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는
모든 시대에 있다. 그러나 《트윈 픽스》전은 2000년대 중반과 2010년대 중반, 즉 지금으로부터 상당히 가까웠으나 꽤 상반됐던 시대와 지금에 초점을 맞춘다.
전시는 노스탤지어와 어떤 약간의 희망으로 시작됐다. 전자는 2000년대 중반 미술 현장을 목도했던 기억이며, 후자는 2010년대 중반 다시 미술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긍정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다.
전시의
제목은 아메리칸 컬트의 레전드인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트윈 픽스’에서
그대로 가져왔는데, 2000년대 중반과 2010년대 중반이라는
타임 라인의 두 시기를 나란히 마주보게 하고자, 둘 또는 나란히 라는 느낌을 담을 방법, 그리고 (소소한 언어유희를 통해)
회화 전시라는 것을 염두하고 제목으로 결정했다. 트윈 픽스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언덕의
지명이기도 한데, 그다지 높지 않지만 도시의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두 개의 높지 않은 봉우리. 그다지 높지 않음에도 봉우리라 칭한
것은 약간의 고도만으로도 꽤 많은 시야가 확보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회화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방법과 관점이 있겠지만, 이 전시는 근래의
회화를 바라보는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 2000년대 중반과 2010년대
중반의 타임 라인에 있는 봉우리에 오르고자 한다.
타임
라인에 솟아 있는 두 개의 봉우리. 이것을 그럴싸한 말로는 시대적 지형이라고 포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가리키는 걸 좋아하겠지만 기억과 경험은 주관적이므로 《트윈 픽스》전의 두 개의 봉우리는
우선은 일개 기획자의 시선에서 보는 타임 라인의 봉우리들임을 밝힌다. 18명의 참여작가들이 대체로 기획자의
동선 반경 내에 있었던 작가들이기 때문이다. 작가들 중 몇몇은 기획자가 학창 시절부터 작업을 봐왔던
이들이고, 몇몇은 2006년경부터 작업을 알게 되었다.
2010년대 이후 활약하는 젊은 작가들은 대부분 최근 2-3년 사이
벌어진 전시들을 통해서 주목하게 되었는데 졸업 전시에서 우연히 본 작가도 있다. 약간의 시차가 있더라도
전반적으로 《트윈
픽스》전의
타임 라인은 작가들의 연령보다는 경력의 시작에 기준을 두는데, 2000년대 중후반 활동을 시작한 문성식, 박미례, 박세진, 박진아, 이제, 이호인, 임자혁, 최은경, 한주희를 타임 라인의 첫 번째 봉우리로, 2010년대 이후 활동을 시작한 김하나, 박광수, 박정혜, 백경호, 손현선, 이세준, 이우성, 이현우, 전병구를 두 번째 봉우리로 위치시키고자 한다.
첫
번째 봉우리에 대한 간략한 기억은 이렇다. 문성식과 박세진은 2005년 20대의 나이에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참가했다. 최은경은 2004년에 송은미술대상을 수상했다. 이번 전시에서 전시장 지하1층 입구인 그리팅 자리에 있는 〈발축전-거울〉은 그의 2003년작이다. 박진아, 임자혁은 2000년대 중후반 금호 영아티스트, 에르메스 미술상, 아트 스펙트럼 등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호인은 2007년 몽인아트센터 개관 후 열린 그룹전에 참여했다. 현재 합정지구
운영을 병행하고 있는 이제는 2001, 2002년 대안공간 풀에서의 단체전 참여 이후 풀과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박미례와 한주희는 기획자가 학창 시절부터 보아온 작가들이다. 이 아홉 명의 화가들 중에는 (적어도 외견상) 지난 10여년의 시간을 큰 기복 없이 버텨온 이들도 있고 안팎의
사정으로 인하여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낸 이들도 있다. 지나온 시간이 어떻든 간에 현재 이들은 모두 새롭게
부상한 더 젊은 화가들과 섞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