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민(b. 1986)은 우리가 신뢰하는 네트워크와 시스템의 한계와 가능성을 사유하고, 이를 영상, 설치, 퍼포먼스, 출판물의 형식에 담아낸다. 그의 작업은 주로 개인의 기억과 몸으로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시작되며, 작가는 이를 통해 동시대 사회 현상의 기원을 되짚고, 그 이면에 감춰진 구조와 감정을 탐색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자 한다.

손수민, 〈3개의 스마트폰, 24개의 충전기와 4개의 콘센트〉, 2018(2024년 재제작),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2분 35초 ©손수민

손수민은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다양한 환경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경험을 통해 익숙한 틀 안에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애매모호함, 오해와 선입견과 같은 불편하고 복잡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배경과 함께 그의 작업은 누군가가 실제로 겪은 일이나 직접 한 말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2018년에 제작한 영상 작품 〈3개의 스마트폰, 24개의 충전기와 4개의 콘센트〉는 신문에서 본 한 장의 사진을 바탕으로 한다.


손수민, 〈3개의 스마트폰, 24개의 충전기와 4개의 콘센트〉, 2018(2024년 재제작),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2분 35초 ©손수민

그 사진 속에는 스마트폰을 충전하는 시리아 난민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으며, 작가는 이들의 모습이 자신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풍경 사진을 찍고, 셀카를 소셜미디어에 올려 친구, 가족들과 공유하는 난민들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낯선 이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되돌아 보게 된 그는 이를 작품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손수민, 〈3개의 스마트폰, 24개의 충전기와 4개의 콘센트〉, 2018(2024년 재제작),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2분 35초 ©손수민

손수민은 그 사진을 직접 재현해보는 과정을 영상으로 남기고자 당시 스튜디오를 함께 쓰는 동료들에게 스마트폰, 충전기, 멀티탭을 빌려 촬영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내고 촬영을 마칠 때까지 몇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으며, 촬영하는 도중 근처 시계탑에서 시간을 알려주는 종소리가 이따금 들려 왔다고 한다.  

작가는 그 짧은 제작 과정을 거치며 사진 속 그들과 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 체감하는 동시에, 시계탑 종소리 연주가 개입되는 순간 평화롭고 무료한 미국 동부 작은 컬리지타운의 일상과 그 사진 속 현실의 거리가 새삼 명료하게 다가왔다고 말한다.

손수민, 〈Unmellow Yellow〉, 2017-2025, 종이에 형압, 오프셋, 100x148mm ©손수민. 사진: 김진호.

한편, 2017년부터 전개한 작업 〈Unmellow Yellow〉는 우연한 발견한 스튜디오 건물 옆 노란 소화전을 주목하게 된 일에서 출발한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건물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사물인 소화전을 매개체로 삼아 사회 구성원들의 관계를 은유한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가짜 뉴스와 혐오 선동이 만연하던 가운데 작가는 같은 건물을 사용하던 64명에게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았던 소화전의 모습을 그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모아진 드로잉은 책의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몇 년 후 다시 떠오른 파시즘과 전쟁 속에서 엽서로 재구성되어 관객에게 나누어졌다.

손수민, 〈Unmellow Yellow〉, 2024, 퍼포먼스, 35분 ©손수민. 사진: 김진호.

이후 2024년 진행된 동명의 퍼포먼스 작업 〈Unmellow Yellow〉에서 작가는 얇은 종이를 직접 들고 나와 빔프로젝터 앞에 서서 준비된 원고를 낭독했다. 퍼포먼스 텍스트에는 “한 언어는 하나의 언어가 아니다. 말은 세상의 경계를 구체화하고 실감하게 해준다”라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타자’는 수많은 상실을 경험한다. 이름 상실, 정체성 상실, 이력의 상실, 역할의 상실. 남는 것은 몸뚱아리 하나 뿐이다”라는 표현을 담고 있었다.  

이때 얇고 물렁한 종이 위에서 계속해서 굴절되고 왜곡되는 영상의 모습은, 타인과 ‘언어’를 매개로 소통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오해와 오역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손수민, 〈캐치볼〉, 2019년 퍼포먼스/2022년 영상으로 개작, 퍼포먼스, 영상 ©손수민

이처럼 오랜 시간 이방인으로 살아온 작가의 자전적 경험은 그의 작품에 단초가 되어 왔다. 그러한 맥락과 함께 전개된 또 다른 작품 〈캐치볼〉(2019/2022)은 공을 주고 받는 운동인 캐치볼처럼 평행선을 이루는 두 퍼포머의 대화를 기록한다.  

