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정(b. 1985)은 물리적인 것과 비물리적인 것의 관계가 혼합된 세계에서 ‘이동’의 의미를 추적하며 현재를 인식하는 작업을 해왔다. 특히 작가는 고정되고 영원한 가치를 표방하는 것이 아닌 현재의 상태나 기분, 분위기와 같이 일시적인 것들을 재료로 삼아 온라인과 현실 공간 위로 새로운 세계를 직조한다.


송민정, 〈“Est-ce vraiment nécessaire?”〉, 2017, 디지털 이미지, 18.72x10.8cm ©송민정

송민정의 작업은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이동하는 SNS의 타임라인처럼 얕고 빠른 몰입과 전환을 요구한다. 작가는 빠른 트렌드의 흐름 속에서 부유하는 이미지들을 작업에 차용하고, 이를 스마트폰이나 TV 드라마, 상점을 채우는 광고판 등 우리 눈에 익숙한 스크린에 나타나는 팝업 광고 혹은 팝업 스토어처럼 등장시켜 왔다.
 
이때 송민정은 문학이나 마케팅에서 대상에 대한 관심을 끌고자 사용하는 전략, 혹은 어떤 것이 본래의 용도를 넘어서는 것을 일컫는 ‘기믹(gimmick)’을 주된 작업의 전략으로 활용한다.


송민정, 〈DOUBLE DEEP HOT SUGAR - the Romance of Story - ver.1〉, 2017, HD 비디오 (1080 x 1920) ©송민정

2016년부터 2017년, 송민정은 일종의 온라인의 기믹으로 작업을 작동시켰다. 그는 영화나 드라마의 티저 영상, 광고 등에서 사용되는 마케팅 어법을 차용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브랜드를 만들어 무형의 제품을 실제로 판매하는 것처럼 만들어내는 작업을 온라인상에서 유통시켰다.
 
예를 들어, SNS 타임라인을 통해 유통되었던 ‘DOUBLE DEEP HOT SUGAR - the Romance of Story-(더블 딥 핫 슈가 - 더 로맨스 오브 스토리-)’(2017) 시리즈는 드라마 티저나 프로모션 영상에서 착안해 만들어 진 영상 작업으로, 영화 제목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제목과 부제를 함께 쓰는 형식과 광고 특유의 어법을 차용한다.


송민정, 〈CREAM, CREAM ORANGE〉, 2017, HD 비디오 (1080 x 1920) ©송민정

어떠한 제품을 홍보하는 어법을 차용하지만, 실상 영상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기쁨’과 ‘우울’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이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타임라인을 경유해 떠돌아다니는 이미지를 소비하거나, 특정한 무드를 덩어리로 삼으며 일종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태도를 취한다.
 
뷰티 광고 이미지에서 출발한 〈CREAM, CREAM ORANGE〉(2017)의 경우에는 패션 브랜드의 캠페인에 주로 사용되는 세련된 스킨을 차용해 글로시하고 매끄러운 화면을 연출하고 있다. 작가는 이처럼 ‘지금 이 순간 가장 세련된 척’하는 어법을 흉내내는 이유에 대해 “모든 것이 금방 과거가 되어버리는 빠른 속도의 세상에서 작업을 ‘현재’라는 순간에 밀착시키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시리어스 헝거’ 이미지 ©과자전

아울러, 송민정은 ‘시리어스 헝거’라는 가상의 디저트 브랜드를 설립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여러 활동을 전개했다. SNS 계정으로 존재를 드러낸 ‘시리어스 헝거’는 마치 ‘그림의 떡’처럼 타임라인에 사진과 영상으로만 떠돌아다닐 뿐, 막상 어느 곳에서 구입할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송민정이 이 유령과도 같은 브랜드를 통해 제공하는 것은 실제 물질로서의 디저트가 아닌 그것의 이미지를 통해 전달되는 어떤 무드와 같은 비물질적인 대상이었다. 주로 CF 형식인 ‘시리어스 헝거’의 영상들은 “지금부터 우리가 제시하는 기분을 전송합니다. 최대한 정확한 기분을 제안할게요.”, “직관적인 크림이 당신의 기분을 즉각적으로 개선합니다”와 같은 내레이션을 통해 ‘기분’을 전환시켜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시리어스 헝거, 취미가 趣味家 Tastehouse 오프닝 세레모니 ©취미가

2017년 송민정은 취미가에서 열린 오픈 행사 ‘세레모니’를 진행하며 그간 타임라인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디저트를 식물상점과 협업한 꽃과 식물 등과 조화롭게 세팅하여 선보였다. 관객은 물리적인 실체로 구현된 가상의 디저트를 맛볼 수는 없었지만 ‘시리어스 헝거’가 제안한 분위기를 즐기고, 테이블에 세팅된 다양한 요소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고 촬영할 수 있었다.


