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카손(b. 1988)은 인체 위를 덮는 피부와 그 위를 덮는 옷의 물질성과 걸치는 행위를 중심으로, 인체, 사물, 공간으로 확장되는 다층적 관계를 극무대의 형식으로 선보여 왔다. 그가 천착해온 신체와 사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입고 걸치는 물리적 행위는 신체와 공간의 관계로 전이되며 점진적인 확장을 성취한다.
 
나아가 그는 단순히 걸치고, 덮는 행위 외에 물질과 표면의 성질이 변화하는 지점을 찾으며, 이러한 변이를 도와주는 매개체, 체결 방식, 그리고 행위의 유연한 양면성을 지향한다.  


하카손, 〈탈착과 분열의 전조 1〉, 2021, 혼합매체, 가변크기 ©하카손

작가 노트에 따르면, 미국에서 페인팅, 독일에서 영화와 미디어아트, 그리고 벨기에에서 패션을 공부한 하카손은 노자의 무위(無爲)와 베르그송의 반복/지속 이론에 영감을 받아 인체의 진화와 확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은 작가의 작업에 토대가 되어 물질이 가진 기존의 역할과 속성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탈경계적이고 탈매체적 작업으로 이끌었다. 이를테면, 2021년 작업인 〈탈착과 분열의 전조 1〉은 한옥 빗살창과 다양한 재료를 조합하여 이질적인 세계가 서로 결합하고 충돌하는 장면을 기이한 형상으로 나타낸다.


하카손, 〈사이몸짓〉, 2022, PVC, 네오프렌 잠수복, 메탈와이어, 홀로그램필름 외 혼합재료, 퍼포먼스 약 25분, 영상 약 3분 반복재생 ©하카손

작가는 이처럼 서로 다른 역할과 시공간적 맥락을 지닌 물질들을 해체하고 재조합하여 무엇이라 규정할 수 없는 제3의 형상으로 만들어 낼 뿐 아니라, 이를 전시장에서 완결된 작품으로 선보이는 것에서 나아가 관객 또는 퍼포머의 신체에 걸침으로써 또 다시 매체의 경계를 횡단하고 확장시킨다.
 
예를 들어, 착용할 수 있는 조형물을 입고 진행된 퍼포먼스 작업 〈사이몸짓〉(2022)은 자세 교정과 생명체의 탈피 행위를 통해 물리적 한계에 도전하는 신체와 정신을 풀어낸다.


하카손, 〈사이몸짓〉, 2022, PVC, 네오프렌 잠수복, 메탈와이어, 홀로그램필름 외 혼합재료, 퍼포먼스 약 25분, 영상 약 3분 반복재생 ©하카손

퍼포머는 조형을 입고, 조형의 소리를 조율하며, 몸짓을 통해 착용 반경의 범위를 확장한다. 조형은 인체의 표면으로부터 떨어지고, 다시 붙는 반복적인 운동을 하게 되고, 퍼포머의 몸짓은 본연의 힘의 방향을 전환하고, 비틀며, 끊임없는 신체의 최적화를 도모한다.
 
이처럼 하카손은 착용 가능한 조각을 통해 사람의 움직임이 조형의 움직임으로 전이되는 방식을 고안해 왔다. 그리고 그의 작업 안에서 신체는 스스로의 경계를 갱신하고 초월하는 ‘신체 이후의 신체’, ‘탈인간적 신체’에 대한 환상성을 드러내는 장치로서 제시된다.


《Gametophyte : 배우체》 전시 전경(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2023) ©하카손

한편, 2023년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열린 개인전 《Gametophyte : 배우체》에서 하카손은 조형물 자체가 퍼포머이자 무대로서 등장해 키네틱 퍼포먼스를 수행하는 장면을 선보였다. 본 개인전에서 그의 작품은 인체에서 나아가 공간으로 확장되어 무대에서 드러나는 극적인 연출을 빛, 연기, 바람 등의 비물질적인 요소와 물질로서의 설치물의 낯선 조합으로 구현하고 있었다.

