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다화(b. 1990)는 쉽게 휘발되고 의미를 상실한 이미지로 과포화된 오늘날의 디지털 생태계에 관심을 가지며, 이를 다른 시간의 축으로 끌어내어 재구성하는 작업을 해왔다. 작가는 온라인 상을 부유하는 밈-이미지를 일종의 문화사적 유물이라 여기고 수집하여 회화라는 물질적 몸을 가진 형태로 제시한다.


전다화, 〈얼죽아〉, 2021, 면천에 과슈, 162.2x130.3cm ©전다화

전다화는 고고학자처럼, 어쩌면 강령술사처럼, 방법과 절차에 따라, 때로는 직관을 사용하여 열화된 이미지에서 형상의 흔적을 추출하여 확장하고 변환한다. 이 과정에서 회화와 이미지는 서로 참조하고, 흉내내고, 또는 달라지려고 시도하고, 그런 시도가 실패하고, 때로는 실패를 의도하기도 하는 역동적인 관계를 맺는다.


전다화, 〈잔인하도록 정직한〉, 2019, 면천에 과슈, 24x19cm ©전다화

이때 그는 이미지뿐만 아니라 부적절한 농담, 아무도 리트윗하지 않는 혼잣말이나, 실패한 캐치프레이즈 등 인터넷 망을 매개로 퍼진 텍스트들 또한 줍는다. 그는 인터넷 망을 떠도는 가볍고 하찮은 말이나 이미지가 수많은 익명의 군중이 형성한 문화적 조각이며, 우리가 디지털 세계를 경험하고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은유라고 여긴다.


《크리스마스 인스턴트 믹스》 전시 전경(영앤복, 2020) ©전다화

2020년 전다화의 첫 번째 개인전 《크리스마스 인스턴트 믹스》는 문화적으로 소외된 서울 바깥 도시에서 자라며 흔히 1세계로 지칭되는 서구 국가에서 수입된 문화를 흡수하여 내면세계를 구성해온 작가의 경험에서 출발했다.
 
전시에서 작가는 환상적 크리스마스에 대한 개인적인 집착을 작업으로 풀어내어 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한 가짜 노스텔지어와, 그 대상이 실제 원본과는 다른 각종 열화 복제가 결합된 혼종적 무언가가 되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크리스마스 인스턴트 믹스》 전시 전경(영앤복, 2020) ©전다화

이를 위해 작가는 빈 집을 점유하여 그곳에서 여러 나라에서 수집한 크리스마스에 관련된 오브제와 제작한 작업을 모아 자신이 상상하는 이상적 크리스마스의 풍경을 구현했다. 여기서 선보인 ‘크리스마스 인스턴트 믹스’ 시리즈는 구글 검색을 통해 수집한 1950년대 빈티지 포장지 이미지를 손으로 따라 그려 복제하고 선물 상자를 포장한 작업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과 함께 ‘이상적 크리스마스’를 위해 모인 모든 요소들(붉은 카펫, 닫힌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캐롤과 설치된 스마트폰에서 재생되는 벽난로 영상의 장작타는 소리 등)은 서로 어우러져 어딘가 낯선 크리스마스의 풍경을 임시적으로 경험하게 하였다.


《기계 속 유령》 전시 전경(스페이스 카달로그, 2022) ©스페이스 카달로그

이후, 2022년 스페이스 카달로그에서 열린 개인전 《기계 속 유령》은 ‘저주 받은 이미지(Cursed image)’라고 불리는 밈-이미지를 수집하고 정렬하여 회화로 변환한 작업 ‘기계 속 유령’ 시리즈를 선보이는 자리였다.
 
‘저주 받은 이미지’란 대략 2000년대 중반에서 2010년대 초반에 일명 똑딱이라 불리는 디지털 컴팩트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일컬으며, 내용이나 품질이 좋지 않아 기이하고 불안한 감정을 형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계 속 유령》 전시 전경(스페이스 카달로그, 2022) ©루이즈더우먼

이러한 이미지들은 스마트폰과 소셜 네트워크가 확산하기 전, 이미지 호스팅 사이트에 업로드되었다가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텀블러(Tumblr)와 트위터(twitter)를 중심으로 유통되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황당하고 이상한 상황을 담고 있거나, 구도나 초점 등을 신경 쓰지 않아 어딘가 어색하거나, 태생적으로 저화질인 이 이미지들은 웹을 떠돌며 더욱 낡은 화질을 가지게 되었으며, 일종의 ‘밈’이 되어 여전히 인터넷을 떠돌아 다니고 있다. 


