한” 이미지라는 사실에 주목하기 위하여 그것을 가둔 진열장의 프레임을 동시에 병치시켰다.
 
안소연 미술비평가는 전시 서문에서 이에 대해 “회화의 대상이 실제의 자연물이 아니라 이미 하나의 모조 이미지로서 얕은 공간 속에 재배치된 상황임을 다시 반복하는 셈”이라고 설명한다.


《The Vanishing Horizon Episode.02》 전시 전경(WWNN, 2024) ©WWNN

이처럼 임희재는 회화의 틀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임의의 조건 속에서 변형을 계속해서 추동하는 일종의 회화적 공간에 대한 구획화를 전개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회화적 탐구는 2024년 WWNN에서 진행된 단체전 《The Vanishing Horizon Episode.02》에서 선보인 그림 〈Tree of Stuffed Humming birds〉(2024)로 이어지게 된다.
 
이 작업에서 임희재는 ‘픽션’에 대한 전시 주제에 착안해 변형의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그림의 색 같은 사소한 부분까지 기존의 작업보다 환상적으로 표현하였다. 이는 “픽션이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에 가까워진다”는 캐나다의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Margaret Atwood)의 말에 영향을 받은 결과였다.


임희재, 〈Tree of Stuffed Humming birds〉, 2024, 캔버스에 유채, 162.2x130.3cm ©임희재

이에 따라, 이 작업에서 임희재는 나뭇가지가 벌새를 노리는 뱀 머리의 형상으로 드러나는 등 요소 간의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는 시도를 꾀하였다. 또한, 기존 작업과 달리 이 그림에는 56마리의 벌새와 7개의 벌새 둥지가 등장하는 등 많은 요소가 서로 개별적인 관계망 안에서 촘촘하게 이어져 나타난다.
 
이때 작가는 많은 요소들 사이에 우열을 나누기보다는 모든 요소가 개별적이면서도 서로 이어지는 하나의 이야기로 집중될 수 있도록 화면을 구획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간의 작업에서 유리판 전체에 걸쳐 큰 흐름의 움직임을 보였다면, 이 작업에서는 “파도가 모인 바다처럼 벌새, 나뭇가지, 둥지, 배경 사이의 흐름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며 만들어내는 울렁거림”이 회화적 공간을 촘촘하게 채우고 있다. 


임희재, 〈Faux SC&WS〉, 2023, 나무 및 유리 캐비넷, 패널에 유채, 57x65x62cm ©임희재

이렇듯 임희재는 자연의 개념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소유욕과 재현의 딜레마를 바탕으로, 회화에 대한 고민을 지속해 오고있다. 그는 자연의 이미지가 재가공되어 보여지는 방식을 회화라는 시각 언어로 드러내어 보여주거나, 회화의 틀과 유리막을 경유하는 복합적인 변형의 과정을 통해 박제된 동물의 소실된 생동성을 다층적인 이미지로 되살리며 모순적인 가능성을 보여준다.
 
나아가 최근에는 기존 작업을 소환해 재구성함으로써, 회화를 관계의 흐름에 따라 해석하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캔버스 위에서 붓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 무관한 표본들 간의 관계를 새롭게 엮어내는 방법을 모색해 나감으로써, 회화가 지닌 고유한 생태계에 대한 탐구로 확장되고 있다.

 ”‘가장 잡히지 않고 살아있는 것은 관계’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임희재, 비애티튜드 인터뷰 중) 


임희재 작가 ©종근당 예술지상

임희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예술사를 마치고 동대학원 전문사 과정을 졸업했다. 개인전으로는 《둥지 짓기》(온수공간, 서울, 2023), 《Cabinet of Curiosity》(이유진갤러리, 서울, 2022), 《Inflatable Paradise》(밤부컬렉션, 서울, 2021), 《Noli Me Tangere》(갤러리도스, 서울, 2017)이 있다.
 
또한 작가는 《아마추어》(누크갤러리, 서울, 2025), 《Perigee Winter Show 2024》(페리지갤러리, 서울, 2024), 《The Vanishing Horizon: Episode.02》(WWNN, 서울, 2024), 《경험의 아치》(갤러리인, 서울, 2023), 《부풀어오르는 세계》(드로잉룸, 서울, 2020), 《COCOON 2020》(스페이스K, 과천, 2020)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임희재는 ‘종근당 예술지상 2025’ 올해의 작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된 바 있으며, 수원문화재단 푸른지대창작샘터(2025) 및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 레지던시(2023-2025)에서 입주 작가로 활동하였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