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박물관의 관습에는
지극히 야만적인 것이 있다 ”1
모리스 블랑쇼
시멘트 석벽 구조물, 고대 유물과 그림자 춤을 추는 여성 실루엣의 비디오, 바위와 유물을 위한 비트린, 연필 소묘 드로잉과 깊은 어둠의 면을
담는 평면 작업들, 큐빅 오브제, 유적지 주변의 지형을 본뜬
조각물과 필드 레코딩, 얼룩과 추상 사이의 회화, 고대 무덤에서
꺼낸 무겁고 육중한 관 짝, 거대한 커튼에서 떨어지는 얼룩 설치 등,
마치 서로 다른 작가의 작업으로 구성된 미술관의 회랑에 들어온 듯, 갈라 포라스 김의 작업들은
드로잉, 조각, 비디오, 설치, 사운드 등의 다양한 매체와 방법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작가는
지난 십 년여간 박물관의 유물이나 유적지, 고대 건축물들이 원래 존재하던 방식에 깊은 관심을 두고 조사하고
그들이 있던 자리와 방식으로의 되돌아 가는 것에 대한 고민들을 다양한 작업안에 담고 귀결시켜 왔다. 작가가
특정 유물과 유대를 맺고 사고하고 그것들의 본래적 위치를 환기하고자 여러 숙고를 통해 자유로이 선택된 작업은 드로잉, 조각과 같은 물질적인 형태를 통하기도 하고 혹은 비물질적인 소리, 비디오의
움직임을 통하기도 한다. 또한, 곰팡이의 번식과 공기중 습기
등을 작품이 전시되는 기간에 시간의 변화와 더불어 가시화하면서 전시장 내에 다른 생명과 주인공들을 하기도 노출시킨다. 그렇다면 바로 이 다양한 작업의 외형들을 관통하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는 특히 마야문명, 이집트, 고인돌
등 주로 매우 오래된 고대의 유적 내에서 발견된 것들에 관심을 기울인다. <테오티우와칸 태양의
피라미드의 제의 요소들의 재구성을 위한 제안>(2019)은 석조 유물 모조품 두 점과 함께 작가가
멕시코시티의 국립인류학역사연구소 전시 담당 코디네이터에게 보낸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신들의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멕시코 테오티우와칸 지역은 유명한 거대 피라미드 유적지로 그중 태양의 피라미드는 태양의
위치를 계산하는 용도로 천문학적 중요성을 보여주는 신비로운 고대 건축물이다. 이 피라미드 정상에는 제의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거석 두 점이 존재했는데 전시나 보존을 위해 박물관으로 옮겨져 꼭대기에 두 개의 구멍만 남았 있는 상태이다. 이 작품의 두 점의 거석 모양은 바로 작가가 연구소의 허락을 받아 만든 복제품들이다. 그리고 함께 전시된 편지는 작가가 연구소에 보낸 것으로, 포라스-김은 이 구조물들에 내재된 제의적 의미들을 되살리는 노력이 필요함을 역설하며 거석이 있었던 원래 위치에 자신이
만든 복제품을 놓을 것을 제안하고 있다. 작가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뮤지엄에서 봤던, 이 거석들을 전시하기 위해 건축물 재구성 등 많은 노력이 투여되었던 점을 언급하며, 그 보다 우리는 실제 거석의 원래 초월적인 제의적 의미와 그 의미와 맞닿아야 할 대상들과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 작품과 나란히 놓인 <테오티우와칸
태양의 피라미드 꼭대기의 도굴된 구덩이에서 보이는 두 개의 별>(2019)은 어두운 태양의 피라미드
내부에서 바라본 밤하늘을 연필 흑연을 통해 재현한 회화이다. 마치 모노크롬 평면 같은 이 작품은 긴
시간 천천히 반복적인 연필 움직임을 통해 작가가 인내심을 가지고 채워나간 것이다. 이 칠흑 같은 어둠은
신을 위한 도시였던 테오티우와칸과 피라미드에 담긴 우주론을 두 개의 별과 함께 시적으로 소환한다. 작가가
얇은 흑연으로 하나하나 메꾼 화면의 시간은 불가능을 넘어 하나하나 막대한 노력으로 구축한 거대한 피라미드를 통해 간절히 도달하고자 했던 신성과
영속 그리고 그 심연의 시간을 불러들이고 있다.