전다화, 〈새천년〉, 2022, 면천에 과슈, 74.9x99.4cm ©전다화

전다화는 마치 유령처럼 인터넷을 떠돌아 다니며 조금씩 열화되는 디지털 이미지들을 건져 내며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물질의 표면에 스며들도록 한다. 작업에 사용된 수채화용 특수 코딩이 입혀진 면천은 물감을 흡수하면서 한 번 건조된 후에는 표면을 형성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물감을 얇게 겹겹이 쌓아, 서로 섞이지 않으면서 그 겹침을 보이게 그리는 방식은 포토샵에서 여러 개의 레이어를 하나로 합치는 ‘레이어 병합(merge layers)’과 유사해 보인다.


전다화, 〈나와 내 친구들〉, 2022, 면천에 과슈, 77x99.4cm ©전다화

이러한 과정을 거쳐 디지털 이미지의 데이터는 작가를 매개 삼아 해체되고 다시 층을 쌓아 최종적인 하나의 면을 가진 물리적인 실체로 거듭난다. 몸이 없는 유령처럼 인터넷을 떠돌던 이미지는, 낡아가는 사진을 더 오래 보고, 더 자세히 보고 싶다는 작가의 소망에 따라 더욱 확대되고 선명해진다.


《기계 속 유령》 전시 전경(스페이스 카달로그, 2022) ©루이즈더우먼

작가가 이러한 이미지들에 더 크고 더 선명한 물리적 실체를 부여하는 이유는, 항상 남에게 어떻게 보여질지 의식하며 사진을 찍고 공유하는 오늘날의 시점에서 ‘저주 받은 이미지’와 같은 사진들이 일종의 ‘문화사적 유물’과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러한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시대에, 전다화는 마치 겪어본 적 없는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것처럼 그 생경한 감각을 포착하고 물질화 하여 간직하려 한다.

전다화,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전시 전경(일민미술관, 2024) ©전다화

한편, 2024년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단체전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에 참여하며 선보인 ‘기계 속 유령’ 시리즈의 최근작 〈나 같은 여자〉(2024)의 경우, 작은 스크린에서 한눈에 관조될 듯한 지난 작업과 달리 200호의 대형 캔버스에 그려졌다.
 
전다화는 육중한 몸집을 가진 새, 지푸라기와 깃털이 지저분하게 나뒹구는 화장실, 어느 시기의 유행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타일 인테리어 등을 플래시라이트 효과와 함께 자세히 묘사했다. 큰 화폭에 옅게 쌓아 올린 과슈 채색은 낯선 요소들의 기괴함을 가중시키고, 원본 사진이 과도하게 강조한 윤곽선을 재현한다.


전다화, 〈나 같은 여자〉, 2024, 면천에 과슈, 247x185cm ©전다화

그림의 출처가 된 사진은 2016년 허리케인 매튜(Matthew)를 피해 공중화장실로 숨어든 아프리카대머리황새를 촬영한 것으로, 아이티와 미국 남부에서 발생했던 재난 현장의 기록이다. 그러나 이미지는 개인, 사회, 세대의 편향에 따라 포비아의 총체처럼, 지역 설화의 상징처럼, 애니매이션의 한 장면처럼 이상한 시각적 끌림을 자아낸다.


전다화, 〈고민고민하지마〉, 2024, 면천에 과슈, 176x132cm ©전다화

작가는 사진이 기록한 현실의 정보와 상관없이 나타나는 이 기이한 끌림의 정체에 대해 마크 피셔의 말을 빌려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장소에 무언가 존재할 때, 혹은 무언가가 있어야 할 때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이미지의 주술이라고 보았다. 작가의 관심은 이처럼 이미지가 겹겹의 현실을 통과해 거듭나는 환생을 회화의 틀 속에서 관찰하는 것이다.
 