오디오믹서에 각각 마이크와 헤드폰을 연결해, 확성된 상대방의 목소리와 숨소리가 각자의 머릿속을 꽉 채우는 상태로, 때로는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만 존재하는 듯한 상황 속에서 두 퍼포머는 대화를 이어간다.


《현실은 메타포》 전시 전경(SeMA 창고, 2023) ©서울시립미술관

나아가 2023년 SeMA 창고에서 열린 개인전 《현실은 메타포》에서 손수민은 개인과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인 동시에 본분을 넘어 절대적인 권력을 갖게 된 가치들의 양면을 재고하고자 했다. 전시에서 작가는 견고해 보이는 기술 기반의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된 균열을 탐구하고, 이로 인한 인간의 욕망과 고독함을 시간 기반 매체로 시각화하여 보여주었다.  

전시는 영상 작품인 〈In God We Trust〉(2023)와 관객 참여형 설치 작품인 〈뮤직박스〉(2023/2018)을 중심으로 하는 두 영역으로 구성되었다. 작가가 수집한 일상의 이미지를 몽타주 형식으로 재구성하여 자본주의에 질문을 던지는 한편, 대량생산된 뮤직박스를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연주함으로써 합리주의와 표준화된 세계를 되짚어 보는 가능성을 제안하였다.

손수민, 〈In God We Trust〉, 2023,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현실은 메타포》 전시 전경(SeMA 창고, 2023) ©손수민

먼저, 기축통화로 막강한 지위를 누리는 미국 달러에 쓰여진 문구 “In God We Trust (우리의 신을믿는다)”를 제목으로 하고 있는 영상 〈In God We Trust〉는, 가상화폐에 관련한 사태를 지켜보며 가상 자산에 대한 믿음과 근원에 대한 작가의 호기심에서 출발한 작업이었다.
 
믿음이 모이는 순간 엄청난 힘을 가진 현실로 변모하게 되는 것을 목격하며, 작가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내일에 대한 희망이 증발된 시기에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었던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사회적 사건들을 몽타주 형식으로 엮어낸 무빙이미지를 제작했다.
 
작가가 출퇴근길과 일터, 2011년 월가 점령 시위에서 목격한 장면들을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사운드, 글로 재구성함으로써, 모든 화폐, 더 나아가 인간이 만든 신념과 가치 체계가 작동하는 방식이 본질적으로 비슷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해 보도록 한다. 


손수민, 〈뮤직박스〉, 2023, 퍼포먼스, 관객 참여형 설치, 《현실은 메타포》 전시 전경(SeMA 창고, 2023) ©서울시립미술관

한편, 〈뮤직박스〉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뮤직박스를 작가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넓고 높은 공간을 숨이 차도록 뛰어다니며-으로 연주하는 퍼포먼스로 구성된다. 작가는 모더니즘의 유산으로 여겨지는 미국 동부에 위치한 예일 대학교 루돌프 홀에서 프로토타입으로 선보인 퍼포먼스를 SeMA 창고의 공간적 특징을 고려하여 관객참여형 설치 작품으로 재구성하였다.  

작가는 퍼포먼스에서 합리주의 성장 사회를 상징하는 공간을 유희적으로 점거하여 숫자로 다 환산될 수 없는 다양한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그리고 SeMA 창고에서는 위치와 설치 방식을 변주하여 다양한 관객들의 움직임을 환영하고, 이를 통해 표준화된 세계의 기준에서 벗어나 관객들의 창의적인 가능성을 초대하고자 하였다.


손수민, 〈뮤직박스: 코뉴〉, 2023, 금속, 120x80x40cm, 《현실은 메타포》 전시 전경(SeMA 창고, 2023) ©서울시립미술관

아울러, 제작 과정에서 을지로의 여러 장인들과 협업하면서 작가는 정교하게 숙련된 기술이 담고 있는 그들의 정직하고 담담한 일과 삶을 향한 자세를 마주하며, 이 사회가 노동과 노동의 주체인 사람을 무엇으로 해석하고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고민해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에, 작품은 점점 더 많은 가상으로 채워지는 우리의 일상에서의 물질적 한계를 재고한다.