《COLD MOOD (1000% soft point)》 전시 전경(취미가, 2018) ©취미가

한편, 2018년 취미가에서 열린 개인전 《COLD MOOD (1000% soft point)》에서 작가는 그동안 온라인 타임라인을 떠돌던 그의 작업을 물리적인 공간인 전시장에 새롭게 위치시키며 신체적 장소를 번역해내고 그 안에서 작동할 수 있는 동선을 상상하였다. 작가는 향수, 음료, 케이크를 직접 제작하고 전시장을 이를 구매하기 위한 일종의 쇼룸으로 변환시켰다.

《COLD MOOD (1000% soft point)》 전시 전경(취미가, 2018) ©취미가

작가는 태블릿 PC로 마치 키오스크 메뉴판 같은 관람 매뉴얼을 제공하고, 관객이 일종의 수행자가 되어 영상이 제시하는 경로를 따라 이동하면 이에 반응해 작동하는 작업들을 선보였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그는 여러 매체를 혼합해서 발생시킨 무드를 서사 속에 집어 넣고, 사용자에게는 정확히 붙잡히지 않는 경험의 ‘느낌’만을 남기고자 하였다.


《COLD MOOD (1000% soft point)》 전시 전경(취미가, 2018) ©취미가

이때 작가는 서사 사이에 이질적인 흐름을 끼워 넣거나, 작업의 맥락을 일종의 상품으로 연결하여 의미를 숨기기도 했다. 영상에 몰입하는 도중에 음료를 사 마시거나 향수를 시향하고 구입을 예약하는 루트를 설정함으로써 사용자의 심리적 장소에 밀착하거나, 그 반대로 거리감을 확보해 나가는 전략을 취했다.
 
이러한 전시는 온/오프라인 소비의 경험과 작업의 경험을 교차시키고 심리적 장소와 신체적 장소 사이의 낙차를 감각하게 하며, 사람들이 이미지와 취향을 향유하는 방식에 대해 재고해 보도록 한다.  


《COLD MOOD (1000% soft point)》 전시 전경(취미가, 2018) ©취미가

이처럼 온라인의 기믹으로 작동되는 그의 작업에 대해 김해주 큐레이터는 “’눈으로 맛보는’ 인터넷의 소비와 욕망을, 스마트폰 화면과 실제 경험 사이의 낙차를 보여준다”고 말하며, “끊임없이 시선의 시야를 빠져 나가는 온라인의 이미지 경험을 작업의 재료로 삼으며 그 흘러감 자체를 작업의 문법으로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송민정, 〈토커〉, 2019,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복합매체, 25분 52초 ©송민정

한편,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2021: 액체 유리 바다》에서 선보인 작품 〈토커〉(2019)는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가상 공간 속에서 아바타와 같은 또 다른 페르소나를 창조해내며 다양한 형태로 자기분열하고 진화하는 오늘날의 디지털 자아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상은 1인칭 시점의 이동하는 신체를 통해 전개되며, 비신체적 관계 맺음을 언어로 스크린과 감상의 관계를 추적한다. 송민정은 이 작업에서 개인의 일상을 1인칭 시점의 영상으로 담아내는 유튜브의 브이로그(Vlog) 스토리텔링 기법을 차용한다.

송민정, 〈토커〉, 2019,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복합매체, 25분 52초, 《젊은 모색 2021: 액체 유리 바다》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2019). 사진: 홍진훤. ©국립현대미술관.

브이로그(Vlog) 형식의 영상에서 화자는 가상의 건강관리 어플리케이션인 증강현실 강아지 ‘허프’에게 대화를 걸고 그로부터 건강을 체크 받는다. 그리고 허프는 주인(사용자)의 대답에 따라 성격이 새롭게 형성되도록 프로그래밍 됨으로써 가상의 관계 맺음을 통해 정체화된다.
 
한편 신원이 불분명한 화자의 정체성은 현존하는 신체가 아닌 화면을 구성하는 텍스트, 이미지, 영상, 사운드로만 추측된다. 이때 화자의 음성은 여성과 남성을 오가며 여러 개의 계정을 통해 디지털 자아 정체성을 바꿔 사용하는 오늘날 인터넷 사용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송민정, 〈악사라 마야〉, 2019, HD 비디오, 컬러, 사운드, 18분 49초. ©송민정

나아가, 영상 작품 〈악사라 마야〉(2019)에서 작가는 RPG 게임의 형식을 차용해 신체와 정체성 사이의 비물리적인 관계를 다룬다. 작품은 게임과 현실이 혼용된 세계에서 언어를 채집, 재조합하며 허구적 공간을 구축해 나간다.
 