고인돌은 인류사상 가장 오래된 원시시대의 무덤이다. <세월이 남긴 고색의
무게>(2023)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를 위해 새로이 제작된 작품으로 전라북도 고창에 남겨진
선사시대 거석문화인 고인돌을 방문, 조사하여 만든 작업이다. 약 500개가 넘는 집중된 거석문화 속에서 장례, 제례의식을 살필 수
있는 고창 고인돌은 2000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지만,
고고학적 평가 이전에는 오랜 세월 마을 주민들이 고추와 채소를 햇빛에 말리거나 빨래를 널어 두기도 하는 일상의 공간이기도 했다. 이렇듯 작가는 시간 속에서 고인돌이 통과하는 상이한 존재방식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세 개의 서로 다른 고인돌을
둘러싼 존재들, 그리고 그들과 관련되는 장면을 세 폭 재단화 형식으로 재현 혹은 개념화한다. 첫 번째 평면은 바로 원래의 무덤으로서의 고인돌을 환기하는, 고인돌
내에 잠든 시신의 시선에서 바라본 내부로 즉 칠흑 같은 석관 내부의 어두움을 담은 흑연 드로잉이다. 두번째는
역사적 유적이자 관광 자원으로 보존되고 있는 현재의 고인돌을 직접 묘사한 그림이며, 마지막은 고인돌
표면에 살아있는 생물인 이끼를 확대하여 그린 그림이다. 즉, 고인돌
전체 형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대비적으로 놓인 두 점의 회화는 추상적 회화로 보이지만 사실적 실재를 재현하는 것으로
하나는 개념적으로 시간을 초월한 죽음의 시각과 다른 하나는 새로운 시간을 부여하는 생명과 소통한다.
박물관의 고통2
“박물관은 그야말로 상징적인
적대 장소가 된 것이다. 추상과 요약만 집중적으로 하는 작업장, 한마디로
가장 폭력적이고 가장 모욕적인 장소가 된 것이다. 이 곳은 장소 아닌 환경이며, 세계 밖의 세계이며, 공기도 없고 빛도 없고, 생명도 없는 곳인데 이상하게 사람을 가둬 놓는 곳이다.”
모리스 블랑쇼, 「박물관의 고통」 중3
<영국
박물관의 5세기 경 기자 석관을 위한 일출>(2020)은
영국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5세기 파라오나 귀족들이 안치되었던 이집트 사르코파구스(시신을 담는 상자, 석관)가
고대 관습을 따라 동쪽을 향하도록 위치시킬 것을 제안한다. 바닥의 화살표는 현재 박물관에서 얼마나 관이
회전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표시이며, 제작된 복제 석관은 작가의 전시 안에서는 실제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해 놓여져있다. <마스타바 풍경>(2022)은
이전의 흑연 회화와 마찬가지로 박물관 불빛 아래에서 지워져 있는 석관 내부에 잠든 사자의 시각- 자신의
동쪽 마스터바를 향해 놓인 관 속의 깊은 어둠을 그려내고 있다. 이 작업들은 작가가 2021년 런던의 델피나 재단 레지던시를 통해 영국 박물관의 고대 이집트와 누비아 장례 문화와 관련된 소장품을
접하고 조사하면서 시작되었다. 작가는 역시 영국 박물관에 네켄프트카 화강암 조각의 유리 진열장을 둘러쌀
수 있는 고대 사막 그림을 석상을 위해 함께 전시할 것을 제안하며 다름과 같은 편지를 띄운다.