손수민, 〈A Good Knight〉, 2023,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A Good Knight》 전시 전경(합정지구, 2023) ©합정지구

같은 해 합정지구에서 열린 개인전 《A Good Knight》에서 작가는 자주 인간사에 비유되곤 하는 체스를 소재로 사회적 질서와 위계 속에 놓인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동명의 영상 작품 〈A Good Knight〉(2023)를 선보였다.  

체스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7세기경이지만, 전해지는 전설은 그 보다 한 세기 전 인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굽타 왕조의 가장 어린 왕자가 전사하자, 그의 형은 슬픔에 잠긴 어머니를 위해 전쟁을 달리 표현할 방법으로 체스를 고안해냈다고 전해진다.

손수민, 〈A Good Knight〉, 2023,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손수민

이후 실크로드를 통해 전세계에 퍼져 각 지역만의 고유한 체스가 탄생하게 되었다. 풍자의 수단으로 사회의 여러 계층을 함축하고 구조를 드러내는 역할을 해왔다. 손수민은 가로와 세로 각 8칸의 정사각형으로 이뤄진 판 위의 게임을 지켜보며, 이 세상의 질서와 그 안에서 ‘나’의 위치에 대해 생각했다.
 
영상은 인간의 상상과 소망을 실현시켜 놓은 오토마타라는 움직이는 장치들을 통해 체스라는 게임의 규칙과 각 말의 역할을 간접적으로 어린이들에게 설명한다. 화자인 어린 기사(knight)의 여정을 동행하며 익숙한 사회적 질서와 위계를 체스의 규칙에 비유한다.

손수민, 〈A Good Knight〉, 2023,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손수민

인간과 동물의 형상을 닮은 오토마타는 마치 스스로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부여 받은 임무만 수행할 수 있다. 단순히 생명체의 외관 만이 아닌 움직임까지 재현하려는 열망을 지켜보며, 작가는 “정작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는지”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작품은 “사회를 함축시켜 놓은 견고하게 직조된 격자무늬 타일 위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체스 판 위의 말이 아닌 체스하는 사람이 되어, 판을 내려와 나의 게임을 시작할 수 있을까?”라는 작가의 질문을 반영하며, 견고해 보이는 사회에 내재된 경계와 균열을 고찰해볼 수 있도록 한다.


손수민, 〈언더그라운드〉, 2024,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 전시 전경(송은, 2024) ©손수민

2024년 송은에서 열린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에서 손수민은 기존 작품인 〈뮤직박스〉와 함께 신작 영상 〈언더그라운드〉(2024)를 선보였다.
 
〈언더그라운드〉는 자본주의 사회가 초래한 개인의 고립과 소외를 그린다. 작가는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회적 이해와 규제의 간극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 가능한 것으로 간주하는 상황을 진단하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인간성이 지니는 의미를 고찰한다.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 전시 전경(송은, 2024) ©손수민

이와 같은 일련의 작업을 통해, 손수민은 거시적인 사회 구조가 일상의 경험에 침투해 만들어내는 균열을 배회하며 현대 사회의 복잡성을 반영하는 개인의 정체성을 다각도로 탐구해 왔다. 개인의 구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동시대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 보는 그의 작업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경험하는 우리의 욕망, 생동력, 중독, 공허, 고립 등을 담으며 가장 민감하고 본질적인 지점을 건드린다.

 ”집단 안에서 권력이 되어 작동하는 가치들을 관찰하다 보면 견고해 보이는 이 사회의 경계와 틈이 보인다. 그 안에서 한계를 마주하며 갈등하는 우리의 경험을 관찰자로, 참여자로, 때로는 시나리오를 만드는 선동자가 되어 이런 사회에서 나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를 질문한다.”  (손수민, 작가 노트)


손수민 작가 ©청년예술청

손수민은 코넬대학교 경제학과 및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예일대학교 시각디자인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현실은 메타포》(SeMA 창고, 서울, 2023)와 《A Good Knight》(합정지구, 서울, 2023)가 있다.
 
또한 작가는 《백프로》(스페이스 애프터, 서울, 2025),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광주, 2024),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서울, 2024), 《포킹룸: 아드레날린 프롬프트》(탈영역 우정국, 서울, 2023), 《감각의 재구성》(인사미술공간, 서울, 2022), 《en route: 사사로운 궤적》(신한갤러리, 서울,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손수민은 아르코 예술창작실(서울, 2025) 및 Irish Museum of Modern Art (IMMA) Residency(더블린, 2025)에 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선정되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