여기에서 유저로 지칭되는 인물들은 서사를 이끄는 셰도우 라이터로 기능한다. 그러나 이들 또한 신체의 현존을 드러내지 않는 비물리적인 상태로 등장하며, 오직 심리적인 진술을 통해 현재를 더욱 가까이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바라보도록 한다.


송민정, 〈야생종〉, 2020,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혼합매체, 22분 ©송민정

이러한 작업에서 신체는 테크놀로지 속으로 융화된 ‘비신체’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며, 데이터화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나아가, 이에 대한 성찰을 발전시켜 제작한 영상 작품 〈야생종〉(2020)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가상과 실재, 도시공간과 망망대해를 교차시키며, 데이터화된 사회에서 인간의 죽음이 갖는 의미와 개인의 다중적 ‘신체’가 존재하는 방식을 재인식하게 만든다.


송민정, 〈야생종〉, 2020,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혼합매체, 22분 ©송민정

영상은 ‘김기철’이라는 남성의 죽음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그와 관계를 맺어온 인물들이 그에 대한 증언을 거부하는 가운데 생전 그가 사용하던 SNS 계정에 남겨진 데이터 마저 알 수 없는 이유로 완전히 삭제되며, 김기철이라는 인물의 존재는 가상과 현실 모든 영역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스릴러 장르의 서사를 통해 작가는 데이터화된 사회 안에서 인간의 존재는 손쉽게 변환되고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오늘날 가속화된 기술 발전 시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이끈다.  


송민정, 〈커스텀〉, 2022, 휴대 전화 여러 대, 영상 설치, 가변크기 ©부산비엔날레

이후, 2022년 부산비엔날레에서 송민정은 미스터리 스릴러 영상 작품 〈커스텀〉(2022)을 선보였다. 영상에 주인공인 하루코는 스물세 살이 되던 해 해외 발령을 받은 신발 기술자 남편을 따라 부산에 정착하게 된다. 당시 한일 고무 기술 제휴로 일본의 많은 기술자가 부산으로 파견되었다고 전해진다.
 
어느 날 하루코는 남편이 근무하는 신발 공장에 갔다가 그곳에서 일하는 춘자를 만나고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1954년 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난 하루코(はるこ)와 같은 날 부산에서 태어난 춘자(春子). ‘봄의 아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비슷한 운명을 타고난 그들에게 서로는 새로운 장소를 인식하는 좌표가 된다.


송민정, 〈커스텀〉, 2022, 휴대 전화 여러 대, 영상 설치, 가변크기 ©송민정

하루코에게 춘자는 내부로 향하는 골목이 되고, 춘자에게 하루코는 외부로 향하는 해로가 된다. 〈커스텀〉은 그들의 스마트폰을 따라가며 일어나는 미스터리 스릴러이다. 송민정은 가상의 인물을 매개로 특정한 환경을 설정하고 이를 스마트폰 스크린의 타임라인에 연결한다.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해 송민정은 현재와 밀착되어 있는 요소들을 작업의 매체로 끌어오거나, 허구적 신체와 시간을 뒤섞어 혼성적인 타임라인을 생성한다. 이는 곧 현실 세계와 그 설정 사이에 형성되는 낙차 속에서 혼성된 세계를 바라보며 이동의 의미를 추적하게 만든다.
 
이러한 송민정의 작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이동’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신체적, 심리적 경험을 다루며, 우리의 ‘현재’를 다시금 인식하게 만든다.

 ”제가 사용하고 있는 작업의 주 매체는 시간입니다. 현실과 작업 사이를 아주 밀착시키거나, 많은 낙차를 주는 방식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송민정,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2019: 액체 유리 바다》 인터뷰 중) 


송민정 작가 ©RE;CODE

송민정은 건국대학교 예술학부를 졸업했다. 개인전으로는 《분위기》(합정동 359-11, 서울, 2023), 《이빨 버터》(쿤스트할 오르후스, 2021), 《COLD MOOD(1000% soft point)》(취미가, 서울, 2018), 《Double Deep Hot Sugar-The Romance of Story》(반지하, 서울, 2016)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이탤릭체 시간》(남산 도서관, 서울, 2024), 2022 부산비엔날레 《물결 위 우리》(부산항 제1부두, 초량, 부산, 2022), 《땅 그물 이야기》(아르코미술관, 서울, 2022), 《경계에서의 신호》(서서울미술관, 서울, 2021), 2020 부산비엔날레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부산현대미술관, 부산, 2020), 《밤이 낮으로 변할 때》(아트선재센터, 서울, 2019), 《젊은 모색 2019: 액체 유리 바다》(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9)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