“영국박물관이 ‘이집트를 제외하고, 가장 방대한 양의 이집트 오브제들을 소장한 곳이자
고대 나일강 계곡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곳인 만큼, 수
없는 사람들의 영생에 대한 계획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게 쉽지만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다행히도, 박물관에 전시된 기존 작품 설명서의 대부분이 이미 그들을 전시할 때 지켜야 할 조건들을 담고 있습니다. 박물관의 분류체계 및 전시, 혹은 기관에서 발생하는 일상적 행위들이
이 지침서를 실천하는 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고대의 관중들이 무덤 너머의 풍경을 볼 수
있도록 유물들의 위치와 배열을 기획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심혈을 기울여 계획을 세웠을 이들을
재배치함으로써 초래된 혼란을 바로잡으려는 이런 작은 시도가 어쩌면 우리들은 모르고 살아가는 삶의 일면에 대해 많은 걸 알려줄지도 모릅니다.”4
박물관은 서구 사회의 근대성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는 공간이다. 이 편지에서
언급하듯 이집트를 제외하고 가장 방대한 양의 이집트 우물을 영국 박물관이 소장했다는 사실은 바로 이 박물관과 식민 근대성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지적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전 세계의 ‘진귀한 것들’을 수집하고 모아 놓은 유럽 귀족 사회의 호기심의 방(Cabinet de
curiosités) 혹은 경이로운 방(Wunderkammer)을 기원으로 하는 서구 박물관은
대부분 비서구 문명의 이국성을 신기한 것으로 타자화하여 수집하고 전시할 뿐 아니라 상당 부분 식민화 과정에서 약탈이나 수탈을 통해 얻은 것들을
소유한 곳으로, 서구의 식민 근대성을 핵심적으로 상속하는 공간이다. 작가는
단순히 약탈 혹은 도난된 문화재에 대한 원소유국으로의 반환의 수준에서, 즉, 문화재 반환과 같은 국제법이나 즉 여전히 현대 법령 체계가 다루는 탈취된 소장품의 물리적 소유권에 집중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오랜 고대 문명이나 원주민 문화와 관계된- 신이나 종교, 사후세계관과 관련하여 신비롭고 숭고한 예술품으로 완성되곤 했던 제의적 기물,
건축물, 조각상 등의 근본적인 대상인 고대인의 시각에서 그 장소성의 맥락과 세계관에 담긴
영속성의 의미에 어떻게 근접하고 복원할 것인가를 질문한다. 그리고 이 질문들은 영적 세계관에 대한 존중에
기반하여 사자의 영혼이 유물과 함께 강제 이식되거나 디아스포라에 처한 상태로부터 위안과 쉼을 구할 수 있는, 위로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제안으로 표출된다. 한 예로, 1818년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 개관하여 2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브라질 국립박물관이 2018년 화재로 소장 중이던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1만 1천 5백 년 전 미라인 25세
여성 ‘루지아’(luzia) 의 일부분 또한 소실하자 작가는
관장에게 직접 편지를 써 루지아를 DNA 복원 대상의 역사적 유물이 아닌 이제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복원된 나머지 신체를 화장하여 루시아가 박물관을 떠나 이제는 쉴 수 있도록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5
작가가 박물관 학예실로 열정을 담아 써보낸 편지는 대부분 답을 돌려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제안이 수용되거나 실현된 적은
아직 없다. 그럼에도 작가는 박물관이 유물을 원래 존재했던 방식을 벗어나 이질적인 장소에 보관, 전시하는 행위가 근본적으로는 과거와 현대, 범 시간대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우리를 초월하는 더 크고 불가해한 정신적 영역 간의 우주론적 연결과 소통을 해치고 있는 것임을,