이때 작품의 의미는 단순히 해체되거나 미끄러지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이미지가 매개하는 정교한 노스텔지어와 함께 현실의 잔여물로 퇴적된다.


전다화, 〈순례자들〉, 2025, 캔버스에 과슈, 160x50cm (right), 〈유난히 긴 소시지〉, 2025, 나무에 과슈, 5x50cm (lower right), 〈견뎌 자기야〉, 2025, 캔버스에 유채, 165x124cm (left) ©전다화

그리고 지난 11일 더 소소에서 열린 최근의 개인전 《나, 웃긴 짤들, 엄청난 슬픔》에서 전다화는 2022년 개인전 《기계 속 유령》 이후로 3년 동안 확장된 생각과 변화한 작업을 선보인다.
 
전시는 질식할 듯한 지금의 현실 바깥을 상상할 수 있는 작은 틈을 내고자 하는 바람에서 출발했다. 이를 통해, 전다화는 전시라는 일시적 조건에서 회화의 개별 표면을 넘어 단 한 번 활성화되는 아주 사적인 사유의 경로를 만들어 냄으로써, 통로이자 장소로서의 회화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전다화, 〈알아요 자매님〉, 2024, 면천에 과슈, 80.3x80.3cm ©전다화

이처럼 전다화는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형식에 구애 없이 각종 밈을 수집하고 연구하며, 천천히 소실 중인 본 디지털(Born-digital) 이미지를 웹 네트워크의 잔해로부터 건져내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때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고상하고 품위 있는 것이 아니라 조잡하고 대중적이며 수차례의 유통을 거쳐 너덜너덜해진 데이터 조각들이다.
 
작가는 점차 소멸해 가는 유동적인 데이터 파편들에서 새로운 감각과 유머, 현실의 장면들을 발견하고, 회화라는 물질적 형식으로 재매개하여 동시대의 이미지로 생산한다. 나아가 이러한 작업은 회화의 표면을 넘어 활성화되는 하이퍼텍스트적 통로로써 회화의 가능성을 탐구하며, 서로 충돌하고 융합하는 역동적인 이미지의 연결망을 구축해오고 있다. 


전다화, 〈이 강아지가 얼마나 지쳤는지 보세요〉, 2024, 나무에 과슈, 14x18cm ©전다화

 ”언젠가 농담으로 이런 말을 했다. 전 내면의 풍경 같은 거 없어요. 내면이 그냥 텅 비어 있어요. 아니, 농담인 척 진심을 말해버렸다. 들여다보려고 애쓰기도 했는데, 더듬어봐도 잡히는 게 없어 조금 불안했다
 
안에서 꺼내 쓸 건 없으니 쓸만한 조개껍질을 좀 주워 보려 해변을 거니는 사람처럼 나는 막연히 무언가 떠밀려 오기를 기대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곤 했다. 그곳에서 내가 주운 것은 대개 잡동사니와 쓰레기. 희미해진 고통, 잔인한 농담, 출처 불명의 소문 그리고 이미지, 이미지, 이미지들. 그것은 꼭 진짜처럼 느껴진다.”
 
 
 
 
 
(전다화, 작가노트) 


전다화 작가 ©전다화

전다화는 경희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동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개인전으로는 《나, 웃긴 짤들, 엄청난 슬픔》(더 소소, 서울, 2025), 《기계 속 유령》(스페이스 카다로그, 서울, 2022), 《크리스마스 인스턴트 믹스》(영앤복, 서울, 2020)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일민미술관, 서울, 2024), 《모멘터리 모멘텀》(프람프트 프로젝트, 서울, 2024), 《자아 아래 기억, 자아 위 꿈》(서울대학교미술관, 서울, 2023), 《히얼즈더띵》(의외의 조합, 서울, 2022), 《The Art Plaza: LINK by IBK》(IBK 기업은행 본점, 서울, 2022), 《시리얼즈》(레인보우큐브, 서울, 2021) 등의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전다화는 2025년 뉴욕 와사익 프로젝트에 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2025 아르코데이 아티스트 라운지에 참여하여 주목을 받았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