《Gametophyte : 배우체》 전시 전경(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2023) ©하카손

작가는 거울의 투영, 문의 차단을 통해 끊임없이 흐르는 공간의 연속성과 일시성을 감추고 드러내는 동시에 물의 파동, 빛의 결, 그리고 안개의 소산을 통해 극의 절정, 긴장감, 등장의 순간을 퍼포먼스로 구현했다.
 
작업은 도입, 고조, 절정, 소강 등의 흐름이 교차하는 30분간의 퍼포먼스 구성을 띄고 있으며, 밑부분이 물에 잠겨 있는 양쪽의 문은 수조에 끊임없이 물의 파동을 만들어낸다. 거울처럼 빛나는 표면을 가진 육중한 스테인리스 철문의 움직임은 전시장의 안개와 관객의 움직임과 맞물려, 공간 전체를 휘젓는다.


《Gametophyte : 배우체》 전시 전경(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2023) ©하카손

마주보며 퍼포먼스를 일으키는 설치물은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동시에 충돌하는 양면성을 드러냈다. 설치물을 이루는 요소들은 본연의 기능성이 상쇄됨에 따라 서로 어긋난 물질과 물질 사이의 아귀가 맞춰지며 의외의 조합을 발생시킨다.
 
이러한 작업은 인체의 유려한 움직임이 조형의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치환되고 자연스러움이 인위적으로 변모할 때, 인위적인 움직임은 어떻게 극적이고 퍼포먼스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 보여준다.

하카손, 〈크립 바디〉, 2024, 혼합매체, 가변크기 ©ACC

이후 하카손은 기계적인 움직임을 통해 인체와 공간에 대한 관계를 유희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 나갔다. 예를 들어, 2024년 작업 〈크립 바디〉는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거나 정당화할 필요 없이 공동체적 소속감을 느끼는 휴식처 같은 공간, 즉 장애나 소수가 축복받고 포용되는 장소인 ‘크립스페이스’를 정신의 가장 가까운 집인 신체를 통해 탐구하고, 인체와 공간의 결합지점을 웨어러블 로봇으로 재해석한다.
 
웨어러블 로봇에는 다양한 층위의 인공관절이 삽입되어 새로운 몸짓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새로운 몸짓은 인체의 재생능력, 귀소본능, 그리고 기계와 몸이 접합되었을 때 보여지는 몸의 향상성과 적응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하카손, 〈크립 바디〉, 2024, 혼합매체, 가변크기 ©ACC

또한 인체-로봇 외피에 얹혀진 반사체는 기계적인 움직임에 따라 안으로 접혀 들어가고 바깥으로 펼쳐지기는 동작을 반복하며, 마치 인체와 공간이 뒤섞이며 새로운 접점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구현한다.
 
이처럼 이 작업에서 인체는 상황과 장소에 따라 입을 수 있는 공간을 스스로 생산하며, 자신의 몸을 재구성한다. 이는 곧 인체를 둘러싼 새로운 외피가 되며, 동시에 새로운 공간이자 거대한 인체 가면으로 제시된다.


《거울과 망토》 전시 전경(플랫폼엘, 2024) ©플랫폼엘

나아가, 2024년 플랫폼엘에서 열린 개인전 《거울과 망토》에서 하카손은 “현존성을 위임받은 기계적인 몸이 인간의 민첩하고도 차분하며, 미세하고도 거대한 물리적 움직임을 어떻게 업데이트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작업을 선보였다.


《거울과 망토》 전시 전경(플랫폼엘, 2024) ©플랫폼엘

작업의 퍼포머인 결합되고 체결된 신체는 사운드와 빛으로 감각되는 공간 안에서 패턴을 그리며 이동하고, 턴을 하고 포즈를 취하는 방식을 통해 경계 허물기를 시도한다. 몸과 공간을 감싸는 움직임은 몸의 물리적 공간감을 반영하고, 동시에 물리적 공간을 감싸며 신체와 공간의 관계를 전복시킨다.
 