박물관 제도하에 사자를 비인격화하는 것임을 이 편지쓰기를 통해 끊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환기하고 일깨우고 호소하고 있다. 모리스 블랑쇼는 예술을 위해 사로잡힌 창조의 공간이어야 하는 뮤지엄은 사실 배타적인 폭력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현실과 그 안에서 자신을 주장하는 모든 생명력을 제쳐 두도록 강요한다고 말한다.6 그는
우마이야 모스크에 있는 다마스쿠스 모자이크의 복원물을 전시로 접할 때 우리가 그것을 실제 있었던 공간이 아닌 낯선 공간에 있는 상태로 경험하는
것의 괴로움에 대해 말하며, 박물관을 폭력적이고 모욕적인 추상화(abstraction)의
장소라 칭한다. “제례 의식과 음악, 축하연이 있던 실제적
공간”(a real space, thus, a “space of rites, of music and of
celebration”)7 과 다르게 신학적 강요 없이도 오늘날 세상의 모든 사람이 방문할 수 있도록
열린 곳이지만, 그곳에서 우리가 하는 행위는 어쩌면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대리석을 런던으로 옮긴 제국주의자
엘긴 경(Lord Elgins)의 즐김과 다를 것 없는 것일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와서 “어떤 피신처도 은신처도 없이, 일체의 다른 세계 없이, 자기만의 비밀의 정수를 간직한 채 현실
그 자체로 서 있는”8 사물들. 고고학자들에게
유괴된 유물들을 보는 이 ‘괴로움’은 한편으로 보관, 보존, 전통, 안전이라는
의미를 갖는 박물관에 “생명이 없는 영속성” 속에서의 응고되어야
예술이라는 지위를 주는 박물관 제도의 현실 위상의 역설과 다시 상통한다. 박물관은 어떤 식으로든 이런 “결핍과 헐벗음, 찬연한 궁핍”9이라고
말하는 블랑쇼처럼, 한 세계의 현존(presence)이었고
자기 태생 공간에 숨겨진 채 오랜 시간 안위 속에 있었던 유물에서 포라스-김이 보는 것은 바로 그들의
고독은 아닐까?
조상의 영혼에 대한 <우리를 묶어 두는 곳으로부터의 영원한 탈출>(2021)이라는 평면 작업은 2021년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된
기원전 1세기 미라의 유해와의 소통을 시도한 결과이다. 작가는
조상의 영혼을 소중히 기억하고 제의 형식이나 샤머니즘의 전통을 가진 한국의 박물관이 유해를 다루는 방식에 특이점이 있는지 조사하고 학예연구원들과
대화했으며, 여전히 망자가 인격체가 아닌 연구를 위한 보존 대상으로 다루어진다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그에 따라 유해와의 샤머니즘적 소통을 통해 다시 매장되기를 원하는 장소를 되찾아주기를 주장하는데, 물웅덩이에 잉크를 풀고 동시에 영적 소통을 개입하여 그 잉크들이 만들어 내는 불가해한 무늬의 위치 정보를 살피고
그것을 페이퍼 마블링 기법으로 기록하여 그들의 소망을 읽어내고자 한다. 아름다운 마블링의 색채가 만들어낸
무늬가 마치 현대 추상회화나 아름다운 텍스타일 무늬처럼 보이는 이 평면은 역설적으로 박물관으로부터 유해를 존재론적으로 복권하고자 작가의 의지와
망자의 영혼을 잠정적으로 대리하는 표식 같은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가의 시도는 분명 동시대 미술의 전위적인 제도비판적 실천의 계보 위에 서 있다.
제도, 법률, 학문 분과 등 점차 고도화된 서구
이성의 매트릭스 시스템 위에 수렴된 거대한 관짝 같은 박물관에 망자의 인격, 고대 세계관, 조상의 영혼 같은 탈식민적, 탈이성적 영역을 존중할 것을 피력하고
설득하는 편지에서 어떤 행동주의의 면모를 엿볼 수 있기도 하지만, 대체로 급진적이거나 교란적인 방식
대신 익숙하고 안정적인 평면, 조각 오브제, 드로잉 등의
전통적인 매체들의 프로덕션을 지속하며 그 안에 진중하고 무게있는 인식론적 통찰을 담아내고 있다. 차분한
설득의 언어로 등장하는 제안들은 나아가 애니미즘적 영적 세계관의 자오선이 통과하고, 밤과 별, 눈을 감았을 때의 어른거리는 태양의 모습, 닿지 않는 지평선, 동성 형제의 금기시된 사랑에 바치는 노래 등에 담긴 서정성은 부드럽고 섬세한 시적 공간을 마련한다. 포라스-김의 작업은 특별히 더 유리관에 유배된 위태로운 영혼과 그
모든 유물에 깃든 디아스포라를 마음으로 들여다보는 듯, 그들의 본래 자리, 고향, 사후 환경과의 정신적 연결까지 관객의 마음에 결코 가볍지
않은 상상과 여운을 드리운다. 과학적 성분이나 재료, 연대
등의 정보와 지식의 무미건조한 대상에서 유물의 존재론적 위태로움과 상실, 비밀스러움과 고독으로 우리의
마음을 닿게 하여 고대 지구의 조상의 영혼과 그들의 세계관, 그 존엄에 대한 회복과 실천을 위한 장소로서의
박물관의 책임과 유물의 존재론을 매우 섬세하게 공명한다.
이러한 서정성은 <흐릿한 지평선을 향한 점근선>(2021)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작업은 신석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튀르키예의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 풍경을 2시간
간격으로 24시간 담아낸 12점의 연필 소묘 시리즈와 유적지와
연관된 여러 경로로 수집한 사운드스케이프를 담은 괴베클리 테페 지형을 미니어처로 만든 조각 오브제로 구성되어 있다. ‘괴베클리 테페’란 배불뚝이 언덕이란 뜻으로, T자 형 돌기둥이 2백 개 이상 늘어 서서 스무 겹으로 원을 이루는
형태가 특징이다. 신전으로 추정되며, 인공구조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약 1만 2천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해발 760m 높이 정상에 묻혀 있다가 우연히
발견되었다. 현재에도 여전히 발굴 중으로, 기자 피라미드나
수메르 문명을 뛰어넘는 초고대인류의 건축술에 대한 미스터리를 간직하고 있는데 신전의 건설 동기가 시리우스 별의 관측이나 어떤 천문관측 기록을 위한
장소일 수 있다는 가설이 존재한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현장 방문이 좌절되자, 작가는 유적지의 북서쪽에서 서쪽 하늘 풍경을 천문학자의 도움을 받아 구성했다. 드로잉에서 하늘의 영역은 천문관측대로부터 1만 2천 년 전의 별 위치 값을 제공받아 표현했다. 땅은 태양을 따라가며
볼 수 있는 구글 어스에서 얻은 오늘날의 이미지를 통해서 해가 뜨고 어둠이 드리워지는 하루 동안, 땅과
하늘이 지평선에 가까워지는- 그러나 결코 맞닿지 않는 괴베클리 티페의
24시간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 공간의 창연하고 불가해한 시간에 다가가는 서정적인 연필
소묘 시리즈는, 그 자리를 통과하는 자연 바람 소리부터 이 유적지를 말하고 기록하거나 설명하는 서로
다른 인물과 영상 자료에서 얻은 소리를 통해, 그저 순수한 청각적 감각에서, 개인의 이야기, 신화, 신비, 그리고 국가의 관광 자원으로까지 그 다양한 모습으로 흐르고 조용히 변화한다.
습기과 곰팡이 포자를 통한 영혼 설계10
유리관 안에 유물은 없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유물의 형태, 존재 그 영혼을 본다. 2023년 리움미술관에서 연 개인전에서 갈라
포라스-김은 유물이 존재하던 자리에 종이 조각을 설치하는데, 이
가볍게 매달린 종이 조각이 조명을 받으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마침내 그 형태가 유물의 형태를 ‘구현’한다. 종이 그림자는 보는 각도에 따라 형태가 흩어지기도,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유물의 윤곽을 신비롭고 매혹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이렇게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그림자를 통해 유물은 비물질적 존재로, 즉 어떤 영혼적 소통 상태로 전환한다.