건축물이 신체의 유기적 생명력과 형상을 닮듯 공간과 신체는 거울처럼 서로를 끊임없이 모방하고 투영하며, 마치 망토가 몸을 감싸듯이 하나로 포개어진다.

하카손, 〈부유하는 피부〉, 2024, 금속, 레진, 모터, 거울, LED 조명, 물, PVC, FRP, 130x150x150cm, 약 15분 ©하카손

한편,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언폴드엑스 2024》에 출품한 작품 〈부유하는 피부〉(2024)는 웨어러블 테크놀로지(wearable technology)와 플로팅 캡슐(floating capsule)을 통해 인간 감각의 경계를 구현한다.
 
플로팅 캡슐 안에서 인체는 피부 온도(37°C)의 물 위에 무중력 상태로 떠 있게 된다. 물 위에 떠 있는 몸은 중력과 같은 물리적인 힘으로부터 벗어나며, 촉각, 시각, 청각과 같은 모든 물리적 감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절반 이상이 물로 이루어진 인체는 물과 접촉하며 신체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하카손, 〈부유하는 피부〉, 2024, 금속, 레진, 모터, 거울, LED 조명, 물, PVC, FRP, 130x150x150cm, 약 15분 ©하카손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의 몸은 사라진 기관의 흔적을 남겨왔다. 이러한 사라진 기관은 ‘퇴화 기관’이라 불리며, 그 흔적은 몸 곳곳에 숨겨져 있다. 이 작업은 이러한 기관들이 살아 있다면 어떠한 감각과 움직임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하카손은 기존의 물리적 감각과 힘으로부터 해방시키는 플로팅 캡슐을 통해 인체 구조와 감각을 재설정하고 재동기화함으로써 새로운 몸의 움직임과 공간을 탐구한다.


하카손, 〈부유하는 피부〉, 2024, 금속, 레진, 모터, 거울, LED 조명, 물, PVC, FRP, 130x150x150cm, 약 15분 ©하카손

이러한 하카손의 작업은 공간, 기술, 그리고 인간 신체 간의 유동적인 관계를 드러낸다. 작가는 기술과 함께 진화하고 변형되어온 인간의 신체와 공간에 대해 탐구해 오면서, 그 안에서 포착한 어긋나는 지점과 결합되는 지점을 움직이는 조형의 형태로 풀어낸다. 이는 곧 점점 더 주변 환경과 결합되고 확장해 나가는 우리의 경계에 대해 고찰하고 다시금 감각하게 만든다.

 ”평소 ‘몸의 가변성’과 ‘공간이 몸과 같이 변할 수 있는 형태’에 관심이 있다. 미래라는 것이 인간에게는 공포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한 대응이 가능할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하카손, ACC 크리에이터스 토크 《올바른 미래 사용 설명서》 중) 


하카손 작가 ©ACC

하카손은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에서 패션을 공부하였으며, 독일 쾰른미디어예술대학에서 미디어아트로 학위를 받았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거울과 망토》(플랫폼엘, 서울, 2024), 《Gametophyte : 배우체》(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2023), 《이어진 반동의 고리》(수호갤러리, 성남, 2022)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Poetic Forensic》(세운상가 세운홀, 서울, 2025),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언폴드엑스 2024》(문화역서울284, 서울, 2024), 《랩들이 LAB Coming Day》(아트코리아랩, 서울, 2023), 《처음 만나는 과학》(국립부산과학관, 부산, 2022), 《RTA 2022: 진화》(탈영역우정국, 서울, 2022), 《어느 정도 예술공동체: 부기우기 미술관》(울산시립미술관, 울산, 2022)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하카손은 2024 ACC 크리에이터스 레지던시와 17기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입주작가로 활동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