“영혼을 “사건(event)”으로, 소유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중간적 영역에만 존재하는 무엇으로 상상한다면 어떨까? 그렇게 한다면 애니미즘이라는
문제를 달리 볼 수 있지 않을까? “영혼”이 그러한 사건들의
매개라면? 결국 우리 개개인은 살이 있는 대화와 살아 있지 않은 대화를 구별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를 발화하거나 객관화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리고
사실상 이러한 차이를 “전시하는 것”은 농담이나 캐리커처의
형태를 통해서나 가능하다.”11
리움미술관 유물 전시실의 유리장 안에 설치된 종이 조각들과 그것의 그림자를 통한 포라스-김의
작품 <청자 동채 표형 연화문 주자의 연출된 그림자>(2023)는
바로 안젤름 프랑케가 말하는 사물에 대한 애니미즘적 상태를 상상하고 촉발하는 위트 넘치는 조각적 사건이자 탁월한
‘영혼 설계’의 방식의 실현을 보여준다. 고대의
제의성이 여전히 박물관 내에서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애니미즘적 신념을 설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물인 작품의 위트 있는 ‘살아있는 대화들’을
설계하고 실행한다. 사실 동시대 미술적 대화는 본질적으로 애니미즘적 대화와 이미 깊은 상관관계에 있는데, 작가는 매우 시각적으로 간결하고 미니멀한 형태의 개념적 작업 방식을 통해 애미니즘적 대화들을 활성화한다.
<피바디
박물관에 소장된 비를 위한 303점의 제물들>(2021)은
고대 마야인들이 멕시코 유카탄 반도 지역의 천연 석회암 침식 동굴 신성한 세노테(Sacred Cenote)의
지하 샘물—바로 고대 마야인들이 비의 신 차크의 장소로 여긴—에서
건져 올려 현재 하버드 피바디 박물관에 보관 중인 수많은 유물을 183 × 183 cm(72 × 72 인치)의 드로잉 화면에 실제 사이즈로 담고 있다. 문제는 이 유물들은 원래
신에게 바쳐져 수장되어 있던 것이라는 점이다. <건조한 풍경을 위한 강수(降水)>(2021)는12 바로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세노테 우물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유물인 코펄(copal)13, 피바디 박물관 수장고에서 채집한 유물에서 떨어져 나온 먼지들을 빗줄기 같은
습기로 뒤덮인 유리관 안에 안치한다. 이 습기 유리관은 작가가 이 작업을 전시하게 되는 각각의 미술관, 박물관이 직접 방법을 고안하여 구현하도록 요청하여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설치에 빗물을 제공하도록 하는데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은 ‘마야 비의 신 차크(Chaac)와
소장 유물들의 재회’인 즉, 바로 그들 간의 영혼의 재회를
기관의 권한과 순기능을 활용하여 드디어 이루고 위로하는 것이기도 하다.
습기를 위한 장치화나 설계는 계속 여러 작업을 위해 뮤지엄에 요청되곤 한다. <만기의
순간 나타난 영원한 흔적>(2022)은 모슬린 천 위에 미술관 수장고에서 채집한 곰팡이 포자를
배양하여 습기를 제공하며 전시하는 동안 포자가 번식하도록 하는 작업이다. 곰팡이가 시간을 거치며 퍼져
나가며 매일 다른-추상적 화면으로 진화해 나간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의 마지막 방에 설치된 <신호예보>(2021)는
보이지 않는 습기를 산업용 제습기를 통해 모아 액상 흑연을 흠뻑 적신 마대 천 (burlap) 차양
위로 흘려보내고 떨어지는 물방울의 자국을 바닥에 놓인 패널에 기록하는 작업이다. 검은 물은 바로 전시하는
동안 응축된 습기의 양을 시각화한 것으로 미세한 날씨 변화나 실내 습도 변화를 알리는 ‘신호’이다. 미술관에서 습기 제어는 어쩌면 그야말로 생태적으로 무균(clinical) 공간을 지향하는 즉, 미생물들이 비활성화된 밀실을
지향하는 박물관 제도 본질과 특성의 많은 것을 설명한다. 작가의 전시 기간 중 일어나는 물과 곰팡이의
이러한 이벤트들은 바로 숨 쉬고 잠자고 있던 유기물과 미생물의 상호 교류와 활성화, 박물관에서 사멸해야
했을 생명의 부활 같은 기묘한 역설의 유머를 보여준다. 이 두 작업에서 관객들은 곰팡이를 추상회화처럼
보거나, 잉크 자국이 만든 패널의 무늬와 천의 설치 형태에 우선 주목할 것이다. 즉, 표면적으로는 동시대 드로잉,
조각, 오브제, 설치 등의 전통적인 매체 내에
있지만, 고대 영혼을 위한 제의부터 사물의 대화로 만들어지는 전시라는 영역까지 뮤지엄 안에서 살아있어야
할 것들에 대한 총체적 질문과 수행을 우리 앞에 가져다 놓는 것이 바로 포라스-김의 작업들이다.
작가는 구체적인 소장품이나 고고학적 장소에 대한 조사와 경험, 그리고 자유로운
상상과 유물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를 통해 서구 식민 이성의 상징적 제도에 대한 성찰과 통찰을 일깨우는 탁월한 작업을 지속해 왔다. 작업은 종종 애니미즘적 세계관과 관계하는 시적 순간들로 현현한다. 제도
비판적 행동주의, 개념적, 시적, 회화적인 매우 다양한 방식들을 경유하며 고대 애니미즘적 세계관과 동시대 미술의 사물 영혼 설계를 성공적으로
교차시킨다. 하나의 인격을 대하듯 유물에 잠든 영혼을 떠올리고 호소하며, 고대의 별과 밤을 시처럼 불러들이고, 사자와 유물의 눈과 입이 되고, 뮤지엄과 미생물 간의 대화를 생성한다. 유물은 오랜 디아스포라적
존재들이기도 하다. 유물과의 대화는 결국 인류의 조상들에 다가가는 공동체적 시간에 귀속된다. 고대인의 죽음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우리의 이해의 척도를 벗어난
세계의 사물을 소유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오늘날 뮤지엄의 재량권(discretion)은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 보는 행위로 점철된
뮤지엄에서 우리가 보는 것, 그리고 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유물과
작품은 어떻게 살아있는 대화를 마련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포라스-김이 10년 동안 예술적으로 추구해 온 핵심적이고 중요한 질문들이다. 이러한
질문과 더불어, 작가는 오래된 사후 세계의 염원을 수신하며 변화를 요구하고 실천 방식을 제안해 왔다. 갈라 포라스-김의 작업은 기억하고 위로하고 살아 움직이는 개체의
사들이다. 이들은 공동체적 회복의 대화를 향할 뿐 아니라 스스로 애니미즘적 사건으로 선명하게 빛난다.
1. Maurice Blanchot, “Museum
Sickness,” in Friendship, trans. Elizabeth Rottenberg (Stanford, CA: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7), 45. . 한국어판은 다음을 참조. 모리스 블랑쇼, 『우정』, 류재화
옮김(서울: 그린비,
2022).
2. 이 장의 제목은 모리스
블랑쇼의 글, 「박물관의 고통」(Museum Sickness)에서
차용한다. 각주 1과 같은 책.
3. 모리스 블랑쇼, 『우정』, 류재하 옮김(서울: 그린비, 2022), 90.
4. 2022년 1월 26일 영국박물관의 이집트 및 수단 담당부서 관리자(Acting Keeper)인 다니엘 앙투완(Daniel Antoine)에
보낸 편지에서 발췌했다. 작품과 함께 전시되었다.
5. 2022년 1월 26일 영국박물관의 이집트 및 수단 담당부서 관리자(Acting Keeper)인 다니엘 앙투완(Daniel Antoine)에
보낸 편지에서 발췌했다. 작품과 함께 전시되었다.
6. 각주 1과 같은 책, 48.
7. 같은 책, 47.
8. 같은 책, 47.
9. 같은 책, 47.
10. 이
장의 제목에서 쓴 ‘영혼 설계’라는 표현은 안젤름 프랑케가
《애니미즘》 전시를 위해 작성한 글 「애니미즘: 전시와 개념」 내 한 장의 제목 “영혼 설계”(Soul Design)에서 따 온 것이다. 안젤름 프랑케, 「애니미즘: 전시와
개념」, 『애니미즘』(서울:
일민미술관, 2013), 24.
11. 각주 10과 같은 책, 24-25.
12.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그것이 이 회화와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13. 작가에
따르면 나무에서 채집되어 제의에서 향으로 사용된 것으로 우물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유물이었다.